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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4화)
제2장 포졸이 되다(2)


당천은 암제가 만들어 준 갑옷 형식의 은빛 갑주를 입고 있었다. 치고받고 나면 옷이 걸레가 되어 부서지지 않는 튼튼한 보갑을 만들어 입고 지내던 두 사람이었다. 흐트러진 치렁한 머리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은빛 창에 은빛 갑주를 걸친 대장군 같은 모습에 모두 당천이 오면 자리를 피하며 길을 내주었다.
“이놈아!”
“저 말입니까요?”
“그래! 여기 포졸들이 있는 곳이 어디냐?”
“저쪽으로 쭉 가시면 가장 큰 집이 있는데 그곳에 포졸들이 있습니다요, 나으리!”
당천은 시장을 구경하다가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깨닫고는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서 물었다. 다짜고짜 막말을 하는 당천에게 행인은 굽실거리며 얼른 대답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 막대하는 것은 분명 신분이 높은 대장군 정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청을 찾는 것이, 분명 나라의 녹을 먹는 장수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지! 무슨 일이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둘러싼 높은 벽을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정문이 나온다. 정문에는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라고 쓰인 커다란 편액이 붙어 있었다.
사천성의 성주는 정이품인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라 불리는 관리였다. 포정사라 불리지만 일반 백성들은 성주라 칭하는 자로 일반 민정을 관장한다. 그리고 군대는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라는 정이품의 총병인 장군이 지휘한다. 그 밖에 감찰기관인 제형안찰사사가 있다.
안찰사는 감찰 업무와 성의 치안을 담당하며 형(刑)과 옥(獄)을 다스린다. 정삼품인 안찰사 밑에는 부사, 지부, 첨사, 지부, 동지, 통판, 추관이라는 벼슬이 줄줄이 있다. 하관 말직인 정칠품의 추관 밑에도 등급이 있는데 감찰관(監察官), 순검(巡檢), 포쾌(捕快), 정용(丁勇)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밑에 있는 정용을 포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위의 포쾌를 포두라 부르며 존중한다. 일반 백성들은 정용과 포쾌까지를 포졸이라 부른다.
“이놈아! 나는 포졸이 되실 어른이다!”
“컥!”
현재 정문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자들은 포졸이라 불리는 정용이었다. 범인을 잡기 위해 포쾌인 포두를 도와서 출병하면 일반 백성이 벌벌 떠는 포졸이지만 이곳에는 그야말로 말단 중에 말단이었다. 하늘 같은 안찰사와 지부, 첨사는 다른 세계에 사는 관리라 쳐도, 추관 밑에 있는 감찰관이나 순검만 하더라도 포졸들에게는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포졸이 되실 어른이라니!
“이놈이 감히 누굴 놀리려 하느냐!”
“이놈이!”
황당한 사태에 기가 막혀 숨을 멈추었던 포졸이 정신을 차리고 고함을 질렀다. 포졸이 되기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무공은 아니더라도 뒷골목에서 싸움깨나 하는 자나, 무도관에서 삼재검법이나마 수련한 자, 또는 군대에서 배운 팔모창(八母創) 정도는 배워야 포졸이 될 수 있었다.
감찰관, 순검, 포쾌까지는 지방무과시험을 통해 뽑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용은 포쾌가 추천하고 감찰관이 조사해서 이상이 없으면 추관이 뽑을 수 있었다. 이렇게 뽑힌 포졸은 죽을 때까지 일해도 포쾌까지만 올라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쾌가 승진하려면 무과시험을 보아야 가능했다. 즉, 한 번 포졸은 죽을 때까지 포졸이었다. 때문에 포졸이 포쾌로 승진해도 포쾌란 호칭은 그저 포졸들끼리 고참을 높여 주는 칭호일 뿐이었다. 일반인에게는 정용이나 포쾌나 모두 포졸인 것이다.
포졸이 기가 막혀 소리를 지르자 당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산을 내려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자신을 이렇게 친근하게 대해 주니 말이다. 당천에게 ‘이놈아!’하는 말은 암제가 자신과 놀아 준다는 신호였다. 때문에 당천도 그렇게 부름으로써 친근함을 표시했다.
“으아악! 이놈!”
붕!
당천의 대꾸에 포졸은 머리까지 열이 뻗쳤다. 세모꼴의 살모사 같은 눈을 가진 포졸이 단수입거창(單手立擧倉)의 자세로 들고 있던 창을 등 뒤로 젖혔다가 쌍수견상배(雙手肩上背)의 창술로 시전했다. 그냥 등 뒤로 젖혔다가 다리를 벌리며 횡으로 휘두르는 것으로, 창보다는 몽둥이나 봉을 주무기로 하는 수법이었다.
“뭐 해?”
툭!
“악!”
현재 당천의 앞에 있는 포졸은 그래도 팔모창과 금군이 가르쳐 준 창술을 제법 익혀서 창술의 고수라 자부하는 자로 나중에 무과시험에 합격해서 감찰관까지도 바라보는 큰 꿈을 품고 있는 포졸이었다. 하지만 당천이 보기에는 하품 날 정도로 느리니, 놀자는 것은 기특했지만 이래서는 재미가 없었다. 무슨 다른 뜻이 있는가 하고 다가가서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포졸이 자신의 멋진 창술을 펼치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는 꿈을 꾸고 있을 때, 갑자기 눈앞에서 상대가 사라졌다. 대낮에 유령을 봤는지, 아니면 헛것을 보았나 하고 눈을 껌벅일 때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당천은 툭 쳤을 뿐인데 포졸은 어깨뼈가 빠지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포졸은 빠진 팔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너…… 너는 누구냐!”
“포졸 되실 어른!”
쿵!
푹!
“컥!”
다른 포졸들도 놀라 창을 겨누며 당황한 어조로 소리쳤다. 벌건 대낮에 안찰사가 계신 제형안찰사사에 와서 시비를 거는 미친놈이 있다니, 하는 생각에서였다. 순간, 당천의 창을 본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당천이 포졸과 놀기 위해 등에 메고 있던 소위 천하제일궁을 손에 들고 있다가 땅에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포졸들이 보기에는 창을 가볍게 내려놓은 것 같았는데, 창은 바위벽돌을 깔아 놓은 바닥에 두부를 찌른 듯 창대까지 쑥 박혀 버렸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
그때, 정오품 관리인 동지가 밖으로 나왔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물었다. 사각 턱에 조그만 염소수염이 양쪽으로 달랑 나 있고 눈이 단춧구멍처럼 작은 인물이었다.
“어르신! 그, 그것이…… 이 어른이 포졸…… 어른이시랍니다.”
장비 같은 덥수룩한 수염이나 관운장처럼 멋진 수염이 어울릴 법한 크고 각진 얼굴에 작은 염소수염이 삐죽 나 있는 것을 보고 웃는 포졸들은 아무도 없었다. 동지란 관직은 그들에게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신분인 것이다. 동지라는 직위는 지방무과가 아닌 황궁무과에 합격해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시끄럽다. 너……! 혹시 높은 곳에서 오신……?”
포졸들의 횡설수설에 찢어진 작은 눈이 더 찢어지면서 급기야 눈도 보이지 않게 된 동지였다. 포졸들을 꾸짖고는 당천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눈알이 튀어나와 찢어진 눈이 몰라볼 정도로 커졌다. 황궁무과에 합격하려면 기본 내공은 아니더라도 외공 정도의 무공을 지녀야 가능했다. 동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천이 들고 있는 창이었다. 내공이 지고의 경지에 이르거나 만년한철 정도의 무게가 나가기 전에는 돌바닥에 두부처럼 창대가 파고 들어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그때 동지의 머릿속에 안찰사에게서 들은, 황궁에서 동창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곱상한 턱이 내시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시에 동창이라면, 동창 중에서도 동창제독이거나 바로 아래에 둘밖에 없다는 첩형이었다. 즉 동창에서도 수뇌부에 속하는 최고위층인 것이다.
“저…… 창 좀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네가 보기에도 이게 천하제일궁은 아니지?”
“…….”
창을 달라는 말에 당천은 순수하게 궁을 내주면서 말했다. 누구처럼 쫀쫀하다는 말은 듣기 싫은 당천이었다. 동지는 무슨 말인지 몰라 그저 멍청하니 창을 받았다.
“억!”
푹!
약간의 내공도 있고 권법까지 익힌 동지가 당천의 창을 받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무슨 창이, 가장 무겁다고 알려진 만년한철보다 더 무거운 것 같았다. 더구나 차갑기가 얼음보다 더 싸늘해서 손에 동상이 걸릴 정도였다. 창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두부에 박히듯이 벽돌을 푹 파고 들어가 버렸다.
“이놈아! 그렇다고 버리냐?”
“죄, 죄송합니다.”
졸지에 욕을 얻어먹은 동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졸들은 하늘 같은 동지가 절절매자 부동자세가 되어 눈알만 굴릴 뿐이었다. 팔이 빠졌던 포졸도 동료의 노력으로 팔을 맞추어 놓고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동지가 자신이 암제에게 활을 던졌던 것처럼 버리자 당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역시 통하는 놈이다. 그러나 말투는 영 아니었다.
“헤헤! 어디 가면 포졸 되냐?”
“이리로 오십시오.”
동지는 눈앞의 남자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자신이 무슨 소림사의 고승인지, 하는 말마다 선문답 같은 말만 쏟아져 나왔다. 당천의 웃음소리를 듣고 나자, 내시가 분명하며 동창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높은 곳은 황궁뿐이고, 내시가 이처럼 거만하게 사람을 놀릴 수 있는 곳은 동창뿐이었다.
하지만 동지는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가진 동창이지만 자신도 정오품에 해당하는 관리이기 때문이다. 내시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내색하기는 싫었다. 일단 놈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동창이 하는 일은 비밀이기에 모르는 것이 나았다. 놈이 안찰사에게 가자고 하면 그리 가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면 그리로 가면 그만이었다. 동지는 동창이 요구하는 대로 포졸을 뽑아서 관리하는 추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척!
동지가 지나가자 포졸들이 일제히 창을 잡아당겨 세우며 부동자세로 예를 취했다. 당천은 모든 것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덜컹!
“헉! 동지 어르신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높은 곳에서 오신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소.”
동지는 황궁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는 뜻으로 말했지만 당천은 높은 산에서 왔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듯했다. 그곳에는 추관과 감찰관, 순검과 포쾌까지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아! 예!”
추관은 동지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들만의 암호와 같은 은어였다. 귀한 손님은 신분을 밝힐 수 없다는 뜻이고, 높은 곳은 황궁을 말했다. 황궁에서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존재는 동창뿐이었다.
“저기, 무슨 일로……?”
“포졸이 되려고 왔다.”
“……!”
추관이 긴장한 안색으로 당천에게 물었다. 동창이 왔다는 것은 대역죄가 아니면 황제가 관심 있는 일이 이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포졸이라니?
“포졸패가 왜 필요하십니까?”
추관은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마침내 질문을 던졌다. 동지도 궁금한지 귀를 기울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 동창 놈이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는 알고 싶었다.
“도둑놈들이 제일 무서워하잖아.”
“그럼, 그 무영……!”
당천의 대답에 순간 추관의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창이 돌려서 말하고 있다면 그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말을 멈추었다.
“여기 포졸패가 있습니다.”
“헤해! 이제 천하제일궁은 내 것이다.”
추관은 동창이 원하는 대로 포졸패를 건네주었다. 당천은 감격한 표정으로 포졸패를 받으면서 싱글벙글이었다.
‘무영신투를 잡으려는 것이 천하제일궁을 얻기 위함인가? 무영신투가 천하제일궁을 가지고 있나?’
추관이 비상회의를 연 이유는 사천성 제일의 거부가, 무영신투란 자가 자신의 보물을 노리니 지켜 달라는 서신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또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음! 당과를 사야 하는데 어디서 팔지?”
‘이런 죽일 놈! 결국 뇌물을 받아 처먹으러 여기 왔단 말이지? 처먹으려면 안찰사에게나 가 볼 것이지 우리 같은 하관말직의 돈까지 빨아먹다니!’
추관은 당천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미관말직들에게 얻어 가는 돈이라야 당과 정도 사 먹을 푼돈이라는 뜻일 것이다. 무영신투란 자를 잡으러 왔다면 안찰사에게 뜯어먹을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때문에 만만한 자신들의 주머니까지 털려는 악랄한 놈을 만난 것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추관은 죽을상을 하고는 모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모두의 주머니를 털어서 뇌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조리 털어서 여기 담게나.”
“……!”
밖으로 나간 추관은 가지고 있는 돈을 모조리 털어서 주머니에 담았다. 주머니에 돈을 많이 넣어 가지고 있었던 자들은 완전히 똥 씹어 먹은 얼굴이 되었다. 안에 있는 당천의 예민한 귀에 돈이라는 소리가 확실히 들려왔다.
“받으십시오.”
“이게 뭐지?”
당천은 추관이 주는 뇌물 주머니를 받아 들면서 물었다.
“얼마 되지 않지만 당과 값이나 하십시오.”
“……?”
당천은 그제야 당과를 사려면 돈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연령은 비록 어린아이 수준이지만 그의 머리는 천재 중의 천재이니 그런 사실을 금방 알아챈 것이다.
“이게 있어야 당과를 산다. 그런데 왜 주는 거지?”
‘윽! 나쁜 놈! 그냥 모른 척하고 받아 갈 것이지……. 뇌물이라고 하면 뇌물수수죄로 몰아붙일 게 뻔하고……! 뭐라고 해야 하나? 아하!’
당천의 질문에 추관은 안절부절못했다. 놈이 뇌물을 받고도 입막음을 하려는 속셈이다. 말 한번 잘못하면 뇌물을 바치고도 자리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포졸이 되셨으니 받으시는 봉록(俸祿)입니다.”
“봉록이라? 그럼, 또 언제 봉록을 받지?”
‘헉! 나쁜 놈! 또 뇌물을 받아 처먹겠다고!’
당천은 당과를 사려면 뇌물 주머니에 든 동그란 물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떻게 하면 이것을 더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물은 것뿐이었다. 그러나 추관은 또 뇌물을 받으러 오겠다는 말인 줄 알고 놈의 악랄한 심보에 이를 갈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무영신투를 잡은 후에 오시면 됩니다.”
“무영신투를 잡은 다음에는?”
‘컥! 이 악랄하고도 최고로 나쁜 놈 같으니! 네가 동창인데 임무를 마치면 황궁으로 돌아가야지 또 이곳에 올 수 있을 것 같으냐? 혹시 또 다른 임무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