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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정현은 마지막으로 획득한 칭호를 확인하였다.
[튜토리얼 수료자]
등급 : 이벤트(Event)
옵션 : GT(Game Time)로 일주일간 경험치 획득 5% 상승
설명 : 당신은 리얼의 세계를 여행할 준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초보자 마을을 벗어나 무한한 신비의 세계를 탐험할 그대를 돕기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게임 시간으로 일주일이라면…… 현실에서는 사흘하고 열두 시간인가?’
가상현실게임 리얼은 현실과 게임의 시간 비율을 1:2로 지원한다.
게임에서의 두 시간이 현실의 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추가 경험치 5%라면 안 그래도 성장이 빠른 초반에 가속도를 붙여 줄 것이다.
물론 일주일 뒤에는 사라지는 칭호지만, 정현은 그렇게 모든 점검을 끝마치고 촌장인 켄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저에게 맡기실 일은 없으십니까?”
단순히 사냥만 해서 성장하기에는 제한되는 사항이 많다.
퀘스트를 수행함으로써 명성치를 비롯한 다양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현은 켄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음, 내 고민거리는 자네와 같은 초보 여행자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네. 아마, 자네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잡화점의 올슨이 알고 있을 게야.”
‘촌장이 가지고 있는 퀘스트를 수행하려면 내 레벨이 부족하다는 건가?’
정현은 수긍을 하고, 켄델에게 잡화점으로 가는 길을 물어서 발길을 돌렸다.
휘이잉!
“시원하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목덜미를 간질거렸다.
한 걸음씩 옮겨 가는 순간 발바닥을 통해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현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탄탄한 땅과 시원한 바람…… 따사로운 햇빛까지, 정말 대단한걸.’
인간의 발전이란 도대체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정현은 그렇게 감탄하며, 이내 새하얀 지붕이 눈에 띄는 자그마한 건물 앞에 멈췄다.
“여긴가?”
초보자에 대한 배려인지, 초보자 전용 마을의 규모는 무척이나 작았고, 정현은 5분도 걸리지 않아서 켄델이 가르쳐 준 대로 ‘올슨 잡화점’의 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딸랑!
“오랜만의 손님이군.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테라’라고 합니다.”
잡화점의 주인인 올슨은 갈색 머리칼을 한 40대의 중년인이었다.
적당히 나온 뱃살을 가죽옷으로 감춘 채, 정현을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은 사냥감을 노리는 헌터를 생각나게 했다.
“기본적인 여행 용품부터 생필품까지 없는 것이 없으니, 얼마든지 골라 보시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올슨의 모습은 마치 실제 사람을 생각나게 했다.
정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잡화점 내부를 한 번 살펴본 뒤, 이곳에 온 목적을 꺼냈다.
“촌장이신 켄델 님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저에게 시키실 만한 일거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으음, 손님이 아니었군. 그래……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여행자인가?”
“네, 그렇습니다.”
NPC라도 감정적으로 대하면 안 된다. 가장 기초적인 NPC들도 최소 수백 가지의 패턴이 입력되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정현은 잘 알고 있었다.
“촌장님의 소개를 받고 왔다니, 한번 맡겨 보도록 하지. 다름이 아니라, 요즘 내가 동물 가죽이 좀 필요하다네. 어떤가? 한번 구해 보겠는가?”
띠링!
[올슨의 제안]
등급 : E
설명 : 아스 마을의 잡화점 주인 올슨이 급하게 동물 가죽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직한 상인인 올슨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만족스러운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실패한다면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일을 맡기길 꺼려할 것이다.
조건 : 토끼 가죽[5], 여우 가죽[1]
보상 : 돈(+80B) / 명성치(+3)
“해 보겠습니다.”
띠링!
[E급 퀘스트 ‘올슨의 제안’을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 진행 상황은 실시간으로 갱신되며, 유저에게 알려집니다.]
[퀘스트는 최대 다섯 개까지 동시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퀘스트를 수행해서 그런지, 반투명한 창들이 여러 개 생성되어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라졌다.
정현은 올슨에게 마을의 입구로 향하는 길을 물어본 뒤, 잡화점을 나섰다.
‘드디어 실전인가?’
5분 정도 걸려서 마을의 입구에 도착한 정현은 간단히 몸을 풀어 준 다음, 주위의 경비병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의 입구를 빠져나갔다.
“음…….”
마을 앞은 황무지였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땅에서 시선을 떼어 좀 더 먼 곳을 바라보자 나무들이 잔뜩 솟아난 숲이 보였고, 아래쪽에는 수풀이 무성했다.
‘일단 저기까지 이동하자.’
스윽!
정현은 노비스의 단검을 강하게 쥐고는 100m 전방쯤에 보이는 초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깡총, 깡총!
얼마나 걸었을까?
숲의 입구에 거의 도착할 때쯤 정현은 평화롭게 풀을 뜯으며 돌아다니는 토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 30cm 정도로 보이는 몸에는 하얀 털이 곱게 자라 있었고, 튀어나온 앞 이빨과 밤새 잠을 못 잔 것처럼 시뻘건 눈동자는 현실의 토끼보다 약간 큰 것을 제외하면 판박이였다.
‘토끼는 비선공형 몬스터니까…….’
비선공이라는 것은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설정의 몬스터로서, 그만큼 리얼의 세계에서 초보자들도 마음 놓고 사냥할 수 있는 것이 토끼란 동물이었다. 하지만 정현에게 그러한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사냥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고, 얼마나 쉽고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을지가 최대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가상현실게임 리얼에서 적용되는 공격력은 능력치 창의 공격력이 전부가 아니다.’
현재 정현이 가지고 있는 물리 공격력[5]라는 수치는 100% 발휘되는 최대의 공격력을 의미한다.
공격을 했을 때, 실제로 입히는 데미지는 상대방의 방어력을 제외해야 하고, 또한 빗맞았다거나 스쳤을 경우에는 그나마도 감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토끼가 회피를 하거나 방어 동작을 취했을 경우, 정현이 가지고 있는 공격력[5]는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고, 2나 3의 데미지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반대되는 개념도 있다.
상대방의 급소를 공격하거나 약점으로 여겨지는 장소에 공격을 성공시킨다면…… 즉,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면 정현이 가한 데미지는 [5] 이상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완벽한 공격만이 최고의 공격력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지.”
마음에 드는 시스템이었다.
만약, 모든 것이 능력치와 수치로만 정해진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정현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가장 가까이 있는 토끼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목이다. 목을 노린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지금 정현이 행하려고 하는 행동은 결코 현실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물론 사람은 아니지만, 동물학대죄도 최근에는 그 처벌 강도가 만만치 않았다.
살아 있는 생명을 공격한다는 ‘금기’를 범하는 데에서 오는 긴장감이 정현을 자극했다.
“하앗!”
푸욱!
“……!”
띠링!
[완벽하게 성공한 공격! 크리티컬 데미지가 적용됩니다.]
[토끼에게 [8]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비선공형 동물인 토끼이기에 정현의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무방비 상태였고, 공격이 시작된 후 회피를 하려고 했지만, 정현의 공격은 너무도 정확하게 토끼의 목덜미를 찔러 버렸다.
끼욱!
퍼억!
[토끼의 박치기에 [3]의 데미지를 받으셨습니다.]
그 순간 가해지는 토끼의 반격!
어설픈 박치기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현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어, 어?”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무력하게 토끼의 박치기를 당한 정현은 전혀 신경 쓰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건…….’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미친 듯이 펌프질을 시작한 심장은 전신으로 강한 혈류를 내뿜었고, 뇌는 엔도르핀을 생산했다.
꾸욱!
정현은 노비스의 단검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검신을 타고 전해진 그 섬뜩한 느낌이 소름 끼칠 정도로 기꺼웠다.
‘부족해…… 하지만 이 느낌은!’
끼욱!
퍽!
[토끼의 박치기에 [4]의 데미지를 받으셨습니다.]
정현의 생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이어지는 토끼의 공격은 참으로 그로테스크했다.
목덜미에서 초록색 피를 흩뿌리면서도 폴짝폴짝 뛰어서 박치기를 하는 모습이라니?
“후우…….”
끼욱!
그 순간 다시 한 번 토끼의 박치기 공격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다르다. 정현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갈망하는 모습으로…….
퍼억!
끼엑!
[토끼에게 [3]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돌격하는 토끼의 머리를 발차기로 저지했다.
무기 데미지를 제외한 수치가 적용되었고, 그 순간 토끼의 움직임이 정지되자 정현의 입술이 슬며시 올라가며 오른손의 노비스 단검이 쾌속한 궤적을 그렸다.
푸욱!
[완벽하게 성공한 공격! 크리티컬 데미지가 적용됩니다.]
[토끼에게 [9]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털썩!
[경험치[5]를 습득하셨습니다.]
“그래, 이거야. 이 느낌이었어.”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긴장감과 끝을 모르고 치닫는 스릴……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정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5년 동안 자신을 억누르고, 구속했던 모든 것에서 풀려 버린 ‘해방감’을 말이다.
‘부족해, 아직도 부족해…….’
깡총, 깡총!
갈증을 호소하는 정현의 시야에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토끼들이 들어왔다.
스윽!
조용히 노비스 단검을 움켜쥔 정현의 행동은 토끼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3. 성장(1)
“정말로 마지막이군.”
“…….”
“그럼, 시작하자.”
스윽!
어두운 공간이었다.
천장에서 비치는 은은한 조명 하나만이 암흑 속에서도 어슴푸레 상대방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구명줄이었다.
꾸벅!
“와라!”
정중하게 목례를 하는 정현을 손짓으로 가볍게 도발한 남성은 상당히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었다.
잘 발달된 하체와 짧게 쥐고 있는 주먹은 얼핏 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타닥!
탐색이 끝나자 몸을 날렸다.
정현은 눈앞의 남자를 향해 거칠게 주먹을 질러 갔다.
아무런 잔재주를 부리지 않은 정직한 공격이었지만, 치맛자락이 찢어지는 듯한 소음을 흘리며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의 얼굴 앞까지 도달한 그 공격을 얕볼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