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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12화)
5장 법술의 후계자(2)


그날 이후, 백천성은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뼈다귀 괴물(?)로 환생한 늑대들의 공격.
그리고 놈들을 피해 해야만 하는 뜨개질.
사실 뜨개질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고로, 그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뼈다귀 괴물들의 공격은 실타래에서 뽑은 실을 코바늘에 걸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백천성이 처음 뜨개질 코바늘에 실을 건 것은 늑대들의 공격을 받고 난 지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처음으로 한 코, 한 코 뜨개질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나마 사부인 현허가 ‘처음부터 잘못 떴다.’라는 말에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난생처음 뜨개질을 해야만 하는 백천성이기에 뜨개질로 옷을 만든다는 건 청상과부가 기나긴 겨울밤을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고독을 참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우리 무당법문의 문훈은 중단 없는 끈기라고 할 수 있지. 그만두겠다면 문규대로 널 처벌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사부인 현허의 충고가 그로 하여금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만약 싫다고 했다간 그의 몸에 걸려 있는 중압술을 풀어 주기는커녕 십 년짜리를 추가로 한 방 박아 줄 공산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틀림없이 그러겠지. 그러고도 남을 사부니까. 쓰파…… 이건 완전 사기야.’
백천성은 연신 욕설을 터트렸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결계 안에서 뜨개질을 해야 했으며, 또한 뼈다귀 괴물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일 년이 지나서 그는 겨우 뜨개질로 옷 한 벌을 만들 수 있었는데, 사부는 단칼에 옷을 다시 만들 것을 지시했다.
“내가 입기엔 치수가 안 맞는구나.”
이게 백천성이 일 년 동안 간신히 뜨개질한 옷을 다시 떠야 하는 이유였다.
그것은 곧 더욱 힘든 뜨개질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집중력 훈련.
이것이 자신의 뒤를 이어 진정한 법술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이라고 사부는 늘 강조했다. 그리고 또 말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단 법이다. 그러니 열심히 수련하도록…….”
하지만 백천성이 다시 한 해를 넘길 때까지 결코 단 열매 맛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삼 년이 더 흘러갔다.

* * *

따뜻한 기운이 완연한 봄.
푸릇하게 자라나는 꽃들과 함께 여인의 방향과 같은 춘풍이 산들거리며 불어오고 있는 시각, 한 쌍의 남녀가 망태기를 어깨에 걸친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제 약관쯤 되어 보이는 사내는 검미에 관옥 같은 얼굴을 한 영준한 용모의 소유자였고, 그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여인은 청년보다는 한두 살 아래로 보이는 꽃같이 아름다운 용모의 소녀였다.
두 사람 모두 두 눈에서 쏟아지는 형형한 신광과 일신에 걸친 백의 무복 등이 무공을 연성한 무인들임을 알게 해 주었다.
“난데없이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요.”
소녀 운여청은 산을 오르며 아미를 잔뜩 찌푸렸다.
“사부님이 무슨 일로 우리들에게 차를 구해 가지고 오라고 하시는지 말이에요.”
“사매, 사부님께선 달리 생각이 있으실 것이다.”
남운룡은 자신의 사매를 달래듯 말했다.
“사부님께선 늘상 행동 하나하나에도 무리가 있으니, 생활 속에서도 무공을 높일 수가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게 지금 우리가 찻잎들을 따라가는 이유란 말인가요?”
“어쩌면 그럴지 모르지. 이렇게 산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체가 발달하게 되고, 거친 바위 등을 돌아다니기 위해선 자연 몸의 균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
“참나, 그러니까 사형이 다른 사형제들에게 무시당하는 거라구요. 무당파에서 일하는 일꾼들조차 사형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요? 무골룡이라고 부른다고요. 뼈도 없는 무당의 용 말이에요.”
무골룡.
그 말에 남운룡은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사실 그가 무당파 내에서 무골용이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의 나약한 성격 때문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성격이 매우 좋다는 의미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극도로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무식한 놈이 더 용감하다고,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사부인 무검자의 명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수행하는 터라 무골룡이란 호칭에 덧붙여 사부 명령 수행 종결자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도 따라붙어 있었다.
“사부님께서 지난 몇 년 전부터 차에 심취하였다는 건 알지만, 우리들에게 산에 나 있는 찻잎들을 따 오라는 건 너무한 게 아니냔 말이에요?”
운여청은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남운룡은 말을 더듬거렸다.
“사…… 사매, 어떻게 그런 말을……. 사부님이 평소 사매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셨는데…….”
운여청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했다.
“그럼 사형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냉큼 찻잎들을 계속 따 오실 거예요? 오늘은 그냥 한다 치고. 내일도, 모레도 오늘 같은 명령을 내리면 계속할 거냐구요?”
“그…… 그건……?”
“우린 대 무당파 제자예요. 고작 찻잎을 따기 위해 지난 십 년 동안 수행을 한 게 아니잖아요. 난 적어도 사형이 이러한 말을 사부님에게 할 줄 알았어요.”
“어찌 부모님 같은 사부님에게 따질 수 있겠느냐?”
“따지는 게 아니라 경우가 그렇다는 거잖아요? 그럼 사형은 사부님이 누군가를 죽이라고 하면 무턱 대고 그럴 작정이에요?”
“그건……?”
남운룡은 말문이 막힌 얼굴을 했다.
안 그래도 말주변이 없는 그인지라 애초부터 그녀의 말상대가 되지 못했다.
“무량수불…….”
마치 사부를 흉내 내듯 도호를 외운 그는 슬쩍 말꼬리를 돌렸다.
“그럼 다음엔 내가 사부님에게 지금 이 말을 꼭 드리도록 하마. 그러니 오늘은 서둘러 찻잎을 따서 돌아가도록 하자.”
“퍽이나요.”
운여청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꼭이라고 했지만, 입도 벙긋하지 못할 위인인 사형이라는 걸 잘 아는 그녀였다.
‘내일 또 찻잎을 따 가지고 오라면 냉큼 망태기 들고 나서겠지.’
그녀가 못마땅한 듯 연신 입술을 삐죽였다.
그때, 앞에서 걸어가던 남운룡이 나직이 소리쳤다.
“다 왔다.”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은 바위들이 듬성듬성 나 있는 가파른 비탈길이었다.
평생을 산에서 산 산사람들이라고 해도 쉽사리 오르지 못할 정도로 경사가 급한 장소인데, 바위틈 사이로 몇 개의 차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채 자라나 있었다.
“과연 사부님이 말씀하신 대로 괜찮은 차나무 같구나.”
남운룡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운여청은 콧방귀를 날렸다.
“괜찮은지 아닌지 사형이 어떻게 알아요? 차에 대해선 허접이잖아요. 하긴 사형은 허접이 아닌 게 없지만…….”
그녀의 퉁명스런 말에 남운룡은 멋쩍은 얼굴을 했다.
“아무튼 왔으니 어서 찻잎을 따 가지고 돌아가자.”
그는 이내 바람처럼 몸을 날려 비탈길 위에 세워져 있는 차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운여청 역시 교구를 움직여 근처에 있는 차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가지 위에 자라난 찻잎들을 따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멈춰.”
그들 뒤에서부터 나직하나 힘이 실린, 그러면서도 어딘가 고압적이란 느낌마저 주는 음성이 들려왔다.
흠칫 놀란 두 사람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청년.
그들 앞으로 낡은 백의를 걸친 스무 살가량의 청년이 그들을 꼬나보고 서 있었다.
반쯤 내린 머리카락이 뭔가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인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삐딱한 눈빛 등이 왠지 뺀질뺀질한 느낌을 주었다.
“정말 돌아 버리겠군.”
백천성은 두 사람을 보며 짜증난다는 눈빛을 했다.
“바람이 불면 행여 떨어질세라, 비가 오면 떠내려갈까 걱정으로 잠조차 못 자고 살피던 찻잎들이었지. 그런 금쪽같은 내 찻잎들을 훔쳐 가는 도둑들이 여기에 있었군.”
“도…… 도둑……?”
운여청과 남운룡은 멈칫거렸다.
“이봐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린 대 무당파의 제자들이에요. 그런데 초면에 도둑들이라니…….”
운여청이 앙칼지게 소리치자, 백천성은 손가락으로 그들 뒤에 있는 차나무들을 가리켰다.
“그 차나무들, 그러니까 보기에도 아름다운 소저와 같은 도둑년이 따신 찻잎들이 본 문의 소유물이니까.”
“……?”
갈피를 잡지 못할 말이었다.
보기에도 아름답다 운운하는 말에 이어지는 도둑년이란 과감한 단어 사용에 운여청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이게 당신 거라고요?”
백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뿐만 아니라 무당산에 있는 차나무들은 모두 본 문의 소유물이지.”
“무당산 전체에……?”
“물론…….”
남운룡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소. 어째서 무당산에 있는 모든 차나무들이 당신 거란 말이오?”
“내 게 아니라 본 문 거야. 그리고 그게 왜 우리 문파 거냐면 말이지. 우리 사부님이 몇 십 년 전에 씨앗을 뿌려 심어 놓았기 때문이지.”
“몇 십 년 전부터……?”
“사부님 말씀으로는 한 오십 년 되었다더군.”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요?”
운여청이 따지듯 묻자, 백천성은 슬쩍 눈꼬리를 찌푸렸다.
“그대들이 딴 차들이 뭔지 알고 있나? 그건 무이암차야.”
“무이암차…….”
“한 쌍의 바퀴벌레와 같으신 두 분 도둑들께서 마구 따신 찻잎이 바로 우리 사부님께서 수십 년 전에 무이산에서 씨앗을 가져와 이곳 무당산에 뿌려 놓고 오랫동안 관리하신 것들이지.”
“……!”
“차라는 게 날마다 오는 계란 장사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 차나무가 자라날 때까지 애지중지하며 아주 심혈을 기울여야만 하는 존재란 말이야. 그런데 그런 찻잎을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누군가가 쓱싹했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말이란 ‘어’와 ‘아’가 다르다.
당연한 말인데도 몇 마디 듣는 동안 왠지 두 사람은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신들을 ‘도둑’으로 단정하여 말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대 무당파의 제자들인 자신들에게 여전히 반말이다.
‘왠지 저놈 얼굴에 주먹을 날려 주고 싶네.’
이게 백천성을 처음 본 운여청의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