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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7화)
제6장 살인사건(4)


‘저는 머리가 좋은 것이고, 눈치가 뛰어난 놈은 저놈입니다.’
진 포두는 기절한 장기를 부러워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제 자신은 영원히 당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 포두의 말에 당청수가 눈빛을 풀며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네는 이미 경험해서 알겠지만…… 우리 천아의 예절교육을 자네가 담당해야 할 것 같은데……!”
‘잘 생각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야 했다. 과연 자신이 당천의 수하가 될 자격이 있는지 떠 보는 시험이기 때문이었다.
“주군에게 인의예지를 가르칠 만한 사람을 거두도록 만들겠습니다.”
“끄응!”
그때, 기절해 있던 장기가 신음을 터뜨리고는 한 손으로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일어났다.
“이리 앉아라!”
“대당가의 문주님과 암제 어르신께 점창파 이대제자 장기가 인사드립니다.”
당청수가 자리를 권하자, 정신이 번쩍 든 장기가 암제와 문주를 항해 재빨리 포권을 취하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권하는 자리에 앉으려다, 당천의 뒤에 기립해 있는 진 포두를 보았다.
‘헉! 정신 차려, 장기! 여기서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수가 있다.’
장기는 눈치 하나는 구단이었다. 당천은 당 문주의 아들이고 암제가 키운 비밀병기다. 그런데 동창이라 사기를 치고, 아버지인 문주와 할아버지인 암제에게 막말로 대드는 당가의 치욕을 목격한 장본인을 당가가 과연 살려 둘 것인가? 아무리 점창파라고는 하지만 창제와 비견되는 고수가 둘이다. 이제는 점창파도 당가에는 한 수 접어 줘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당가의 독이면 자신은 흔적조차 없어질 테니 점창파에서는 아무것도 따지지 못할 테고, 더욱 깊이 캐려다가는 창룡표국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몰랐다.
처적!
장기는 재빨리 진 포두의 옆으로 가서 부동자세로 섰다.
“저도 진 포두와 같은 처지입니다.”
“허! 대점창파의 이대제자가 당가의 인물을 주군으로 모신단 말인가?”
장기의 말에, 당청수가 약간은 비꼬는 음성으로 쏘아보며 반문했다.
“하하! 저는 점창파에서 관으로 파견된 처지입니다. 관에 있는 동안은 제 상관이고, 저는 죽을 때까지 관에 투신할 것이니 상관을 주군으로 섬긴다면 점창파의 위상에 먹칠을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관에 투신하면 황제를 주군으로 섬겨야 하는 것은 명문정파의 제자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상관을 주군으로 모셔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장기는 진 포두가 살기 위해 당천을 주군이라고 한 것에 놀랐지만 자신도 어차피 야망을 위해 황궁에 투신하려던 참이었다. 때문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 자신도 살기 위해 당천을 주군으로 모시겠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었다. 또한, 생각해 보니 점창파에서 있어 봤자 일대제자가 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대리국 출신이 아닌 자가 일대제자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것은 사천당가도 마찬가지였다. 데릴사위로 들어가 당가로 성을 바꾸어도 당가의 비전을 익히기는 어려웠다. 점창파든 당가든 똑같은 상황이라면 이왕이면 당가에 붙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암제와 당천이란 비밀병기가 나타난 이상 사천성의 패자는 이제 당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중간에서 처신만 잘하면 창룡표국이 점창파와 사천당가 양쪽의 후광을 입고 더욱 번성할 수도 있다. 장기는 그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태연하게 당천을 주군이라고 말해 버렸다.
“허허!”
“……!”
암제는 당천이 이틀 만에 두 명의 수하를 거두었다는 사실에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점창파에게서 얼마나 많은 무시와 서러움을 당했는가? 그런 점창파의 본산제자가 자신의 아들을 주군으로 섬기겠다는 말에 기가 막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당청수가 진 포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그동안 당천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양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당과만 빨고 있었다.
“그래, 범인에 대한 단서는 얻었느냐?”
“살막의 살수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살막?”
진 포두가 잔뜩 긴장한 채 땀을 흘리며 대답하자, 당청수는 기대도 않았던 포졸 나부랭이가 자신들은 짐작도 못한 흉수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자 놀라 되물었다. 옆에 서 있던 장기도 놀란 얼굴로 진 포두를 바라보았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은 대부분 무림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진 포두는 무림세력 간의 미묘한 힘의 관계와 이해 등을 모두 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명포두란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이 무림세력 간의 쟁투에서 비롯됐다는 증거를 찾으면 사건이 무림맹 소관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관의 입장에서는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살막의 살수라 단정하지?”
“그토록 정교한 독침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사천당가와 살막뿐입니다. 다른 곳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약초꾼 노인을 살해해야 할 이유는 희박합니다.”
“당가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시체를 검시하던 복면인이 암향표를 시전한 당가의 인물이라는 것을 여기 장 감찰관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흉수가 정말 당가의 인물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우리를 살해해 입막음하려 했을 겁니다. 그자의 무공은 장 감찰관의 무공을 능가했고, 암기를 사용했다면 쉽게 우리를 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이유는 주군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호오! 그럼, 살막이라고 단정한 이유는?”
“사천당가가 노인을 살해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전무합니다. 하지만 살막이 얻는 이익은 많습니다.”
“누군가의 청부를 받았다는 것인가?”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살막이 얻는 이익이라니?”
“죽은 노인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건의 열쇠입니다. 죽은 노인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독초라면 제 추측이 맞을 겁니다.”
“맞네! 어떻게 알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점창파 본산제자보다 강한 자가 이토록 신속하게 이곳에 파견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한 저 객잔 주인도 사천당가 소속이라 확신합니다.”
“호오! 그건 또 어떻게 확신하는가?”
“비록 지금은 지풍을 맞고 기절해 있지만, 좀 전에 본 주인은 엄살을 부리면서도 눈동자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연극을 한 것이죠. 또한 이토록 손님이 없는 삼류 객잔에서 죽은 노인을 관을 써서 매장했다는 것, 다시 파기 쉽도록 묻어 두었다는 것이 사천당가와 연관된다고 확신합니다. 결정적으로 죽은 노인의 손바닥에서는 아무런 약초 냄새가 나지 않고 독초의 냄새가 났습니다. 독초와 약초의 냄새는 비슷하지만 분명 다릅니다. 또한 노인의 손과 발에 박힌 굳은살과 근육의 발달 정도로 보았을 때 독초를 채집하는 전문가로 판단됩니다. 사천성에서 약초가 아닌 독초를 캐는 노인이라면 당연히 사천당가와 연관 있는 노인일 것입니다. 노인이 사천당가와 연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청부를 이행할 정도의 단체는 살막뿐일 것입니다. 죽은 노인의 몸에서 아무런 독초가 없었다는 것은 살수가 독초를 빼앗아 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노인의 복장으로 보아 산에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올라갔다 내려오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초를 캐지 못했다면 이곳으로 올 리 없었을 것입니다. 노인은 아마 귀한 독초를 공급하는 역할이었을 테고, 이곳은 그런 독초나 영초를 수집하는 중간상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죽은 노인이 아주 귀한 독초를 채집하지 않았다면 죽을 이유도 없고 이곳에 사천당가의 고수가 나타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맞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살막이 당가의 독초를 가져간다고 얻을 게 없을 텐데? 약초꾼 노인 하나 죽이는 청부 금액도 약소할 테고.”
“저는 장 감찰관의 말에서 단서를 얻었습니다. 사천당가에 누명을 씌우기 위한 수법, 누명을 씌워서 이득을 얻는 곳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누명?”
“우선 독침으로 노인을 살해해 관의 이목이 사천당가로 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천당가만이 취급할 수 있는 독으로 황궁의 주요인물을 살해한다면?”
“허허! 너무 비약이 심하군!”
“얼마 후면 황제의 총애를 받는 주혜령 공주가 사천성에 들어옵니다. 공주 일행이 살해되었는데 그 살해 수단이 사천당가의 독이라면?”
“헉! 공주 일행이?”
“……!”
진 포두의 말에 암제와 문주의 얼굴이 확 변했다. 만약 진 포두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사천당가가 멸문할 수도 있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살막이 감히 사천당문에 그런 짓을 할 배짱이 있단 말인가?”
“당문에 이런 누명을 씌워서 이득 볼 곳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사천당가가 관과 부딪친다고 해서 쉽게 황실의 명령에 굴복할 리 없지요. 그러면 황궁은 사천당가를 토벌하기 위해 무림맹에 압력을 넣을 것이고, 황실무장들의 주축인 오대세가를 동원할 겁니다. 그러면 마교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인 사천당가를 없애면서 무림맹의 자중지란을 이용해 쉽게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교가 움직이면 북쪽의 흑도연맹도 쉽게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필시 황궁과 오대세가의 주력이 사천성으로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마교!”
마교란 말이 나오자 장기와 문주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마교와 평화협정을 맺은 지 이십 년이다. 이제야 겨우 마교대전에서 입은 피해를 거의 복구해 가는데 다시 마교가 움직인다니!
“자네의 추측은 놀라긴 하지만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네.”
“제가 무림의 인물이 아니기에 오히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어서 이런 추측이 가능한 겁니다. 살막은 이번 일로 마교와 흑도무림맹에게서 막대한 의뢰비를 받았을 것이고, 황궁 인물을 살해할 때는 살막이 아닌 귀마문(鬼魔門)이 나설 것입니다. 사천당문의 독을 제조할 수 있는 문파는 귀마문뿐이기 때문입니다.”
“귀마문?”
“아마 이 모든 것을 계획한 자는 흑도연맹의 흑제갈이라는 군사(軍士)일 겁니다.”
“허!”
“……!”
진 포두의 거침없는 추리와 판단에 암제와 문주는 그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살인사건의 단서 하나만을 가지고 내뱉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천하무림에 또다시 대란을 불러일으킬 일이었다. 더구나 그 중심에는 사천당가와 황실이 있었다.
“공주 일행이 사천성으로 향하는 것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아버님!”
“알겠다. 내가 이놈을 교육시키면서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하마!”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문주가 암제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암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진 포두의 추측이 그저 추측일 뿐이라도 사천당가의 존망이 걸린 이상 허투루 여기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관과 연관된 문제이니만큼 포졸인 이들을 이용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더구나 이토록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자는 남궁가와 제갈가의 인물을 빼고는 처음이었다. 외모는 산적 같았지만 한 문파의 머리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당천을 주군으로 모신다고 했으니 그 주군이 예의범절만 제대로 교육 받으면 당가는 날개를 다는 격이었다. 더구나 점창파 제자도 같이 있으니, 공주 일행이 살해되는 일은 물론 없어야 하겠지만 만일의 경우 일이 잘못돼도 구대문파인 점창파도 같이 엮어 넣을 수 있었다.
암제의 말을 들은 문주는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문주로서 당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칠호, 너는 남아서 당천의 수족이 되어라!”
스스슥!
“……!”
문주가 사라지자 이마에 동그란 멍자국이 있는 암향대가 유령처럼 나타나 당천에게 인사를 하고는 진 포두, 장기와 함께 그의 뒤에 부동자세로 섰다. 칠호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당가의 수호령으로 불리는 암향대는 당가를 수호하는 십대 가문 출신이다. 수호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일인전승으로 내려왔는데, 문주를 지키기 위해 마교와의 전투에 투입된 네 가문 중 세 가문이 사라졌고 그중 하나의 가문만이 겨우 전승되었다. 전사한 세 개의 가문이 부활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네 개의 가문 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가문이 바로 칠호의 가문이었다. 칠호는 암향대원이었던 부친이 마교대전에서 전사한 후 홀로 남은 어머니 밑에서 그야말로 피나는 수련을 통해 당가의 수호령인 암향대로 뽑히는 영광을 얻었고, 그럼으로써 수호가문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이 지난번 객잔에서 당천에게 얻어맞아 수호령에서 탈락해 버린 것이다. 수호령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은신을 들켜서 공격당하면 자격이 박탈된다.
‘어머님! 용서하십시오.’
절대무심을 유지하던 칠호였다. 이름도 버렸는데 이제는 소문주도 아닌 당가 막내아들의 일개 수하로 전락해 버렸다. 다시 암향대가 되려면 당천이 문주가 되어야 가능했다. 문주인 당청수가 정정하니 언제 그런 날이 올지 앞날이 캄캄했다. 또한 이런 괴물 같은 주군에게 은신을 들키지 않아야 암향대가 될 수 있으니, 당천이 문주가 된다 하더라도 수호가문이 모두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험! 너는 안 가냐?”
당천은 아버지가 떠나자 뭔가 가슴이 허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천은 당과만 빠는 것 같았지만 이들의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부모나 형제들에게 쓰는 말은 달라야 한다는 것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같은 것들이었다. 때문에 암제에게 ‘현성아’나 ‘이놈아’라는 말 대신 너라는 말을 썼던 것이다.
“할아버지라 불러!”
“시끄러워!”
암제는 당천이 스스로 말투를 바꾸자 그에 희망을 가지고 타일렀다. 하지만 일 년간 습관이 되어 버린 말투를 버리는 것도 껄끄러웠던 당천에게는 할아버지, 아버지란 말이 입에 익지 않아 낯이 간지러웠다. 또 그런 말을 쓰면 왠지 암제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