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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4화)
제5장 쌍룡신검(雙龍神劍) 장기(張基)(3)
장기를 통해 공주와 인연을 맺게 된다면 더 높은 관직에 제수될 수도 있다. 주혜령 공주는 현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황제는 그녀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고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곤륜산이란 전설의 산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또한 곤륜산에 있다는 서왕궁도 신화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곤륜산맥 서쪽에 곤륜산이 있다고 믿는 것은 곤륜파 소속의 신선들 때문이다. 곤륜파는 곤륜산맥 여기저기서 도를 닦던 도인들이 모여서 만든 문파다. 때문에 곤륜산맥에는 곤륜파에 소속되지 않은 도인들도 많았다. 현재는 그런 도인들도 모두 곤륜파로 본다. 곤륜삼선도 곤륜파 본산과는 관계없는 자들로, 황제와 인연을 맺은 황실의 비밀고수들이다. 하지만 곤륜산맥에서 도를 닦았기에 곤륜파 도인들과 인연이 있었고, 지리에 밝아서 공주에게 곤륜산 구경이나 시켜 주라고 딸려 보낸 것이다.
곤륜파는 곤륜산에서 도를 닦는 자들 중에서 은거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은 무조건 장로라는 직책을 주어서 곤륜파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곤륜삼선도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곤륜파 장로가 된 기인들이었다.
“자네가 모시는 상관의 이름이 당천이라고?”
안찰사의 집무실을 나와 당천에게로 향하는 길에 장기가 당천에 대해서 물었다. 진 포두가 당천에 대해 보고를 했지만 그가 포졸의 신분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장기는 당천이 순검 정도의 직책으로 위장했다고 믿고 있었다. 안찰사가 자신을 감찰관으로 발령 낸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기……!”
“걱정하지 말고 말해 보게!”
진 포두가 주저하자 장기가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당천은 포졸을 천하제일로 알고 있고 포졸은 자신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럼, 미친놈이 아니냐?”
“……!”
진 포두의 말에 장기는 펄쩍 뛰었다. 장기가 화를 내자 진 포두는 그저 주눅이 들어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목을 확 갈라 버려!’
진 포두는 고개를 숙인 채 주눅 든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장기가 방심할 때 도살도법으로 목을 잘라 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목을 잘라 버리고 당천에게 뒤집어씌워?’
“휴우!”
장기의 내공이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긴 하지만 당천과는 달리 빈틈이 많이 보여서 놈이 방심하면 일격필살의 도살도법이 먹힐 것도 같았다.
장기는 진 포두의 말에 당천이란 놈의 사정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동창으로 위세등등하던 놈이 공주의 호위가 되었고 다시 이곳에 파견되어 사천성 오지에서 포졸로 위장하려니 배알이 꼴려서 미친 짓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점창파 본산제자인 자신이 포졸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동창이란 놈의 비위를 맞추어야 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동창 놈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냐? 무공으로 확 내리눌러서 초반에 길을 들여놓아야겠다.’
“가자!”
“예!”
장기는 황궁무공이 강하긴 해도 구대문파의 진산무공에는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놈이 어쩌다 황궁무고에 잠자던 강한 무공비급을 얻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통을 가진 문파에서 사부에게 체계적으로 무공을 하사 받은 것과 비급을 통해 배우는 것에는 차이가 많았다. 아무리 강한 무공이라도 훌륭한 사부가 없고 가르치는 방법이 체계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와 전통이 깊은 명문정파 본산제자들의 무공이 강한 것이다.
‘무공으로 눌러 창도 자발적으로 점창파에게 바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그 정도 절세신병을 소유했다면 황궁에서 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선 공주의 환심을 사서 나중에 점창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지!’
장기는 당천에게로 향하면서 벌써부터 흐뭇한 상상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리는 것을 느꼈다. 당천을 짓밟고 공주와 사랑을 나누며, 창제에게 창을 선물로 바쳐 그의 직전제자가 되어 천하제일인이 되는 꿈이었다.
“도련님!”
장기와 진 포두가 포청에 들어서자 밖으로 나오던 포졸과 표두들이 일제히 예를 취했다. 표사들은 마침 안찰사의 명으로 풀려나는 중이었다. 점창파 본산제자인 장기를 보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표두도 있었다. 장기가 자신들을 풀어 주기 위해 몸소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 돌아가거라!”
“예!”
장기는 자신에게 다가와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듯 인사를 하는 표두와 표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라고 명했다. 알아서 하겠다는 뜻이다. 표사들과 표두들은 장기의 명령에 모두 크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당천은 어디 있냐?”
“저 안에 있습니다.”
풀려나는 표사들을 보자 당천을 무공으로 눌러서 교육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아무리 공주를 모시는 동창이라도 감히 자신의 아버지가 국주로 있는 창룡표국의 표사들을 잡아간 놈에게 감정이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꽝!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장기는 포청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당천이 탁자 위에 누워서 당과를 빨고 있었고, 그런 꼴을 보기 싫었는지 포청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당신이 당천이오?”
“그런데.”
“나는 점창파 이대제자인 쌍룡신검 장기라 하오.”
“장기?”
당천이 당과를 빨면서 묻자, 장기가 자신이 흥분했음을 깨닫고 재빨리 냉정함을 되찾았다. 영약의 도움으로 내공이 급증했기 때문에 내공에 비해 마음의 수양이 낮았다.
절세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본인의 무공에 강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아직 동창과는 싸워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함을 되찾은 후 침착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래도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당천의 대답에 장기의 얼굴이 붉어졌다. 점창파 본산제자를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장기를 대신해 진 포두가 그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다.
“창룡표국주의 아들입니다.”
“그럼, 네가 표사들의 우두머리냐?”
“……!”
장기는 당천의 질문에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느라 대답을 못했다. 대답을 하면 화가 치솟아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표사들은 모두 풀려났습니다.”
진 포두가 대신 말했다. 약간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아! 조무래기들은 풀어 주고 우두머리만 잡아 두는 모양이군!”
스르릉!
당천이 알겠다는 듯 중얼거리자 간신히 냉정을 회복한 장기가 등에 메고 있던 쌍검을 빼어 들었다. 그가 익힌 무공은 분광십팔쌍수검이었다. 내공은 고영신공(枯榮神功)이란 점창파의 일류 무공심법을 십 년 넘게 수련했다.
“기특하군!”
당천이 당과를 입에 문 채 일어서며 말했다. 무영신투가 자신에게 이형환위의 신법을 알게 해 준 것처럼 놈도 자신에게 알아서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당천은 아직 검법은 구경해 보지 못했다. 더구나 쌍수검을 보자 그 모습이 더욱 신기했다.
“한 수 가르침을 바라는 바이오.”
“배울 수 있으면 배워 봐!”
장기가 비무를 시전하자 당천이 좋아서 대답했다.
휘이익!
장기는 당천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일단 놈의 버릇을 고쳐 놓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장기가 배운 신법은 유운신법(流雲神法)과 분광착영(分光捉影)이었다. 구름이 흘러가듯 유연하고 가벼우며 그림자를 잡는 것처럼 쾌속한 신법이었다.
번쩍!
서걱!
장기가 번개처럼 날아 당천의 양발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새끼발가락을 잘라서 그의 버릇을 고쳐 놓을 생각이었다. 분광검법은 쾌검이다. 쾌검에 쌍수검을 접목한 검법이 분광쌍수십팔검이었다. 모두 십팔 초식으로 되어 있고 갈수록 위력이 강하고 빨랐다.
“하얍!”
휘이익!
장기는 분광쌍수십팔검의 일초식을 펼쳤지만 당천이 가볍게 피하자 고함을 치며 이초식을 전개했다. 당천은 가볍게 뒤로 물러서서 구경했고 일초식은 애꿎은 탁자만 십자로 갈라놓았다.
“……!”
좁은 방안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무공에 진 포두는 땀이 밴 두 손을 움켜쥐며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법과 현란한 쌍검의 빠름은 생전 처음 보는 움직임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덤벼라!”
당천은 장기의 검법과 신법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여유롭게 피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십팔검 후에 다른 초식이 나오지 않았다. 신법도 자신의 포졸신법에 비하면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쌍검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빠름을 위주로 하는 검법임에도 불구하고 느려 터져서 배울 만한 것이 없었다.
퍽!
“켁!”
콰당!
당천은 그래도 기특하게 자신과 놀아 주려고 애쓴 성의를 보아서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어루만져 주었다. 장기는 갑자기 눈앞에 별이 보이며 눈알과 혓바닥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부서진 탁자 위에 그대로 엎어졌다.
제6장 살인사건(1)
“감찰관님! 도무지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진 포두에게 맡기는 것이……!”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돌아온 기찰포교들의 보고에 감찰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 포두는 그 어떤 어려운 사건이라도 구 할에 가까운 확률로 사건을 해결하는 명포두였다. 나머지 일 할도, 무림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포두라는 놈들은 늘 이런 이유로 조금만 어려운 사건이 일어나면 바로 진 포두에게 떠넘기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 포두가 어떤 인물과 같이 있는지 알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네놈들이 사건을 해결하든 진 포두에게 넘기든 알아서 해! 나가 봐!”
“예!”
감찰관의 불호령에 포두들은 어깨가 축 늘어져서 포청을 나섰다.
“어쩔 수 없이 그 개차반 같은 놈에게 부탁해야겠지?”
“그놈은 그 성질머리만 고치면 출세할 텐데 말이야.”
“지 놈 팔자지 뭐!”
“에이, 어서 가서 놈에게 부탁하게 술이나 사 갖고 가자!”
“젠장, 그런 개차반 같은 성격과 산적 같은 얼굴을 가진 놈이 명포두라니, 불가사의한 일이야!”
“동창도 있고, 점창파 본산제자도 같이 있는데 이번에도 우리 부탁을 들어줄까?”
“몰라! 일단 가 보자!”
포두들은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한탄을 늘어놓았다. 진 포두는 명포두였지만 성격이 더러워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포두에게 배당되는 수하인 포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그 더러운 성격을 반증했다.
끼이익!
“뭐야!”
포두들이 술병을 들고 포청 안으로 들어오자 진 포두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장기는 뒤통수에 혹이 생겨서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고 당천은 탁자 위에 누워서 팔로 머리를 받치고 당과를 먹고 있었다.
“살인사건이 났는데 자네가 해결해 주었으면 해서!”
두 명의 포두가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짓고는 술병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서 부탁했다. 진 포두는 당천을 슬쩍 쳐다보았다.
“알았다.”
“……?”
너무도 쉽게 승낙하자 두 포두는 멍해졌다. 평소 같으면 있는 성질 없는 횡포 다 부리다가 돈까지 쥐어 주어야 승낙하는 성질 더러운 놈이었다. 진 포두의 그러한 성격은 워낙 성질이 거칠고 난폭한 이유도 있었지만, 성질을 부리지 않으면 모든 사건을 맡게 되어 일에 치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승진해서 출세해 봤자 남에게 이용만 당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출세하지 않으려는 속셈도 숨어 있었다.
“빨리 내놔.”
“여기 있네. 그럼, 수고하게.”
자신들보다 훨씬 고참이기에, 두 포두는 진 포두에게 저자세로 일관하며 사건기록을 넘겨주고 나갔다. 동창과 점창파의 본산제자가 있는 곳에서도 저토록 당당한 진 포두가 오늘따라 더욱 대단해 보이는 그들이었다.
살인사건
장소―용풍객잔
피해자―신원미상의 노인
기타―모두 미상
아주 간단한 문서였다. 하지만 진 포두의 얼굴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맡는 사건들이 대부분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포졸님! 나쁜 놈 잡으러 가시지요.”
“오늘 이놈 잡았으면 된 것 아니야?”
당천은 장기를 잡았으니, 오늘 할 일은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무영신투를 잡았고, 오늘은 포졸의 일을 가로챈 표사놈들의 우두머리를 잡은 것이다.
“위대하신 포졸님은 나쁜 놈이 나타나면 다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천과 진 포두의 말을 듣던 장기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졸지에 자신이 나쁜 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천의 직책이 포졸이라니?
“헤헤! 그럼, 얼른 가야지!”
“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당천과 진 포두가 밖으로 나가자 장기도 따라 나왔다.
“너는 왜 와?”
“저도 대협을 돕겠습니다.”
“나 대협 아냐.”
“……?”
장기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난 포졸님이다.”
‘컥!’
장기는 당천의 대답에 기가 막혔다. 무공은 점창파 장로 수준을 넘어서는 놈이 하는 행동은 꼭 어린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