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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21화)
Chapter 9 사람들 (2)
강의 폭은 1킬로미터에서 1.2킬로미터 정도였다. 하지만 릴 산맥에서 400킬로미터를 굽이쳐 내려오며 작은 지류들을 받아들인 강의 수량은 상상을 불허해서 넓은 강폭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쳤다.
급류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강한 유속은 어스가 던진 나뭇가지 하나를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리자드맨 같은 몬스터도 살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이런 곳에 다리를 놓는 것은 애초에 꿈이었다. 왜 그토록 많은 시도가 실패로 끝났는지 알 수 있었다.
어스는 한동안 바위에 걸터앉아 사색에 빠졌다.
주변 모두가 암반 지역인데 얼마나 오랫동안 흘렀으면 암반을 깎아 십여 미터 아래로 강이 흐르는 것일까를 생각하니 자연의 무서움에 절로 외경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누가 저런 곳에 교각을 세우겠는가.
설혹 세울 수 있다고 해도 그 위에 상판은 어찌 올릴 것이며, 폭우라도 내린다면 모든 것이 떠내려가 버릴 텐데 유지와 보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스의 생각과는 괴리가 너무 컸다.
자신의 경륜이라는 것이 형편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음을 생각한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지 않을 일에 연연할 어스는 아닌 것이다.
다만 플라스마의 고민을 풀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어스였다.
한데 마음을 접고 돌아서던 어스는 이상한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어스가 있는 곳보다 조금 상류에 몇 사람이 있었다.
주섬주섬 뭔가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비교적 낮은 절벽을 타고 내려갔는데, 그 움직임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직은 해가 중천에 떠 있기에 어스는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강변의 좁은 바위 위에 올라선 사람들의 앞에서는 한 걸음만 내딛어도 황톳빛 급류가 발을 휘감아 채갈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잠시 눈을 주는데, 하는 짓이 더욱 이상했다.
너나없이 커다란 바위 하나를 등에 짊어지는 것이었다.
“저, 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실로 기함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뚱이 반만 한 바위를 등에 짊어진 채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내려 쏘는 급류는 모든 것을 삼키려 한다. 하지만 이런 급류 속에서도 사람들은 먹고살 길을 찾는다.
일반적인 낚시는 아예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거친 강물을 뚫고 사람 키보다 두 배는 더 큰 통발을 바위 무더기에 고정시켜 놓고 물고기를 잡는 어로 방식이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스의 눈앞에서 통발을 건지려는 인간의 사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부는 급류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등에 자기 몸집의 반만 한 바위를 짊어졌고, 겨우 2, 3미터 진행하는 데에도 10여 분이나 걸리며 통발이 있는 바위 무더기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어부와 부딪친 물살이 온몸을 뒤덮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사투 끝에 겨우 바위 무더기 사이에 몸을 끼운 어부는 자기키보다 배나 큰 통발을 사력을 다해 끌어 올리고 있었다. 과연 그곳에는 몇 마리의 고기가 끼어 있었다.
어부는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리고 물보라를 튕겨 가며 통발 사이에 끼어 있는 물고기를 빼내려 용을 썼다.
이윽고 물고기의 아가미에 넝쿨을 끼워 넣어 허리춤에 묶은 어부는 다시 통발을 바위틈에 고정하고는 어렵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한동안 급류와 사투를 벌이고 다시 바위 위에 올라선 어부는 기진맥진했지만 안도감이 그대로 얼굴에 배어 있었다.
절벽 어디엔가 등에 짊어졌던 바위를 내려놓은 그는 허리춤에 묶은 넝쿨을 내려놓고는 돌아오는 동료들을 맞아 주었다.
그가 사투를 벌이고 잡은 것은 1미터에 가까운 메기 한 마리와 베오수스라는 통통한 물고기 두 마리에 불과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잡은 소산치고는 너무 작아 보였다. 하지만 득의한 어부의 표정에 어린 것은 만족함 하나였다.
하루 일용할 양식이면 더 이상 욕심 부릴 것도 없다는 모습. 그것은 그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잡은 것이 없는 동료에게 나누어 주는 여유도 보이고 있었다.
이때, 어스는 문득 포기하려 했던 문제를 생각했다.
왜 굳이 돌다리여야 하는가.
왜 굳이 도개교나 승개교만 다리라고 생각한 것인가.
일단 건널 수 있는 다리만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 아닌가.
물살이 세면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돌이라도 짊어지는 어부처럼 교각을 세울 수 없다면 교각이 없는 다리를 놓으면 될 것 아닌가.
받쳐 줄 교각이 없는 다리라면 가벼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통발처럼 나무 발판에 밧줄을 연결한 구름다리라면 어떨까?
도개교와 승개교를 생각하는 것은 적군이 다리를 이용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밧줄과 나무를 이용한 다리는 자금도 적게 들면서 언제든 끊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할수록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있어. 어떻게 저 먼 거리에 다리를 놓지?”
마탑의 고위 마법사를 이용하면 될 것도 같았다.
마법사는 공중을 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공중을 날아다니는 마법사가 이런 일에 움직일 것 같지가 않았다.
“고위 마법사님이 이런 일에 나설 리가 없지. 그럼 어떡하나?”
중얼거리던 어스는 문득 무릎을 쳤다. 입구가 넓고 출구가 좁았던 통발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 그 방법이야!”
가느다란 줄에 조금씩 굵은 줄을 연결시키면 될 것 같았다.
피터는 간혹 연을 날려 소식을 전하던 고향 이야기를 해 주며 연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달려들어 하늘로 오른 연을 바라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한 번은 연줄이 끊어지면서 어스와 에리스는 연을 찾으러 멀리까지 헤맸던 것이 생각났다.
어스는 즉시 실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부들이 사라졌던 곳으로 말을 달렸다. 들었던 대로 이곳에는 몬스터가 없는 모양이다.
작은 동산을 돌아가자 3미터 정도의 낮은 목책이 보였고, 어부들이 막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깐만 멈추십시오!”
말을 달려오자 긴장한 어부들이 급히 목책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디란 시티에서 일이 있어 찾아온 사람입니다.”
“누구를 찾아온 것이오?”
목책 위로 고개를 내민 사람은 처음 강에 들어간 어부였다.
“강에서 메기 잡는 것을 봤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얼 돕는다는 말이오? 말을 타고 가면 어둡기 전에 성읍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니, 그리 가보시오.”
어스는 사정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오랫동안 이런 마을들을 찾아다녔기에 그만큼 이 사람들의 성품을 잘 아는 어스였다.
결국 어스에게 설득당한 어부는 문을 열었고, 그를 따라가 연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강변으로 나온 어스는 연을 하늘로 띄워 바람의 방향을 기다리다 드디어 줄을 끊었다. 예상대로 연은 바람이 부는 대로 맞은편 데이모스 제국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스는 희열을 금치 못했다.
도개교나 승개교 같은 다리는 아니더라도 플라스마의 고민을 해결해 줄 방법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스는 다시 따라온 어부들에게 연을 주문했다. 황당한 주문에 황당한 짓이었지만, 어부 케이트는 묵묵히 친구들과 함께 연을 만들어 주었다.
두 번째 연은 다른 줄 하나를 더 연결시켜 날렸다. 하지만 바람에 날리던 연은 이내 강물에 떨어져 버렸다.
낙망이 됐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부족한 실을 모아 겨우겨우 연을 날리면서 적당한 높이와 바람을 찾았다.
“헉!”
순간, 어스는 기겁을 하며 연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너무 몰두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모두가 말을 타고 헤르시온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라는 점과 검까지 빼 들고 흉흉한 기세를 풍기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미 케이트나 그의 친구들은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싼 말 중에 가장 거대한 말 위에서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는, 마치 오거 같은 눈빛이 느껴지면서 어스는 오금이 저려왔다.
어린 시절의 모라 경험으로 보아 저런 눈빛을 가진 자는 철저한 군인이었다. 한 번 결정한 것은 죽어도 변치 않는 강골군인.
“웬 자이기에 연으로 연락을 보내는 것이냐?”
“무, 무슨…….”
말을 건 것은 강골군인 옆에서 말을 타고 있던 기사였다.
그가 걸친 마법 갑옷 헤르시온의 중앙에는 세 개의 날개가 달린 가고일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가고일 얼굴 문양은 디란 왕국의 문장이고, 날개가 세 개면 대위, 곧 상급 장교라는 의미였다.
“이곳이 국경 지역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말이냐?”
호통을 치는 대위의 모습이 차갑기만 했다.
계절과 안 맞는 국경 지역에 떠오른 연은 누가 보든 이상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스파이라도 잡은 듯한 기세였다.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피치 못할 일이 있어 실험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피치 못할 일이 무엇이냐?”
“그게…….”
막상 설명을 하려니 난감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는데, 어느새 두 명의 기사가 말에서 내려 어스에게 다가와 있었다.
그 순간, 플라스마 신관으로부터 받았던 실(Seal : 인장)이 생각났다.
“여기 신전으로부터 받은 실이 있습니다.”
“꼼짝하지 마라!”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려는데, 어느 순간 목젖 부위에 차가운 느낌과 함께 섬뜩함이 찾아들었다.
기사 한 명이 경계하듯 어스에게 검을 겨누자 다른 기사가 품을 뒤져 주머니를 꺼내 대위에게 가져다주었다.
대위는 주머니의 물건을 손바닥에 쏟아 냈다.
“거, 거기에 있는 실이 디란 대신전에 계신…….”
“아무래도 수상한 놈입니다! 복장을 보니 평민인데, 아직 어린 자가 이런 거금을 들고 다니는 것이…….”
길을 떠나면서 베누스에게 여비를 구했더니 건네받은 주머니였다. 안에는 5골드짜리가 두 닢 들어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나 보다.
대위가 강골군인에게 보고를 할 때, 돌아온 기사가 어스의 무릎 안쪽을 걷어찼다.
“으윽!”
자연스럽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
뒷골 부위에 닿은 칼날에서 뻗어 나오는 예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어스로서는 변명할 경황조차 없었다.
다각다각.
순간, 누군가 말을 몰아 다가오고 있었다.
투레질조차 없는 것이, 주인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명마였다.
“세워라!”
명령과 함께 겨드랑이를 한 손에 움켜쥐고 일으켜 세우는 기사의 엄청난 힘에 어스는 어떻게든 해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령자는 오거 눈의 강골군인이었다.
“누, 누구신지……?”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후회도 하기 전에 심장이 오그라들 것 같은 느낌이 확 다가왔다. 사방을 둘러싼 기사들의 눈이 일순간에 일렁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스를 바라보던 강골군인의 얼굴에도 약간의 당혹이 피어났다.
“나는 제7군단장인 마론 백작이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헉!”
숨을 들이켜는 어스의 심장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오래된 마법 갑옷에 양각된 금빛 문양이 심상치 않더니, 군단장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