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2화
초보자 때 사냥이 힘들다는 이유로 상점에서 파는 배쉬(Bash) 스킬을 익힌 성직자 계열의 유저가 나중에 회복 스킬을 배울 수 있는 15레벨 때 그 페널티로 인해서 스킬을 배우지 못하고 25레벨까지 노가다를 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홈페이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내 짐작으로는 상당히 좋은 스킬로 보이는데.’
자그마치 4개에 달하는 능력치가 상승하며 생성된 스킬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결코 부족한 스킬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정현이 걱정한 것은 스킬의 성향 때문에 앞으로 성장해야 할 방향에 어떠한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망설인 것이다.
“Yes!”
띠링!
[스킬 ‘카운터 어택(Counter Attack)이 생성되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확인하려면 스킬 창을 활성화시키면 됩니다.]
“스킬 창 오픈.”
[카운터 어택(Counter Attack)]
계열 : 액티브(Active)
등급 : 초급 Lv. 1(0.00%)
능력 : 데미지(+10) / MP(―3)
설명 : 상대방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함과 동시에 반격한다.
후발선제(後發先除)의 묘리가 숨겨져 있어서 스킬의 운용이 극에 달하면 상대방의 공격이 닿기 직전의 타이밍에도 반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스킬 레벨 1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일정 확률로 스킬 공격 대상자에게 특수상태 ‘스턴’이 적용됩니다.]
[10%의 확률로 상태이상 스턴 ― Lv. 1이 사용됩니다.]
[스킬 시전 시 순간 공격 속도에 30%의 가산점이 부여됩니다.]
“이, 이건…….”
아직 게임의 초보라고 할 수 있는 정현의 눈에도 결코 심상치 않게 보이는 스킬이었다.
비록 스킬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컨트롤이 필요하지만, 초급 1레벨에도 상당한 데미지와 특수상태 중 가장 유용한 ‘스턴’을 일정 확률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다.
‘지금의 MP로는 총 6번을 사용할 수 있군.’
나쁘지 않은…… 아니, 다른 근접 전투 계열의 유저들이 본다면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의 스킬이었다.
그만큼 방금 정현이 만들어 낸 전투가 놀랍고 대단한 수준이기에 프로그램이 이러한 스킬을 생성시킨 것이었다.
크르르…….
“응?”
그렇게 정현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순간에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세상의 이치!
정현의 성장을 질투라도 하듯 세 마리의 늑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너무 흥분을 했나? 접근하는 것도 눈치 못 채고, 그래도 HP도 충분하니 세 마리 정도는…… 어라?’
아우우우!
정현의 판단은 이른 감이 있었다.
세 마리의 늑대를 전면에 두고, 그늘진 숲 속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회색빛의 늑대는 얼핏 보아도 갈색 늑대들보다 배에 달하는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씨익!
“드디어 나타나셨군!”
띠링!
[초보자 숲의 보스 몬스터 그레이 울프(Gray Wolf)가 등장하였습니다.]
[초보자 숲의 악몽! 강력한 약탈자! 그레이 울프를 사냥해서 송곳니를 촌장에게 가져간다면 그는 기쁨에 덩실덩실 춤을 출지도 모릅니다.]
[그레이 울프가 당신을 적으로 인식합니다. 강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훗, 어서 덤벼 봐.”
정신없이 생성되는 반투명한 설명 창들을 무시하고 정현은 입매를 비틀었다.
전투를 벌일 때마다 느껴지는 절대적인 생동감과 더불어서 언제나 더욱 큰 것을 갈구해야만 했다.
이번 전투는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을 시작한 다음 가장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아우우우!
띠링!
[그레이 울프가 스킬 ‘워 크라이(War Cry)’를 시전했습니다.]
[강한 투지가 실린 포효 소리는 당신의 손과 발을 굳게 만듭니다.]
[저항할 수 있는 스텟이나 스킬이 없습니다.]
[민첩과 근력(―10%)이 하락합니다.]
“이런!”
한 번도 디 버프 스킬을 겪지 못한 정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어깨가 무거워졌고, 10km를 몇 번은 왕복한 것처럼 다리가 질질 끌렸다.
커엉!
당황한 정현의 상태는 관심도 없다는 듯, 프로그램된 패턴대로 충실하게 적을 향해 달려드는 세 마리의 갈색 늑대들.
그 뒤로 회색 늑대가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정현을 바라보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침착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늑대들의 거친 숨소리와 맹렬한 적의가 느껴졌다.
비록 프로그램이지만, 이 가상의 세계에서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앗!”
콰직!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올려 차기로 날듯이 달려든 첫 번째 늑대의 턱을 박살 내 주는 정현.
이어지는 두 번째 습격은 오른손에 든 날카로운 단검으로 분쇄해 주었다.
푸욱!
“깨갱!”
콧잔등을 파고드는 섬뜩한 단검의 감촉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두 번째 늑대는 안중에도 없었다.
‘마지막은 왼쪽!’
하얗게 삐쭉 솟구친 발톱들은 금방이라도 옆구리를 쓸어버릴 것 같았고, 방금까지 두 늑대의 공격을 막고 반격한 정현에게 피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지. 피한다. 어떻게? 간단히는 안 되지. 아슬아슬하게…… 딱 종이 한 장 차이다.’
정현의 눈동자가 고정된 것처럼 수축과 이완을 멈췄다.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촤악!
[늑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회피하였습니다. 다만, 옷자락이 찢겨 내구력이 감소하였습니다.]
씨익!
마치 중심을 잃고 무너지는 것처럼 대각선으로 몸을 날려서 늑대의 공격을 회피한 정현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매달렸다.
“카운터 어택(Counter Attack)!”
서걱!
깨갱!
몸을 날리는 와중에 날카로운 단검이 휘둘러졌다.
갈색 늑대의 심장을 둘러싼 갈비뼈의 틈새를 정확히 훑고 들어간 일격은 진한 혈향을 풍겨 내며 주인의 손에 회수되었다.
띠링!
[놀라운 수준으로 크리티컬 공격을 성공하였습니다.]
[다만, 평소보다 미숙한 움직임으로 능력치는 상승하지 않습니다.]
[갈색 늑대에게 [27]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하하하…….”
기본 공격력과 무기를 합친 수치는 10이다.
더불어서 스킬의 데미지인 10의 수치와 크리티컬의 추가 데미지인 7을 합하여, 전직도 하지 않은 캐릭터로 27이라는 놀라운 데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미숙한 움직임은 아마 워 크라이 스킬로 하락한 능력치 때문에 그렇겠지?’
움직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무거운 신체로 인해 약간의 타이밍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로 배운 스킬의 효용성과 그 능력을 만끽한 정현은 크게 만족하며, 쉽게 오지 않는 능력치 향상의 기회를 아쉬움과 함께 흘려버렸다.
띠링!
[지속적이고 격렬한 움직임으로 많은 SP를 소모합니다.]
[현재 남은 SP는 27%입니다.]
‘윽! 하필 이런 때…….’
정현이 인상을 썼다.
적은 HP와 MP까지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정현에게도 현 상황에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스테미너라고 할 수 있는 SP였다.
‘완벽한 공격을 위해 신체의 근육 하나까지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항상 긴장되어 있는 신체에 많은 무리가 갈 수밖에 없지.’
아무리 정현이라고 해도 근육을 하나하나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서 현재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고, 반대급부로 전투마다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캐릭터는 다른 유저들의 캐릭터보다 많은 SP를 소모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늑대를 사냥하는 데 약 10%가 소모되니까…… 후, 아이템으로 SP의 지속 회복도 가능하다고 하니, 나중에 꼭 구해 봐야지.’
반면에 절제된 동작과 완벽한 회피로 인해서 HP는 많이 남는 편이었다.
아무튼 결론은 현재 정현은 SP가 부족하고, 10% 이하부터는 1%의 SP가 줄어들 때마다 1%의 능력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꽤나 난감한 표정으로 살아 있는 두 마리의 늑대와 관전을 하는 듯한 태도의 그레이 울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동료의 죽음에 더욱 흥분했는지 두 마리의 늑대가 좌우에서 덮쳐 왔다.
덥썩!
“큭!”
그레이 울프를 상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SP를 아끼고자 소극적인 회피 동작을 취했던 정현은 생각보다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띠링!
[늑대의 이빨 공격으로 [5]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파고든 왼쪽 팔뚝의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길!”
콰직!
분노를 담은 사커 볼 킥으로 늑대를 강하게 걷어찼고, 3m 정도 튕겨 나간 늑대는 미약한 꿈틀거림으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렸다.
아우우우!
“윽!”
그 순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포효 소리가 정현의 움직임을 경직시켰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갈색 늑대들의 뒤에서 정현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그레이 울프였다.
“그래, 이제 할 생각이 들었나?”
보스 몬스터의 인공지능이 혼자 싸우기는 정현이 위험한 상대라는 것을 계산했는지, 아직 두 마리의 갈색 늑대가 남아 있는 상황에 공격을 시작하려 했다.
크르르…… 컹컹!
정현의 시선이 그레이 울프로 향하자,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좌측의 갈색 늑대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어딜!”
서걱!
깨갱!
가벼운 회피 동작과 이어지는 반격이 날카로웠다.
날카로운 단검으로 갈색 늑대의 옆구리를 길게 그어 준 정현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시선을 다시 그레이 울프로 향했다.
아우우우!
“……!”
아니나, 다를까?
정현의 시선이 돌아간 틈을 노린 것인지, 덩치에 맞지 않는 놀라운 스피드로 달려오는 그레이 울프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빠르다.’
어느 쪽으로 피하더라도 몸의 반은 휩쓸릴 상황이었다.
확실히 13레벨도 레벨이지만, 보스 몬스터는 동 레벨의 몬스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치가 높았다.
많은 능력치의 상승으로 보통의 유저들보다 뛰어난 민첩 수치를 가진 정현을 압도하는 놀라운 움직임…….
콰앙!
“컥!”
띠링!
[그레이 울프의 차지 공격을 받았습니다.]
[경갑 계열 이하의 방어구를 착용 시 추가 데미지를 받습니다.]
[데미지로 HP [16]이 하락합니다.]
‘이럴 수가…….’
거의 100%로 차 있던 HP가 순식간에 60%로 떨어졌다.
날카로운 단검을 던져서 그레이 울프의 기세를 늦추고 몸을 뒤로 날리면서 피해를 최소화시킨 정현이었지만, 놀랍게도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면으로 맞았다면 한 방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될 뻔했군.’
일반적으로 이런 큰 데미지를 입을 때는 ‘스턴’과 같은 특수상태가 동반되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아니었지만…….
정현은 점점 거세지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다. 난 살아 있다. 이곳에! 그리고 싸운다. 적을 무릎 꿇려, 내 자신을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금방이라도 정현을 난도질할 것 같은 날카로운 발톱과 번뜩이는 송곳니는 애교다.
심약한 사람들은 심장마비에 걸릴 정도로 흉악하게 일그러진 그레이 울프의 얼굴과, 위협적으로 으르렁대는 울음소리까지…….
정현에게는 몸서리칠 정도로 그리운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