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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아직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화경과 다르게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는 정우를 보며, 게일은 손가락으로 작은 원을 만들어 보였다.
―맞습니다. 리얼의 전투에서 벌어지는 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주먹으로 적을 가격할 때의 부위나 적의 방어 상태로 인해서 데미지가 가감되는 것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게 기본이라니요!
어이없다는 듯 빽 하고 소리를 지르는 화경의 눈빛에 불만이 서렸다.
평소 쉬는 시간만 생기면 리얼을 플레이하는 그녀로서는 적을 공격할 때 필요한 노하우들을 기본으로 취급하는 게일이 얄미웠기 때문이다.
―후훗, 제 이야기를 더 들어 보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으실 겁니다. 혹시 적을 공격할 때의 타이밍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분이 계십니까?
―타이밍 말씀이십니까?
―적이 호흡을 들이켰을 때 꽂히는 정확한 일격이라면? 후훗,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을 때 가해지는 무자비한 공격이라면? 상황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주는 데미지를 증폭시킬 방법은 무한합니다.
“와! 저게 사실일까?”
“흠, 놀라운 일이네. 하지만 이 정보를 얻었다고 해서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지도 못한 유용한 정보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리얼을 플레이할 때 시험을 해 보겠다고 다짐하던 문수와 준석의 시선이 어느 한순간 못 박힌 듯 정현을 향해 고정되었다.
‘이 녀석이라면…….’
‘설마, 이 괴물 같은 녀석도 리얼을 하는 것 같은데.’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트레이너들과 다르게 정현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 * *
“오오, 해냈구먼. 자네의 실력은 익히 알았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할 줄이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띠링!
[‘아스’ 마을의 방어구 상점 주인 에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에밀은 당신이 구입하는 모든 물품에 대하여 만족감을 표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방어구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입 시 3% 할인된 가격이 적용됩니다.]
[퀘스트의 요구 조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돈(+2S)과 명성치(+8)가 주어집니다.]
“스테이터스 창 오픈.”
[Player Status]
닉네임 ― [테라]
레벨 ― [Lv. 9]
클래스 ― [노비스(Novice)]
칭호 ― [無]
명성 ― [27 / 초라한]
근력 ― [5] / 민첩 ― [5] / 체력 ― [4]
지능 ― [1] / 집중 ― [2] / 행운 ― [2]
HP ― [40] / MP ― [20] / SP ― [97%]
공격력 ― [5]+5 / 방어력 ― [4]+3
공격 속도 ― [0.05%]
회피율 ― [0.02%]
크리티컬 ― [0.02%]
속성 ― [無]
Point ― [0]
레벨이 9까지 올라가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 봐야 시간상으로 사흘이 지나서 처음 보상으로 받았던 칭호인 튜토리얼의 수료자가 사라진 것뿐이지만, 능력치의 변화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과 비교하면 근력[2], 민첩[3], 체력[2], 집중[1], 행운[1]이 올랐군. 괜찮은 건가?’
만약 정현이 시간을 조금만 투자해서 다른 유저들이 올린 초보자 마을의 경험담을 읽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능력치를 2∼3개 정도밖에 올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날카로운 단검]
등급 : 노멀(Normal)
계열 : 무기
재질 : 철
제한 : 근력[2], 민첩[3], 집중[2]
공격력 : 5
옵션 : 無
내구력 : 8(12)
설명 : 초보자 마을에서 판매하는 단검치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공격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너무 날카롭게 날을 세운 탓에 내구력이 약해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다.
그것을 경고하는지, 검의 손잡이에는 ‘조심해서 사용하자’라고 적혀 있다.
“무기도 교체했고,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인가?”
정현은 퀘스트 창에서 유일하게 반짝거리고 있는 D등급의 퀘스트인 ‘아스 마을의 위협’을 체크했다.
레벨이 10이 되기 전에 도전할 수 있는 초보자 마을 최고의 퀘스트였다.
보상으로 자그마치 완제품인 장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초보자 마을에서 번 돈을 단검과 SP 회복용 음식을 구입하는 데 모두 소비했으니, 이 퀘스트를 통해 새로운 장비를 구하는 수밖에…….’
게임이 오픈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이 아직 상점제 무기나 퀘스트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가장 크게 꼽히는 것은 보스를 레이드해도 완제품인 아이템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재료뿐이기 때문에 상점에서 판매하는 노멀 등급을 제외한 장비들을 무척이나 귀했다.
그 덕분에 재료를 모아서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생산 계열의 직업을 가진 유저들도 무시받지 않고 리얼의 세계에서 당당히 활동할 수 있었다.
“이야, 이번에도 늑대를 사냥하러 가는 거야? 정말 대단하다니까.”
“힘내라고. 우리는 마을을 지켜야 해서 도와줄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응원하고 있으니까.”
아스 마을의 입구에서 힘차게 소리치는 경비병들을 뒤로하고 정현은 숲 속으로 이동했다.
SP를 회복시킬 딱딱한 호밀빵도 충분히 구입을 해 두었기 때문에 정현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TV를 보면서 깨달았다.’
시원한 바람과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들을 감상하며 정현은 조용히 되뇌었다.
진지한 태도로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는 모습은 과거 ‘팀’의 동료들이 봤다면 독종 녀석이 또 시작했다며 기겁을 할 만한 장면이었다.
‘리얼의 세계는 게임이지만, 단순히 게임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법칙이 존재한다.’
게일의 존재는 정현의 뇌리에 잠들어 있던 경쟁심과 투쟁심을 일깨웠다.
자신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 명확한 경쟁 대상자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적선이라도 베풀듯 방송을 통해 본인이 가지고 있던 값진 정보들을 제공했다.
‘자신 있다는 것인가? 우습군.’
정현은 게일이 말한 내용을 통해서 리얼의 세계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분하고,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가 해낸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 준 기회로 인해서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크르르!
“……기다렸다. 와라!”
수풀이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하나둘씩 지저분한 갈색 털을 휘날리는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세 마리의 늑대를 상대하고 비틀거리던 정현이 아니다.
9레벨까지 올리면서 있었던 능력치의 성장과 새로운 무기의 구입으로 전투력이 두 배 가까이…….
아니, 지금부터 새롭게 변할 정현을 생각하면 눈앞에 등장한 세 마리의 늑대는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커엉!
선두에 있던 늑대가 몸을 날려서 이빨을 드러냈다.
‘집중해라, 할 수 있다.’
정현의 눈동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절대의 부동심(不動心)!
소름이 끼칠 정도의 집중력으로 정현은 자세를 낮췄다.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갈 때까지…….
‘아니, 이게 아니다.’
종잇장 하나를 생각했는데, 책 한 권 정도의 공간을 두고 회피해 버리고 말았다.
아우우우!
이번에는 좌측에서 덮쳐 왔다.
매섭게 바람을 가르는 갈색 늑대의 발톱이 정현의 옆구리를 노려 왔다.
“큭!”
촤악!
[늑대의 발톱 공격에 [2]의 데미지를 받으셨습니다.]
이번에도 틀렸다.
정현이 원하는 것은 공격을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무결(完全無缺)한 움직임!
그것을 통해 최소한의 동작으로 공격을 피하며, 바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공방일체의 전투 스타일을 원하는 것이다.
‘적의 공격을 필요 이상의 움직임으로 피하게 된다면 안전할지는 몰라도 반격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만약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지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현은 확신했다.
게일이 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니, 오히려 더욱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해낼 것이란 사실을!
‘집중해라, 집중해!’
크르르…….
반격도 하지 않은 채 피하기만 하는 정현을 보며 의아한지 머뭇거리다가, 결국 야성의 본능은 못 속이는지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조정한다.’
캐릭터의 모든 움직임에 의지를 담았다.
간단한 스텝을 밟을 때도 조금의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늑대의 공격을 회피하고 반격을 가할 때도 뻗는 주먹의 타이밍, 각도 등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콰직!
[늑대에게 [5]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부족해.’
늑대가 달려들었다.
몸을 뒤로 젖히면서도 주먹은 최단거리를 가로질러서 늑대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커엉!”
퍼억!
[놀라운 타이밍으로 반격을 성공시켰습니다. 추가적인 데미지가 부여됩니다.]
[늑대에게 [9]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아직이야.’
이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동시에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각기 오른손과 왼손을 물어뜯기 위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 순간 정현의 눈동자에 달려오는 두 마리 늑대의 사이 공간이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30cm 정도? 해 보자.’
타닥!
지면을 박차고 마주 달렸다.
갑작스러운 정현의 돌진에 당황했는지, 달려오는 늑대들의 움직임이 늦춰졌다.
정현의 노림수가 정확히 먹혀들었다.
‘바로 지금!’
휘리릭!
오른발을 축으로 정현의 몸이 현란하게 회전했다.
자연스럽게 늑대들의 공격이 빗나갔고, 그 순간 정현은 약 30cm 정도 되는 늑대들의 틈에 위치했다.
“이얍!”
콰지직!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소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늑대의 가슴을 파고든 정현의 무릎은 인정사정없이 장애물인 갈비뼈들을 박살을 내 버렸고, 늑대는 그 일격으로 피를 토하며 침묵해 버리고 말았다.
띠링!
[능력치의 한계를 돌파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의 중심에서 보여 준 예술과도 같은 움직임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될 것입니다.]
[낮은 레벨에서 일격으로 늑대를 사냥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근력(+2), 민첩(+1), 집중(+1)이 향상됩니다.]
[지금의 행동을 스킬로 생성 가능합니다. 스킬 ‘카운터 어택(Counter Attack)’을 생성시키시겠습니까? Yes / No]
모든 상황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늑대들이 나타난 시점부터 정현의 놀라운 일격이 발휘되기까지,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은 진행이었다.
‘스킬이 생겼다고? 어쩌지?’
NPC나 스킬북을 통해서 배우는 스킬과 다르게 스스로 생성시킨 스킬은 제한조건이 없었다.
말 그대로 생성시키겠다고 Yes를 클릭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면에 어떠한 정보를 가졌는지 생성시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이 생성 스킬이었다.
‘일단 이름만 살펴보면 근접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액티브 스킬인 것 같은데.’
정현이 망설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가상현실게임 리얼의 스킬 성향 시스템 때문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스킬과 반대되는 성향의 스킬을 익히거나 할 때는 배에 달하는 페널티나 요구 조건이 필요하지.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스킬을 익히다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