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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3화)
제5장 쌍룡신검(雙龍神劍) 장기(張基)(2)


“진 포두께서 어쩐 일이시오?”
본산에서 장기가 올 때까지 일단 참아야 했다. 창을 든 놈과 앞에 선 포두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안찰사 내부에 줄이 닿아 있는 창룡표국이다. 동창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아직 놈의 신분에 대한 확인이 끝나지 않아서 안찰사 내부에서도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신분이 무엇이든지 간에 놈을 없애고 창을 취하면 그만이었다. 놈의 배경이 어떻든 창제의 손에 들어간 창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놈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창이라고 속이는 사기꾼 같은 놈이 명문정파 출신일 리는 없었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너희를 폭행과 갈취죄로 모두 체포한다.”
“……!”
진 포두의 입에서 죄명과 함께 자신들을 모두 체포한다는 말이 나오자 표두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창룡표국의 표두는 손에 든 돈주머니와 주저앉아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 장한을 번갈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완벽한 증거였다. 그때 구경만 하고 있던 당천이 어슬렁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당천이 나서자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네놈들이 감히 포졸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챈 놈들이렷다.”
“……!”
당천의 말에 포졸들과 표사들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졸지에 포졸이 하는 일이 왈패들을 패고 뇌물을 받아 챙기는 것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당천은 포졸이 되어 나쁜 놈들을 잡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패면 이곳저곳에서 당과 값을 바치는 것으로 상상해 버렸다. 당천의 머릿속에는 나쁜 놈이 어떤 놈이란 개념도 없었다. 그저 무영신투처럼 뛰어난 무공을 가진 자들 중에서 자신을 보면 도망치는 놈들이 나쁜 놈일 거라고 제멋대로 추측하고 있었다.
“험! 우리는 창룡표국의 표두와 표사들이오.”
말은 탄 표두가 자신들의 신분을 말하며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감히 창룡표국이란 말을 듣고도 대항할 세력은 사천성에 없었다.
“그래서!”
“이…… 이!”
당천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머리를 갸우뚱 옆으로 젖히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표두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쳐라!”
“와와!”
말을 탄 표두는 결국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찰포교들과의 전면전은 아무리 창룡표국이라도 켕기는 것이 많았다. 더구나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부용루 앞이었다. 하지만 당천이 준 수모는 창룡표국 표두의 인내심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모조리 잡아라!”
“와와!”
표사들이 달려 나오자 진 포두도 공격명령을 내렸다. 기찰포교인 포졸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며 함성을 내질렀다.
“저놈들은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 원래 친한 사이였나?”
“……!”
당천은 표사와 포졸들이 격투를 시작하자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당천에게 격투란 친한 자들끼리 하는 놀이였다.
다각!
당천은 여유 있게 서 있었고, 그의 정면에는 말을 탄 열 명의 표두가 천천히 창을 겨눈 채 다가오고 있었다. 표사들과 달리 표두들은 어느 정도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국주에게 점창파 내공심법의 기초가 되는 호흡법인 토납술을 배워 내공이 십 년 정도는 되는 인물들이었다. 또한 마창술과 기초창법에, 국주가 가르쳐 준 창법을 십 년 넘게 연마한 자들이기도 했다. 열 명의 표두가 말 위에서 합공하면 저 고수를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승심이 발동한 것이다.
“너희는 왜 또 친한 척하냐?”
“받아라!”
히이잉!
당천은 표두들이 말을 타고 일제히 공격을 시도하려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심한 듯한 당천의 행동에 표두들은 말을 탄 채 창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먼저 전면의 세 명이 말의 앞발을 들고 공격해 왔고, 정면의 한 명은 나창술을 준비했다. 나창술이란 창으로 상대의 창을 방어하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양옆의 두 명은 낙공 패창술이란 창법으로 위에서 아래로 당천의 얼굴을 창날로 그어 내렸다. 나머지 표두들은 간격을 벌린 채 뛰어나갈 준비를 했다.
창!
“하얍!”
“으악!”
부용루 앞에서 표사들과 포졸들의 난투전이 벌어졌다. 모두 창술을 연마한 자들이었다. 창과 창이 부딪치면서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처절한 격전이 벌어졌다. 부용루 사람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은 멀리 물러선 채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구경꾼이 더 많아질 것이다.
당천은 친해지자고 덤비는 표두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재미도 없어 보이는, 별볼일 없는 실력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치열하게 치고받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진 포두의 얼굴을 보아서 그냥 한번 놀아 주기로 했다.
“쩝!”
후우웅!
꽝!
히이이잉!
“으아아악!”
꽈다다탕!
“으아악!”
당천은 암제에게 배운 삼양신장이란 장법을 응용해서 가볍게 왼손을 뻗었다. 암제와의 격투에서처럼 전력을 다했다면 적은 완전히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충 쏟아 낸 장풍에 말과 표두들이 태풍에 날리는 지푸라기처럼 날아가 뒤에서 공격을 준비하던 다른 동료들을 덮쳐 버렸다. 말에 깔린 표두들과 말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자 치열하던 격전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헉! 장풍이다!”
“절세고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일제히 소리를 쳤다. 내공이 이삼십 년은 되고 십 년 이상 장풍을 수련해야 촛불을 끌 수 있을 정도의 장풍을 발출할 수 있고, 사람을 상하게 할 정도의 장풍을 발출하려면 일갑자의 내공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사람과 말을 모두 날려 버릴 정도의 내공이라면?
“모두 항복하라!”
투두둑!
진 포두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소리쳤다. 그러자 당천의 가공할 무공에 놀란 표사들이 창을 바닥에 던지며 모두 항복해 버렸다.
“모두 포박하여 압송하라!”
“와와!”
진 포두가 기세를 몰아서 명령을 내리자 기찰포교들은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모두 포승줄로 꽁꽁 묶었다. 짧은 시간에 끝나 버린 결투라 큰 부상을 입은 표사나 포졸은 없었다. 다만 표두 다섯 명이 다리가 부러졌고, 두 명은 팔이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끙끙거릴 뿐이었다.
“가자!”
“와와!”
진 포두는 오십 명의 창룡표국 표사와 표두를 모조리 포박하고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덤으로 열 마리의 말까지 포획했다. 부용루에서 마차를 빌려 부상 입은 표두를 묶어서 마차에 실은 후 포청으로 출발했다. 표사들은 그동안 창룡표국 표사들에게 당한 수모를 풀어 버리려는 듯 시원한 함성을 질러 대며 걸음을 옮겼다.
“이거 네 거 아니지?”
“으! 두고 보자!”
“넌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뿐이냐? 저번에도 그러더니. 그래, 다시 보니 반가워서 그랬냐?”
당천은 부상을 입은 표두의 손에 들린 돈 주머니를 빼앗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표두는 두 손이 꽁꽁 묶인 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이를 갈며 소리쳤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에 표두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으으!”

***

“안찰사 어르신! 놈은 사기꾼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창룡표국의 표국주 장천방과 점창파에서 돌아온 그의 아들 장기가 안찰사와 마주하고 있었다. 점창파 본산제자가 왔다는 소리에 안찰사가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안찰사도 젊어서 점창파에서 무공을 수련한 삼대제자 출신이었다.
창룡표국주가 당천이 사기꾼이라고 주장하자 안찰사가 당천에 대한 감시를 책임진 동지에게 이유를 물었다. 점창파라면 황실에도 많은 줄이 닿아 있었다. 자신도 부사를 통해 황궁에 연통을 넣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래에서의 보고대로라면 당천이란 자는 동창에서 버림받았고, 무림 동향 감시가 임무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런 추측이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안찰사는 잠시 당천의 존재를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 포두의 추측은 그동안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서…….”
“에잉!”
동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하자 안찰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르신, 고정하시지요. 사람을 보냈으니 곧 정확한 정보가 올 것입니다.”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안찰사 바로 밑 정사품 관리인 부사가 안찰사를 위로하며 말을 건넸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는 관리가 동창을 담당하는 동창제독과 친하기 때문에 웬만한 정보는 알 수 있었다. 예전 사천성에 동창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부사가 전해 준 말이었다. 부사는 이에 책임을 지고 더욱 자세한 정보를 알려 달라며 황궁에 있는 친구에게 전서구를 보내고 소식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밖에서 전서구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오자 안찰사의 안색이 밝아졌다.
“어서 가져오너라!”
“예!”
안찰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호위무장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와 바쳤다.
“헉!”
편지를 본 순간 안찰사의 안색이 확 변했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한번 보시오.”
점창파 이대제자인 장기가 날카로운 눈빛을 내며 물었다. 장기는 아버지인 장천방을 그대로 빼닮아 얼굴이 말상이었다. 머리는 영웅건으로 질끈 묶었고 말상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장비 같은 수염을 기른 삼십 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황제의 막내공주 주혜령이 곤륜산에 있는 서황궁을 찾는다고 황궁을 떠나 사천성으로 향했음! 황제가 공주의 안전을 위해 동창 소속 비밀고수와 금의위 중에서 무공이 뛰어난 자들을 공주의 호위로 딸려 보냈다고 함. 또한 곤륜파 장로인 곤륜삼선에게 협조를 요청해서 곤륜산맥을 안내하도록 조치함. 공주의 안전을 위해 호위 중 하나를 미리 파견해 무림의 동향을 살펴 공주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음.

편지에는 발신인도, 수신인도 없었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은 놀라웠다. 만약 사천성에서 공주가 암살되기라도 하면 사천성의 성주 목은 물론이고 안찰사의 목까지 날아갈 것이다.
“……!”
편지를 본 창룡표국주와 장기도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절세신병이 탐이 난다고 해도 놈이 동창의 비밀고수라면 황제가 파견한 자일 것이다. 절세신병이 점창파에 들어간다면 황제의 분노를 사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 무림맹에서 먼저 점창파를 축출해 버릴 것이고 무림맹과 황궁의 군사에 의해 점창파의 기와조각 하나까지도 모조리 타 버릴 것이다.
“어르신! 저를 진 포두의 상관으로 발령해 주십시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장기가 이내 청을 올렸다. 안찰사가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순검이나 감찰관으로 말인가?”
“예!”
감찰관까지는 안찰사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발령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과나 과거시험을 거쳐야 임명이 가능했다.
“이유는?”
“만약 그가 공주의 호위가 분명하다면 그를 따라 공주에게 접근해 볼 생각입니다. 제가 공주의 호감을 사거나 부마가 된다면 어르신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허허! 호기가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말상만 아니라면 영준호걸이라 할 수 있는 그였다. 비록 점창파의 이대제자라고는 하지만 일대제자가 되기는 불가능했다. 나이도 많은 데다가 점창파 내부에 아무런 세력도 없었고 무공이 특출한 것도 아니었다. 창룡표국이 아무리 많은 돈을 기부해도 그저 점창파에 소속된 수백 개의 사업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장기가 부마가 되거나 공주의 호의를 사게 된다면 일대제자가 되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표사들은 풀어 줄 테니 앞으론 내 체면도 생각해 주게나.”
“죄송합니다, 어르신!”
결론이 나자 안찰사가 장천방을 타일렀다. 점창파 삼대제자인 관계로 창룡표국의 일을 모른 척했지만 그동안 심기가 불편했던 건 사실이었다.
“가서 진 포두를 불러와라!”
“예!”
창룡표국주의 사과를 받아내 흐뭇한 표정이 된 안찰사가 동지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동지가 진 포두를 불러왔다.
“부르셨습니까?”
진 포두는 포졸이 된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안찰사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명포두로 이름난 그였지만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방에는 쟁쟁한 고위급 관리인 부사, 동지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앉아 있었고, 창룡표국주와 점창파 제자로 보이는 자도 앉아 있었다.
“오늘부터 자네의 상관으로 임명된 감찰관이다. 잘 모셔라!”
“충!”
안찰사가 직접 명령을 내리자 진 포두는 머릿속이 핑핑 도는 것을 느꼈다. 점창파 본산제자가 자신의 직속상관이 된다는 것은 당천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장기라고 하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충!”
부드러운 말로 부탁하는 듯했지만 장기가 뿜어내는 기세는 진 포두의 살갗을 따갑게 만들고 있었다. 등에 멘 쌍검으로 보아 장기의 주무기는 창이 아니라 쌍검인 모양이었다. 점창파 삼대제자 이하는 창을 많이 사용했지만 본산제자들 중에서는 창을 사용하는 자가 드물었다. 창제의 영향으로 창을 사용하는 본산제자가 늘어나긴 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수고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