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6화


이른 아침부터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고, 야간 타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여 피곤에 떨면서도 의뢰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입술이 터져라 이를 악물었고 다른 일과들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정말 허무했지. 그렇게 끝날 줄은 몰랐는데.’
20살의 아직 차가움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이었다.
경찰에서 하나의 소식이 전해져 왔다.
정현의 행복을 모조리 앗아 간 범인이 쫓기고 있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을 하였다고 말이다.
그렇게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정현은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가 돌연 놀라운 선택을 했다.
전격적으로 선택한 특전사로의 군 입대가 바로 그것이다.
‘삶아 가기 위한 이유가 필요했어. 난 강해지고 싶었지. 어떠한 아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남자가…….’
자유가 통제된 생활과, 육체적으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강한 훈련을 통해 정현은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함께하는 동료들과 생활하고 경쟁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약간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지.’
특전사로서의 생활을 한 지 1년쯤 되었을까?
정현은 정부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몇몇 단체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에이스’들로 이루어진 ‘팀’의 참여를 말이다.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지. 변하고 싶었으니까. 더욱 강하고 뛰어난 사람으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속된 부대에서 최고로 평가받은 정현이었지만, ‘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아성을 구축한 검증된 능력을 갖춘 인원들이었기 때문에 실력과 경험적인 면에서 정현을 압도하였다.
‘정말 분했다. 그래서 노력했지. 입에서 단내가 나고, 너무 지쳐서 몇 번이고 기절할 정도로…….’
개인 능력의 향상뿐만이 아니라,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완벽을 기했다.
그 와중에 서로를 향해 생명을 맡기고, 가끔씩은 몸을 던져 상대방을 위하는 ‘팀’의 인원들과 마음을 놓고 이야기하며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 감정은 특전사의 동료들과 느끼지 못했지. 그래, 그들은 달랐어. 나와…… 같았으니까.’
동족(同族)!
정현은 그러한 느낌을 한 단어로 정의했다.
‘팀’의 인원들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같은 전쟁터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행동을 하며, 같은 생각을 한다.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그것이 익숙해져 버린 그들만의 세계…….
‘그래,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나?’
정현은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팀’에서 나와 군을 전역하고 난 뒤, 너무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정현은 수많은 아수라장을 겪으면서 그렇게 변한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방식으로 길들여진 정현에게 사회의 무능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여타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 의도하지도 않은 사이에 나는 주위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었고, 그들을 함부로 대했지. 그로 인해서 다툼이 생겼고, 나는 아무거리낌도 없이 그들을 폭행했다. 전쟁터에서의 무능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죄였으니까.’
가정이긴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몬 시의 광장에서 무투가 길드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한 해프닝도 그래서 벌어진 일이다.
무능한 인원에 대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은 정현에게 익숙한 일이었기에…….
‘사실을 알아도 별로 변하는 것은 없군.’
치료를 위한 방법 같은 것은 모른다.
그저 깨달은 사실에 수긍하며, 앞으로는 무의식적으로 벌어질 실수를 막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할 뿐이다.
“이 숲인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10분쯤 걸었을까?
정현의 시야에 맑고 깨끗한 시냇물 너머로 작은 규모의 숲이 들어왔다.
띠링!
[‘비밀의 숲’을 출입하려면 퀘스트인 ‘선택의 기로―Ⅰ’를 수행하거나 ‘증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출입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제한 없이 ‘비밀의 숲’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창 오픈!”

[선택의 기로―Ⅰ]
등급 : ―
설명 : 하몬 시의 무투가 길드를 담당하고 있는 ‘페일’은 재능이 있는 인재들을 아낀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면서도 그들에게 길드의 가입보다는 부탁을 받은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며, 비밀의 숲을 방문하도록 권유한다.
이제는 망각되고 있는 ‘전설’을 기억하며…….
조건 : 비밀의 숲 중앙의 오두막집 방문
보상 : 퀘스트의 연계[선택의 기로―Ⅱ]

‘일반적인 클래스 설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데. 혹시 이게 히든 클래스를 위한 퀘스트인가?’
며칠 전 강제접속종료를 당했을 시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간단한 길드 가입서 작성과 한 가지 퀘스트를 수행하면 클래스를 설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정현은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얕은 시냇물을 건너서 ‘비밀의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잠깐만요!”
“……?”
갑작스럽게 부르는 목소리만 없었다면 말이다.
“…….”
“…….”
정현은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인적도 뜸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파란 머리칼의 여성 유저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말을 거셨다면 용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말씀해 보시죠.”
“에…… 그게 저기.”
“…….”
묵묵히 응시하는 정현의 시선이 부담이었는지 살살 눈을 피하던 여성 유저는 긴장된 얼굴로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쉰 뒤에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유나라고 합니다.”
“네, 저는 테라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
유나는 당황했다.
마치 물건을 바라보듯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표정한 시선에 몸이 떨려 왔다.
‘이, 이게 아닌데.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했는데.’
처음 계획은 얻지 못한 히든 클래스에 대한 미련으로 다음 도전자들을 마음껏 괴롭혀 주는 것이었다.
자신은 엄청난 고생을 했으니, 그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하지? 으으…… 아씨! 몰라.’
하지만 정현의 냉소적이고도 날카로운 분위기에 눌려서 쉽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망신만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유나는 작전상 후퇴를 하기로 했다.
“저, 저기 퀘스트 잘 수행하세요.”
꾸벅!
“……?”
타다다닥!
결국 유나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자, 정현의 입에서 맥이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뭐야. 저건…….”
그 순간 정현은 자신의 성격이 지극히 정상이 아닐까,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 * *

“이곳인가?”
유나와의 어이없는 만남을 통해 패닉에 빠졌던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목적지인 숲의 중앙을 향해 이동하던 정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아담한 느낌의 오두막집을 한 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진행해야 하지?’
오두막집을 발견하였지만,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등의 시스템 메시지는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정현은 ‘방문’이라는 글자를 떠올리고는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걸음을 떼었다.
똑똑!
“계십니까?”
혹시나 함부로 들어간 것에 대하여 질책이 있을지 모르기에, 정현은 노크를 한 뒤 반응이 없자 조심스레 문을 열어서 안쪽을 살폈다.
“……없네.”
약간은 허탈해지는 느낌이었다.
잔뜩 기대하며 열어 본 선물 상자에서 꽝이라는 종이쪽지가 나온 기분이랄까?
‘페일이라는 NPC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 텐데. 퀘스트도 엄연히 존재하니까.’
30분 정도 기다렸지만 여전히 비어 있는 오두막과 평화로운 새소리가 울리는 숲 속의 광경에, 슬슬 시간이 아까워지는 것을 느낀 정현은 거칠게 머리칼을 긁적였다.
‘다시 돌아가 볼까?’
지지부진한 상황에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현이 하몬 시의 무투가 길드로 가려고 할 때였다.
“네 녀석은 누구냐? 이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띠링!
[퀘스트 ‘선택의 기로―Ⅰ’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퀘스트가 연계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퀘스트 창을 통해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퀘스트 창 오픈!”

[선택의 기로―Ⅱ]
등급 : ―
설명 : 강하다는 말은 무엇일까?
단순한 물리적인 힘? 권력? 재력?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준은 있다.
악(惡)을 심판하기 위해 신을 외면한 그는 원하지 않았지만, 대륙의 수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말한다.
‘그는 전설이다!’
조건 : 후계자의 자격
보상 : 퀘스트의 연계[선택의 기로―Ⅲ]

“…….”
“귀가 들리지 않느냐? 누구냐고 물었으면 당연히 대답이 나와야 할 터인데.”
꼬장꼬장한 말투로 정현을 다그치는 사람은 170cm도 되지 않을 법한 체격의 노인이었다.
새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칼은 지긋한 나이를 알 수 있게 해 주었고, 꼬챙이같이 바짝 마른 체격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정현의 기대감을 지우기에는 충분했다.
‘후,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복이 있다고…… 히든 클래스라고 해서 꼭 전투에 특화되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누가 봐도 닭 모가지 하나 제대로 비틀 힘도 없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정현은 하몬 시의 무투가 길드를 담당하는 NPC인 페일이 자신을 속였다고 투덜대며, 연신 자신의 정체를 물어오는 노인에게 불퉁하게 대답했다.
“잠시 들렸습니다. 이제 갈 테니, 신경 쓰지 마시죠.”
“에엥?”
기분이 상한 것을 숨김없이 드러낸 정현의 말투에 약간은 놀랐다는 표정으로 멈칫하던 노인은 이윽고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터벅터벅 정현을 향해 걸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버릇없는 애송이구먼. 흐흐흐, 그렇다면 연장자의 책임을 다할 수밖에…….”
“……?”
막 뒤돌아서 이곳을 벗어나려고 하던 정현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다가오는 노인으로 인해 다시 몸을 돌려서 원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저에게 용건이 있습니까, 노인장?”
“용건? 물론 있지.”
어느덧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남겨 두고, 서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의아한 기색의 정현에게 노인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선물을 주었다.
“이게…… 용건이다!”
휘리릭!
“……!”
정현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뇌가 인식과 파악을 할 뿐, 분석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정현의 상식으로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쿠웅!
“큭!”
그러다가 등판에서 일어난 거센 충격에 신음성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정현은 공중으로 던져진 것이다.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구는 신세가 될 줄을 어느 누가 상상했을까?
“버릇없는 애송이들은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지.”
“…….”
정현은 침묵했다.
아니, 입을 열어 대답할 정신이 없다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방금 전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