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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1화)
제4장 명포두 진형래(陳逈崍)(4)
당천은 그들의 비웃음에 뭔가 가슴에서 치솟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진 포두가 이놈들 하며 친근함을 표시하자 자신이 아직 인생의 참맛을 잘 몰라서 그런가 하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놈들이 포졸님 하면서 당천을 아는 척하자 당천은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은 바로 점창파의 삼대제자가 국주로 있는, 사천성 인근에 위치한 창룡표국의 표사들이었다. 모두 창을 들고 있었는데, 이는 점창파가 사천성 제일의 위세를 떨치게 만든 창제(槍帝) 사성천(謝星天)의 영향 때문이었다. 창이라는 무기가 배우기 쉽기 때문에 점창파와 연관된 문파들이나 사업은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구대문파는 제자를 일대제자, 이대제자, 삼대제자로 구분한다. 삼대제자는 본산에 들어가 십 년 정도 무공을 배우고 하산하는 자들을 말한다. 거대문파 밑에는 수백 개의 작은 문파나 사업장이 있는데 그런 문파와 사업장을 운영하는 자들은 대부분 삼대제자들이다. 큰 사업을 벌이거나 문파를 키우려면 거대문파인 구파 혹은 오대 무림세가의 삼대제자로 들어가거나 자녀들을 삼대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삼대제자는 대부분 속가제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문파의 기초무공을 익혀 내공이 이십에서 오십 년 정도에 이르는 삼류무인으로 평생을 살아가며, 대부분의 무인들이 이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 포두도 삼류무인이었지만 보법이나 신법, 장법, 각법, 지법 등등의 다른 기초무공이 없기에 삼류에서도 하류로 구분된다.
이대제자는 삼대제자들 중에서 특출한 자들을 뽑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린 무재들을 찾아내 체계적으로 무공을 가르친다. 이들에게는 기초무공뿐만 아니라 각 문파의 주요 무공을 가르친다. 본산제자라고 하면 대부분 이대제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무림에서 활동할 때가 되면 내공이 이십 년에 일갑자인 육십 년 정도의 내공을 가진다. 때문에 이대제자 중에서도 검기를 뿜어내거나 장풍을 쓰는 자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자들은 대부분 일대제자가 되기에 이대제자가 그런 경지에 달하는 것은 늙어서나 가능하다.
일대제자들은 이대제자들 중에서 특출한 인재를 뽑아 문파의 비전과 영약 등으로 절세고수의 반열에 들 수 있도록 만드는 무(武)의 천재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파에서 장로나 문주 등을 스승으로 삼아서 후일 문파의 기둥이 되는 천재들이다. 이들은 영양과 비전 내공심법과 무공으로, 무림에서 활동할 때가 되면 내공이 오십 년에서 몇 갑자에 이르는 절정고수들로, 신법으로 하늘을 날고 장풍과 지법으로 바위를 박살 내며 나무에 구멍을 내고, 검에서는 검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여자는 선녀요, 남자는 신선 같은 하늘의 경지에 속하는 절정고수들을 말한다.
창룡표국의 국주는 점창파의 삼대제자로, 그 표국은 점창파의 욱일승천하는 기세에 힘입어 사천성에서 제법 이름 있는 표국으로 성장했다. 더구나 그의 아들이 점창파에 들어가 이대제자가 되면서 국주에게 무공을 배운 표사들의 위세 또한 거칠 것이 없었다. 또한 이번에 부임해 온 안찰사도 점창파에서 무공을 배운 삼대제자 출신이라는 말이 떠돌면서, 창룡표국의 표사들 눈에 포졸 복장을 한 진 포두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한 것이다.
표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창룡표국의 국주에게서 점창파의 내공심법까지 배운, 소위 사대제자쯤 되는 자였는데 내공이 이십 년이 넘은 거칠 것이 없는 자였다. 관과 무림은 서로 다른 세계에 있어 상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포졸 정도는 목을 잘라 버리고 대충 둘러대면 점창파의 위세로 보아 대충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어르신이 계신 자리다. 썩 물러가라!”
진 포두는 표사 네 명을 이끌고 있는 자가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짐작했다. 자신의 무공으로는 표사 한 놈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다른 자의 창에 세상에 작별을 고하게 될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때문에 진 포두는 무림과 관의 불문율을 내세워서 이들을 물리치고자 했다. 당천이 나서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낄낄……! 아이고, 무서워라!”
표사들은 당천은 그냥 두고 진 포두를 갖고 놀고 있었다. 하지만 표사들의 우두머리인 표두는 예리한 눈초리로 당천과 진 포두를 번갈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창대를 쥐고 있는 손에 핏기가 없어질 정도로 꽉 잡고 있어서 그가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표사들도 말로는 시비조였지만 창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언제든지 공격과 방어가 용이한 위치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표두가 노리는 것은 당천이 가진 창이었다. 그는 이십 년 넘게 창술을 연마해 온 자로서, 점창파의 사일창법(射日槍法)을 대성하는 것이 꿈이었다. 사일창법은 점창파의 대표 검법인 사일검법을 응용해 만든 창제의 독문무공이었다. 때문에 점창파의 비전무공인 천룡무상신공(天龍無上神功)을 배우지 않으면 익히기 어려운 창법이었다. 삼대제자들이 익히는 사일창법은 창제의 사일창법과는 거리가 먼,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여러 가지 창법이 복합된 잡종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과거 소승불교를 신봉했던 대리국이 멸망하고 그 유족들이 점창산에 있던 천룡사를 중심으로 저항운동을 펼쳤다. 그 천룡사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가의 무공에 보다 실전적인 무학이 가미되고 발전하면서 명문정파로 도약했는데 그 문파가 바로 점창파인 것이다. 때문에 점창파의 최고 신공은 대리국의 왕실무공이던 천룡무상신공이었고, 최고의 검학은 해를 쏘아 떨어뜨린다는 사일검법이었다. 사일검법은 천룡무상신공을 익히지 않으면 대성할 수 없는 검법이었다.
사일창법은 사일검법에서 유래됐기 때문에 천룡무상신공을 익히지 않으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천룡무상신공은 일대제자 중에서도 선택된 자만이 익힐 수 있는 점창파 최고의 비전이다. 때문에 천룡무상신공을 익힐 수 없는 일반제자들이 사일창법이 그림의 떡임에도 불구하고 창을 놓지 않는 이유는 삼류무림인에게 창이 가장 빨리 배울 수 있고 위력이 뛰어난 병기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휴대하기 귀찮고 좁은 지역에서 제한이 많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창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표두는 당천의 창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보통 창은 창대의 탄력을 이용해야 하기에 단단하고 탄력이 좋은 나무로 창대를 만든다. 쇠로 만들면 강하기야 하겠지만 점창파 특유의 가볍고 표홀한 무공을 펼치기 어렵다. 더구나 천하장사가 아닌 다음에는 긴 창을 쇠로 만들면 무거워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기에 가벼운 나무로 만들고, 내공을 지닌 자들은 나무 속을 파서 철심을 박는 정도였다.
그런데 당천이 가진 창대는 생전 처음 보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여자처럼 비리비리해 보이는 젊은 놈이 가볍게 들고 다닐 정도면 예사롭지 않은 창이 분명했다. 진짜 보물이라면 창제에게 바쳐서 그분에게 사일창법 한 수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보물급이 아니라도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무창보다는 나을 것이다. 겉만 번드르르한 가짜 창이라도 빼앗아서 가지고 싶었다.
사실 점창파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면서 창을 사용할 일도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저 저처럼 멋있는 창이라면 가짜라도 들고 다니면 멋이 나기 때문이었다. 진 포두는 무림인들이 보물급 무기인 신병이기나 영약에는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든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호통을 치거나 어르신이라는 말 정도면 알아서 물러나리라 생각했다.
“친하긴 친한 모양이군!”
당천은 창룡표국 표사들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이 진 포두와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다. 당천에게는 치고받는 격투야말로 암제와의 유일한 놀이였기 때문이다.
표두가 전착곤(前錯棍)이란 봉술을 응용한 자세로 단숨에 당천의 목을 찔러 버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표사들이 진 포두를 공격하면 그 순간 당천의 목을 기습적으로 노리려는 심산이었다. 시비를 걸다가 갑자기 공격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나는 재미없으니 너희끼리 놀아!”
“컥!”
내공을 끌어올리며 일격필살을 노리고 있던 표두는, 당천의 말에 예전 진 포두가 당했듯이 기혈이 엉키면서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피를 토하지 않았다면 심한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표두가 피를 토하자 표사들도 감히 진 포두를 공격하지 못했다.
“두고 보자!”
표두는 이를 악물고 표독한 눈빛으로 한마디 던지고는 표사들과 함께 줄행랑을 쳤다. 학식이 뛰어난 학사는 책의 간(間)을 읽을 줄 안다. 마찬가지로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은 공격과 방어의 맥을 읽어서 그 흐름을 말 한 마디로 끊을 수 있다. 설마 비리비리한 애송이가 그 정도의 무공을 가진 초절정고수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기겁을 하고 도망친 것이다.
“……?”
진 포두는 순간 멍해졌다. 창룡표국의 표사들이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던 중 표두가 예전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하고 도망친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표두가 피까지 토했다면 자신처럼 전력을 다해 일격필살을 노리다가 당했다는 추측밖에 할 수가 없었다.
‘창룡표국에서 당천을 노리는 이유가 뭐지?’
“다 먹었으면 가자!”
당천은 결국 야채 몇 조각만 주워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 포두도 이미 배를 채웠기에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술 한 병을 다 비우긴 했지만 다시 술을 주문해 초저녁부터 만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창룡표국 표사들의 시비 때문에 이미 취기가 싹 가신 뒤였다.
“닷냥 삼십 전입니다.”
“……!”
주루 입구에 다가서자 주인이 음식값과 술값을 요구했다. 그런데 당천이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포졸님! 음식값……!”
“난 안 먹었다.”
‘이런, 쪼잔하고 빌어먹을 놈 같으니!’
진 포두는 비굴한 표정을 지은 채 당천에게 음식값을 내게 하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포졸님’이란 비장의 무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당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천도 이제 돈에 대한 개념이 잡힌 뒤였다. 비상한 머리로 모든 것을 금방 깨우치는 천재였기 때문이다. 돈은 당과를 살 때 써야지, 자신이 먹지도 않은 음식값을 지불할 정도로 당천의 마음은 넓지 않았다. 그는 암제의 물건 하나를 얻는 과정에서 얼마나 머리를 쓰고 목숨을 건 사투를 거쳐야 물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당천에게는 동전 하나도 그런 물건 하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진 포두는 아직 당천이 돈의 가치에 대해 무지할 것이란 추측 하에 좀 전에 마신 몇 잔의 술값을 요구했다.
“저기, 그럼 술값이라도……!”
“너도 내 당과 하나 먹었잖아!”
당천의 대꾸에 진 포두의 산적 같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당과는 분명 자신이 먼저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당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먼저 당천에게 억지로 권하지 않았던가?
“주인장! 나 알지?”
“그럼요, 진 나으리!”
“그럼, 달아 놔!”
“저기…… 그전에 달아 놓으신 것도 많은데……!”
“마파루에 기찰 나온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아이고, 나으리! 달아 놓겠습니다요.”
“그럼, 수고해!”
진 포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외상을 그었다.
“그런데 뭘 달아 놔? 누구 목이라도 매다는 거야?”
“……!”
마파루를 나서며, 기분이 나빠진 진 포두와 달리 기분이 좋아진 당천이 물었다. 진 포두는 외상도 모르는 당천에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처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나도 네 목을 저기다 달아 놓으면 그냥 술 먹을 수 있나?”
‘컥!’
달아 놓으란 말이 사람의 목을 달아 놓는다는 것으로 착각한 듯했다. 진 포두는 자신의 목이 대청에 매달리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지 컥컥거렸다. 때문에 그는 외상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자러 가야지.”
“어디로……?”
그토록 영민하던 진 포두의 머리도 당천과 함께 다니다 보니 고장이 나는 모양이다. 종잡을 수 없는 당천의 언동에 멍하니 그를 쳐다보자 당천은 서서 진 포두가 걸음을 옮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천에게는 어두워지면 자야 한다는 것이 곧 법칙이었다. 사천성 시내에 많은 등불이 밝혀지고 있었고 오월의 따스한 밤바람에 별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천성의 성도는 분지라 오월이 되면 아주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기서 주무십시오.”
“헤헤! 좋은데!”
펄쩍!
우지지직!
쾅!
진 포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혼자 사는 집으로 당천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객점에 재우자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백정 일을 해서 돈깨나 만졌었기에, 진 포두의 집은 다 쓰러져 갈망정 방이 열 칸이 넘는 기와집이었다. 대부분 창고로 쓰였고 쓸 수 있는 방은 그가 자는 침대가 있는 방 하나뿐이었다. 진 포두는 침대를 내어주고 자신은 창고를 쓸고 닦아 방으로 만들어 잘 수밖에 없었다.
당천은 동굴의 차가운 돌 위에서만 자다가 푹신푹신한 침상을 보자 신기해서 침상 위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의 등에는 그 무거운 천하제일궁이 달려 있었기에 침상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 나고 말았다.
“……!”
“험! 나는 딱딱한 바닥이 좋더라!”
‘잘 때 목을 날려? 으, 참자! 참자!’
“험! 편히 쉬십시오!”
그 광경에 진 포두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방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하나뿐인 가구마저 박살을 내 놓고는 태연하게 방바닥에 누워 버리더니 피곤했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정말인가 살펴보았지만 진짜 잠이 들었는지 가느다란 숨소리만 들렸다. 너무 약이 오른 진 포두는 나름대로의 복수라는 듯 당천의 귀에 입을 대고는 집이 무너져라 큰소리로 인사를 했지만 당천은 꿈쩍도 하지 않지 않고 꿈나라에서 헤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