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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8화)
제6장 살인사건(5)


“휴! 우선 이놈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 줄 놈에게 가자!”
“예!”
암제는 비록 화경에 달해 심득을 얻었지만 지독한 고집과 성격으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도반삼양귀원술이란 비법을 이론으로 완성하고 그것을 성공하지 못하자 주화입마에까지 들까. 그런 자신을 빼다 박은 당천의 성격을 잘 아는 암제는 순순히 포기했다. 그런 성격을 고치려면 잡아서 혼내 주어야 하는데 놈의 신법이 자신보다 월등하니 잡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은 진 포두가 추천하는 자가 그에게 예의범절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길 바랄 뿐이었다.
“넌 왜 안 가냐니까?”
당천은 암제가 한숨만 쉬며 자신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자 짜증을 내며 다시 큰소리로 대들 듯이 소리쳤다. 암제는 어쩔 수 없이 당천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이놈아! 이놈을 너와 놀아 줄 정도로 만들어 달라며!”
“험! 그럼 그렇다고 대답해야지.”
암제가 진 포두를 걸고넘어지자 당천도 어쩔 수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암제가 떠나지 않는다니 속으로 안심이 되는 그였다.



제7장 유림천야(儒林天爺) 남궁박(南宮博)과 천생독강시(天生毒彊屍) 거산(巨山)(1)


“성공했는가?”
“실패했습니다.”
명교라 불리는 천년마교의 내전 깊숙한 밀실에서 스산한 말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실패라고?”
“거탑 전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행히 완전한 실패는 아닙니다. 소교주 거산의 독살에는 실패했지만 주화입마에 빠져 실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조부이신 철마 교주님이 폐관수련에서 출관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거탑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대 교주였던 철마가 다시 교주가 된 것은 그의 아들인 거천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이십 년 전 마교대전이 한창일 때 동맹을 맺었던 소뢰음사가 배반을 하고 기습을 가해 왔다. 백팔마황이라 불리는 소뢰음사의 괴물들에게 기습을 당한 거천교주는 전사했고, 전대 교주였던 철마와 장로들이 급하게 출동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백팔마황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자신했지만 수십 명의 마황이 철마와 마교 장로들의 손에 죽자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하지만 철마와 장로들도 치명상을 입었기에 추격할 수 없었다. 이십 년 전 마교와 무림맹이 평화협정을 맺은 이면에는 이런 비화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교주인 거천이 전사하자 아직 어린 두 아들인 거산이나 거탑이 교주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강자존인 천년마교에서 어린아이가 교주가 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전대 교주였던 철마가 다시 교주가 되어 마교를 이끌어야 했던 것이다. 거산과 거탑은 폐관수련하며 마공을 익혀 이제 마교 교주로서 손색이 없는 최강자가 되었다. 문제는 교주가 될 재목이 둘이라는 것이었다.
“여기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거탑의 머리 역할을 하는 마교지낭(魔敎智囊) 마유천이 미소를 지으며 편지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위대하신 천년마교 교주님께!
귀교에서 제안하신 동맹 건에 대해 본맹은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바입니다. 이에 흑도연맹은 정도무림맹을 합공하기 전에 천년마교를 위한 선물로 먼저 사천당가를 제거하는 일을 추진 중입니다. 이를 위해 교주님께서 초절정고수 한 명을 귀마문에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흑도연맹 맹주 임천

“이것이 거산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주화입마로 실혼인이 된 거산을 귀마문으로 보내는 겁니다.”
거탑은 일찍 폐관수련을 마치고 마교의 세력을 장악했지만 거산은 아직도 폐관한 채 무공만 미친 듯이 수련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실종되어도 그것을 아는 사람은 거탑뿐이었다.
“귀마문으로 고수를 보내 달라는 건 강시를 만들 재료를 보내 달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사천당가를 곤란하게 만들 독강시를 만들 재료로 이용될 겁니다.”
“독강시?”
“거산 소교주는 흑도연맹과의 동맹을 위해 스스로 귀마문으로 갔습니다.”
“스스로?”
“소교주가 주화입마로 실혼인이 된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소교주를 강시로 만들자는 말인가?”
거탑은 형을 독살하려는 독심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강시로 만든다는 말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교주가 강시가 된 것은 흑도연맹이 배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철마 교주님이 출관하시고 이 사실을 알면 흑도연맹을 부숴 버릴 겁니다. 어차피 명교의 천하통일을 위해서는 흑도연맹도 부숴 버려야 할 적 아닙니까?”
“흠!”
거탑이 생각에 잠기며 망설이자, 마교지낭 마유천이 부연설명을 했다.
“소뢰음사와 대뢰음사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서장무림과 천축무림이 싸우고 있는 이때가 기회입니다. 무림맹 놈들은 마교가 서장, 천축과 동맹관계라고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서장과 천축이 싸우는 이 때 설마 마교가 다시 전쟁을 일으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흑도연맹이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때를 잘 이용하면 철마 교주님이 폐관수련을 마치기 전에 중원을 통일할 수도 있습니다.”
“좋다. 거산을 귀마문에 보내라!”
거탑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허락했다. 중원을 통일하면 자신의 죄가 드러나도 철마에게서 교주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었다.

***

“으하하하! 정말 살아 있는 초절정고수를 보내다니!”
“비록 주화입마로 실혼인이 되긴 했지만 지독한 독의 흔적이 보입니다. 독 정도에 당할 고수는 아니었지만 운공 중에 당해서 주화입마에 빠져 실혼인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아마 마교에서 흑도연맹의 청을 받아들여 초절정고수를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음침한 지하에 만들어진 광장에 놓인 관을 보면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관 옆에는 부글부글 끊는 솥단지와 수많은 시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또한 수많은 탁자에 시체가 놓여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시체가 들어 있는 관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놓여 있었다.
“마교 놈들! 정말 치가 떨리도록 강한 놈이 많은 모양이군!”
“놈들이 강할수록 정파 떨거지들을 쓸어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흐! 정파 놈들과 마교 놈들이 부딪치고 남는 놈들을 우리 흑도연맹이 쓸어버리면 된다.”
귀마문 문주인 진사환(鎭死煥)이 음침하게 웃으면서 아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둘 다 해골에 살가죽을 씌워 놓은 것처럼 깡마른 자들로, 진사환은 구마의 하나인 귀마(鬼魔)로 불리는 자였다.
“아버님, 시작하시죠.”
“준비는 다 되었느냐?”
“사천당가의 독중지왕이라 불리는 무영지독의 원료를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흐흐흐! 당가 놈들, 약초꾼 노인 하나의 죽음이 네놈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도화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천당가와 더불어 오대세가 놈들도 걸려들 것입니다.”
“으드득! 그놈들은 내가 친히 모두 목을 비틀어 강시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무림오대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귀마가 눈을 스산하게 빛내면서 이를 으드득 갈며 분개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놈들에게 빼앗긴 모든 상권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으드득! 이번에 이 불사금강천생독강시를 준비하는 데 얼마나 들었느냐?”
“오십만 냥입니다. 북망산에서 시체를 발굴하다가 고대 황릉 속에서 찾아낸 부장품이 아니었다면 또 큰 빚을 질 뻔했습니다.”
“우리 귀마문의 빚이 얼마나 되느냐?”
“현재 백이십구만 냥이나 됩니다. 현재 본단 상가와 삼백여 개 지부에서 보내오는 돈으로는 이자를 갚기도 버거운 형편입니다.”
산동성에 자리를 잡은 귀마문은 하북, 하남, 안휘성까지 넓은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실을 등에 업은 오대세가에 밀려, 현재는 관, 수의 등의 장의용품만을 파는 상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중원 전역에 걸쳐 장의업을 하는 지부도 재정이 악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십 년 평화가 가져다준 결과였다. 귀마문의 지부는 시체를 강시로 만들어 이동하는 업종으로 큰돈을 벌었었다. 관과 수의 등 장의용품을 팔아서는 현상유지를 하기도 급급한 형편이었다. 수많은 귀마문 고수들을 먹여 살리고, 또한 귀마문의 주전력인 생강시, 천강시, 독강시, 지강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사금강천생독강시는 생강시, 천강시, 독강시의 장점만을 모은 최강의 강시였다. 만드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고, 주재료인 살아 있는 초절정고수를 구하기 어려워 귀마문에서도 역사상 한 번도 제련한 적이 없는 전설적인 강시였다. 이번에도 마교와 흑도연맹에서 주재료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오십만 냥으로 만들기 어려운 강시가 바로 불사금강천생독강시다. 불사금강이라는 이름은 귀마가 갖다 붙인 것이었고, 본래의 이름은 천생독강시였다.
“불사금강천생독강시만 완성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으흐흐흐! 이놈은 삼존, 칠제, 구마가 아니라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천하무적의 강시다. 만약 이놈이 화경에 달한 고수였다면 삼존이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진정한 천하무적이 되었을 텐데……!”
귀마는 강시의 재료로 쓸 살아 있는 초절정고수를 구하자 다른 욕심이 났다.
“아버님, 이번 일로 본문의 상권을 회복하고 흑도연맹이 천하를 통일한다면 삼존이나 칠제 놈들을 사로잡아 진정한 천하무적의 강시를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흐흐! 그렇게만 되면 검마가 가지고 있는 흑도연맹의 맹주 자리는 나 귀마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흐흐흐!”
귀마문 총단의 지하에서 두 부자의 음침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남궁박?”
“남궁세가의 장자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다섯 살 때 공자의 가르침이 있는 유교서적에 심취해 무공을 도외시해서 남궁세가에서 쫓겨난 인물입니다. 이십 년 동안 인의예지만 가르치는 유교서적만 공부하느라 과거에도 응하지 않는 지독한 인물이니 주군에게 인의예지를 가르칠 만하지 않겠습니까?”
당천, 암제, 칠호, 장기, 진 포두는 객점을 나와 당천에게 인의예지를 가르칠 스승을 찾아서 길을 재촉했다. 진 포두에게는 발휘할 수 있는 신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천 시내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암제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나 저 당과 줘!”
당천은 암제와 진 포두의 대화에는 관심 없이 시내를 두리번거리며 구경에 몰두해 있었다. 그때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계집애가 당천이 빨고 있는 당과를 보고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삭!
당천은 꼬마가 자신의 당과를 쳐다보자 빼앗길까 봐 얼른 입에서 빼서 등 뒤로 감추었다.
“죄, 죄송합니다.”
당천 일행을 본 꼬마의 어머니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딸을 끌어 당겨 안으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산적이다. 으아앙!”
진 포두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산적처럼 생긴 그의 얼굴을 본 꼬마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엄마가 얼른 아이를 안고 사라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던 지나가던 사람들도 쌍검을 찬 점창파 제자와 산적 같은 생김새의 포졸, 창백한 얼굴에 쇠사슬이 달린 낫을 등에 멘 칠호, 대장군 같은 갑옷을 입은 당천과 암제를 보고는 얼른 걸음을 옮겼다.
“이놈아! 산적처럼 생긴 네놈 상판을 보고 애가 놀라잖아!”
“험! 내가 아니라 말처럼 생긴 감찰관님 보고 놀란 걸 수도 있잖습니까?”
“뭐?”
장기는 만만하게 봤던 진 포두에게 한 방 먹자 멍해졌다. 감히 일개 포졸 따위가 대점창파 본산제자와 맞먹다니, 하는 표정이었다. 한 성질 하는 진 포두다. 아무리 점창파 제자라 하더라도 살아 있는 신화적인 인물인 암제가 옆에 있는데 겁날 리가 없는 것이다.
“엄마?”
당천은 꼬마가 한 말이 생각나 멍청하게 서 있었다. 엄마란 말에 왠지 가슴이 아련해지는 아픔이 밀려오는 그였다.
“험! 어서 가자!”
당천의 마음을 짐작한 암제가 길을 재촉했다. 당천이 당장 본가로 돌아가 어머니를 보자고 할까 봐 겁났기 때문이다. 당천의 성격에,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이 뻔했다. 어떻게든 교육을 시킨 후에 데려가도 데려갈 생각인 것이다. 더군다나 가문의 위기를 보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당천의 교육도 시킬 겸 음모를 파헤치기로 한 것이다. 당천의 무위와 진 포두란 자의 머리에 자신이 가세하면 놈들의 음모를 분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암제였다.
“저곳이 남궁박이 거처하는 장원입니다.”
진 포두가 커다란 장원을 가리키면서 암제에게 공손하게 아뢰었다. 장원은 진덕장원(鎭德莊園)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유학자의 집이었다.
“이곳은 옛날 한림원주를 지낸 고관의 장원이 아닌가?”
“쫓겨난 남궁박이 여전히 유교서적만을 연구한다는 말을 들은 이곳의 주인이 별채를 내주어 여기에서 학문을 익히도록 허락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진 포두의 말을 들은 암제는 천하의 오대세가의 장자가 이런 곳에서 이십 년 가까이 한 가지 서적만 공부한다는 말에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꽝꽝!
눈치가 빠른 장기가 앞에 나서서 장원의 문을 두드렸다.
끼이이익!
“어떻게 오셨습니까?”
“남궁박이란 인물을 찾아왔네.”
잠시 후, 일꾼으로 보이는 자가 나와서 묻자 장기가 대답했다.
“따라오십시오.”
장기의 등에 있는 쌍검을 본 일꾼은 일행을 순순히 별채로 안내했다. 주인을 찾았다면 주인에게 먼저 묻겠지만 이십 년 가까이 공밥을 먹고 있는 자의 손님이었다. 그가 남궁가 출신이란 것을 알기에 쌍검을 찬 장기를 보고 군소리 없이 안내했던 것이다. 종종 남궁박을 찾아오는 무림인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