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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아, 정말 고민이군. 만약 이것보다 더 좋은 무기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고를…… 응?”
혹시나 해서 지워 버린 장비들의 설명을 뒤적거리던 정현의 시야에 특이한 설명 창이 들어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새로운 아이템의 설명 창을 생성시켰다.

[파워 너클]
등급 : 매직(Magic)
계열 : 무기
재질 : 철, 가죽
제한 : 근력[3], 민첩[4], 지능[1]
공격력 : 8
옵션 : 특수상태 ― (공포 Lv. 2)
내구력 : 25(25)
설명 : 아스 마을의 염원을 해결한 모험가에게 주어지는 강력한 무기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강력한 철권(鐵拳)을 마주한 적은 엄습해 오는 공포에 몸서리칠 것이며, 일정 확률[10%]로 능력치가 하락할 것이다.

“찾았다!”
처음에는 손을 위한 방어구로 착각했다.
하지만 진면목을 확인한 이상 근접 박투를 즐기는 정현에게 이보다 좋은 아이템이 또 있을까?
“그래, 좋은 선택을 하였군. 자네의 늠름한 모습과 잘 어울리는 무구일세.”
띠링!
[파워 너클을 획득하셨습니다.]
[초보자 마을의 모든 에피소드가 완료되었습니다.]
[테라의 대륙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잠시 동안 어지럼증을 느끼실 수 있으니, 마음을 편하게 하시고 눈을 감아 주시기 바랍니다.]
화아악!
“윽! 매번 이렇다니까.”
아이템을 선택함과 동시에 새하얀 빛이 사방에서 폭사하며, 정현의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질겁하며 눈을 감는 정현은 이내 투덜거리며 빛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면서…….

* * *

우물, 우물!
―오늘도 즐거운 리얼(Real)의 세계를 여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하하하, MC 정우입니다. 시청자 여러분들, 그동안 안녕하셨을 것을 믿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정현은 잘 조리된 비프 커리를 입에 넣으며, 시선은 TV를 향했다.
너무 오랫동안 접속했던 탓에 강제종료 시스템에 걸렸고, 로그아웃이 된 다음부터는 운동을 다녀온 뒤, 오랜만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내용이 준비되었을까요?
―짜잔! 시청자 여러분, 채널을 고정시키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키득! 정우 씨가 그러니까 왠지 약장사 같네요.
―……시청률을 위해서 희생하는 저에게 자꾸 이러실 겁니까?
우걱, 우걱!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본론에 접어들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애간장을 태웠다. 이것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그들의 노하우일 것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정현이 식사를 끝낼 때쯤 MC 정우와 MC 화경의 만담도 종료되어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은 리얼에 존재하는 다양한 클래스들에 대한 특집 방송을 진행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저 혼자 이야기하고 리액션까지 하려니 어색하네요.
―에구구, 뭐 어쩌겠어요? 방청객 없는 프로그램을 맡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그럼, 오늘의 초대 게스트를 만나 볼까요? 저번에 나오신 게일 님에 못지않은 분입니다.
“흐음?”
정현의 눈빛에 흥미가 어렸다.
저번 방송 분량 때 등장한 유저 ‘게일’은 리얼의 홈페이지에 존재하는 공식 랭킹 5위의 유저였다.
자신보다도 앞서 있는 존재……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누군가의 등장을 기대하며 정현의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나오십니다. ‘디펜더’들의 영웅이자, 랭킹 7위의 유저이신 ‘아스’ 님이십니다.
―와아아아! 오늘 디펜더 님들의 시청률은 고정이겠군요.
“응?”
정현은 스튜디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30대 초반 정도의 건장한 남성보다 닉네임에 신경이 쓰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벗어나려고 아등바등했던 초보자 존에 위치한 ‘아스’ 마을과 같은 닉네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재미있는 우연인데.’
그러한 정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송은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정말 방패를 사용하는 각도와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요.
―확실히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레이드를 진행할 때, 디펜더가 없다면 성공 확률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스가 하나씩 던져 주는 유용한 팁에 감탄을 하며 칭찬을 쏟아 내는 MC들.
그렇게 서론이 끝이 나고, 본격적인 내용으로 진행하기 전 MC인 화경이 스태프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스튜디오의 중앙에 반투명한 이미지들이 생성되었다.
―자, 그럼 현재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을 주도하고 있는 클래스들의 분포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하하하, 표를 보시면 알겠지만 역시 대부분의 유저분들이 전투 계열의 클래스를 선택하셨습니다.
원형의 그래프로 표시된 클래스의 선택에서는 50%가 워리어나 소드 비기너, 로그 등과 같은 근접 계열의 유저들로 채워져 있었고, 20%를 프리스트나 메이지, 정령사와 같은 지능 계열의 유저들이 차지했다.
―전 궁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직업을 잘못 택한 건가요? 정말 힘들게 키웠는데.
―가상현실게임 리얼의 클래스 밸런스는 상당히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있는 클래스의 분포도는 사람들의 대중적인 취향에 맞는 클래스일 뿐이지, 적게 선택했다고 해서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잔뜩 실망해서 한숨을 내쉬는 화경에게 아스가 차분히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나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정우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져 왔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평소 아스 님이 가진 ‘히든 클래스’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흠…….
게임을 하는 유저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본 것이 바로 히든 클래스(Hidden Class)다.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 중에서도 유일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많은 유저들이 군침을 삼킬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능력까지 대단하지 않은가?
―확실히 히든 클래스는 대단합니다. 최상급의 유저라고 할 수 있는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의 유저들을 본다면, 그중 3분의 1이 히든 클래스를 보유한 유저들이니까요.
아스는 히든 클래스의 대표 주자로 알려진 광전사(狂戰士) 바칼과 듀얼리스트(Duelist) 카린을 예로 들며 MC들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만큼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모를 노력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헤에…… 어떤 노력인지, 궁금한데요?
일반적으로 히든 클래스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진 편이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인 리얼(Real)이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3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등장한 히든 클래스는 채 10개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알려진 정보도 적을 뿐더러, 게임을 서비스하는 인피니티(Infinity)사에서도 유저들의 정보 제공을 원론적으로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에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었다.
―누구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제가 아는 히든 클래스 유저는 성장에 대한 페널티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성장이요?
―말 그대로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보통 유저들의 200%라고 합니다. 파티 사냥이 기본인 리얼의 세계에서는 매우 불리한 시스템이죠.
―와아! 안 그대로 레벨업이 어려운데, 경험치가 200%나 더 필요하다면…… 에궁, 전 그냥 히든 클래스 안 할래요.
혀를 살짝 내밀며 귀여운 모습을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화경을 뒤로하고 아스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성장을 위한 노력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몇 십 배에 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냥 부러워하고 질투하기보다는 본인이 그만큼의 열정과 집념을 갖고 리얼에 임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말씀이십니다. 확실히 히든 클래스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최근에 있었던 랭킹 3위의 노멀 클래스를 가진 아칸 님과 4위 카린 님의 대결이 무승부로 끝이 난 것을 보면, 결국 노력하는 자가 최후의 승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든 멋진 결말을 이끌어 내고 싶은지, 정우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청산유수처럼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것으로 방송이 마무리를 하려는 분위기를 보이자, 정현을 TV에서 시선을 돌려서 캡슐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히든 클래스라…….’
애초에 정현은 클래스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다만, 전투의 긴장감을 가장 깊게 만끽할 수 있는 근접 전투 계열의 클래스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파워 너클을 생각하면 무투가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결정이 될 것 같은데.’
일반적인 근접 계열의 유저들보다 많은 움직임에 SP 소모가 상당하여 망설이긴 했지만, 본인의 전투 스타일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고, 준비된 무기까지 있기 때문에 현재 가장 유력한 클래스 후보라고 할 수 있었다.
“후, 너무 복잡한 것은 나답지 않지.”
정현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며 캡슐에 누워서 가상현실 세계로의 접속을 준비하였다.
위이잉!
전신 스캔(Scan)이 시작되고, 접속자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선들이 튀어나와 몸을 장악했다.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로그인의 단계를 거쳐서 어떤 컨덴츠를 이용하겠냐는 질문에 ‘리얼’이라고 대답한다.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당신에게 운명의 여신 ‘레아’의 축복이 함께하길…….
번쩍!
“후우, 드디어 도착했군.”
초보자 존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 마을에서 테라의 세계로 넘어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별개의 서버로 운영되고 있는 탓에 아스 마을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데이터’화되어서 옮겨지는 과정은 약 10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중간에 강제접속종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긴 카렌 왕국이겠지? 아직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캐릭터 생성 시 소속 국가를 카렌 왕국으로 정했던 기억이 난 정현은 그러리라 확신을 갖고는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우선은 클래스 선택부터인가?’
레벨 10이 되면 클래스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게다가 리얼에서는 전직을 할 때 자동적으로 향상되는 능력치와 분배가 가능한 보너스 포인트까지 주어지기 때문에 빠른 클래스 선택은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아이템 팝니다. 15레벨까지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철검 팝니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분께 팔겠습니다.”
“동물이나 몬스터들의 가죽 구매합니다. 소액으로 천이나 가죽 방어구들 수선해 드립니다.”
“고블린 사냥 파티원들 모집합니다. 현재 프리스트와 디펜더, 워리어 대기 중입니다. 메이지나 데미지 딜링 가능한 유저를 모십니다.”
‘응?’
게임 오버된 유저들이나 처음 대륙으로 이동한 유저들이 위치하게 되는 스타팅 포인트(Starting Point)에서 빠져나온 정현은 예상 밖의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렌 왕국은 유저들이 적은 곳이라고 들었는데.’
정현은 아직까지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의 인기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대한민국의 게임 시장을 제패하고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리얼은 아직까지 개척되지 않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유저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NPC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거지?’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서 호객 행위를 하는 유저들과, 사냥을 가기 위해 우르르 몰려다니는 유저들의 모습에 정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 막 본 대륙으로 이동한 정현과 다르게 오래전부터 활동을 했을 그들은 모두 경쟁자이자, 최고가 되기 위해서 뛰어넘어야 할 대상들이었다.
‘그렇다면…… 가볍게 인사를 해 주는 것도 좋겠지.’
꾸욱!
주먹을 꽉 쥐어 각오를 다진 정현이 굳은 표정으로 가장 가까이서 파티를 모집하고 있는 워리어 유저에게 다가갔다.
“응?”
워리어 유저는 열심히 파티원을 모집하다가 멀리서부터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오는 정현을 발견하고는 한 명 건졌다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잔뜩 굳어진 정현의 표정과 힘껏 쥐어진 주먹을 보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인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
그 순간, 정현이 급작스럽게 주먹을 뻗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