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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21화)
제7장 유림천야(儒林天爺) 남궁박(南宮博)과 천생독강시(天生毒彊屍) 거산(巨山)(4)
무림에서 가끔 운공 중에 깨달음을 얻어 자신도 모르게 부공삼매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내공을 수십 년 쌓은 자들이나 가능한 경지인데 단 하루 만에 그런 경지에 이른 남궁박이나, 그를 그런 경지로 이끈 당천을 괴물 보듯 하는 장기의 표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장기가 어찌 남궁박이 수백 년 천재적 유학자들이 이론으로 만든 호법신공을 이십 년간 수련해 왔다는 사실을 알겠는가? 유학자들은 호법신공으로 내공이 쌓이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면 인의예지를 깨닫는 학문이 아닌 내공심법으로 수련하는 자가 나올까 저어해서, 호법신공을 완성하기 전에는 내공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수백 년 대대로 충성해 온 우리 수호가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말없이 그 장면을 지켜보던 칠호의 얼굴에 다시 감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질투와 시기, 분노와 처절함이 교차되고 있었다. 수백 년 당가의 문주를 수호한 자신의 가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수호가문을 천신만고 끝에 일으켜 세운 자신을 다시 수렁 속으로 떨어뜨려 놓고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는 암제와 당천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태어나서 오로지 충성만을 맹세하도록 세뇌되었고 감정과 생각을 죽이고 오직 수호무공만을 수련한 칠호였다. 그런 칠호도 암제와 당천이 처음 만난 남궁박과 당가가 아닌 다른 성을 가진 진 포두에게 수십 년 내공을 급증시켜 주자 사라진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지글지글!
저녁이 되자 암제가 직접 산속에 들어가 멧돼지를 잡아 와 내장을 꺼내고 소금을 뿌려 가며 통째로 구웠다. 당천에게 멧돼지를 잡아오라고 시켰지만 자신은 먹지 않는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기에 암제가 직접 잡아온 것이다. 하루 이틀은 구워야 되지만 암제가 먼저 열양신장으로 멧돼지를 익힌 후에 연기와 숯불에 구워야 제 맛이라며 벌써 모닥불 위에 돌려 가며 칼로 조금씩 베어 먹고 있었다. 진 포두가 많은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술까지 곁들인 저녁을 하고 있었다. 당천은 술을 한잔하고는 당과를 빠는 형식으로 저녁만찬에 참가하고 있었다.
“이놈아! 다시 한 번 돌고 와라!”
“이……! 알았다, 이놈아!”
암제는 고기와 술을 먹으면서 당과나 빨고 있는 당천에게 다시 한 번 대파산을 수색하고 오라고 소리쳤다. 당천은 자신만 부려먹으려는 암제에게 화가 나서 소리치려고 했지만 천하제일 포졸이 아니면 빠른 시간에 수색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생각나 애써 참고는 대파산으로 신법을 펼쳐 사라졌다.
“험! 보다시피 손자 놈의 예의범절이 저렇다네! 자네가 많이 신경 써 주게나!”
“세상만물의 이치를 깨달으면 저절로 예의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 이놈아라고 소리치며 떠나는 손자 때문에 암제는 헛기침을 하면서 어색하게 남궁박에게 손자를 부탁했다.
“만물의 이치보다는 먼저 상식을 가르치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식사를 마치고 여유작작 술을 마시던 진 포두가 끼어들었다.
“제가 하루 경험한 바에 의하면 주군의 놀라운 천재성을 생각할 때 상식은 가르치지 않아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성격이지요. 상식을 알아도 세상을 경험해야 얻어지는 감성은 쉽게 성장하지 않습니다.”
“흠! 너도 책만 읽어서 세상 경험이 없으니 감성이 어린아이 수준이겠네!”
옆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무막대기로 모닥불을 아무 이유 없이 쿡쿡 찌르며 멀뚱거리던 장기가 못마땅한 듯이 대꾸했다. 진 포두와 남궁박이 기연을 얻어 내공이 급증한 것에 대한 시기와 서로 잘난 체하는 모양이 못마땅한 것이다.
“세상을 경험하는 데는 직접 부딪치는 것이 제일이지만 책으로 간접 경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험! 문제는 천이 놈의 고집이 막무가내라는 것이군!”
암제는 남궁박의 말에 당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신을 닮아 고집이 세서 스스로가 틀렸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어린시절과 현 문주도 마찬가지인 당문의 핏줄 내력이었다. 어릴 때는 월등한 무력으로 굴복시켜서 종아리를 쳐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던 문주였다. 당천을 무력으로 굴복시켜서 교육시키기는 불가능하니 남궁박의 말대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세상 경험을 많이 하면 스스로 어른스럽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당천이 일으킬 평지풍파가 걱정인 것이다.
스스슥!
“왔냐!”
그때 대파산으로 수색을 떠났던 당천이 돌아왔다. 암제가 물었지만 대꾸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모두 모여 봐!”
“네, 주군!”
칠호, 진 포두, 장기는 심상치 않는 당천의 표정에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남궁박도 천천히 일어나 당천에게 다가갔다. 암제도 놀라서 눈이 커졌다. 공주 일행이나 암살자들이 나타났나 하는 표정이었다.
“너희도 오늘부터 천하제일 포졸신법을 배운다.”
“……?”
갑자기 신법을 배우라는 말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너희도 빨리 신법을 대성해서 돌아가며 수색에 나선다.”
“네! 알겠습니다.”
당천의 말에 왜 신법을 배우라는지 알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천하제일로 보이는 당천의 신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장기의 대답이 가장 컸다. 암제는 당천의 신법이 사천당문의 무공인 암향표보다는 무영신투의 무영신법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당가의 무공을 가르치려 한다면 기를 쓰고 막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무영신투의 무공이라면 할 말 없는 것이다.
스스슥!
“잘 봤냐?”
“……?”
당천이 천천히 신법을 펼쳐 보이고 물었다. 하지만 모두 멍하니 당천을 쳐다볼 뿐이었다. 당천은 그제야 모두가 자신처럼 똑똑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구결로 배운 무공은 암제가 치매에 걸렸을 때 가끔 정신이 돌아와 정신없이 들려준 잡다한 사천당가의 무공이 다였다. 그러니 당천이 어떻게 신법의 원리와 이론을 구결로 전해 줄 수 있겠는가? 또한 상단전, 중단전의 원리는 구결이나 말로써 전해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시 한 번 보여 줄 테니 잘 봐라!”
파바바박!
당천은 천천히 발을 움직이면서, 이형환위의 수법을 펼치기 전의 보법의 원리를 밟아 가며 땅에 발자국을 남겼다.
“……?”
하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두 시진 가까이 시범을 보였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암제가 당천의 신법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고, 장기가 자신의 유운신법에 부족한 무언가가 생각나서 조금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며칠 동안 같은 생활이 반복되었다. 당천은 하루에 몇 번씩 대파산을 수색했고 하루 종일 글공부와 구타, 신법 시범이 이어졌다.
“이런 돌머리들! 수백 번도 넘게 천천히 보여 주었는데도 모르겠다는 말이냐?”
“……!”
드디어 참다 못한 당천이 화를 내었다. 그리고는 궁을 들고는 바위 위에 누워 당과만 빨아 댔다.
“험! 천이의 신법은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봐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보일 것이다. 심즉정(心卽精), 심즉행(心卽行),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경역비존(境亦非存),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아역수군어청풍(我亦隨君馭淸風), 강산처처상추유(江山處處相追遊)……!”
암제가 이형환위의 수법을 깨닫게 된 것은 도반삼양귀원술을 완성하기 위해 불가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면서 금강부동신법의 구결을 보았기 때문이다. 금강부동신법의 구결은 암향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어 이형환위의 수법을 터득한 것이다. 암제는 당천이 일행을 가르치다가 성격이 더욱 삐뚤어질까 우려해서 금강부동신법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는 불가의 가르침들을 자신이 아는 대로 말해 주었다.
“아!”
“헉!”
암제의 구결을 들은 남궁박과 칠호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감탄을 터뜨렸다. 천하만물의 이치를 탐구했던 남궁박이기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칠호는 암향표보다 발전된 수호문의 신법을 공부한 자이기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당천이 보여 주었던 수백 번의 시범이 아니었다면 암제의 구결은 그저 지나가는 불경 소리 정도였을 것이다.
‘젠장!’
장기는 천하제일 신법을 배운다는 기쁨에 들떴다가 갑자기 찾아드는 자격지심을 느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자신만 암제의 신법을 보고 조그만 깨달음을 얻어 유운신법의 발전이 있었는데 이제는 진 포두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꼴찌가 된 것이다.
진 포두는 깨달음을 얻은 두 사람을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이곳에서 신법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그뿐일 것이다.
“이리 와라!”
“네!”
암제는 두 사람을 부러운 눈빛으로 멍하니 보고 있는 진 포두를 불렀다. 진 포두는 힘없이 대답하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암제에게 걸어갔다. 암제는 진 포두를 데리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잘 들어라! 이제부터 네 성은 당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겠느냐?”
“예!”
암제의 말에 진 포두는 크게 소리치듯이 대답했다. 암제의 제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제안이기 때문이다. 당가의 무공을 배우기 데는 당가의 양아들이 되어 당씨 성을 하사 받거나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길뿐이었다.
‘빌어먹을!’
암제가 진 포두를 데려가는 이유를 눈치 챈 장기가 다시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제는 정말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너를 데릴사위로 만들지 아닐지는 나중에 선택하겠다. 네가 당가의 무공을 배우면 이제 너는 당가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암제는 진 포두에게 암향표를 비롯한 당가의 무공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적양신공(赤陽神功)이란 내공심법을 가르쳤다. 성격이 급한 진 포두에게 맞은 신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암향표를 가르쳤다. 암향표를 익혀야 당천이 가르쳐 준 신법을 이해하게 될 것이었다.
스르륵!
‘헉! 저놈은 왜 저래?’
외톨이가 된 장기는 칠호를 보면서 놀란 소리를 내뱉고야 말았다. 명상에 잠겨 있던 칠호의 모습이 스르르 사라졌기 때문이다. 칠호의 수호무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법이었다. 신법을 통해 은신하는 무공인 것이다. 동화, 은신, 무형의 세 단계로 되어 있는 신법으로 무형의 단계까지 간 수호령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칠호는 동화에서 은신의 단계로 간신히 넘어간 상태였다. 은신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수호령이 되어 암향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동화란 지형, 사물, 인간이나 동물과 동화하는 단계로 자연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도교무공의 한 갈래였다. 살수들이 배우는 은신법이 바로 사물과의 동화를 통해 모습을 감추는 것이었다.
은신이란 동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시각과 감각에서 벗어난 위치를 찾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감추고자 하는 대상과 완전한 동화를 이루어 그의 시각과 감각을 계속 유령처럼 움직이며 벗어나야 한다. 칠호는 다른 사람의 시각과 감각에서 벗어났지만 중단전을 사용하는 느낌이나 직감이 발달한 초감각을 사용하고 상단전이 열려 예지능력까지 사용하는 당천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무형의 단계는 공간의 틈새에 숨어 버리는 전설적인 단계다. 금강부동신법, 이형환위, 축지법 등은 바로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는 것이다. 수호령의 무형의 단계는 그런 공간의 사이로 숨어드는 것이다. 즉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다른 신법과는 접근 자체부터 다른 것이다. 깨달음이 클수록 공간을 접는 폭이 커지고 그럴수록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무형의 단계의 은신법은 사람이 숨을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숨기만 하면 되기에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 발자국 정도만 이동하는 공간만 만들어 낼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칠호가 무형의 초기 단계에 들어서 공간으로 숨어들자 장기의 눈앞에서 칠호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후우!”
남궁박은 깨달음을 얻어 명상에 잠겼다가 큰 숨을 내뱉으면서 일어났다. 공자가 가장 깊이 공부했던 책이 주역이었다. 주역은 우주의 순환법칙을 예시하며 사람의 진퇴존망에 대한 가르침을 육십사 괘(卦)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었다. 남궁박은 공자의 주역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는 계사전(繫辭傳)을 다섯 살 때 이미 독파했고 이것이 기회가 되어 학림학사와 만나게 되었다.
“하늘의 도는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어 영원히 순환한다. 즉, 음의 세계가 극한점에 다다르면 양이 생기고, 양의 세계가 극한점에 다다르면 다시 음의 세계로 변해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이 육십사 괘의 열네 번째 괘는 대유(大有)이고 열다섯 번째 괘는 겸(謙)이다. 대유괘는 큰 가짐을, 겸괘는 겸손을 뜻한다. 크게 가진 사람은 가득 채우면 오히려 잃기 쉽다. 군자라면 반드시 숭고한 덕으로 아래에 처해 겸손으로써 그것을 오래 누리려 한다.”
남궁박은 당천의 신법과 암제가 말한 구결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학문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남궁박은 자신이 신법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지 않고 학문적 깨달음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교만하지 않도록 속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스슥!
남궁박은 자신도 모르게 축지법을 사용해 단숨에 오 장 가까이 떨어져 있는 당천에게 다가갔다. 암제는 비전을 진 포두에게 전수하고 있기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남궁박이었다.
“깊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
당과를 빨던 당천은 갑자기 나타나 인사를 하는 남궁박을 보면서 어리둥절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