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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늑대에게 [3]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쳇! 방어력인가?”
데미지가 전부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현은 토끼나 여우와 다르게 약간의 물리 방어력이 있는 늑대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크르르…… 크앙!
정현의 단검에 코를 베인 후, 극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늑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단순무식한 공격에 당할 정현이 아니었다.
서걱!
[늑대에게 [4]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옆으로 빙글 돌아 늑대의 이빨을 피한 뒤, 어김없이 목덜미에 단검을 꽂아 주었다.
보통의 유저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의 완벽한 움직임이다.
그것을 인식했는지, 게임의 시스템도 정현의 업적을 칭찬했다.
띠링!
[놀라운 움직임으로 늑대의 공격을 회피하고, 반격했습니다. 대단한 경험으로 인해 몸이 민첩해집니다.]
[민첩이 [1] 상승하였습니다.]
“……!”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메시지에 정현의 입매가 올라갔다.
보너스 포인트를 구경하기 힘든 리얼의 특성상 강해지기 위해서는 레벨업뿐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이나 반복 학습을 통해서 능력치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커엉!
촤악!
[늑대의 발톱 공격에 [3]의 데미지를 받으셨습니다.]
“……!”
순간 기쁨을 만끽하던 정현에게 늑대의 공격이 가해졌다.
충분히 타격을 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늑대의 신체 능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토끼나 여우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네.’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탐색’ 스킬이 있다면 좋겠지만, 초보자인 정현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게시판에서 검색한 정보가 있어서 늑대의 총 HP가 40이라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다.
크앙!
까가강!
이어지는 늑대의 이빨 공격을 단검으로 막은 정현은 다시 한 번 앞차기로 견제를 하고, 움찔하는 늑대에게 달려 들어가서 목덜미에 재차 단검을 쑤셔 박았다.
푸욱!
[늑대에게 [2]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연속적인 공격으로 추가적인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늑대에게 [8]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상처가 남아 있는 목덜미를 재차 공격해서인지, 추가적인 데미지가 부여되며 늑대가 휘청거렸다.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받아라!”
서걱!
크엉!
다시 한 번 콧잔등을 베고 지나가는 정현의 공격에 늑대는 울음소리와 함께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으로 정현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우우우!
“……?”
갑작스럽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늑대의 모습에 정현의 눈동자가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최후의 발악인가? 이제 끝내 주지.”
확실히 토끼와 여우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장감과 손맛이 있었다.
그것에 만족한 정현은 이제 마무리를 하고 다음 늑대를 찾기로 했다.
사삭, 사사삭!
“……!”
갑작스럽게 풀숲을 헤치고 무엇인가 다가오는 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런!”
난감해하는 정현의 시야에 눈앞의 늑대와 똑같이 생긴 두 마리의 늑대가 나타났다.
레벨 4의 초보 유저로서는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이 고작인 강력한 동물이 늑대다.
‘아직 몸이 완벽하지 않은데.’
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평범한 유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현실의 정현조차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 줄 캐릭터이지만, 현재는 레벨 4라는 한계가 명확한 능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커엉!
“큭!”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는 늑대의 공격을 좇고 있지만, 손과 발의 스피드가 생각대로 따라오질 못했다.
어느덧 좌우에서 덮쳐 온 새로운 늑대들의 발톱이 정현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통증이 오는군.’
현실과 최대한 비슷한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싱크로율에서 통각(痛覺)까지도 캡슐형 접속기의 최대치인 70%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옆구리에서 회초리로 맞은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조차도…….’
불리한 상황이지만, 정현의 입매가 슬며시 올라갔다.
즐거운 것이다.
토끼를 사냥할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지며, 기묘한 감정이 정현의 뇌리를 자극했다.
크르르!
“와라!”
정현의 도발을 참아 줄 생각이 없는지, 세 마리의 늑대들은 갈색 털을 휘날리며 사방에서 덮쳐 왔다.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정현의 눈은 냉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늑대와의 간격을 확인하던 정현이 완벽한 포위망이 갖춰지기 전에 두 마리 늑대의 사이 공간을 향해 몸을 던졌다.
허탕을 친 늑대들이 달려들던 기세를 멈추려고 애를 썼지만, 한 타이밍 빠르게 반전한 정현이 가장 가까운 늑대의 목덜미에 단검을 쑤셔 박았다.
푸욱!
“하앗!”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가 정현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큰 충격에 몸을 떨고 있는 늑대를 향해 인정사정없는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발, 주먹, 단검, 발, 주먹, 단검…….
연속적인 공격으로 새롭게 등장한 늑대 중 하나가 빈사 상태가 되어 갈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측에 있던 늑대가 정현의 옆구리를 향해 몸을 던져 왔다.
퍼억!
“윽!”
묵직한 느낌과 함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좌측에 있는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로 정현의 허벅지를 노렸다.
“어딜!”
탁!
앞차기를 통해 늑대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동시에 반발력을 얻어 거리를 벌렸다.
몸통 공격에 HP가 10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위험을 느낀 것이다.
‘두 번의 공격에 HP가 반밖에 남지 않다니.’
아무리 가상현실게임이라지만, 초보자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난이도였다.
물론 정현이 능력치를 체력보다는 힘과 민첩에 투자한 경향이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더라도 쉽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크르르…….
동료 중 하나가 전투 불능의 상태고, 처음부터 정현과 싸웠던 늑대는 HP가 바닥이다.
늑대 무리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양쪽 모두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
크르르!
상처 입은 맹수가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려는지, 늑대들은 살기등등한 울음소리로 정현을 위협하였다.
‘모험을 해야겠어.’
이대로 시간을 끌다간 새로운 늑대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기에 정현은 승부를 걸기로 했다.
‘늑대의 공격으로 입는 데미지는 3∼5 정도…… 그럼, 가자!’
타닥!
신속하게 지면을 박차고 나간 정현은 멀쩡한 늑대가 있는 정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 동료를 돕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좌측과 우측의 두 마리 늑대가 보였다.
‘강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한다. 전술의 기본이지.’
멀쩡하고, 가장 기세등등한 정면의 늑대를 상대로 측면을 내줬다.
좋게 생각하면 배짱 있는 행동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본인의 무덤을 판 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현은 쉽게 당할 생각이 없으니 전자에 속했다.
콰직!
정현의 오른발이 HP가 바닥까지 떨어진 우측의 늑대를 거침없이 걷어차자, 기다렸다는 듯 정면에 있던 늑대가 허리춤을 물어 왔다.
마음으로는 이미 반격을 하고 목을 비틀어 버렸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근력과 민첩이 너무 부족하기에 정현은 단검을 비스듬히 세워 공격을 흘리는 정도로 만족하였다.
“어딜!”
서걱!
그렇게 공격을 방어하자마자 반격이 가해졌다.
애초의 목표는 늑대의 두 눈이었지만, 위기를 감지하고 고개를 숙인 탓에 이마 부분이 길게 찢겨졌다.
커엉!
고통으로 일그러진 짐승의 눈빛을 뒤로하고 정현은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마지막 남은 세 번째 늑대가 지나간 자리를 물어뜯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그때, 오른쪽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큭!”
[늑대의 이빨 공격에 [4]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정현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격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틀어박힌 정현의 오른쪽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꺼져!”
콰직!
아우우우!
고통을 느끼게 한 분노를 담아서 옆구리를 강하게 후려친 정현의 발차기가 첫 번째 늑대를 쓰러트렸다.
커엉!
“가만히 좀…… 있으라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끈질기게 달라붙는 늑대의 모습에 정현은 앞차기로 움직임을 멈춘 다음, 이번에야말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검으로 눈동자를 베어 버렸다.
커엉!
“후우, 후우…….”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늑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의 늑대가 비실거리는 움직임으로 앞발을 휘둘러 왔다.
“어딜!”
까강!
날카로운 발톱을 단검으로 막아 낸 정현은 지속적인 거친 움직임으로 빠르게 하강 곡선을 그리는 SP(Stamina Point)를 확인하고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늑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앗!”
콰드득!
깨갱!
묵직한 소음과 함께 정현의 숄더 어택이 늑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무기를 제외한 기본적인 주먹 데미지가 적용되었지만, 무방비 상태의 크리티컬 공격인 탓에 늑대는 그대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띠링!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아스’ 마을의 사람들이 결코 믿지 못할 놀랄 만한 전투를 경험했습니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비슷한 수준의 대상을 동시에 셋이나 상대한 업적을 자랑한다면, 술집에서 안주 정도는 공짜로 내줄지 모릅니다.]
[대단한 전투를 승리하여, 명성치(+5)가 상승하였습니다.]
[쉬지 않는 움직임과 날카로운 공격으로 체력(+1), 근력(+1)이 상승하였습니다.]
“하하…… 하하하하!”
리얼(Real)의 세계에서 몬스터란 상당히 강력한 존재다.
평범한 장비를 사용한다면 동일 레벨의 몬스터를 두 마리 이상 상대하기가 힘들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런 만큼 정현이 보여 준 전투는 다른 유저들이 본다면 사기나 버그라고 소리를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애초에 보통의 사람이 늑대라는 맹수를 상대로 무기인 단검을 놔두고 겁도 없이 발차기 등을 하는 것 자체도 쉽게 볼 수 없는 경우니 말이다.
“후, HP와 SP가 바닥이군.”
이번 전투로 체력이 상승하여 총량이 30이 된 HP는 6이 남았고, 마을을 나설 때 95%였던 SP는 격렬한 전투로 인해 37%를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
게임 오버를 당하면 경험치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킬의 숙련도와 장비 아이템의 손실…….
게다가 현실의 시간으로 하루 동안 접속을 할 수 없게 되니, 유저들에게는 무엇보다 피하고 싶은 페널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