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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터엉!
“여전히 거칠군.”
“마찬가지입니다!”
상단 막기로 주먹을 쳐 낸 남자는 그대로 무릎을 뻗었다.
노출된 복부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대로 적중당하면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는 정현은 오른쪽으로 빙글 돌며, 공격을 회피했다.
“제법…….”
“하앗!”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회피하는 동시에 뻗어 나가는 회전 팔꿈치 치기가 상대방의 안면을 노렸다.
“큭!”
살짝 스친 정도로 공격을 피해 낸 남성은 이를 갈며, 하단 발차기로 정현의 중심을 흔들었다.
퍼억!
“윽!”
중심을 잃은 정현의 복부에 연속으로 주먹을 먹였다.
한순간 머릿속이 멍해질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정현은 이를 악물고 양손을 들어서 얼굴 앞에서 교차했다.
쿠웅!
“내 차례입니다.”
남성의 내려찍기를 정확히 막아 낸 정현은 양손에 힘을 주어 다리를 밀쳐 버린 다음, 빠르게 거리를 좁혀 갔다.
“쉽지는 않을 거다!”
밀쳐진 다리 때문에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지자 남성은 과감하게 몸을 뒤로 날리며 한 바퀴 텀블링을 했다.
“거기까지!”
퍼억!
“커억!”
하지만 정현의 대응은 예상을 웃돌았다.
전력으로 질주한 뒤 날린 숄더 어택이 명치에 꽂히자, 볼링장의 핀볼처럼 뒤로 날아간 남성은 제대로 낙법도 취하지 못한 채 바닥을 뒹굴었다.
“아, 아직이야!”
“그럼…… 와 보시죠.”
이번에는 정현이 손짓을 하면서 상대방을 도발했다.
서로 한 방씩 주고받았지만, 정현의 공격이 더욱 큰 데미지를 준 상태기 때문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휙휙!
견제용으로 뻗는 잽들도 날카롭기 그지없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정현의 잽은 프로 격투기 선수들도 상대하길 꺼려할 수준이었다.
“이 정도로는 날 막지 못해!”
촤악!
어깨를 세워 정현의 공격을 튕겨 내고는 그대로 파고들었다. 정현보다 리치가 짧은 남성으로서는 좁혀진 이 거리야말로 최적의 거리였다.
“아까의 신세를 갚아 주지.”
쒜엑!
파고든 자세 그대로 따라오던 오른손이 솟구치며 반원을 그렸다.
정현의 턱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공격은 공기를 가르는 소리로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퍼억!
“윽!”
황급히 양손을 교차시켜서 막았지만, 우습게 볼 위력이 아니었다.
가드를 뚫고 들어온 충격에 신음성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는 정현은 이어질 공격을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휙, 휘리릭!
“자, 막아 봐라!”
“제길…….”
퍼버버벅!
상단, 중단, 하단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남성의 공격에 정현은 거친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등껍질 속으로 들어간 거북이 머리처럼 필사적으로 가드를 하며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정현의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남성은 연신 기합 소리를 내며 공격을 했다.
퍽!
“컥!”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완벽하게 막을 순 없었다.
한두 번씩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한 정현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무엇인가 결심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하앗!”
“어엇?”
콰앙!
마침내 승부수를 던진 정현은 방어를 포기한 채 남성과 주먹을 한 방씩 교환했다.
복부에 깊숙하게 꽂힌 정현의 주먹과 옆구리를 가격한 남성의 미들킥이 서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으으…… 먹어라!”
휘익!
몸을 돌보지 않은 정현의 무식한 행동에 당황했던 남성이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뻗었다.
터엉!
“……!”
남성의 속사포 같은 공격을 견디며 타이밍을 재고 있던 정현은 미들킥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어진 남성의 공격도 능숙하게 흘려 낼 수 있었다.
반면에 예상하지 못했던 타격으로 집중력이 흔들린 남성의 주먹은 힘없이 옆으로 튕겨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플 겁니다.”
남성의 중심이 무너진 순간, 정현은 눈빛을 번뜩이며 발을 뻗었다.
“어엇!”
콰직!
평범한 하이킥으로 생각하고 무너진 자세에서 한 손 방어를 선택한 남성이었지만, 중간에 각도가 변해서 목덜미로 그대로 꽂히는 브라질리언 킥은 막을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 인정사정없군그래.”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뒤 충격에서 벗어난 남성과 정현은 서로를 보며, 웃는 낯으로 농담을 던져가면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제 가는 거냐?”
“…….”
진지한 목소리로 정현의 눈을 마주 보고 말했다.
잠시간 침묵을 지켰지만, 결국 정해진 사실이기에 정현은 살짝 고개를 돌려 남성을 외면하며 그렇다는 뜻을 전했다.
“그래, 어차피 ‘팀’도 해체되고 너는 애초부터 군대와 맞지 않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꾸벅!
“쳇! 감사하다는 놈이 목덜미에 킥을 날려?”
마지막이라는 듯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정현의 모습에 볼멘 목소리로 답하는 남성이었지만, 미련이 남지 않은 시원한 표정이었다.
“그럼…… 건강하세요.”
“잠깐!”
작별을 고하는 정현에게 손을 들어서 제지하는 남성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어.”
“…….”
정현과 남성의 비밀스러운 대화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 * *
똑똑!
“손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으음.”
정현은 잠기운의 여운을 떨쳐 버리려고 몇 번 뒤척이다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 괜찮네.”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은 캡슐형 접속기와 연동되는 가수면 시스템을 지원했다.
게임에서 여관에 들어가 취침 시간을 설정하고 잠이 들면, 현실에서 수면을 취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고, 게임과 현실의 시간 비율이 1:2이기 때문에 두 배의 효율로 피로를 회복할 수 있었다.
더불어서 과도한 게임 접속으로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우려해 실시간으로 신체 상태를 체크하는 접속기의 ‘강제접속종료’ 시스템도 피할 수 있는 회복 방법이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애용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꿈을 꾼 것은 오랜만이군. 그만큼 편히 수면을 취했다는 뜻인가?’
정현은 여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5년 전 팀을 떠나올 때 있었던 마지막 대련에서 평소 가장 친분이 있던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 무슨 생각으로 전역을 할 사람에게 그런 기밀을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정현이었다.
“오오, 테라 군. 올슨과 에일린에게 이야기를 다 들었네. 정말 많은 일을 해 주었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제 정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토끼를 비롯한 마을 주변의 동물들을 사냥하며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느꼈다.
비록 그 강도는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그러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미친 듯이 주위의 동물을 사냥하느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 덕분에 퀘스트를 두 개밖에 해결하지 못했지만…….’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 섬뜩함과 긴장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게임……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감정과 다르게 냉철한 이성은 행동을 억눌렀다.
‘무조건 사냥만 해서는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없다. 퀘스트를 동반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정현은 남다른 승부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팀’에서 가장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으론 손가락에 꼽힐 정도가 된 비결 중 하나였다.
맨손 격투부터 시작해서 총기를 다루는 법, 서바이벌 능력, 고속 침투 능력 등, 하나라도 뒤처지는 것이 있다면 며칠 밤을 새서라도 미친 듯이 연습하여 주위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그것은 게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이왕 하는 게임이다. 게다가 재미도 있으니…… 그렇다면 누구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겠다.’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이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삼 개월이 지났다.
그만큼 뒤처진 시작점에 서 있는 정현이었지만, 결코 포기할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악착같은 승부욕!
그것이 정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이번에는 촌장님의 고민을 들어 드리고 싶군요.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 있다면 부담 없이 말해 보시죠.”
“으음, 고민이 있긴 하네만…….”
어제의 사냥과 퀘스트 수행으로 정현의 레벨은 4가 되었고, 퀘스트의 보상으로 1실버 50브론즈라는 돈과 7의 명성치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켄델이 퀘스트를 줄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감 어린 눈빛을 보내는 정현이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행동에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올슨과 에일린의 고민을 해결했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퀘스트를 해결할 능력이 되더라도 명성치가 부족하다면 퀘스트를 얻을 수가 없다.
마을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촌장이 줄 퀘스트는 가장 어렵지만, 그만큼 큰 보상이 따를 것이기 때문에 정현은 기필코 레벨 10이 되어 초보자 마을에서 강제 이동되기 전까지 퀘스트를 수행하리라 다짐했다.
‘홈페이지에서 본 정보에 따르면, 초보자 마을의 촌장이 주는 퀘스트를 해결한다면 원하는 부위의 장비 아이템을 하나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초보자들이 시작할 때부터 기본 장비를 제외한 아이템을 갖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촌장의 퀘스트는 해결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정현은 이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방어구 상점의 에밀이 고민거리가 있다더군. 한번 가 보는 것이 좋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정현은 촌장에게 길을 물어서 방어구 상점으로 찾아가 에밀에게 일거리를 부탁했다.
“쉬운 일은 아니네만…… 늑대 가죽을 구해다 주게.”
띠링!
[에밀의 고민거리]
등급 : E
설명 : 아스 마을의 방어구 상점 주인 에밀이 급하게 늑대 가죽을 구하려고 한다.
마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경우, 일거리를 구하기가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다만, 실패한다면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일을 맡기길 꺼려할 것이다.
조건 : 늑대 가죽[10]
보상 : 돈(+2S) / 명성치(+8)
정현은 퀘스트를 수락하고, 마을을 나섰다.
어제 토끼들을 학살했던 숲 앞쪽의 수풀이 우거진 지역을 지나서 여우들이 출몰하는 숲의 입구도 지나쳤다.
초보자 마을의 가장 기초적인 사냥감들답게 비선공 성향의 동물들이었기 때문에 이동 간에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늑대는 다르지. 공격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동물이니까.’
사삭, 사사삭!
“왔군.”
울창하게 솟아 있는 나무들과 무성한 수풀들을 헤치며 걷고 있는 정현에게 기대하던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
굵은 나무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늑대는 지저분한 갈색 털들을 휘날리며 정현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였다.
“와라!”
커엉!
늑대는 가볍게 손짓하는 정현의 움직임을 도발로 생각했는지,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퍼억!
크르르…….
정현의 앞차기로 인해서 늑대의 돌진이 멈췄다.
하지만 공격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다리를 물어오는 늑대의 행동에 정현은 오른발을 회수하며, 유일한 무기인 단검을 휘둘렀다.
커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