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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2화)
제4장 명포두 진형래(陳逈崍)(5)
‘이걸 그냥, 날려 버려?’
진 포두는 도의 손잡이를 잡고는 고민했다. 이토록 깊이 잠들었다면 도살도법으로 목을 날려도 모를 것 같았다.
‘휴! 참자. 초절정고수가 고함을 질러도 못 일어난다는 게 말이 되냐? 이건 명백한 함정이다.’
진 포두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면서 결국은 청소를 하기 위해 다른 방으로 갔다.
***
“포졸 나부랭이 상관으로 보이는 애송이가 절세신창을 가지고 있단 말이냐?”
“무게는 모르겠지만 탄력성까지 갖춘 절세신창이 틀림없습니다. 그 애송이 놈이 절정고수만 아니었다면 제가 그 절세신창을 가져왔을 겁니다.”
창룡표국의 국주는 자신의 제자와도 같은 표두가 보고하는 말에 눈빛을 번뜩였다. 창제가 사일창법으로 칠제의 하나가 되어 있긴 하지만 변변한 창 하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창의 특성상 신병이 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가벼우면서도 탄력 있고 강한 기다란 금속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무거운 금속으로 만든 중병의 절세신창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신창은 탄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볍고 표홀한 사일창법을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화경의 경지에 달한 창제이기에 나무창도 절세신병처럼 무적창술을 펼칠 수 있지만 진짜 탄력성이 있는 금속으로 만든 절세신창으로 사일창법을 펼친다면? 점창파가 사천성뿐만이 아니라 중원의 태두인 소림을 누르고 천하에 군림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세상에 절세신창이 나타났다는 것은 창제의 무기를 하늘이 내려 줬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창룡표국주가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현 중원에 이화창, 마가창, 양가창, 사가창, 아미창, 한구창, 소림창 등 많은 창법이 있지만 창제가 나타남으로써 점창파의 사일창법이 으뜸이 되었다.
사일창법은 창제의 비전무공으로, 삼대제자들이 배우는 창법은 모든 창법의 기초가 되는 팔모창에 사일창법의 기초를 더한 창법이었다. 팔모창(八母槍)은 권리창(圈裏槍), 권외창(圈外槍), 권리저창(圈裏低槍), 권외저창(圈外低槍), 권리고창(圈裏高槍), 권외고창(圈外高槍), 흘창(吃槍), 환창(環槍) 등 여덟 가지 기법을 말한다.
권이란 창 끝으로 그리는 모든 원을 말한다. 권리란 공격 범위 안의 가슴과 배, 등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창을 바깥에서 안쪽으로 호(弧)를 그리는 움직임이다. 권외란 권리의 반대를 말한다. 저(低)는 발을, 고(高)는 머리를 공격하는 것이고, 공격 범위 안과 밖을 구분하는 네 가지 자세와 상대의 공격이 완성됐을 때 막고 반격하는 창법을 환창이라 하고, 흘창은 환창과 더불어 정해진 형식 없이 적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방어창술을 말한다.
“본산에 연락해서 고수를 파견 받아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흐흐흐! 좋다. 기아에게 연락해라! 일이 잘되면 네게도 상을 내리겠다.”
“예, 국주님!”
말처럼 기다란 창룡표국주 장천방(張川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장천방은 표두의 의견을 받아들여 점창파에 기별을 보내라 명령을 내렸다. 기아란 그의 아들 장기(張基)로, 장씨 집안을 일으키는 토대가 되라고 지어 준 이름이었다. 장기는 현재 점창파의 이대제자가 되어 있었다.
제5장 쌍룡신검(雙龍神劍) 장기(張基)(1)
“어디 가는 것이지?”
“포청으로 가야 합니다.”
진 포두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당천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진 포두는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제형안찰사사에 있는 포졸 전용식당에서 아침까지 먹을 수 있었다. 원래는 당직하는 포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포두는 예외였다.
“왜?”
“포청에는 나쁜 놈들에 대한 소식이 매일 들어옵니다. 그중에서 가장 나쁜 놈들을 추려서 잡으러 가려면 그 소식에 대해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 포두는 단 하루 만에 당천을 대하는 요령을 거의 터득했다. 다섯 살 아이 다루듯이 하면 되는 것이다. 다섯 살 어린아이치고는 살벌할 정도로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고,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깨우치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충!”
경비를 서던 포졸들이 진 포두와 함께 나타난 당천을 보자 큰소리로 경례를 하고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바짝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이제 당천의 존재는 이틀 만에 제형안찰사사 관내에 모두 알려졌다. 아마 안찰사에게도 기별이 들어갔을 것이다.
“충!”
“앉아!”
당천과 진 포두가 포졸 전용식당에 나타나자 당직을 섰던 포졸들이 식사를 하던 중 일제히 일어서서 인사했다. 당천은 당연하다는 듯이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포졸을 천하제일로 알고 있는 당천이었다. 진 포두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아부용으로 몇 번 써먹었기에 이제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싶어도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었다. 당천의 놀라운 머리라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전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진 포두는 아주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웠다. 아직 당천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는 사람의 목숨을 개구리 목숨 정도로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생명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당천에게 먼저 생명존중에 대해 가르쳐야 나중에 속인 사실이 드러나도 진 포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포졸님도 드시지요.”
“나는 이것이면 된다.”
식사로 나온 만두와 소면, 야채찜을 가져와 예의상 권하자 당천은 품에서 당과를 꺼내 입에 물면서 말했다.
“어제 기찰포교가 창룡표국 표사들에게 당했다며?”
“표사가 아니라 완전 뒷골목 왈패보다 더한 놈들이야!”
포졸 전용식당에는 진 포두처럼 이곳에서만 식사를 해결하는 자들이 많았다. 간밤에 있었던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진 포두와 당천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젠장, 세상 더러워서 살맛 안 난다.”
“조용하게! 안찰사가 점창파의 삼대제자 출신이라더니 맞는 모양이야!”
현재 포졸들 사이에 퍼진 가장 큰 일은 당천에 대한 것이었지만 장본인이 옆에 버티고 있으니 그 다음 비중 있는 사건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명문정파가 득세한 곳일수록 오히려 뒷골목 주먹들이 활개를 친다. 매춘, 도박, 밀염(密鹽), 장물 등의 검은 거래에 명문정파 소속의 문파가 손을 댔다가는 멸문지화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검은 거래에 사도연맹에 속하는 흑도무림 인물들이 개입했다가는 정의란 명분 아래 명문정파의 협객을 자청하는 자들의 칼 아래 이슬이 되어 사라질 수 있었다. 때문에 명문정파가 득세한 곳에서는 무공이 없는 뒷골목 주먹들이 판을 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명문정파가 검은 거래에 가담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사람 사는 곳에 기녀가 있는 주루와 도박장이 없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들이 있어야 명문정파가 운영하는 표국, 객점, 무도장 등등의 사업체가 번성할 수 있었다.
도둑과 주먹패가 없으면 무술을 배워서 무엇 하겠는가? 이러한 뒷골목 세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은 포청 소속의 기찰포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세계에 창룡표국의 표사들이 직접 끼어든 것이다.
“표사 놈들. 지들이 포졸이야? 왜 포졸이 하는 일을 빼앗는 거야!”
꽝!
“뭐! 어떤 놈이 포졸인 나의 일을 가로채?”
당과를 먹던 당천의 예민한 귀에 포졸이라는 말이 들려온 순간, 그는 천하제일궁으로 바닥을 내리치면서 일어나 소리쳤다.
“……!”
시끄럽던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 음식을 먹던 입까지 다물고 당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당천이 창으로 내리친 자리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박살이 나 있었다. 벽돌로 만들어진 바닥이 엉망이 되어, 고치려면 하루 이틀은 정용인 포졸들이 고생깨나 할 것이다.
“저, 포졸님! 어젯저녁 객점에서 보았던 놈들이 포졸님이 사로잡아야 할 도둑들을 잡아간 모양입니다.”
“그놈들이 감히!”
화가 난 당천에게 진 포두가 사정을 말했다.
창룡표국의 위세가 하늘을 떨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양자강의 상류도 되는 장강, 민강, 가릉강, 타강에서 활동하는 수적들과 높은 산속에 터전을 잡은 녹림의 하늘 아래서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녹림맹과 수로맹 소속의 산적과 수적들은 사도연맹 소속의 흑도무림인들로 정파무림이 토벌하기 어렵다. 가끔 토벌을 하기도 하지만 깊은 산속에 숨어 들어가 있고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있어서 토벌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 관군과 연합하거나 정파무림맹의 삼 할에 가까운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마교나 동북쪽에 자리 잡은 사도연맹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타협이 이루어진다.
이는 관군도 마찬가지다. 수로맹이 마음만 먹으면 중원의 젖줄인 장강과 양자강의 수로를 마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곡 운반을 비롯해서 많은 물자가 수로의 배를 이용하는데 이것이 마비된다면 천하에 굶어죽는 자가 속출하고 경제가 파탄 날 것이었다.
따라서 창룡표국의 규모가 커진 만큼 많은 표물을 운반하다 보면 수적이나 녹림맹의 도적들에게 표물을 강탈당하는 수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창룡표국은 자신들의 무명(武名)을 지키기 위해 표물을 단순히 도둑맞았다고 하고는, 장물을 취급하는 도박장이나 기루를 급습해서 돈을 털어 가곤 했다. 무공이 없는 뒷골목 주먹패로서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주먹패와 포졸들은 공생관계다. 뒷골목 출신들이 포졸이 되는 경우도 많아 살인, 강도와 같은 큼직한 사건들은 주먹패들의 정보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기찰포교들에게 쥐어 주는 뇌물도 만만치 않아서 녹봉이 짠 포졸들의 밥줄이기도 하다. 포졸이 되면 기찰포교가 되는 것이 꿈일 정도인 것이다. 때문에 포졸 중에서도 기찰포교는 고참에다 무술실력도 만만치 않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기찰포교들의 밥줄을 창룡표국이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가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놈들이 어디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알아 오겠습니다.”
당천이 창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진 포두가 황급히 말했다.
기찰포교들이 근무하는 곳을 포청이라고 한다. 포청의 수장은 감찰관으로, 살인사건과 같은 큰 사건을 제외하면 기찰포교가 잡아들인 자들을 고문하고 치죄해서 형량을 정해 곤장을 때리거나 벌금, 또는 노역 처분 등을 내리는 판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사건이 중할수록 위로 올라가, 고위급 관료의 사건은 안찰사가 직접 판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진 포두는 바로 이 포청에 들어가서 감찰관과 순검에게 어제의 근무 결과, 즉 당천의 감찰에 대한 보고와 오늘 할 일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가자!”
“와와!”
당천이 앞장서서 창룡표국으로 향하자 포두인 포쾌와 정용인 포졸로 이루어진 기찰포교들이 일제히 당천과 진 포두의 뒤를 따랐다. 동창의 위세를 빌어 그동안 밥줄을 빼앗아 갔던 창룡표국의 표사들을 혼내 주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잠복해서 기다리면 됩니다.”
진 포두가 안내한 곳은 유명한 기루인 부용루(芙蓉樓)였다. 워낙 유명한 기루라 대낮에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진 포두와 기찰포교들은 골목에 모두 숨어들었다. 당천은 이미 무영신투를 잡은 경험이 있었다. 놈들도 이곳에서 기다리면 나타날 거라 생각하고는 느긋하게 당과를 빨면서 기다렸다.
두두두둑!
잠시 후 창룡표국의 깃발을 앞세운 채 말을 탄 십여 명의 표두, 그리고 그 뒤를 사십여 명의 표사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창룡표국의 표사들이 나타나자 부용루를 지키던 주먹패들이 막아서며 긴장한 듯이 물었다.
휘익!
퍽!
“으악!”
표두는 윤벽창(輪劈槍)이란 창술을 응용해 창을 반원을 그리듯이 휘둘러, 창대로 막아선 사내의 어깨를 후려쳤다. 말 위에서 내리친 창대의 힘에 사내는 어깨뼈가 부서졌는지 어깨를 감싸며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도적놈이 숨어들었다는 제보다. 뒤져라!”
“예!”
비명 소리가 들리자 부용루를 지키던 주먹패들이 검을 들고 나타났지만 곧 많은 수의 창룡표국 표사들을 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비명 소리가 들리고 큰 소리가 나자 부용루의 총관과 주인이 나타났다. 부용루의 총관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곱상한 기녀였고, 주인은 염소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아이고, 나으리! 잠깐만!”
주인과 총관은 창룡표국을 이끌고 온 우두머리 표두를 끌고 들어가 뇌물을 바쳤다. 주먹패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관에도 뇌물을 바쳐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창룡표국에도 거금을 바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한 달 장사가 날아간 셈이었다. 주먹패들과 관에서 막아 주지 못했으니 그들에게 바치는 상납금은 줄어들겠지만 그럴 경우 도둑을 찾는다는 구실로 손님들을 구타하고 방을 온통 박살 내며 피해를 줄 것이다.
“멈춰라!”
그때 진 포두가 기찰포교들과 당천을 믿고 앞에 나섰다. 진 포두가 나타나자 창룡표국 표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어제 만났던 놈이다. 더구나 놈의 뒤에는 어제 본 창을 든 고수가 버티고 있었다.
며칠만 있으면 본산에서 이대제자가 파견된다는 소식이 왔다. 분명 국주의 아들인 장기가 올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창룡표국에서 거금을 주고 산 천년산삼을 먹어서 내공이 일갑자가 넘고 검기를 사용하며 나무를 단숨에 뛰어넘는 경공술을 사용하는 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