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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콰앙!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저, 저기 고정하세요.”
방 주인의 성격을 대변하는지, 15평 남짓 되는 공간은 굉장히 심플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잘 정리된 책상과 주변 가구들을 비롯하여, 책꽂이의 책들마저 각이 잡혀서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야말로 결벽증에 가까운 정리 상태…… 방금 주먹이 책상을 친 탓에 삐뚤어진 명패만 아니면 완벽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니?”
콰앙!
“히, 히익!”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남자가 연신 책상을 두드리며 화를 내자, 긴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이 겁에 질린 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말썽을 피워도 오냐오냐, 했는데. 이번에는 용서할 수 없다.”
“사, 삼촌…… 한 번만 봐주세요. 네에?”
남성이 단호하게 나가자 긴장을 했는지, 여성은 평소 위기를 여러 번 넘기게 해 준 ‘애교’ 스킬을 사용했다.
사슴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두 손을 가슴 앞에 그러모아 최대한 귀엽고, 깜찍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에서는 사장님이라고 하랬잖아!”
“꺄악! 네, 네!”
점점 커지는 고성에 애교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여성은 고개를 푹 수그려서 반성을 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피력했다.
“후, 뭘 잘못했는지 알고는 있니?”
“……네.”
“그럼, 한번 말해 봐.”
기어 들어가는 여성의 목소리에 너무 심했나 하고 생각한 남성이지만, 이번 사건의 중대함을 떠올리자 다시 표정을 굳히고는 독촉했다.
“제가 꼭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마침 프로젝트 기획안이 책상에 있는 것이 보이기에…… 아무튼 설라무네!”
콰앙!
“똑바로 말해!”
“히, 히익! 히든 클래스가 되고 싶어서 그랬어요.”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했던 잘못을 실토하는 여성의 모습에, 삼촌이자 사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남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고, 이것아. 지금 게임 회사의 직원이라는 녀석이 사사로이 고급 정보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고 들어?”
“자, 잘못했어요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혼날까, 필사적으로 생각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여성의 최고이자 최후의 무기인 눈물…….
“훌쩍, 훌쩍!”
“가, 갑자기 울긴 왜 울어. 뭘 잘했다고?”
“히잉……!”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서럽게 울고 있는 조카의 모습에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남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책임지고 지금까지 수행했던 전직 퀘스트들 포기해. 그리고 활동 지역도 옮기고.”
“사, 삼촌!”
“왜?”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에 당황한 여성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속사포처럼 말문을 열었다.
“퀘스트를 취소하면 명성 수치가 얼마나 많이 깎이는데요. 게다가 지금까지 활동하던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니, 지금까지 쌓아 온 인맥하고…… 아무튼 새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삼촌도 알잖아요.”
“그래, 그래. 게임 회사의 직원이 정보를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면 해고가 된다는 사실도 잘 알지.”
“우씨……!”
잔뜩 바람이 들어간 볼을 탱탱하게 부풀리는 여성이었지만, 약점을 잡힌 이상 방법이 없었다.
‘히든 클래스가 되고 싶었는데.’
아쉬움에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지만, 사장으로서 회사의 규칙을 누구보다 잘 지킬 책임이 있었다.
“네가 있던 곳이 카렌 왕국이었지? 확인은 안 할 테니, 알아서 오늘까지 조치해.”
“……네에.”
마지막 대답을 끝으로 사장실을 나서는 조카의 뒷모습에 남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케팅 부서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카 ‘이서희’는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의 골수 유저다.
업무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게임에 투자하는 그녀는 최상위 랭커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고수로 손꼽혔다.
‘뜬금없이 유저도 별로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고 하기에 수상하긴 했지만, 설마 기획안을 확인하고 그런 것이었다니.’
직원들에게는 굉장히 완고하고 엄한 사장으로 통하는 그였지만, 하나뿐인 귀여운 조카에게는 마냥 약해지는 팔불출이었다.
이번 일도 일반 직원이었다면 볼 것도 없이 원리 원칙에 의하여 해고를 당했을 것이다.
‘히든 클래스…… 게임의 유저라면 누구든 탐을 낼 수밖에 없지.’
타인과 다른 개성을 뽐낼 수 있으며, 뛰어난 능력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히든 클래스는 많은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뭐, 원래대로 돌아간 다음부터는 누가 히든 클래스를 얻든 최고의 아이템을 얻든 신경 쓸 것이 아니니까.”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플레이는 게임의 밸런스에 약간의 문제가 되더라도 손을 댈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현실에서도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나저나 전직 퀘스트가 있는 그곳이 정확히 어디…… 맞다. 거기!’
남성의 시선이 책상에 프린팅되어 있는 리얼의 세계 전도에 못 박혔다.

* * *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의 세계로 접속하였습니다.]
[스타팅 포인트로 카렌 왕국의 초보자 마을 ‘아스’가 설정되었습니다.]
[초보자 마을을 벗어나려면 레벨 10을 달성해야 합니다.]
[화창한 날씨입니다. SP의 소비가 줄어듭니다.]
“복잡하네.”
연속으로 들려오는 효과음을 뒤로한 채, 시야를 회복한 정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하하하, 기다려!”
“나 잡아 봐라.”
꼬마 악동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 중앙에 있는 우물 주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머리칼을 가진 사람들…… 아니, NPC들.
그 뒤로 나무로 지어진 목조 형식의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고, 저 멀리 울타리와 그 주위를 빽빽하게 감싸고 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탁, 탁!
정현은 가볍게 호흡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스텝을 밟고, 주먹을 뻗어 보는 등, 가상현실의 신체를 컨트롤했다.
실제 현실에서 움직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의 링크 상태가 느껴지자, 마냥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가상현실게임.”
이러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 당연하다.
안 그래도 게임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각과 청각적인 요소를 넘어서 이제는 촉각을 비롯한 오감(五感) 전부를 충족시켜 주니 말이다.
“오오, 여행객인가? 우리 ‘아스’ 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띠링!
[‘아스’ 마을의 촌장 켄델이 친근감을 표시합니다.]
우물가에서 신체 활동을 점검하고 있던 정현에게 말을 걸어오는 회색 수염을 지긋하게 기른 중년인.
효과음과 함께 머리 위로 ‘촌장 켄델’이라는 글자가 추가되었다.
“네, 그렇습니다. 혹시 아스 마을의 촌장님 되십니까?”
“허허허, 어떻게 알았는가? 그렇다네. 내가 아스 마을의 촌장 켄델이라고 하지.”
정현은 리얼을 시작하기 전 정보 수집을 통해 NPC가 게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의를 갖춰서 NPC를 대하였다.
“요즘에 보기 드문 젊은이로군. 혹시 궁금한 것이 있는가? 늙은이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경험이 있는 법이지. 자네 같이 예의 바른 젊은이에게는 그것을 공유할 용의가 있어.”
띠링!
[‘아스’ 마을의 촌장 켄델이 기본 튜토리얼(Tutorial)의 진행을 제안합니다.]
초보자들을 위하여, 올바른 신체의 사용법이나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들, 아니면 유용한 팁들을 가르치는 것이 기본 튜토리얼이었다.
게다가 보상으로 초반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아이템을 주기 때문에 정현은 망설이지 않고 승낙했다.
“그래, 그렇지…… 자, 뛰어 보게.”
타다닥!
“이번에는 킥! 펀치! 킥!”
휙, 휘리릭!
우물가에서 온갖 동작을 취하며, 얼핏 보면 우습게도 보일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정현이었지만, 초보자 마을은 개개인의 공간으로서 오직 유저 혼자서만 존재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SP가 떨어지면 앉아서 휴식을 취해야 하지. 아니면 음식을 섭취해도 되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먹다간 오히려 탈이 날 수도 있지.”
“HP가 없다면 성직자들의 회복 마법을 기대하게.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신성왕국의 성녀님께서 천사와 같은 미(美)를 지니셨다는데, 사실일까?”
“무기와 방어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네. 마을 유일의 용병인 루크는 욕심을 부리다가 하나뿐인 검을 깨트렸다지?”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만큼 중요한 것은 없지. 100브론즈(B)는 1실버(S), 100실버는 1골드(G)…… 모두 같은 개념이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촌장의 수다 소리에 질려 버린 정현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인내하여 마침내 끝을 볼 수 있었다.
“자네는 정말 훌륭한 여행자야. 몸놀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지. 게다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성실하게 들어 주었어.”
띠링!
[‘아스’ 마을 촌장 켄델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기대 이상의 결과로 튜토리얼을 수행하셨습니다. 기준 이상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칭호 ‘튜토리얼’ 수료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 확인!”

[노비스의 단검(무기)]
등급 : 노멀(Normal)
계열 : 무기
재질 : 청동
제한 : 근력[1], 체력[1]
공격력 : 2
옵션 : 無
내구력 : 15(15)
설명 : 리얼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여행객들에게 주어지는 무기 아이템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탓에 공격력과 내구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비스의 천 옷(상의)]
등급 : 노멀(Normal)
계열 : 상의
재질 : 천
제한 : 체력[1]
방어력 : 1
옵션 : 無
내구력 : 10(10)
설명 : 리얼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여행객들에게 주어지는 의복류 상의 아이템이다. 천으로 만들어진 탓에 무게는 가볍지만, 방어력도 기대할 수 없다.

[노비스의 천 옷(하의)]
등급 : 노멀(Normal)
계열 : 하의
재질 : 천
제한 : 체력[1]
방어력 : 1
옵션 : 無
내구력 : 10(10)
설명 : 리얼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여행객들에게 주어지는 의복류 하의 아이템이다. 천으로 만들어진 탓에 무게는 가볍지만, 방어력도 기대할 수 없다.

[노비스 슈즈(신발)]
등급 : 노멀(Normal)
계열 : 신발
재질 : 천
제한 : 민첩[1]
방어력 : 1
옵션 : 無
내구력 : 10(10)
설명 : 리얼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여행객들에게 주어지는 의복류 신발 아이템이다. 천으로 만들어진 탓에 무게는 가볍지만, 방어력도 기대할 수 없다.

[딱딱한 호밀빵] x 10개
등급 : 노멀(Normal)
계열 : 회복, 소비성
옵션 : SP 회복(+10%)
설명 : 제작 과정에서 실수를 하여 딱딱하게 굳어 버린 호밀빵이다. 신선한 우유와 함께라면 부드럽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없는 것보단 낫겠지.”
정현은 튜토리얼을 진행하면서 보상으로 받은 단검을 꺼내서 무게를 재 보며 향상된 능력치를 확인하였다.

[Player Status]
닉네임 ― [테라]
레벨 ― [Lv. 1]
클래스 ― [노비스(Novice)]
칭호 ― [튜토리얼 수료자]
명성 ― [無]
근력 ― [3] / 민첩 ― [2] / 체력 ― [2]
지능 ― [1] / 집중 ― [1] / 행운 ― [1]
HP ― [20] / MP ― [10] / SP ― [90%]
공격력 ― [3]+2 / 방어력 ― [2]+3
공격 속도 ― [0.02%]
회피율 ― [0.01%]
크리티컬 ― [0.01%]
속성 ― [無]

Point ― [0]

워낙 기본 능력치가 낮다 보니, 공짜로 지급되는 무기를 착용했음에도 거의 두 배로 데미지가 상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