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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4화)
2장 입문 무당법문(2)


영취봉 정상에 세워져 있는 허름한 모옥.
사방이 각종 바위와 수풀 등으로 둘러쳐져 있어 미리 알지 않고선 절대 찾지 못할 그런 곳이었다.
“네 아버진 널 내게 부탁했다.”
현허는 자신 앞에 털썩 편안한 자세로 앉은 백천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백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리라고 생각했어요.”
“네 아버지하곤 어떻게 생활했느냐?”
“그냥 돌아다녔어요. 정한 곳도 없이 여기저기요.”
‘허어…….’
다소 버릇없는 백천성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돌아다녔다는 그의 말에 현허는 안타까운 듯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애비는 오래전 내게서 법술을 배웠다. 무당비전의 법술…….”
듣고 있던 백천성은 슬쩍 물었다.
“무당비전이라는 건…… 혹시 무당파와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현허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무당파와 우리 무당법문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선 우리 무당법문이 정통이라고 할 수 있지.”
무당법문.
생소한 명칭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파라고 하면 천하제일의 검파라고만 추앙하지. 그러나 관점에 따라선 우리 무당법문이 몇 배는 중요하고, 게다가 우리 무당법문이 없다면 무당파는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다.”
“우와…….”
듣고 있던 백천성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돌던 그였으니 무당파가 당금 천하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현허. 즉, 죽은 아버지의 사부로 추정되는 자의 말대로 하자면 무당법문 없이는 천하의 무당파도 금방 쓰러질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천성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그 무당법문의 무공이 무당파보다 뛰어난가 보군요?”
“무…… 무공…….”
현허는 멈칫거렸다.
백천성은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무당법문의 무공이 무당파가 자랑하는 십단금(十段錦)과 면장(綿掌)을 능가한다는 말이겠죠?”
무당파에는 수많은 장공이 있으나, 그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이 십단금과 면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면 태청무극검(太淸無極劍)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가 되는 건가요?”
태청무극검은 무당파에서도 장문인만 연성할 수 있다는 최고의 검학. 더불어 강호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열 가지 검 중에서 능히 수위를 다투는 검법이기도 했다.
“무량수불…….”
묵묵히 듣고 있던 현허가 갑자기 합장을 한 채 무겁게 도호를 외웠다.
“속세의 하찮은 무공과 본 무당법문의 법술을 비교하려고 하느냐? 무공이란 단지 근육의 힘을 키워 상대를 꺾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비유하자면, 무당파의 무공이 그저 일반적인 야산에 지나지 않다면 무당법문의 법술은 태산이라고 할 수 있는 터……. 법술이란 것은 위로는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고, 아래로는 지리를 통달하게 해 주며 만상의 도를 깨달아 궁극적으로 우화등선하게 해 주는 것이다.”
“아……!”
듣고 있던 백천성은 입을 쩍 벌렸다.
비록 그의 나이가 이제 열 살에 불과하나 사이비 도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화등선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우화등선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신선이 된다는 거잖아. 물론 나는 신선이 되는 것보다 그냥 잘 먹고 잘사는 게 좋지만…… 아무튼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겠지.’
우화등선이 아무리 대단해도 일단 죽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별로 내키지 않는 단어였지만, 아무튼 지금 눈앞에 있는 현허의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그러니까 그 대단하다는 무당법문의 법술을 자신에게 알려 준다는 말이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내게 이런 말을 할 리 없지. 아버지 감사합니다. 난 아버지의 유언을 순 이빨로만 생각했었는데…….’
다만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만상의 도를 깨닫는다.’라는 표현이 조금 식상한 감은 있지만, 어찌 되었던 천하가 인정해 주는 무당파보다는 한 끗발 높다는 말이 분명했다.
그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말이 없자, 현허는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녀석은 무당법문의 법술을 익힐 생각이 없느냐?”
사실 물어보나마나한 것이었다.
백천성의 나이는 불과 열 살, 아직은 어린아이에 불과한 그가 마냥 떠돌아다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사부님…….”
‘사…… 사부…….’
원칙대로 하자면 백천성의 아버지인 백묵겸이 현허의 제자였으므로 백천성은 그를 사조라고 해야만 했다. 그러나 현허는 그런 속례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었다.
“우리 무당법문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현허는 짐짓 엄숙한 낯빛을 했다.
“그것은 본 문에 가입하게 되면 절대 탈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탈퇴하게 된다면…… 그것은 곧 기사멸조의 중죄에 해당되는 터…… 죽어서 나갈 수밖에 없다.”
한 문파에 가입했다가 탈퇴하는 것이 어째서 기사멸조의 죄에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백천성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그럼 내게 어서 구배지례를 올리거라.”
“예.”
백천성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현허를 향해 아홉 번의 절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그는 현허를 만난 그날로 무당법문의 제자가 되고야 말았다.

* * *

“무당법문은 음양의 도로 앙천광신(仰天光身)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악한 술법의 귀도(鬼道)를 물리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터…… 천성아, 훗날 무당법문에 들게 된다면 비록 완전한 도사가 되지는 않을지라도 반드시 그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그동안 이곳에 걸어오기까지 꽤나 힘든 여정이었던 고로 백천성은 자리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고야 말았었다.
한마디로 늘어지도록 자다가 불현듯 깼는데, 그 순간에 갑자기 죽은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불길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게 꼭 이런 걸 말하는 것 같은데…….’
뭐라고 꼭 짚어서 말할 수는 없어도 왠지 찜찜하다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으면 밖으로 나오너라.”
그때 모옥 밖에서 그를 부르는 현허의 음성이 들려왔다.
백천성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렸으나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직 여명이 터오지 않은 새벽이었던 터라 주위는 매우 어두웠고,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불어오는 새벽바람은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현허는 모옥을 등진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 무게 잡는군. 아버지가 평소 무게를 엄청 잡는다고 했더니 사부한테서 배운 거로구나.’
백천성은 이른 새벽부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생각에 못마땅해했으나, 이내 현허 앞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현허는 천천히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성아, 너는 법술이 뭔지 아느냐?”
백천성은 멈칫거렸다.
“글쎄요. 한 번도 보지도 못한 거라…….”
그의 말에 현허는 엄숙한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본래 도라는 것, 아니 도인이라는 존재는 수련을 통해 우화등선하여 신선이 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마치 불문에 든 중들이 득도하여 부처가 되는 것처럼…… 무공이라는 것도 결국엔 도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선이 되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다.”
“…….”
“우리 무당법문의 법술 역시 그와 같다. 어쩌면 순수하다는 점에선 무당파의 무공보다도 더욱 뛰어나다고 할 수도 있는 터…… 천성아, 우리 무당법문의 법술을 배우기란 그리 쉽지 않고 고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천성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뭐든 쉬운 건 없잖아요.”
“…….”
그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현허는 매우 심각한 눈빛을 했다.
“그러한 각오라면 다행이로구나. 그런데 지금 넌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터…… 그것은 우리 무당법문의 법술이 매우 고차원적이며 형이상학적이고, 또한 철학적인 우주원리를 갖고 있는 정신적인 이능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
“사실 법술을 연성하기란 매우 힘들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법술을 수련하자면 한 오십 년 정도가 걸리지.”
“으…… 너무 길어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 십 년 안짝으로 법술을 대성할 속성 방법이 있기는 한데…….”
슬쩍 말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살피는 현허였다.
본래부터 편안한 길을 놔두고 어렵게 돌아가는 걸 선호하지 않는 백천성인지라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전 속성으로 하겠습니다.”
“조금 힘들 텐데…….”
“암만 힘들어도 오십 년 동안 하는 것보단 십 년 안에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훌륭한 선택이다. 그럼…….”
현허는 갑자기 뭔가 주문을 외우며 우수의 검지를 허공에 곧추세우고는 뭔가를 휙휙 그려 내어 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허공에서 새하얀 선들이 피어오르며 곧장 하나의 글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무겁다는 의미의 중(重).
마차 깜깜한 배경 위로 은가루가 뿌려졌다고 할까?
허공에 떠오른 글자가 은빛으로 반짝인다고 생각된 순간, 글자는 갑자기 밝은 빛을 쏟아 내더니 백천성을 향해 쏟아지는 게 아닌가?
“엇! 글자들이…….”
백천성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눈앞에 있는 현허가 손가락으로 그려 낸 글자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글자가 자신의 몸속으로 날아와 박히는 것이었다.
“아…… 아무렇지도 않네…….”
백천성은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흐…… 그게 바로 중압술(重壓術)이라는 거다.”
현허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앞으로 네가 연성하게 될 법술 중의 한 가지이지. 중압술에 걸리게 되면 네 몸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게 된다.”
“제 몸이 무거워진다고요?”
백천성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듯 현허를 보며 두 눈을 껌벅였다.
현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중압술을 풀어 주지 않는 한 네 몸은 마치 천 근 바위에 묶인 것처럼 엄청난 무게의 압박을 받게 된다.”
“그…… 그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잖아요……?”
“그렇게 중압감에 시달리게 되면 육체가 더없이 단단해진다.”
“하지만…… 그 법술이라는 게 부적을 만들거나 주문을 외우는 게 아닌가요? 아버지도 늘 정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어 보았겠지. 튼튼한 육체에서 건전한 정신이 나온다는 걸. 사실 법술이라는 게 엄청난 체력을 소비해야 하는 거다. 그게 어느 정도의 체력이냐고 묻는다면, 이 영취봉을 반나절에 열 번을 돌 수 있을 정도랄까.”
“그럼 조금 지루해도 오십 년짜리로 할게요.”
“휴우…… 진작 말하지 그랬냐. 이미 늦었다.”
“왜요?”
“그 중압술이라는 게 상당히 고차원적인 법술이라 한 번 펼치게 되면 최소 십 년은 가게 되는 거란다. 그러니까 싫든 좋든 중압술을 펼친 이상 해제는 십 년 뒤에나 가능하다.”
그 말대로 하자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싫어도 십 년 동안 중압술에 걸린 채 법술을 수련해야 한다는 말.
백천성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십 년 뒤에는 풀린다니 다행이네요. 쓰…….”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쓰파’라고 욕을 할 뻔하다가 마지막 말은 간신히 삼켰다.
사실 법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그인지라 중압술이라는 걸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오늘부터 무당법문의 법술을 수련하도록 하자.”
현허는 그를 보며 얼굴을 활짝 폈다.
“하지만 그전에 아침 식사부터 해야지. 쌀은 방에 있으니까 됐고…… 일단 밥을 하려면 물을 길어 와야 할 텐데, 영취봉 아래에 샘물이 있으니까 거기서 물을 길어 오면 되겠구나.”
그는 말하면 슬쩍 모옥 앞에 놓인 물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즉, 물을 길어 오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하긴 사부가 엄청난 절학을 가르쳐 주기 전에 고생을 시킨다는 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그러니까 이건 통과의례와 같은 거겠군.’
편하게 생각한 백천성이었다.
그러나 물통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는 당혹한 외침을 터트려야만 했다.
“어엇? 발이…… 무거워…….”
마치 발에 쇳덩이를 달고 있는 것처럼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엎어지면 코앞에 있을 물통이건만 불과 몇 발자국을 떼기 위해 식은땀을 비질비질 흘려야만 했다.
결국 간신히 물통을 움켜쥔 백천성은 헉헉 숨을 몰아쉬며 현허를 바라보았다.
“사부님…… 너무 힘들어요.”
현허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겠구나. 하지만 밥을 못 먹게 되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질 게다. 참, 걱정스러워 미리 말해 놓겠는데, 몰래 도망치면…… 정 힘들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평생 중압술에 걸린 채 살 수밖에 없다. 그럼 네가 물을 길어 올 때까지 나는 한잠 자고 있으마.”
탁.
그 말을 끝으로 냉큼 모옥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현허였다.
‘아, 쓰파…… 똥 밟았네.’
백천성은 오만상을 잔뜩 구겼다.
사실 그가 먼 기련산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조금 편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아버지가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사이비 도사였다 해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자신의 뒷일을 마련해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기대는 착각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은 계모에게 시달리는 불쌍한 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잖아. 무엇보다도 이 중압술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그때야 알았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걸.
물통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 왔다. 움터 오는 여명을 온몸으로 받으며 그는 팔십 먹은 노인처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갑자기 아버지 말이 떠오르더니만…… 재수 옴 붙었네.”
그가 물통을 들고 모옥 바로 밑에까지 왔을 때 전신은 땀으로 인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파리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