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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5화)
제2장 포졸이 되다(3)
당천의 물음에 추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영신투를 잡으면 동창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들르겠다는 소리다. 어차피 한 번은 더 돈을 뜯길 각오를 해야 했다.
“황실에서 원하는 흉악한 범죄자들을 잡은 후에 오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추관은 대답을 하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재수 없으면 죽을 때까지 놈에게 대가 없는 뇌물을 주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불행에는 최대한 저항해야 한다. 황실에서 원하는 범인은 반역자가 분명하거나 무영신투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범죄자일 것이다. 그런 거물을 잡으면 승진에 포상이 뒤따를 것인데, 설마 이런 사천성 미관말직들의 푼돈을 뜯기 위해 다시 오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포졸이 무서운 것이구나! 그럼, 무영신투를 잡은 후에 보자!”
“준비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당천은 그 무섭다던 포졸이 되고 당과를 살 수 있는 돈까지 얻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암제가 당과를 사 오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았다.
“나쁜 놈 같으니! 돈도 주지 않고 당과를 사 오라고 시키다니! 주나 봐라!”
당천은 제형안찰사사를 나오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돈의 개념에 대해서 배운 것이다.
제3장 무영신투(無影神偸)(1)
“당과 사려!”
“당과다!”
시장에서 당과를 찾아 헤매던 당천의 귓가에 당과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헉!”
목에 띠를 두른 채 좌판을 배에 매달고 다니면서 당과를 팔던 갸름한 얼굴에 팔자수염, 염소수염을 한 중년의 당과장수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기겁을 했다. 갑자기 거대한 창을 멘 사람이 유령처럼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과 줘!”
‘이게 웬 횡재냐?’
당천은 뇌물 주머니를 통째로 주면서 당과를 요구했다. 주머니를 열어 본 당과장수는 봉을 잡은 기분이었다. 당과 하나에 한 푼 하는 가격이었다. 당과는 보통 어린아이들 간식으로 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국수 한 그릇이 두 푼이고 만두 하나가 동전 한 푼, 열 푼이 은화 한 냥이고 은화 백 냥이 금화 한 냥이었다. 그런데 주머니에는 수십 개의 금화와 은화, 그리고 수백 개의 동전이 보였다. 좌판에 있는 당과는 모두 이백 개 정도였다. 즉, 좌판에 있는 모든 당과의 값은 동전 이백 푼, 스무 냥이었다. 은 이백 냥이 금 한 냥이기 때문에 한 냥, 두 냥 하는 것은 모두 은화를 말한다. 금화는 금 한 냥이라고 앞에 ‘금’자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모두 드릴까요?”
“응!”
좌판에 있는 모든 당과를 합쳐도 스무 냥이 안 되었다. 그런데 금화까지 들어 있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통째로 준 것은 이자가 어수룩하거나 세상물정을 모르는 풋내기라는 뜻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푹!
당과장수는 돈주머니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고 큰 봉투에 당과를 백 개씩 담아서 두 개의 봉투를 건네주었다. 당천은 봉투 두 개를 받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꽂았다.
‘컥!’
“저, 손님! 거스름돈 받아 가셔야지요.”
“거스름돈?”
창이 바닥에 박히는 것을 본 순간 당과장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리 돈에 눈이 뒤집혀도 주머니째 강탈해 간다면 나중에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제야 당천이 입고 있는 범상치 않는 갑옷도 눈에 들어왔다. 당과장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금화 하나와 은화 하나, 그리고 동전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금화를 쥘 때는 손이 덜덜 떨렸다. 마침 추관과 포쾌가 뇌물로 받은 금화가 있어서 뇌물 주머니에는 금화가 다섯 개 들어 있었다. 이 정도 거금을 들고 다니는 자라면 주머니 속에 얼마가 들었는지 모를 것이란 가정 하에, 당과장수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금화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봐!”
“헉! 살려 주십시오.”
거스름돈을 받은 당천이 자리를 뜨려는 당과장수를 부르자 그는 자신의 속임수가 들통 났다고 생각하고는 사색이 되어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그 자리에 엎드렸다.
‘역시 포졸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군!’
당천은 덜덜 떨며 거스름돈을 주던 당과장수가 이제는 아예 살려 달라고 엎드리자 포졸이 무서워서 그런 줄로 착각했다. 당천의 옆구리에는 포졸패가 자랑스럽게 매달려 있었지만 그것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커다란 창과 범상치 않은 은빛 갑옷이 너무도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무영신투가 있는 곳이 어디지?”
“저, 저쪽에 가시면 가장 큰 기와집이 있습니다. 금상장(金像壯)이라는 집에 나타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영신투는 자신이 훔칠 곳에 미리 서찰을 보내는 도둑이었지만, 무림문파는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한 번은 사찰에 큰 기부를 하는 장원이 털리자 소림사의 십팔나한이 무영신투를 잡으러 나선 적이 있었다. 그러자 무영신투는 소림사의 장경각에 서신을 하나 남겼다고 한다. 자신을 계속 쫓으면 장경각에 불을 지르겠다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이런 사건이 세간에 퍼지면서 소림사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고 어떤 무림문파도 무영신투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소림사는 장경각이 불에 탈까 두려워 무영신투가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십팔나한을 불러들였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남긴 도둑이 바로 무영신투였다.
무영신투가 금상장에 서신을 남겼다는 소식은 사천성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무영신투는 재물과 물건을 훔칠 장소에 서신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근처 성에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이런 그의 기행 때문에 무영신투를 모방하는 범죄는 쉬이 저지르기 어려웠고, 반면 어려운 백성들에게는 신화적인 존재가 무영신투였다. 도둑질에 성공하면 근처의 어려운 백성들의 집 앞에 재물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곳인가?”
금상장은 높은 담 뒤로 수십 개의 기와지붕이 보이는 커다란 장원이었다. 정문에 금상장이란 황금빛 글씨가 양각된 편액이 달려 있었지만 당천은 아직 글씨를 읽을 줄 몰랐다.
“누구냐?”
“무영신투를 잡으러 온 포졸이다.”
당천은 당과 하나를 입에 물고 당과가 든 봉투 하나씩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등에는 커다란 창이 메어져 있었다.
금상장은 천축과 서장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커다란 상단이었다. 금상장주는 천축에서 코끼리를 보고 난 후에 코끼리를 사 왔지만 코끼리는 얼마 가지 않아 병으로 죽고 말았다. 금상장주는 죽은 코끼리의 가죽과 뼈로 박제를 만들고 박제된 코끼리를 도금을 해서 보관했다. 그때부터 금상장으로 불리기 시작한 곳이다.
금상장의 정문을 지키는 무사들은 등에 검을 차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모두 외공과 내공을 익힌 이류급 무인들이었다. 무영신투를 잡기 위해 금상장은 초비상 상태였다. 수많은 낭인들을 고용해서 철저하게 지키는 중이었으며 관에 알려서 관군들이 이천이나 파견되어 금상장의 외곽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모두 제형안찰사사에서 나온 포졸들이었다. 도지휘사사 소속의 군인들은 수만이나 되지만 황제의 명령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었다.
“포졸이면 저쪽 외각으로 가라!”
입가에 큰 점이 있는, 세모형 얼굴의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무사가 금상장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천의 병력이 왔다지만 무영신투 같은 고수를 잡는 데는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 고수들이 포졸들을 모두 숲에 몰아넣은 것이다. 도지휘사사 병력이라면 궁병이라도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지만 포졸은 아니었다.
물론 포졸도 잡범을 잡을 만한 실력은 되고 포쾌 가운데는 제법 무공을 하는 고수가 있었다. 하지만 무영신투 같은 고수를 잡는 데는 쓸모없는 자들이었다.
이름난 포쾌는 수사를 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실력이 무림의 무사보다 낫지만 무림고수를 직접 잡을 수는 없었다. 관에서 무림고수를 잡으려면 금의위(錦衣衛)나 동창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역모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때문에 무림고수가 범죄를 저질러 포쾌가 그의 정체를 알아내면 관에서 그를 잡아 달라고 정도맹에 부탁하곤 했다. 그러면 구파일방이 나서서 범인을 잡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인 것이다.
“저쪽에서 기다리면 무영신투가 온다는 말인가?”
무사의 말에 당천은 당과를 문 채 숲을 향해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무사는 당천의 기이한 차림새와 무기에 호기심을 나타냈지만 포졸이라는 말에 이내 신경을 꺼 버렸다. 겉멋만 잔뜩 들어서 속이 텅 빈 가짜 창을 들고 다니는 한량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저기 산 위가 좋겠군!”
당천은 이천의 포졸이 배치된 숲을 지나 금상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위로 올라갔다.
오도독!
당천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누워서 당과를 빨아먹다가 조금 남으면 오도독 깨물어 먹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스스슥!
“우와! 엄청 빠르다.”
그때 산 정상에 유령처럼 한 노인이 나타났다. 긴 다리가 인상적인 노인으로., 백발의 머리를 묶어서 상투를 만들고 머리에는 영웅건을 두르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에 크고 두툼한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노인이었다. 하얀 경장 차림의 노인이 당천을 힐끗 쳐다보더니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서 집어던졌다.
“모른 척해라!”
“당과 값이다!”
노인이 던져 주는 돈주머니를 받아 든 당천이 좋아서 소리쳤다. 주머니에는 노란 금화 서너 개와 은화 십여 개가 들어 있었다.
노인은 그런 당천을 보면서 품에서 하얀 복면을 꺼내 뒤집어썼다. 그가 바로 무영신투인 것이다. 무영신투에게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둘째, 재물을 훔치기 전에 반드시 상대에게 알려 준다. 셋째, 훔친 재물의 반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무영신투는 평소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당천에게 들킨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복면을 쓰는 것은 완벽한 은신을 위해서였다. 돈주머니를 준 것은 훔치기 전에 미리 선심을 쓴 것뿐이었다. 허영심이 강한 무영신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천하제일 신투요, 천하제일 의도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말은 빠르다는 말이었다. 당천의 칭찬에 으쓱해진 마음에 돈주머니를 던져 준 것이다.
휘이익!
“아!”
하얀 복면을 뒤집어쓴 무영신투가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태양을 향해 솟아오른 무영신투는 이내 빛 속으로 녹아들면서 그 모습이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무영신투가 밤에 침입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무영신투에게는 밤낮의 구별이 없었다.
당천은 무영신투의 신법에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무영신투의 신법은 축지경공술, 이형환위, 금강부동신법의 원리가 모두 들어 있는 신법으로 하단전은 물론 중단전과 상단전을 모두 사용하는 천하제일의 신법이었다. 즉, 공간에서 공간을 순간이동하는 신법이며, 땅을 접듯이 허공을 접어 날아가는 원리가 가미되어 있었다. 때문에 어검비행술, 어풍비행술처럼 하늘을 번개처럼 날아가는 경공술도 무영신투의 신법에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당천은 무영신투의 신법에서 암제에게서 보았던 이형환위의 수법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무영신투는 무영문(無影門)이란 일인전승으로 내려오는 문파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려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도둑질이 싫어 산으로 들어가 이름 없는 도사의 제자가 되었다. 무영신투의 본명은 고염무(顧炎武)인데 자질이 그리 뛰어나지 못해서 도사에게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영문에 전해 내려온 경공술에 대한 자질만은 비상했는지 어느 날 갑자기 도사의 축지법에 대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땅에도 도가 있으니 땅의 도를 깨달으면 땅을 접고 산을 건너뛸 수 있다는 도사의 말에 오로지 축지법만을 파고든 결과였다.
고염무는 자신이 도와는 인연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흘러서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무영문의 대를 이어 달라는 부모의 유언장을 본 고염무는 무영문의 무영신법에 도사에게 배운 축지법을 접목했다. 그것이 발전해서 이제는 땅을 접고 공간을 접어 순간이동이 가능한 무영신법이 된 것이다. 다만 깨달음을 통해 경공술에 대한 조예는 있었지만, 내공이 미천한 관계로 무공은 변변하지 못했다. 몰래 무림문파에 잠입하거나 황궁 무고에도 잠입해 영약을 먹고 내공을 익혀 보았지만 자질과 신체가 받쳐 주질 못했다. 아무리 신법이 뛰어나도 호신강기를 두른 무림고수를 죽일 수는 없었다. 때문에 무영신투는 자신의 무공수위를 감추기 위해 무림문파와 황궁을 상대로는 절대로 도둑질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유명한 소림사 십팔나한 사건이었다.
“저거 배우면 재미있겠는데!”
당천은 사라진 무영신투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무영신투의 신법을 배우면 암제의 등 뒤로 번개처럼 날아가 석궁을 쏘면 꼼짝없이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무영신투가 나타났다. 금상장의 재물을 훔쳐서 주변의 민가에 반을 나누어 주고 자신의 빠름을 칭찬한 당천에게 재물을 조금 더 나누어 주기 위해서나타난 것이었다. 전에 준 돈 몇 푼은 자신의 체면에 너무 적게 준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 노리는 것은 당천이 입고 있는 고급스런 옷과 진귀한 창이었다. 놈의 집을 알아내서 서신을 보낸 후에 놈이 가진 것을 훔칠 생각인 것이다. 놈이 어디로 가든 얼마든지 추적할 자신이 있는 무영신투였다. 놈을 다시 찾으면 우연히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어쩌니 하면서 돈을 더 주고 환심을 산 뒤에 그 집을 알아내 훔칠 생각인 것이다.
“이놈아! 그거 다시 해 봐라!”
“이놈아?”
당천은 무영신투가 커다란 자루를 지고 다시 나타나자 좋아서 소리쳤다. 당천으로서는 친근한 표현을 쓴 것이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무영신투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이놈아!”
“이, 이놈이! 너는 누구냐?”
또다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은 무영신투는 머리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당천이 가진 범상치 않는 보물이 눈에 들어오자 간신히 화를 참으며 물었다. 돈을 주려던 마음은 놈의 싸가지 없는 말에 확 달아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