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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19화)
제7장 유림천야(儒林天爺) 남궁박(南宮博)과 천생독강시(天生毒彊屍) 거산(巨山)(2)


“하하하! 드디어 이십 년을 채웠다!”
별채에 기거하는 남궁박은 다섯 살 때부터 이십 년 동안 오직 한 가지 유교서적만을 탐독했다. 그가 읽은 서적의 맨 뒷장이 보였다.

이십 년간 인의예지를 담은 이 서적을, 한 가지 호흡법을 수련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정진한 그대야말로 진정한 유림천야라 불릴 자격이 있다. 이제 유림천야가 세상에 나아가 할 일을 가르쳐 주겠다.

“하하하! 나는 이제 유림천야 남궁박이다!”
“그대가 남궁박인가?”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박은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 있는 이들을 보면서 저들이 곧 서책에 적힌 말과 관련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은 순간 자신의 길을 인도할 이들이 나타나자 서책의 신묘한 예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궁박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스르륵!
그가 나가자 마지막 장에 보이지 않던 글이 나타났다.

그대가 이십 년간 익힌 호흡과 인의예지를 공부하며 깨달은 가르침들은 그대를 금강지체로 만드는 유림천의 호법신공이다. 그대가 세상에 나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림고수들에게 두들겨 맞는 일이다. 맞음으로써 진정한 금강지체가 될 것이며 그들의 무공을 솜처럼 빨아들여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안배한 것은 그대가 강자들에게 맞음으로써, 앞으로 천하제일인이 되어서도 약자의 서러움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다. 왜냐하면 그대는 무력이 없는 천만 유림인들의 대부인 유림천야로서, 무공을 익힌 무뢰배들에게서 그들을 지키는 사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림천야, 그대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백 년 이론으로 만든 유림천의 호법신공을 대성한 자니 부디 우리의 염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마지막 글은 이십 년간 인의예지를 익히며 유림천 호법신공이 대성하면 나타나도록 안배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궁박은 때마침 찾아온 당천 일행을 만나느라 이 글을 읽지 못했다.
스르륵!
잠시 후 서책에 나타났던 글자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유림천야 남궁박이라고 합니다.”
남궁박은 당천 일행이 서책이 예언한 대로 자신을 세상으로 인도해 줄 사람들이라 확신하고 스스로를 서책에 기록된 대로 유림천야라 밝혔다.
“유림천야?”
당천 일행은 남궁박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처음 들어 보는 명호였기 때문이다.
“부탁이 있어서 왔네.”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밝히든 아쉬운 것은 당천 일행이었다. 암제가 나서며 말하자 남궁박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나이는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데 하는 행동과 말투는 노인의 그것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인의예지를 배운 선비답게, 남궁박은 호기심을 누르고 점잖게 대답했다. 그 점잖은 행동과 말투에, 암제의 얼굴에 흡족한 기색이 떠올랐다.
“여기는 내 손자인 당천이라 하네. 자네가 이 아이의 스승이 되어 인의예지를 가르쳐 주게!”
‘인의예지! 과연 서책의 예언은 다르구나!’
남궁박은 서책의 예언이 현실화하자 놀라 속으로 부르짖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남궁박은 서책에 기록된 예언을 앞에 두고, 겸양을 나타내는 세 번 정도의 사양을 생략했다.
“허허! 고맙네. 천아, 네 스승이다. 인사해라.”
암제는 남궁박이 너무도 쉽게 승낙하자 입이 귀에 걸렸다. 학자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더구나 남궁박은 남궁세가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든 인물이 아닌가. 하지만 문득 들려온 당천의 한마디에 암제의 흐뭇한 표정은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스승이 뭔데?”
암제는 남궁박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 결정을 번복해 거절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그가 과연 앞으로 당천에게 인의예지를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스승이란 하늘 같은 부친이나 주군과 동격이며, 제자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의예지와 진리를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
남궁박이 천천히 대답했다. 그는 임풍옥수가 무엇인지 보여 주려는 듯, 단아한 문사 복장에 송옥이 울고 갈 정도로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천이 완성형 인간에 가까운 중성적 미모라 한다면 남궁박은 단아한 남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미모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자라고? 너, 나보다 세?”
“컥!”
“……?”
당천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제일 필요한 것은 무력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암제와 한 일이 치고받으면서 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들의 놀라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남궁박은 잠시 당천이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서책에서 예언한 것이니 쉬울 리 없다고 생각하는 남궁박이었다.
“옛날 공자님이 진나라에 갔다가 외진 길에서 도둑 떼를 만났습니다. 공자님의 돈을 빼앗으려던 도둑들은 돈이 없었지만, 공자의 명성을 알고 있던 도둑들은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구멍 뚫린 구슬을 주면서 실을 꿰어 보라 했지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공자는 실을 꿰지 못해 애태우다 지나던 시골 여인에게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여인은 꿀과 개미를 이용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공자는 실을 개미의 허리에 묶고 구멍에 밀어 넣은 다음 다른 쪽에 꿀을 발라 실을 꿰는 데 성공해 곤경을 벗어났습니다. 성인인 공자도 시골 여인에게 배울 것이 있으니 저도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
이번에는 당천이 어리둥절했다. 자신보다 강하냐고 물었는데 웬 옛날이야기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이놈아! 스승에게 예를 취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보다 못한 암제가 나서서 호통쳤다.
“쟤도 나한테 배운다잖아!”
암제의 호통에 당천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싸우지 마십시오. 공자님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했고, 또한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했으니 벗이 되어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는 게 좋겠습니다.”
“험! 알겠네!”
남궁박이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까지 그렇게 말하자, 암제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면서 승낙했다.
‘친구란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이란 것인가?’
당천은 속으로 생각하며, 아버지가 곧 사부와 동격이라면 사부는 친구와 같은 것이며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이인가 하는 생각에 고민했다. 하지만 암제의 눈치를 보아하니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천은 좀 더 두고 보자고 생각하면서 당과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하하! 저는 점창파 이대제자인 쌍룡신검 장기입니다.”
“남궁박이라 합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잘못했다간 당천 때문에 시답지 않은 문사 나부랭이에게 어른 대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주군의 친구라 해서 자신에게도 어른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장기는 스스로 먼저 나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진형래라고 합니다. 직업은 포두입니다.”
“남궁박이라 합니다.”
남궁박은 장기와 진 포두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나는 천하제일 포졸인 당천이다.”
“유림천야 남궁박이다.”
당천도 눈치를 보고는 당과를 빨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이제 포졸이 대충 어떤 위치인지 알았다. 때문에 앞에 천하제일이란 단어를 붙여서 다른 포졸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남궁박도 당천과 친구가 되었으니 멋대로 지은 자신의 별호까지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암제를 보면서 누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쪽은 칠호라 불리는 자고, 이분은 암제 어르신입니다.”
‘헉!’
아무리 어려서부터 학문만을 닦았다고는 하지만 삼존, 칠제, 구마를 모르겠는가? 남궁박의 얼굴에 처음으로 놀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어르신을 몰라 뵙고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말학 후배가 어르신께 인사 올립니다.”
“험! 당현성이라 한다.”
남궁박이 자세를 바로 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자 암제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우선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아닐세. 한시가 급하니 자네가 떠날 준비를 갖추게나.”
남궁박이 차를 권하자 암제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단서들을 종합해서 추리한 결과 거대한 음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제 추리가 옳다면 앞으로 이십 년 마교대전보다 더 치열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흑도연맹과 황궁까지 개입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암제의 시선을 받은 장기가 대신 상황을 설명했다. 장기의 설명을 들은 남궁박의 가슴은 뛰었다. 서책이 예언한 거대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하늘이 자신을 안배한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저는 책만 가져가면 됩니다. 나가면서 이곳 주인에게 인사드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스스슥!
인의예지란 제목의 서책을 가지고 나가기 위해 책을 만진 순간 서책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과연 천서로다. 할 일을 마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 것인가?’
남궁박은 서책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자 탄식을 터뜨렸다. 자신이 읽은 책의 서두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 책은 수백 명의 유학자들에게 대대로 전승되며 기록된 것이었다. 서책을 대대로 전수하기 위해서는 내용과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다 깨달은 후에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학문적으로 발전한 후에 책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인의예지란 책을 쓴 유학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전수할 제자를 찾지 못했다. 서책이 너무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이유도 있었지만 그 자신이 너무도 위대한 대학자였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는 성품 곧은 인재가 나오기를 바라며 인의예지란 서책을 남겼다. 그 책은 오랜 세월 당대의 기라성 같은 유학자들의 손을 거쳤지만 진정한 주인을 만나지 못했고 결국 남궁박을 만나 빛을 본 것이다. 남궁박은 서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서책의 주인인 스승의 깨달음을 전수받았으니 그 가르침과 깨달음을 더 발전시켜 죽기 전에 제자에게 전수하거나 자신이 읽은 것보다 한 단계 위의 책을 남겨야 할 사명을 갖게 되었다.
“가시지요.”
남궁박은 여비와 옷과 같은 짐을 챙겨 등에 짊어지고는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일행은 남궁박과 함께 진덕장원의 원주를 찾아갔다.
“원주님 계신가?”
“현재 북경으로 올라가셔서 돌아오시려면 달포는 있어야 할 겁니다.”
남궁박은 그동안 원주에게 신세진 것에 감사를 표하고 떠나려 했지만 원주가 없다는 소리에 편지를 써서 하인에게 넘겼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꼭 전해 주시게나!”
“알겠습니다요.”
하인은 이십 년 동안이나 공밥을 먹던 식객이 하나 줄어든다는 사실에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식객이 하나 줄어든 만큼 자신의 일도 줄어드는 것이다.
진덕장원의 원주는 학림학사 시절 인의예지 서책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역대 학림학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질이 부족함을 한탄하다가 다섯 살 신동인 남궁박의 천재성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서책을 주었다. 남궁박이 이 서책 때문에 남궁세가에서 쫓겨나자 미안함 마음에 쫓겨난 그를 거두어 정성껏 돌봐 주었다. 초기에는 하인들이 정성껏 수발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 주인의 당부를 잊은 하인들에게 남궁박은 그저 귀찮은 식객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제 어디로 갑니까?”
“문주가 당가 정보망과 개방의 정보망을 동원해서 찾을 테니 우리는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장기가 묻자 암제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누군가 공주 일행을 이용해서 사천당가와 황실을 부딪치게 만들려는가 보군요.”
암제의 말 한마디에 대번에 상황을 파악하는 남궁박이었다.
“사천당가에 독초를 공급하는 약초꾼이 살막의 살수로 의심되는 자에게 독침으로 살해당했소. 문제는 그 독초가 사천당가의 무영지독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라는 사실이오. 독침, 무영지독과 같은 단서는 사천당가를 함정 빠뜨리려는 의도로 짐작되고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사천성으로 오는 공주 일행이오. 만약 공주가 무영지독으로 살해되면 황궁과 당가는 부딪칠 수밖에 없소. 그러면 이익을 보는 단체는 마교, 흑도연맹이오. 때문에 나는 이 사건의 배후가 마교와 흑도연맹이 아닌가 생각되오.”
진 포두는 남궁박이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자 자신의 추측을 말하며 조언을 구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공주가 올 만한 곳을 추측해 그곳에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남궁박은 진 포두의 추측에 동의한다는 듯 한발 더 나아가 공주가 올 만한 길을 추측해 보자고 제의했다.
“황궁에서 오는 가장 편한 길은 뱃길이 아니겠습니까?”
장기가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북경에서 가장 빠른 육로라면 검각(劍閣)이 있는 검문산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검각은 검마에게 무너졌지만 구대문파에 버금가는 검문으로 유명했던 문파입니다.”
장기가 양자강을 이용하는 뱃길을 말하자 진 포두가 가장 빠른 육로를 말했다.
“촉나라 때 만들어진 작은 길이 남아 있는 구룡산맥의 대파산을 넘어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궁박이 또 다른 육로를 말했다. 셋 다 북경에서 오는 가장 빠른 길들이었다. 다만 대파산을 넘어오는 것은 길이 너무 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