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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5화)
제6장 살인사건(2)
“또 따라오네! 자꾸 따라오면 맞는다.”
“저도 쓸모가 많습니다.”
계속 따라오는 장기를 향해, 그가 별 재미가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천이 호통을 쳤지만 그는 꿋꿋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장기의 야망은 이 정도에서 멈출 수 없었다. 당천 정도의 무공이면 황제의 총애를 받는 절세고수일 것이다. 이놈에게 잘 보이면 공주에게 접근하는 것이 용이해질 것이다. 비록 절세신창을 얻는 것은 포기했지만 공주까지는 아니다.
“어디에?”
“대협…… 아니, 포졸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경비는 모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장기는 모든 야망을 돈으로 이루었다. 점창파 삼대제자가 된 것, 삼대제자에서 이대제자로 올라간 것도 돈으로 이룬 것이었다. 또한 내공도 돈으로 이뤘다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는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경비?”
“먹고, 자고, 입고 하는 모든 것에 들어가는 경비는 제가 책임지고 조달하겠습니다.”
“그럼, 당과 값도?”
“그럼요.”
“헤헤! 너 쓸모 있는 놈이네. 따라와라!”
“예!”
야망에 눈이 먼 점창파 제자의 타락을 눈으로 본 진 포두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른 하늘에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던 무림인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점창파 본산제자라는 자가 점창파에 대한 긍지와 무인의 기개는 어디 가고 자신보다 더 빨리 당천을 파악했다. 그 놀라운 처세술에 몸이 절로 떨리는 진 포두였다.
“어서 오십시오.”
용풍객잔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 객잔이었다. 주로 약초꾼이나 떠돌이들이 묵고 가는 삼류 객잔이었는데, 살인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살인사건 장소로 안내해라!”
“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은 쌍검을 찬 장기와 대장군 같은 복장을 한 당천 때문에 포졸 복장의 진 포두를 보지 못하고 영업하려고 하다가, 진 포두가 나서자 안색을 바꾸며 대답했다.
“이곳입니다.”
“시체는?”
“오전에 포두님들이 오셔서 검시(檢屍)를 마친 후, 제가 사람을 사서 저기 보이는 공동묘지에 직접 묻었습니다요.”
당천과 장기가 멀뚱히 서 있는 동안 진 포두는 방 여기저기를 살피고 주인에게 여러 가지를 꼬치꼬치 깨물었다.
“시체가 묻힌 곳으로 가자!”
“예?”
시체가 묻힌 곳으로 가자는 진 포두의 말에 주인은 뭐 밟은 표정을 짓고는 어쩔 수 없이 인부를 데리고 앞장섰다. 시체를 다 묻고 술을 마시느라 아직 남아 있었던 인부들은 다시 공동묘지로 향해야 했다. 그 모든 경비는 주인의 몫이니 주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헉!”
휘이익!
공동묘지에 도착했을 때는 검은 복면을 한 괴인이 묘지에서 시체를 파내 검시하고 있었다. 당천이 가장 먼저 발견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장기가 먼저 발견하고 소리를 치자 그제야 정신없이 검시에 몰두하던 복면인이 고개를 들었다. 복면인은 당천을 보자 기겁을 하고 놀라서 그대로 사라졌다. 놀라운 신법이었다. 그 신법을 본 장기가 놀라서 소리쳤다.
“암향표다!”
사천당문의 독문신법인 암향표로, 자신보다 강한 놈 같았다.
“흠!”
진 포두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발가벗겨진 시체를 이리저리 검시했다.
“묻어라!”
“예!”
진 포두가 주인에게 명령하자 인부들이 시체를 다시 관에 넣고는 파헤쳐진 무덤에 다시 묻었다.
“그래, 뭐 알아낸 것 있나?”
장기가 진 포두에게 다정한 척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사천당문과 연관 있는 약초꾼인 모양입니다.”
“사천당문?”
진 포두는 장기가 자신의 직속인 감찰관이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공손히 대답했다. 놈의 무공 또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믿는 도살도법이 있지만 그것만 믿고 성질부릴 만큼 어리석은 진 포두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림인들 간의 사건이니 손을 떼야겠습니다.”
“왜?”
진 포두가 고개를 흔들며 포기하자 장기는 금방 수긍을 했지만 당천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사천당문과 연관되었다면 다들 모른 척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고슴도치 같은 당문과 엮이는 것은 모두 원치 않았다. 고슴도치라는 말이 붙은 것은, 사천당문이 독과 암기를 다루고 폐쇄적이며 지독한 고집과 독기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시체의 뒤통수에 박힌 가느다란 독침이 사인입니다. 독침이라면 사천당문에 대한 정식 선전포고와 같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려면 노인과 사천당문과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천당문의 협조가 필수입니다.”
“사천당문? 이 위대한 포졸님이 있으니 걱정 말고 가서 수사해.”
“……!”
아무리 강한 무공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사천당문을 건드리려고 하다니! 장기와 진 포두는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다. 사천당문의 고집과 독기라면 황궁의 병사들이 몰려가도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것이다.
“우선 객잔에 들러서 술이나 한잔하시지요.”
“술?”
당천은 술이란 말에 생각에 잠겼다. 이 시점에서 왜 인생의 참맛을 알아야 한단 말인가 하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가자!”
“예!”
처음 마셔 보았을 때 당과와는 다른 묘한 맛이 당천의 입맛을 자극했다. 억지로 들이부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또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는 생각을 멈추고 앞장서서 객잔으로 향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요.”
주인은 오늘 손해 본 것을 만회하려는 듯이 얼굴이 밝아져서 일행을 자신의 객잔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가장 잘하는 요리로 한상 차려 와라!”
“예!”
용풍객잔에 들어서자 장기가 얼른 큰소리를 쳤다. 야망이 크지만 눈치는 구단을 넘어서는 장기였다. 능력은 평범했지만 기회가 왔을 때는 놓치는 법이 없는 천부적인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어차피 자신이 계산해야 한다면 생색부터 내는 것이다.
이런 삼류 객잔에 다양한 요리가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었다. 주인장이 추천해 주는 요리를 먹는 것이 삼류 객잔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요령인 것이다.
“시체에 박힌 독침 하나 가지고 사천당문과 연관시키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이 아닌가?”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 장기가 진 포두에게 물었다. 당천도 궁금한지 당과를 입에 문 채 진 포두의 대답을 기다렸다.
“죽은 노인이 변복을 하긴 했지만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로 보아 농부 아니면 심마니 같아 보였습니다. 발바닥과 다리에 붙어 있는 근육으로 보아 일생을 산에서 산 사람이라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손바닥에 은은하게 밴 약초 냄새는 죽은 노인이 약초꾼이나 심마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심마니나 약초꾼이 사천성에서 살려면 사천당문과 직간접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나도 알지만 그래도 좀 심한 비약 같군.”
산적 같은 진 포두의 입에서 논리정연한 말이 나오자 장기는 약간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대점창파의 본산제자가 당천 때문에 자존심이 구겨졌지만 포졸 나부랭이에게까지 지고 싶지는 않았다.
“시체를 검시하던 복면인을 잊으셨습니까?”
산적 같은 진 포두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며 장기의 심리까지 파악한 듯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자 장기가 진 포두의 허점을 파고들려는 듯 억지를 부렸다.
“암향표가 사천당문의 독문무공이긴 하지만 그걸 흉내 내거나 비슷한 무공은 얼마든지 있다.”
“사천당문이 있는 사천성에서 그런 짓을 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거야 모르지. 사천당문에 누명을 씌우기 위해서라든지…….”
장기가 다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억지를 부렸다.
“바로 그것입니다. 복면인이 사천당문의 인물이든 누명을 씌우려는 자든 죽은 노인이 사천당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게 중요하지요.”
“……!”
억지를 부리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진 포두가 노리던 대답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장기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진 포두를 쳐다보았다.
“시체를 보면 먼저 객관적인 증거들을 수집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들을 짜 맞추다 보면 사건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증거가 미약할 경우 여러 가지 추리를 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그 추리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관된 사람들을 심문하거나 함정으로 유도해 맞히는 것입니다.”
“만약 추리가 잘못됐다면?”
진 포두가 장기의 심기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수사 원리를 설명하자 장기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다른 추리를 세우고 또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 합니다.”
“사건을 단지 추측하는 것만으로 명포두가 되었나?”
장기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물었다.
“추측하는 데도 요령이 있습니다. 먼저 시체의 신원을 파악하면 쉽죠. 죽은 자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자가 누군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재산과 원한 등등의 보이지 않는 이유 때문에 살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발적인 살인도 있지 않나?”
“우발적인 살인은 증거가 많아서 굳이 저에게까지 넘어오지 않습니다.”
억지를 부리던 장기는 진 포두의 논리정연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명포두라는 사실을 속으로 인정했다. 겉모습과는 달리 추리력과 판단력, 그리고 눈썰미가 보통은 아닌 자인 것이다.
“요리 나왔습니다.”
“하하하! 어서 드시지요.”
요리가 나오자 장기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당천에게 아부하듯 말했다.
“술이나 줘.”
“네?”
“포졸님은 음식을 드시지 않습니다.”
“그럼, 당과만?”
당천이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진 포두가 말하자 장기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선지도에 들면 솔가루와 이슬만 먹어도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전설은 있지만 사람이 벽곡단만 먹고 무공을 연마하는 것도 많은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점창파에서 배웠다.
우선 근육이 없어지고 뼈만 남아서 무공을 시전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 벽곡단만 먹는 일정 기간의 무공연마는 군살을 빼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정상적인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 암제의 동굴에 삼장로가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동굴에 벽곡단이 있어도 정기적으로 암제에게 음식을 제공해 왔던 것이다. 삼장로가 죽은 후에도 암제는 본능적으로 설산에 있는 설삼 같은 영약이나 그 근처에 있는 수호영물들을 잡아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제가 꼬챙이처럼 마른 이유는 오랫동안 벽곡단을 주식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과와 같은 단 음식만으로 식사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영양의 불균형을 가져와 상승무공을 익히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
“술도 먹는다.”
“……!”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장기의 표정과 반문에 당천은 자신도 인생의 참맛을 안다는 듯이 대답했다. 장기는 당천의 대답에 더욱 어이가 없었다. 술 또한 상승무공을 익히는 데는 방해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공의 고수들은 술을 마시면서 내공으로 주독을 배출해 좀처럼 술에 취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소림사 고승들 중에 상승무공을 익힌 자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놈!”
휘이익!
당천 일행이 식사를 마쳤을 때 암제가 바람처럼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이놈!”
카가가캉!
암제가 나타나자 당천의 얼굴에 기쁨이 서렸다. 처음에 동굴을 나섰을 때는 좋았지만 한 이틀 보지 못하자 그가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아서 나타나 주니 무작정 반가워서 배울 것은 별로 없지만 한판 놀기로 작정하고 달려들어 천하제일궁을 휘둘렀다.
암제는 당천이 술이나 마시면서 노닥거리고 있자 자신의 보물인 만년극음한철을 모두 사라지게 만든 놈의 행패가 생각나서 울컥했다. 우선 놈이 천하제일궁으로 변형시키기 전에 혼을 내서 뒤따라오고 있는 아들과 손자 놈들에게 당천을 소개하기 위해 교육을 시켜야 했다.
“이놈아!”
“이놈아!”
카가가캉!
그런데 이틀 만에 만난 당천은 예전의 당천이 아니었다. 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암제에게, 당천도 하수들이 쓰던 창법과 장기의 검법 등을 배워 천하제일궁을 무기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암제는 추혼비접이라는, 나비처럼 생긴 암기를 무기 삼아 천하제일궁을 방어했다.
당천은 이틀 만에 암제와 치고받게 되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도 역시 그와 노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
“세상에! 사조님과 비슷한 수준이다.”
객잔에서 벌어지는 암제와 당천의 격투에 진 포두는 너무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고, 장기는 창제와 비슷한 수준의 무공에 정신이 다 멍해지고 말았다.
“아이구!”
객잔 주인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객잔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인부들은 포졸과 점창파 제자가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일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이 사라져 버려 객잔에는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
“왜?”
“당과 하나만 먹고 하자!”
“싫어!”
“이거 줄게.”
“그게 뭔데?”
“추혼비접이란 거다.”
암제는 실력으로는 당천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작전을 바꾸었다. 제정신을 차리기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천은 암제가 내미는 예쁜 나비를 보자 귀가 솔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