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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SP는 처음 지급된 딱딱한 호밀빵을 먹으면 되니까. HP는 자연 회복이 될 때까지 조금 걸리겠는걸.’
정현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아직 남아 있는 늑대의 시체로 다가갔다.
전투가 끝났으니, 이제 전리품을 거둘 때다.
정현은 유일한 무기인 단검을 들고, 자세를 낮춰서 어설픈 동작으로 늑대의 가죽이나 발톱 등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스킬이 있으면 편할 텐데, 어쩔 수 없지.’
NPC에게 대가를 주고 스킬을 배울 수 있지만, 어느 스킬에나 능력치의 요구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에 현재 정현의 상태로는 습득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도 떨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하나하나 직접 움직여서 아이템을 얻는 것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삭, 사사삭!
[늑대의 최하급 가죽을 습득하였습니다.]
[늑대의 발톱 [3]을 습득하였습니다.]
정현의 어설픈 도축이 마무리될 때쯤, 습득물이 자동으로 아이템 창으로 이동되었다.
아무리 현실성을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모든 아이템을 실제로 들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과거 RPG게임과 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일단 마을로 돌아갈까?’
아직 HP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까처럼 다수의 늑대가 달려든다면 꼼짝없이 게임 오버를 당할 판이다.
보통의 유저들이라면 레벨이 6∼7 정도 될 때까지는 토끼와 여우를 사냥해서 안전하게 성장했지만, 이미 늑대와의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경험한 정현은 토끼와 여우를 잡을 생각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다.
“오오, 테라로군.”
“이번에 늑대를 세 마리나 사냥했다지?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정현이 아스 마을로 귀환하자, 입구에 있는 경비병들이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제 겨우 12밖에 되지 않는 명성이지만, 초보자 마을의 NPC여서 그런지 정현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와 다른데? 그렇다면 혹시…….’
정현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마을의 중앙에 있는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에 촌장의 집에 도착한 정현에게 촌장 켄델도 경비병들과 마찬가지로 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오오, 정말 수고가 많았네. 숲의 약초나 과일을 채집하러 가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늑대들이 이번에 뜨거운 맛을 보았다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띠링!
[‘아스’ 마을 촌장 켄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켄델은 당신의 일이라면 마시던 술잔도 내려놓고 기꺼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마을에서의 다양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퀘스트의 요구 조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정현의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였고, 명성치와 호감도를 모두 요구 조건 이상으로 갖추었기에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화면을 장식했다.
‘성공이군.’
정현은 초보자 마을에서의 마지막 목표가 될 ‘무엇’을 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주먹을 쥐어서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수많은 초보 유저들이 도전했던 각 초보자 마을의 촌장들이 주는 최고 난이도의 퀘스트!
“제가 아스 마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을지 궁금하군요.”
“오오, 그래. 자네라면 해낼지도 모르겠군. 얼마 전의 일이라네. 숲에서 사는 늑대들이…….”
띠링!

[아스 마을의 위협]
등급 : D
설명 : 평화로운 아스 마을에 위기가 닥쳤다.
사납긴 하지만, 결코 숲을 벗어나지 않는 늑대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끔씩 무리를 지어 집단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좋지 못한 예감이 든다.
마을 유일의 사냥꾼인 ‘오웬’의 증언에 의하면 갈색이 아닌, 회색 털을 가진 늑대가 다른 늑대들을 통솔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하는데…….
조건 : 회색 늑대의 송곳니
보상 : 아스 마을의 장비(+1) / 명성치(+12)

“아스 마을의 위험을 두고만 볼 수 없지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정말 믿음직스럽군. 하지만 조심하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오웬의 말에 의하면 회색 털을 가진 늑대는 갈색 늑대의 배에 달하는 덩치를 가졌다더군.”
걱정 섞인 촌장의 멘트를 뒤로하고 정현은 잡화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늑대 가죽은 퀘스트를 위해 남겨 둬야 하지만, 발톱과 같은 물품은 얼마든지 판매를 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빠르지만, 문제는 없겠지. 그건 그렇고 레벨 13의 몬스터라…… 가능할지 모르겠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알아본 정현은 초보자 마을의 마지막 퀘스트 보스가 레벨 13의 그레이 울프(Grey Wolf)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에밀의 고민거리 퀘스트를 수행해 레벨과 능력치를 올려놓고 생각해야지.’
능력치는 올리고 싶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지만, 아무튼 정현은 그렇게 결심했다.
리얼(Real)을 시작한 뒤 생긴 첫 번째 목표이자 사냥감…….
가상의 공간을 걷고 있는 정현의 눈동자가 진지하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 * *

―자, 오늘도 즐거운 리얼(Real)의 세계를 여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항상 중요한 소식만을 전해 드리는 MC 정우입니다.
―앗! 치사하게 혼자만 소개하기예요?
―하하하, 요즘은 자기 PR 시대라죠.
―이이이……!
―화경 양, 시청자 분들께서 보고 계십니다.
―어머, 무슨 일 있었나요?
체육관의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형 TV에서 신나는 배경음의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를 지닌 MC 정우와 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가 인상적인 MC 화경은 가상현실게임 리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해 주는 프로그램의 MC를 맡고 있었다.
―오늘은 초보자를 위한 특집 프로그램 시간입니다. 자자, 어떤 내용이 준비되었는지 궁금하군요.
―호호, 오늘은 내용보다 다른 것은 준비했지요. 자아, 게일 님 나와 주세요.
화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슈트 차림의 말쑥한 남성이었다.
“응? 게일이라면…… 와우, 리얼 공식 랭킹 5위의 유저잖아.”
한참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며 TV를 보고 있던 정현의 귓가에 트레이너인 준석의 목소리가 스쳤다.
물끄러미 옆을 바라보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준석이 말했다.
“정현이가 리얼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는데?”
“…….”
딱히 게임에 빠져 있다는 것이 자랑은 아니기에 정현은 침묵하며 런닝머신을 달리는 한편, 시선은 TV에 고정시켰다.
―하하하, 정말 그때는 아찔했습니다. 하지만 도전이란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단하시네요. 던전이란 것이 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정현이 준석을 향해 시선을 돌린 사이, 방송은 MC와 게스트인 게일의 대화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헤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스란에서 활동하고 계신 레벨 21의 검사 아르 님입니다. ‘사냥이 너무 힘들어요. 저와 비슷한 20레벨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는데, 솔플로는 두 마리 잡기도 힘드네요. 원래 이렇게 힘든가요?’라고 질문해 주셨네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이군요. 저도 MC이기 이전에 리얼을 하는 유저로서 평소 게임의 난이도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질문에 대한 관심을 가득 담고 게일을 바라보는 두 MC의 모습에 정현도 집중했다.
자신은 사냥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지만, 과연 다른 사람이나 리얼에서 고수라고 알려진 ‘게일’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음, 저도 평소부터 생각하고 있던 내용입니다. 확실히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의 난이도는 여타의 게임들과는 궤를 달리하니까요.
―그럼, 혹시 특별한 노하우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기다렸다는 듯 깊숙이 파고 들어오는 화경의 모습에 게일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러니 제가 오늘 출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물론 완벽한 해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한 개념을 일깨워 드리고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 드리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와아,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응? 리얼 방송 하냐?”
화경의 환호 소리에 이어서 트레이너인 문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정현의 왼쪽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문수의 모습에, 오른쪽에서 달리고 있는 준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방금 시작했어. 그런데 정현이도 리얼(Real)을 하는 것 같더라고.”
“엥? 정말이야? 믿기 힘든데.”
고개를 갸웃하는 문수의 반응에 준석은 말없이 손을 들어서 옆을 가리켰다.
“에?”
의아한 문수의 시선에 TV에 못 박힌 듯 고정된 정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완전히 리얼의 방송 프로그램에 몰두한 눈빛을 보며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리얼이 재미있다고 해도 설마 했는데, 정현이까지 하고 있을 줄이야.”
“흐흐흐, 이 나이 먹은 우리도 하고 있는데, 정현이라도 별수 있겠어?”
문수와 준석은 득의양양한 태도로 떠들다가 정현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시선을 돌려 TV에 집중했다.
―몬스터들이 강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험치를 준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죠. 결국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도 시간대별 경험치의 획득량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몬스터들이 강한 만큼 게임 오버를 당할 위험도 크고, HP나 MP를 회복하기 위한 소모성 아이템의 소비도 더욱 많을 텐데요?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얼의 사냥은 파티 플레이와 장비의 성능…… 마지막으로 유저의 컨트롤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티 플레이와 장비는 당연한 말씀이신데, 컨트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화경이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게일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리얼이라는 게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최고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많은 것들을 조사했고, 덕분에 도움이 되는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었죠.
―그게 어떤 정보인지, 너무너무 궁금하네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게일과의 대화에 동참하는 화경과 정우였다.
―리얼이라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참여한 것은 단순히 유명한 프로그래머나 과학자들뿐만이 아닙니다.
―……그럼?
―바드나 댄서와 같은 직업을 위해 실제 프로들이나 아마추어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작업에 참여해야 했고, 미각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요리사는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과, 하다못해 와인이라는 한 종류의 음료를 위해 파격적인 조건과 대우로 유명한 소믈리에(Sommelier)까지 섭외해야 했습니다.
―헤에…….
마치 선거에 나가는 후보처럼 열변을 토하는 게일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약간 멍한 표정으로 탄성 소리를 내던 화경은 곧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그렇다면 상상도 못할 정도의 개발 시간과 개발비가 들었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게임 기업인 (주)웅비의 파산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였으니……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이 여타의 가상현실게임들을 제치고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아,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이게 사냥의 노하우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죠?
의외로 멀뚱멀뚱 가만히 있던 정우가 핵심을 집어 냈다.
날카로운 지적에 잠시 움찔했던 게일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제가 말씀드리던 내용들과 똑같습니다. 미각을 비롯한 여타의 감각들을 위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한 것처럼, 전투 시스템을 위해서 수많은 현역 격투기 선수들은 물론이고 인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사와 생물학자 등 가장 많은 숫자의 인력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
―아, 설마 그 말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