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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23화)
제7장 유림천야(儒林天爺) 남궁박(南宮博)과 천생독강시(天生毒彊屍) 거산(巨山)(6)
“공주마마!”
“괜찮다.”
폭포 연못가에는 하얀 얼굴이 파리해진, 고급스러운 푸른 경장 차림의 공주와 시비로 보이는, 검을 등에 멘 하얀 경장을 입은 여인이 있었다.
“커헉! 귀마,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곤륜일선은 초지에 누워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는 이선과 삼선을 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간신히 일어나 앉았지만 입에서는 계속 검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검은 피에는 내장 부스러기가 섞여 있었다.
“흐흐흐! 모조리 죽여 버리면 누가 알겠느냐?”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입니다. 빨리 처리하고 떠나시죠.”
귀마 옆에 서 있던 검은 복면을 한 특급살수가 불안한 음성으로 그를 재촉했다. 그는 이번 일의 책임자로 파견된 살막의 특급 고수였다. 살막은 이번 일에 일급 살수 열 명과 이류급에서도 일급에 가까운 실력을 지닌 정예들만 칠십 명을 뽑아 파견했다. 살막의 주임무는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모든 흔적을 지워도 무영지독의 흔적만은 완벽하게 지울 수 없었다. 무영지독은 사천당가의 독문지독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흐흐흐! 알겠다. 아가야, 네가 다시 한 번 수고해 주어야겠다.”
스륵!
귀마도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고 그가 데려온 천생독강시도 검은 옷에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귀마의 무공은 아직 화경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가 호위로 데리고 다니는 천강시, 독강시, 생강시, 지강시, 인강시가 펼치는 강시오행대진은 귀마 스스로 천하무적임을 자부했다. 강시오행대진에 갇히면 삼존이라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장담이 그를 구마의 하나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오늘은 천생독강시 하나만 데리고 왔다. 다른 강시는 빠른 경신법을 펼치지 못해 이동 속도가 늦고 강시라는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천생독강시는 독강시가 뿜어 대는 시독보다 강한 무영지독을 몸에서 뿜어내고 초절정고수의 움직임과 경공술을 그대로 사용하는 강시지왕이었다.
귀마는 천생독강시를 자신의 아들에게도 주지 않고 자신이 직접 호위로 삼아 데리고 다녔다. 때문에 이번 일에도 수하들이 아닌 자신이 직접 참가한 것이다. 천생독강시의 위력도 시험하고 곤륜삼선이란 놈들을 잡아다가 천강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천생독강시와 천강시 넷으로 강시오행대진을 만들면 삼존이 모두 덤벼도 겁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귀마는 천생독강시의 무영지독에 당해 힘을 쓰지 못하는 곤륜삼선의 시체가 독에 녹지 않도록 고루마장에서 나오는 고루마독을 주입해서 천강시로 만들 작업을 끝낸 상태였다. 그 틈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곤륜삼선이 귀마, 천생독강시, 특급살수의 합공을 막아 내며 이토록 멀리 도망칠 수 없었을 것이다.
스르릉!
“공주마마! 피하십시오.”
천생독강시는 피를 토하는 곤륜일선을 놔 둔 채 공주에게 유령처럼 다가섰다. 그러자 시비가 등의 검을 빼어 공주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공주는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이었다. 곤륜일선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무영지독으로 오장육부가 녹아 버렸다. 고루마독이 뇌와 신체가 녹지 않도록 무영지독을 견제하지 않았다면 한 줌 독수가 되었을 것이다.
콰쾅!
“헉! 누구냐?”
그때 허공에서 번개처럼 떨어져 내린 당천이 삼양신장을 응용한 장법으로 천생독강시를 날려 버렸다.
쿵!
무적이라 자부하던 천생독강시가 오 장을 날아가 폭포 옆 바위에 부딪쳤다. 귀마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스슥!
살막의 특급 살수가 말없이 검을 빼어 들고 신검합일한 채 번개처럼 당천의 미간을 노렸다. 당천이 입고 있는 보갑이 심상치 않고 그가 다가오는 기척도 보지 못했기에 기습적인 일격필살을 노린 것이다.
스슥!
“헉! 이형환위!”
슉!
“컥!”
당천은 신검합일해서 기습적으로 공격한 특급 살수의 검을 이형환위로 가볍게 피하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암기 투골정을 날렸다. 특급살수의 검은 일점홍이란 수법으로 십성의 경지에 달한 것이었다. 당천은 이미 당 포두의 육성에 달하는 도살도법에 숨어 있는 일점홍의 수법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특급 살수의 신검합일한 검법도 시들해서 놀아 줄 마음이 생기지 않아 빠르게 제압해 버린 것이다. 또한 특급 살수의 지독한 살기도 기분 나빴기에 암기로 처리해 버렸다. 당천의 관심은 쓰러져도 벌떡 일어나는 놈과 그 뒤에 있는 복면인에게 있었다. 복면인들의 기도가 예전 암제의 기도와 비슷했기에 그들에게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다.
“사천당가!”
귀마의 입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일의 목적은 사천당가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사천당가가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암제도 아닌 새파란 놈이, 무적으로 알던 천생독강시를 오 장이나 날려 버렸다.
후우웅!
“헉!”
천생독강시의 손에서 권강이 형성되었다. 천마무적권(天魔無敵拳)이란 천마의 독문무공이었다. 귀마는 천생독강시가 펼치는 천마의 무공을 알아보고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설마 마교에서 보낸 초절정고수가 천마의 무공을 발출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천생독강시를 만들 때 들어간 수많은 영약과 무영지독 등이 결합되어서 무영지독을 내포한 권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권강은 검강을 만들기보다 어렵고, 화경의 경지에 도달해야 가능한 수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스슥!
카캉!
당천은 다시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권강을 피하면서 창대를 휘둘렀다. 천생독강시 거산은 천마각(天魔脚)이란 수법으로 창대를 걷어찼다.
후우웅!
귀마는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면서 걱정과 불안감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천생독강시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강시의 재료가 된 놈이 마교 교주와 관계된 놈이라는 것과 사천당가에서 어떻게 알고 저런 괴물 같은 어린놈을 보냈는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이 귀마로 하여금 당천을 빠르게 처리해 버리자고 결심하게 했다.
팔랑팔랑!
당천은 얼굴에 짜증스러운 표정을 띠면서 추혼비접을 전개했다. 귀마의 최강 무공은 고루마장이었지만 당천에게 독이란 영약이나 마찬가지였다. 도가의 도력, 불가의 불력과 마찬가지로 당천에게는 영양이나 다름없는 기운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붙었던 녀석이 내뿜는 독기와 무공에서 차이가 나는 놈이 다시 놀자고 덤비니 짜증이 났던 것이다. 현재 당천은 천마의 무공과 강력한 독기를 뿜어내는 거산과 노는 것이 신나는 중이었다. 암제 이후 처음으로 놀 만한 상대를 만난 것이다.
콰광!
귀마는 나비가 팔랑거리듯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암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사천당가의 암기는 모두 무시무시한 것들뿐이었다. 더구나 천생독강시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놈이 발출한 암기니 범상치 않을 위력이라 직감한 것이다. 수십 년 강호에서 굴러먹은 노련한 경험에서 온 그의 직감이 귀마를 살렸다.
“컥!”
나비와 고루마장이 부딪치자 금강석처럼 단단한 손바닥이 찢어지면서 무영지독보다 독한 독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리고 부딪친 순간 뒤로 빠르게 퉁겨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 만약 무모하게 앞으로 나가면서 암기를 날려 버리고 공격을 계속하려 했다면 그 자리에서 절명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삭!
“크흑!”
귀마는 단검을 뽑아 오른 손목을 잘라 버렸다. 고루마독은 무영지독에 버금가는 지독한 독이지만, 당천이 만들어 낸 활독은 추혼비접이 십이성에 달해야 만들어지는 전설적인 독이었다. 순간적으로 없어지지만 상대의 눈과 귀, 신경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독이었다. 그런 활독이 고루마독과 만나자 더욱 지독한 독으로 변한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 독을 가진 사천당가의 인물들이 십이성에 달한 추혼비접을 보면 기겁을 하는 것이다. 독공을 지닌 인물들에게는 그야말로 저주의 대법이었다.
귀마는 신음을 흘리며 점혈을 하고는 금창약을 바르고 천을 찢어서 손목을 감쌌다. 나중에 시체의 손을 잘라서 붙이고 다른 무공을 연마하면 되기에 손목을 잃은 것은 귀마에게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생독강시가 놈을 처치하지 못하면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것이다. 그는 멀리서 싸움을 구경하면서 여차하면 도망칠 궁리를 했다. 계획이 틀어진 이상 공주를 살해하는 것은 보류였다. 설마 자신이 귀마인 줄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천생독강시가 강시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놈이 애송이라 자신의 고루마장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고루마장의 흔적만 지우면 되었다.
푸스스슥!
귀마는 천강시를 만들 재료로 사용하려던 곤륜삼선의 시체를 녹여 버렸다. 공주 일행은 당천과 거산의 놀라운 싸움을 보느라 귀마가 한 짓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한 곤륜일선도 녹아서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
한편, 공주를 호위하는 시비는 부상을 입고 멀리 물러간 귀마에게서 시선을 돌려 거산을 불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놈이 자신의 사부들인 곤륜삼선을 가공할 독과 무공으로 죽인 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자가 놈과 대등한 무공으로 치고받고 싸우자 약간 안심이 되어 귀마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리던 중 놀라 소리쳤다. 귀마가 악독하게도 죽은 자신의 사부들의 시신까지 녹여 버렸기 때문이다.
“앗! 사부님!”
휘이익!
그때 귀마의 눈에 멀리서 번개처럼 날아오는 신형이 들어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저토록 빠른 암향표를 시전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다.
“헉! 암제다!”
귀마는 당천이 너무 빠르게 나타나 자신이 방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멀리서 구경하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에 암제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휘이익!
귀마는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쳤다. 놈의 경공이 수십 년 전에 비해 놀랍도록 빠르기에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랐다. 더구나 지금은 강시오행대진을 펼칠 강시도 없지 않은가!
삐이익!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위치에 도달하자 귀마는 천생독강시를 불러들였다. 금강지체인 놈이다. 공격을 당하면 그 힘으로 더욱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녀석이니 잡히거나 부서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놈들이 빠른 경공으로 끝까지 쫓아오면 오행강시대진으로 잡아서 다시 천생독강시를 만들면 된다. 놈들 정도면 귀마문이 거덜 나고 파산한다고 해도 천생독강시를 만들어 천하를 독패할 수 있을 것이다.
“엇! 서라!”
당천은 한참 신나게 싸우던 상대가 도망을 치자 놀라 소리쳤다.
“이놈 좀 잡아!”
암제가 나타나자 당천이 소리쳤다.
“헉! 천마행공!”
암제는 당천의 외침을 듣고는 복면인을 봤다가 그가 천마행공이란 마교 교주의 무공을 펼치자 기겁을 하고 놀랐다. 교주의 무공이라기에는 수준이 떨어졌지만 자신의 암향표와 비견될 정도였다. 당천이 놈의 앞을 막으면 복면인은 옆으로 돌아서 무조건 도망치고 있었다. 공격을 허용하면서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다.
“헉! 무영지독!”
암제는 복면인에게 다가가다가 화들짝 놀랐다. 당문 최고의 독인 무영지독을 못 알아볼 리 없기 때문이다. 그의 몸 전체에서 무영지독이 흩날리고 있었다. 놈이 스쳐 간 자리의 나무와 풀이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갔다. 당천은 몰라도 무영지독에 중독되면 화경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암제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는, 해독제가 없는 독이 바로 무영지독이기 때문이었다. 무영지독을 몸에 뿌리고도 멀쩡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것은 당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당천은 만류귀원신공과 도반삼양귀원술로 무영지독을 흡수해서 내력을 강화할 뿐이었다. 도반삼양귀원술이 성공하면 세 개의 단전이 만들어져 죽을 때까지 그 효능이 지속됐다.
“설마! 독중지체?”
암제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입을 쩍 벌렸다. 독중지체가 아니라면 금강불괴의 몸도 침투해서 내장과 뇌를 녹이는 독이 무영지독이었다.
슈슈슉!
암제는 멀리 떨어진 채 암기를 날려 복면인의 발목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놈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였다. 암제와 당천은 복면인을 막아서며 어느새 산봉우리 하나를 넘어왔다. 그저 폭포가에서 이 놀라운 광경을 구경하던 공주와 시비는 자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라진 암제와 당천이 넘어간 산봉우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철커덕!
암제가 복면인의 속도를 늦추자 당천이 재빨리 천하제일궁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무영신투처럼 잡아서 놀려는 것이다.
슉!
퍽!
당천이 쏜 거대한 화살이 번개처럼 날아가 거산의 왼쪽 어깨를 관통해서 바위절벽에 박혔다.
버둥버둥!
투두둑!
금강지체라는 천강시의 몸을 지닌 거산이지만 천하제일궁의 화살에는 견딜 수 없었다. 거대한 화살에 꼬치가 되어 바위에 매달리자 거산은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쉽지 않아 두 손을 바위절벽에 대고 밀었다. 그의 몸이 화살을 박은 채로 절벽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어! 천하제일궁이라며 어떻게 움직여?”
당천은 그 와중에도 천하제일궁을 맞고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암제에게 항의했다.
“이놈아! 저놈의 무영지독이 마비독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몸 전체에 무영지독을 흘리는 놈이라니! 무영지독을 네놈이 모두 흡수하면 마비독이 통할 것이다.”
“어떻게 흡수해?”
“네놈 몸에는 만류귀원신공이 항상 운행되고 있으니 놈의 몸에 손바닥을 대고 흡수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빨려 들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