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20화)
제7장 유림천야(儒林天爺) 남궁박(南宮博)과 천생독강시(天生毒彊屍) 거산(巨山)(3)


“뱃길을 선택했다면 수적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 거대한 선단을 띄워야 할 것입니다. 그랬다면 소문이 났을 테니 일단 뱃길은 제쳐 둡시다. 우선 공주의 성격을 알아야 대충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유람이 목적인지 아니면 전설의 서황궁을 찾아가는 것이 목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주혜령 공주의 먼 길을 허락하고 고수들을 동행하게 했다면 무언가 목적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빙 돌아가는 다른 길은 제쳐 둘 수 있고 비밀을 보장하려면 험하긴 해도 촉나라 때 만들어진 작은 길이 남아 있는 구룡산맥의 대파산을 넘는 길이 제일 유력하군요.”
진 포두는 남궁박이 언급한 길이 제일 유력하다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대파산 쪽을 선택했다면 인적이 뜸하고 녹림의 무리가 많은 곳이라 개방의 정보망에도 걸리지 않는다. 녹림의 무리야 호위와 동창, 그리고 곤륜삼선이 있는 한 겁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파산 쪽으로 가자!”
암제가 결정을 내리자 일행은 대파산 쪽으로 길을 나섰다. 대파산은 섬서성과 사천성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남쪽은 밋밋하고 북쪽은 매우 가파르다. 장기는 포청에 연락해 말을 세 필 준비해서 노숙에 대비해 필요한 것을 사서 길을 떠났다. 물론 그 모든 경비는 장기의 몫이었다.
“대파산을 넘어오는 길은 많지만 사천성으로 들어오는 길은 모두 이곳에서 만날 겁니다. 머리가 있는 자라면 이곳에서 공주 일행을 기다릴 것입니다.”
대파산을 넘어 사천성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목에서 진 포두가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작은 계곡이 흐르는 길을 따라 길이 나 있고 주변은 나무와 넝쿨들로 사람이 다니기 어려워 보이는 곳이었다.
“흑도연맹이 배후라면 대파산에 있는 녹림 무리들을 이용할지도 모릅니다.”
남궁박은 이곳에 여장을 풀고 은신해서 공주 일행을 암격하려는 흉수들을 기다리자는 진 포두의 의견에 반대를 표했다.
“그렇다고 대파산의 모든 길을 뒤지며 다닐 수도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진 포두도 남궁박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당천이 하루에 몇 번씩 대파산을 수색하도록 한다.”
“……?”
암제의 말에 모두 의문을 표했다. 이처럼 커다란 산을 어떻게 하루에 몇 번씩 수색한다는 말인가? 당과를 빨던 당천이 모두 편히 쉬고 자신만 수색하라는 말에 삐쳐서 바위에 주저앉으면서 소리쳤다.
“왜 나만 해?”
“이놈아, 나도 할 수 있지만 네놈처럼 은신해서 날 수 없으니 네가 해야지!”
암제가 화가 나서 마주 소리쳤다. 암제가 화경에 달해서 독심과 불 같은 성정이 많이 없어지고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지긴 했지만 어떻게 된 것이 당천과 말을 섞기만 하면 큰소리가 나왔다.
“설마, 어풍비행술!”
암제의 말에 장기가 놀라서 소리쳤다. 산맥을 하루에 몇 번씩 수색할 수 있는 방법은 어검비행이나 어풍비행술과 같은 전설적인 경공법을 시전하는 것뿐이었다. 검가가 아닌 사천당가니 어검비행은 아닐 테고 당연히 어풍비행술뿐이었다.
“천하제일 포졸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 바퀴 후딱 돌고 오지!”
장기가 당천을 띄워 주자 당천이 바로 얼굴을 환하게 밝히면서 일어났다.
휘이익!
“헉!”
“저럴 수가!”
당천은 자칭 포졸신법을 펼쳐 그 자리에서 하늘로 새보다 빠르게 솟구치더니 이내 햇볕에 모습을 감추었다. 당천이 사라지자 모두 멍하니 하늘을 보며 절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신법이었다. 당천의 이런 가공할 신법이 알려지면 칠제의 한 명인 곤륜파 장문인이 가진 비제란 호칭은 이제 당천에게 넘겨야 할 것이다.
“험! 너는 이리 와서 이것을 복용해라!”
“이게 무엇입니까?”
당천이 사라지자 암제가 진 포두를 불러서 영약을 하나 내밀었다. 궁가산에서 캔 천년설삼으로 만든 사천당가 비전의 영약으로 내공을 삼십 년 넘게 증진시키는 영약이었다.
“네놈의 무공을 증진시킬 영약이다.”
“어르신! 저도 하나 부탁합니다.”
장기는 암제가 내미는 영약이 내공을 급증시키는 보물임을 알아내고 주저없이 부탁했다.
“이놈아! 너는 이미 많은 영약을 복용해서 아무리 좋은 영약인 대환단을 먹어도 아무 소용없는 몸이다.”
“네…….”
암제의 말에 장기는 시무룩해져서 바위에 주저앉았다. 영약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일갑자 이상의 내공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일갑자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필요했다. 단전의 크기가 커지는 오기조원과 삼화취정을 넘어서야 이갑자까지의 내공이 가능했다.
깨달음 없이도 일갑자 반까지는 억지로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절정에서 초절정고수로 넘어가는 깨달음인 삼화취정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절정고수들의 내공이 아무리 많아 봤자 백 년을 넘지 못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갑자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중단전의 무공을 사용하는 경지로 탈골환태해 단전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즉 이갑자 이상의 내공이면 화경의 경지로 보아야 했다.
삼갑자 이상이 되려면 신선의 경지인 등봉조극의 경지인 현경에 이르러야 한다. 때문에 암제의 내공은 화경의 최고봉인 이갑자 반이었다. 당천의 내공이 삼갑자가 된 것은 상단전, 중단전이 완전히 열린 경지이기 때문이었다. 즉 인간이 천년내공을 지녔다는 것은 중단전과 상단전의 무공으로 그 같은 무지막지한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지 하단전의 내공은 삼갑자를 넘을 수 없었다.
당천이 허공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것은 내공의 힘이 아니라 중단전과 상단전을 사용하는 축지법과 이형환위의 수법을 경공신법에 접목했기 때문인 것이다. 당천에게는 암제의 이기어검에 가까운 암기수법 이외에는 중단전을 사용하는 다른 무공이 없었다.
스르륵!
당천은 대파산을 한 바퀴 돌고 와서도 은신을 풀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무영신투의 놀라운 신법이 가미되었기에 암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암제는 진 포두의 무공을 일갑자 수준으로 높여 주기 위해서 영약을 복용시키고 금침대법과 추궁과혈의 수법으로 장기의 전신 혈도를 두드려 주고 있는 중이었다.
퍼퍽!
“악!”
투두둑!
암제가 진 포두의 몸을 두드릴 때마다 몸에 박힌 침들이 튀어나오면서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럴 때마다 입에서 죽은 피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칠호와 장기는 부러운 표정으로 진 포두를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이미 백 년에 가까운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초절정으로 넘어가는 깨달음이 없이는 내공 증진이 불가능하기에 그저 부러운 표정으로 진 포두를 쳐다볼 뿐이었다.
초절정고수가 되지 않고도 초절정고수를 이기는 방법은 실전경험과 강한 무공초식으로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방법뿐이었다. 때문에 초절정고수가 되었다고 무조건 절정고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패는 것이로구나!’
당천은 두들겨 패는 암제의 수법을 보면서 무공을 가르치는 원리를 이해했다. 내공을 움직여 추궁과혈로 근육을 부드럽고 강하게 하고 진기를 움직여서 내공을 증진시킨 후 몸의 독소를 죽은 피로 토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암제와 자신이 치고받은 것도 암제가 자신의 무공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당천이었다. 남궁박과 친구가 되어 서로 가르쳐 주기로 했는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던 중 고민거리가 해결되자 얼굴이 환해지는 당천이었다.
스르륵!
“왔냐!”
“별거 없다.”
암제는 일을 마치고는 당천에게 물었다. 당천이 돌아본 결과를 말하자 암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가 어디 한곳만 보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 되었다.
“우리도 서로 가르침을 나누어야겠지!”
“알겠습니다.”
군자는 시샘하거나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암제가 진 포두에게 베푸는 기연을 태연하게 지켜보던 남궁박은 말을 거는 당천에게 정중하게 대답하고는 행낭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당송시대 유학자들의 강론과 강학을 적은 책이었다.
“우선 이것을 읽어 보시지요.”
“어떻게 읽는데?”
“설마 글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모르는데?”
“……!”
“험!”
암제의 손자이자 당가의 직계인 당천이 아직 글도 모른다는 말에 남궁박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었고, 암제는 민망한 듯이 먼 하늘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우선 글을 배우지요. 글은 사물의 형상을 본뜬 상형문자와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 추상적인 기호로 만든 지시문자, 두 글자를 합쳐서 만든 회의문자, 뜻 부분과 음 부분을 합친 형성문자, 만들어진 글자를 유추해서 만든 전주문자, 음만 빌려온 가차문자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글자는 땅에 막대기를 이렇게 놓은 모양입니다. 따라 하시지요. 한 일(一)!”
남궁박이 막대기를 땅에 놓으면서 한일자를 만들었다.
“한 일!”
“일자는 만물이 시작이요, 기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용의 머리에 뱀의 몸뚱이를 가진 반고라는 신이 도끼로 암흑의 계란을 내리치자 쪼개지면서 이렇게 둘이 되었습니다. 하나는 위로 올라가 이렇게 하늘이 되었고, 하나는 내려가서 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반고의 천지개벽의 신화로 천지는 일에서 나왔기에 만물의 시초가 곧 일이 됩니다. 자, 따라 하시지요. 한 일(一), 두 이(二), 하늘 천(天), 땅 지(地)!”
“한 일, 두 이, 하늘 천, 땅 지!”
남궁박은 인의예지를 가르치기 전에 글자를 이용해서 만물의 이치와 도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천은 쉽게 글자를 이해하며 만물의 이치와 도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가르침을 내릴 차례다.”
글자 공부가 끝나자 당천이 남궁박에게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귀를 닦고 경청하겠습니다.”
남궁박은 시골 아낙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공자처럼 자세를 바로 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퍽!
“켁!”
당천은 암제에게 배운 회타연편십삼식을 삼양신장으로 응용한 특유의 장법으로 남궁박의 전신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남궁박은 전신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호법신공인 호흡법이 절로 가동되고 당천의 회타연편십삼식의 투로와 삼양신장이란 장법이 절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
남궁박은 이것이 당천의 가르침이란 것을 깨닫고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지만 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은 어쩔 수 없었다.
“허어! 금침대법과 소혼단 없이도 저런 방법으로 내공을 키워 줄 수 있다니!”
당천의 무지막지한 구타에 암제도 처음에는 기절할 듯이 놀랐지만 그 수법이 자신이 진 포두에게 베푼 추궁과혈을 응용한 자신의 수법을 따라 하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계속 구경했다.
암제가 진 포두에게 준 영약은 사실 독단이었다. 만독단에는 비할 수 없지만 천년설삼의 약효를 다른 독초와 배합해서 독단으로 만든 암제였다. 사실 암제에게는 영초나 독초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소혼단을 먹이고 금침대법과 추궁과혈의 수법으로 소혼단의 독을 몸 밖으로 빼내면 독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고 독에 대항하느라 인체의 모든 기가 활성화하면서 소혼단에 숨어 있던 천년설삼의 효능이 내공을 급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당천은 자신의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남궁박의 전신 혈도를 두들겨 주면서 그의 내공을 급증시키고 있었다. 삼단전이 하나로 열려 있어서 아무리 내공을 써도 마르지 않는 당천이 아니면 하기 힘든 수법인 것이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군! 여기서 제대로 된 자는 나뿐인가?’
장기는 남궁박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재인 남궁박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진지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 없는 칠호나, 성질 더러운 진 포두도 장기의 눈에는 정상이 아니었다.
‘휴! 천재는 하늘과 사람의 시기를 받을 수밖에 없구나!’
진 포두는 자신에 이어서 남궁박이 당천에게 얻어맞자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될 구타에 가까운 암제의 가르침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내공이 배로 늘어난 것에 기쁨이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당천에게 맞는 남궁박을 보면서 묘한 동질감과 함께 암제에게 다시 맞아야 한다는 사실에 기쁨은 금방 날아가고 한숨만 나오는 것이다.
츠즈즈즉!
당천의 구타가 끝나자, 남궁박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십 년 넘게 호흡법으로 알고 수련한 호법신공을 운용했다. 이십 년 넘게 몸 전체에 퍼져 있던 내공의 기운과 당천에게 얻은 내공이 전신 혈도를 돌며 세맥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남궁박의 몸에서 뽀얀 연기 같은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고 몸은 바닥에 한 자 가까이 떠 있었다.
“헉! 부공삼매!”
장기는 남궁박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놀라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부공삼매는 내공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는 대자연과의 합일을 나타내는 현상이었다.
유림천야의 호법신공은 천재적인 유림의 대학자들이 이론으로 만든 신공이기에 내공의 급증을 위한 다른 신공과는 달리 대자연과의 일치를 통한 신체의 단련을 통해 금강불괴에 이르는 신공이었다. 아주 뛰어난 신공이기에 호흡법을 통해서 다른 신공보다 몇 배나 빠른 내공을 모을 수 있지만 그 내공을 전신 세맥에까지 퍼지게 만들어 금강지체로 만들어 버리기에 삼류 내공심법처럼 단전에 쌓이는 내공은 미미했다.
당천이 추궁과혈의 수법으로 남궁박을 구타하자 호법신공으로 잠들어 있던 내공과 세맥에 있던 내공이 활성화하면서 남궁박은 일개 유생에서 이십 년 가까운 내공을 지닌 내공의 고수로 탈바꿈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