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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19화)
Chapter 7 피터의 점포 (4)


이 피터 상단의 단주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혹자는 고위 귀족이라 했고, 왕족 중 누구라는 소문도 있었다. 또는 피터라는 남자 이름을 쓰는 미망인 여자인데, 대단한 미모임에도 항상 망사를 쓰고 다녀 그 얼굴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고도 했다.
대신 피터의 상점에 가면 항상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는 이오라는 귀부인이 있는데, 그녀는 문화대륙 테헤란의 왕녀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만큼 그녀의 매너나 사람을 대하고 부리는 솜씨는 정평이 나 있었고, 귀족 가문의 집사들이나 상단 집사들도 그녀에게는 한 수 양보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피터 상단에서 제일의 유명인은 보데리우스라 알려진 젊은 집사였다.
이 젊은 집사가 바로 각 귀족들의 저택에서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공급하도록 만든 주인공이었다. 그를 만난 사람은 5분만 대화를 나누면 껌뻑 넘어간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는 달변이었고, 상대의 가려운 부분을 가장 잘 긁어 주는 사람이라 알려져 있었다.
그는 20대 초반의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신사로, 상술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처신이 능해서 그에게 의뢰한 일은 아직 실패한 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현재, 피터 상단의 식솔은 18명이었다.
매달 1일이 되면 마차 여섯 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20일께가 되면 모두 돌아왔다. 그렇기에 20일께가 되면 피터 상단의 상점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분주했다.
피터 상단은 그야말로 상술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며 디란 시티의 전설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피터 상단은 발전하고 있었다.



Chapter 8 리볼 강 문제 (1)


“어스, 어떤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플라스마 신관님.”
“허허, 에리스는 어디 간 모양이지?”
“베누스에게 간 모양입니다.”
“에리스는 여전한가?”
“그래도 스스로 베누스를 찾아다닐 정도이니, 이는 모두가 신관님의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신께서 응답하신 게지, 어찌 내가 치료한 겐가.”
“신관님께서 손을 펴 주지 않으셨다면 어찌 에리스가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허허, 그것이 바로 신의 은총이라는 걸세.”
플라스마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새삼 어스를 바라봤다.
7년 전 신년이 다가올 무렵, 10살 전후의 아이가 보름이 넘도록 신전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도 애처롭게 매달려서 데려온 큰아이의 머리에 안수하고 신의 은총을 빌어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후로 절기만 되면 어린아이는 신전을 찾아 헌물을 드리곤 하는 것이었다.
하는 짓이 기특하여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아이의 가족들과 모두 아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사이 아이의 덩치는 그때의 두 배는 커 버렸고, 이젠 거뭇한 수염도 보이고 청년의 티가 드러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리도 반듯하게 자란 것일까?
60이 넘도록 아이를 갖기는커녕 여인네 손도 잡아 보지 못했지만, 어스가 자신의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는 플라스마였다.
“하하. 이왕 오셨으니 식사나 하고 가세요, 플라스마 님.”
“허허, 그럴까? 오늘은 어스의 대접을 좀 받아 볼까?”
플라스마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자신의 키보다 부쩍 커 버린 어스의 어깨를 다독였다.

* * *

디란 왕국과 데이모스 제국의 국경은 리볼 강이다.
릴 산맥 북부에서 발원한 리볼 강은 아모라스 대륙의 젖줄로 수없이 갈라지고 합쳐지면서 온 아모라스 관통한다.
산맥 서쪽으로 흐르다 카자르 왕국에서 동서로 갈라져 폴로 왕국과 데이모스 제국으로 들어가 굽어 돌다가 아모라스를 전체를 적시고 대양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릴 산맥에서 강이 갈라지는 곳의 절반이 다시 디란 왕국과 타타르 왕국의 국경으로, 이곳까지는 매우 세찬 급류가 흘러 디란 왕국에서는 리볼 강을 죽음의 강이라는 의미로 하데스의 강이라고도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강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디란 시티 북부 110킬로미터 거리에 리볼 강이 있다.
그리고 리볼 강을 건너 직선으로 140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아모라스 대륙의 정신이라는 중앙신전이 존재했다.
디란 왕국의 문제는 중앙신전으로 가는 길이 리볼 강으로 인해 가로막혔다는 사실이다.
강만 건넌다면 넉넉잡아 열흘이면 족할 거리를 두 달이나 돌아가야 하고, 타타르 왕국과 데이모스 제국의 국경을 두 번이나 넘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꼬박꼬박 국경 통행세를 바쳐야 하니 누군들 달갑겠는가.
때문에 타타르 왕국이 중앙신전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더군다나 디란 왕국에서 들고날 때만 세를 받으니 디란 왕국의 입장에서는 보통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신년이 되면 중앙신전에서는 빛의 절기를 지킨다.
이때, 빛의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각국에서 순례자들이 중앙신전으로 모여드는데, 아모라스의 모든 주민들은 그것이 최고의 복인 동시에 헌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년이 다가오면 각 신전에서는 신관들을 파송하여 순례자들을 모으기도 하고 길 안내를 자처했다.
이때, 안내한 순례자의 수는 왕국별로 퍼져 있는 대신전의 교세를 의미하는 바로미터였다.
그런데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왕국이라 할 수 있는 디란 대신전에서는 오히려 멀리 떨어진 타타르 왕국이나 폴로 왕국보다도 순례자가 항상 적었다.
직선으로는 가깝지만 멀리 돌아가다 보니 순례자들이 대신전으로 모이는 것을 꺼려해 개별적으로 떠나는 순례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던 것이다.
때문에 해마다 디란 왕국의 대신전은 중앙신전으로부터 책망을 들어야 했다.
오래전부터 대신관은 국왕과 면담도 하고 직접 나서서 리볼 강에 다리를 놓으려고도 했지만, 리볼 강의 유속이 워낙 빠르다 보니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8일 전, 중앙신전으로부터 마법 공문이 도착했다.
신속하게 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라는 명령이었다.
만일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디란 대신전은 신전으로 격하되고, 대신관은 신관으로 격하되는 치욕을 당해야 하며, 왕국내의 신전들은 ‘전’에서 ‘각’이나 ‘소’로 격하시키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이미 몇 차례 이와 같은 논의가 중앙신전에서 있어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최종적인 공문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바탕에는 중앙신전의 권고를 거절함으로써 야기된 중앙신전과 디란 국왕과의 기 싸움이 존재했다.
중앙신전에서 보낸 낭트 왕국과의 정전 제안을 디란 국왕이 거절했던 것이다.
타타르 왕국이 디란 국경에서만 국경 통행세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이유였다.
즉시 베르베르 대신관이 국왕과 면담했지만, 이미 중앙신전에 항명하여 제전에도 참석치 않던 국왕이 마음을 돌이키고 적극적으로 나설 리도 없었다.
사실 국왕은 어차피 방법이 없다고 포기한 상태였다.

플라스마 신관은 답답한 마음에 길을 나섰다가 어스를 찾아 피터의 점포에 들어온 것이다.
식사 중에 플라스마는 대신전의 고민을 이야기했고 그 와중에 순례자를 모집할 방도를 어스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어스의 대답이 너무 가당치 않았다.
“그러니까 왕도 북쪽에 있는 팬텀 영지에 있는 리볼 강에 다리를 놓을 수 있으면 가장 좋다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허허허, 그렇다니까. 하지만 어스…….”
“하하, 일단 가서 보고 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플라스마 신관은 새삼 어스를 바라보았다.
거침없는 말에 농담으로 받아넘기려니 직접 가서 보고 온 뒤에 답을 주겠다는 어스. 왠지 플라스마는 기대가 되는 것을 느끼면서 속으로 헛웃음을 품고 말았다.
이미 다리를 놓으려 몇 번을 시도했고, 그 와중에 수만금이 허공으로 날아간 상태였다.
정말 신의 도움이 없다면 아예 강을 없애지 않는 한에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플라스마는 어스의 호기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럼 언제쯤이면 답을 주겠느냐?”
“사흘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이틀이면 안 되겠느냐?”
플라스마가 이유없이 시간을 재촉할 리는 없었기에 어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밤을 새워 달리면 가능할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돌아와서 신전으로 찾아뵐까요?”
“허허, 아니다. 내가 사흘 뒤 아침에 널 찾아오마.”
“예. 그럼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그러자꾸나. 어스야, 고맙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그 먼 거리를 다녀오겠다는 어스에게 플라스마는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풋 찾아드는 기대감을 속으로 삼켰다.
“아아, 왜 그러세요. 신관님이 아니셨으면 저희가 어찌 이렇게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었겠어요. 모든 것이 신관님의 덕입니다.”
“허허허, 우리 어스가 사람의 귀에 즐거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닌 줄은 알지마는 내 귀가 즐겁구나. 하지만 언제나 우리 어스가 신의 은총을 깨달을지……. 허허허.”
플라스마 신관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스는 플라스마 노신관의 왜소한 등을 그저 외경심을 담아 한없이 주시하였다.

* * *

“어서 오십시오, 호돈 자작님. 이 자리에서 뵈니 신수가 더욱 헌앙하십니다. 하하하.”
“하하하, 보데리우스 집사가 날 찾는다 해서 곧장 달려왔네. 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 바쁘게 찾았는가? 내게 뭐 줄 것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큰 건수라도 있는 건가?”
“하하하, 일단 들어가시지요. 기다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만나자마자 연달아 질문을 내뱉는 호돈 자작을 상대하면서도 보데는 여유롭게 웃으며 맞이하고 있었다.
한층 성숙해진 보데는 이제 누구의 페이스대로 움직일 정도가 아닌 것이다.
최소한 보데는 피터 상단의 대표성을 띤 집사였다.

“어이쿠! 이게 누구십니까? 마론 백작님이 아니십니까? 안녕하셨습니까. 그간 너무 소원했습니다.”
마론 백작을 보자마자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건네던 호돈 자작이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의 면면에 살피곤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 놀람을 담았다.
“허허허. 어서 오시오, 호돈 자작. 나이만 먹은 노인을 젊은 사람이 찾아와서 뭐 하려고. 이렇게라도 보면 되지. 이리 앉으시오. 우리 모두 자작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소.”
“대체…… 오늘 무슨 날입니까? 베어헌트 단장님에 닉스 부인까지? 이거, 정말…….”
호돈 자작은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다.
그는 너무 놀라 인사도 주고받지 못한 채 엉거주춤 자리에 앉다가 다시 일어나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이 자리에 앉은 이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아아…… 이거, 늦은 사람이 실수할 뻔했습니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베어헌트 단장님.”
“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 덕분에 잘 있습니다. 자작님께서 지난번에 보내 주신 호의로 식솔들이 꽤 도움을 받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사례가 늦어 송구합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베어헌트 단장님께서 평소에 저희 식솔들이 길을 갈 때, 부러 동행해 주신 일이 한두 번이던가요. 그저 지나다 힘을 더했을 뿐입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능히 어려움에는 한 손을 보탰을 겁니다.”
“허허, 그래도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사례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