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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13화)
6장 북어와 여자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1)


“우…… 우린 몰랐습니다. 단지 그냥 산에 있길래…….”
남운룡은 어색한 헛기침을 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사실 그들이야 사부인 무검자가 장소를 알려 주며 따 오라는 명령에 따른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사부님이 시켰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 한번 쉽군. 살인을 해 놓고 실수였다고 말할 텐가?”
백천성의 입꼬리가 다시 한 번 비틀어졌다.
“아아, 좋아. 그게 실수였다고 해도 보상만 해 준다면 더 이상 따지지 않도록 하지.”
“보…… 보상……?”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힌 대가 말이야.”
그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맞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운여청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돈을 달란 말인가요?”
“달라는 게 아니라 당연히 그대들이 줘야 하는 거야. 가지가 있는 인간이라면 말이야.”
“가지가 뭐죠? 나뭇가지를 말하는 건가요?”
“싸가지…….”
만약 그녀에게 상대를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 버릴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땅 구덩이 속에 파묻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짜증나게 생긴 놈이 말하는 것도 짜증나네. 돈을 달라고? 어디 받아갈 수 있나 보자.’
운여청은 이를 악문 채 상대를 노려보았다.
“난 믿지 못하겠어요. 무당산에 무당파 말고 또 다른 문파가 있다는 건 이제껏 들어 본 적도 없어요.”
“못 들어 봤다면 지금부터 들어 보면 될 테니 문제는 없겠군. 그리고 첨부해서 설명하자면 본 문의 역사는 매우 유구하면서도 깊지. 이 무당산에 자리 잡은 것도 무당파보다는 몇 배 오래되었고…… 그러한 기득권대로 설명하자면 무당파는 본 문 옆에서 더부살이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지.”
한 마디로 무당파가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땅을 무단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남운룡과 운여청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했다.
‘일대신인인 장삼풍 조사께서 이 무당산에서 개파한 이래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무당파다.’
‘그런 우리 무당파가 더부살이를 한다고…….’
만약 지금 이 말을 그들의 사백이자 장문인인 무상자가 들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게 틀림없었다.
“흥!”
운여청은 냉랭히 코웃음을 날렸다.
“감히 우리 무당파를 모욕할 생각이란 말인가?”
백천성은 힐끗 그녀를 응시했다.
“그런 생각을 내가 왜 해? 단지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지.”
“사실은 네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겠지. 무당파보다 역사가 깊다는 네놈의 말도 믿을 수 없지만, 네놈의 사부가 무당산 전체에다 차나무 씨앗을 몇 십 년 전에 뿌렸다는 말 역시 엉터리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사매…….”
운여청이 분노해서 소리치자, 옆에 있는 남운룡이 다소 당황한 듯한 얼굴을 했다.
사실 운여청은 일부로 화를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차 하면 정말로 그들이 찻잎 값을 물어 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그저 입도 못 놀리게 박살 내 버리는 게 최고지.’
즉, 묵사발 내 버리면 지가 어쩔 거냐는 식이었다.
백천성은 혀를 찼다.
“과연 사부님께선 탁월한 선견지명을 가지셨군. 틀림없이 찻잎들을 훔쳐 가는 놈들은 대체적으로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놈들이라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면 한 가지밖에 없겠구나.”
운여청은 냉소했다.
“뭐가 한 가지밖에 없다는 거지?”
“버릇 나쁜 아이들에겐 매가 약이라는 것…….”
백천성은 손을 들어 보였다.
“그것보다는 내 주먹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녀는 버럭 소리치더니 번개같이 그를 향해 몸을 날려가며 이내 주먹을 휘둘렀다.
달리 특별한 권법은 아니었지만, 이미 무공이 일류 수준에 이른 그녀였기에 실로 불가사의할 정도의 빠른 속력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스치기라도 한다면 바위조차도 그래도 박살 날 것만 같았다.
“과연 그럴까?”
여유로운 음성과 함께 백천성의 몸이 마치 바람에 밀린 가랑잎처럼 슬쩍 뒤로 밀려나는 것이었다.
마치 아무런 무게감조차 없는 듯한 움직임.
그는 뒤에 있는 나무의 나뭇가지 하나를 뚝 꺾어 손에 쥐더니 히죽 웃는 것이었다.
“허접하게 배운 무당파의 무공으로는 좀 힘들 것 같군.”
휘익!
말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곧장 운여청 앞으로 쏘아져 갔다.
운여청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신형을 옆으로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백천성의 손에 쥐어져 있는 나뭇가지가 뻗어 나오며 그녀의 왼쪽 어깨를 쿡 찔러 움직임을 제지했다.
이어 재빨리 그녀 뒤로 돌아간 백천성은 번개같이 나뭇가지를 휘둘러 그녀의 엉덩이를 가격했다.
철썩!
“음…….”
운여청은 엉덩이로부터 느껴지는 가벼운 충격에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아프다는 생각보다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 나뭇가지는 마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속도로 그녀의 전신 곳곳을 때리는 것이었다.
철썩철썩…….
가히 불가사의할 정도의 빠름.
운여청은 맞으면서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전신을 어루만지듯 때려 대는 나뭇가지 세례에 뾰쪽하게 대항할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피할 수도 없었다.
‘왼쪽으로 피하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회초리는 오른쪽에서 날아오고 있다. 도무지 피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나뭇가지를 맞을 때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을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따끔할 정도인데, 같은 부위를 계속하여 맞다 보니 어느새 전신이 얼얼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문제는 백천성의 나뭇가지가 노리는 곳은 주로 그녀의 엉덩이라는 점이었다.
엉덩이.
여자에게는 가슴과 더불어 부끄러울 수 있는 부위였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그녀의 탱탱하게 오른 엉덩이만을 집중하여 가격하자 그녀의 얼굴을 잘 익은 홍시처럼 변해 버렸다.
“이…… 이…….”
그녀는 본래 ‘변태 같은 자식!’이라고 욕을 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남운룡이 소리쳤다.
“사매, 내가 구해 줄게!”
그는 지체 없이 신형을 날려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라.”
그의 쌍수가 칼날처럼 세워진 채 백천성을 향해 뿜어져 날아갔다.
파쐐애애액…….
“느리군. 하품이 나올 정도로…….”
백천성은 희미하게 웃으며 나뭇가지를 종횡으로 흔들어 남운룡이 펼쳐 낸 수영들을 나뭇가지 끝으로 꾹꾹 찔려 파괴해 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물방울들을 바늘로 콕콕 찍어 터트리는 것 같았는데, 곧장 나뭇가지는 남운룡의 머리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빠악!
“커억!”
남운룡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그게 시작이었다.
백천성의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가 춤추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남운룡의 몸은 잘 달궈진 불판 위에 올려진 메뚜기처럼 톡톡 튀어 올랐다.
퍼억! 퍼퍼퍽!
“으악!”
빠바바박!
“크윽…….”
남운룡의 입에선 다양한 비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형…….”
운여청은 안타까운 외침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그 외침보다 더욱 안타까운 비명을 질러야만 했는데, 그것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였다.
나뭇가지.
백천성의 손에 쥐어져 있는 나뭇가지가 전지전능한 신의 권능처럼 남운룡뿐만 아니라 그녀의 몸까지 아낌없이 두들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남운룡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맞는 강도였다.
빠각! 빠박!
나뭇가지에 맞는 남운룡의 몸에서 나는 소리가 이랬다면, 그녀의 몸에선 다소 조용한 소리가 들려왔다.
찰싹찰싹…… 탱탱……!
그것은 백천성이 나뭇가지로 남운룡의 전신을 무차별하게 두들겨 팼다고 한다면, 운여청에게 선별적으로 때렸기 때문이었다. 주로 엉덩이만…….
사실 두 사람이 백천성에게 정신없을 정도로 얻어맞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움직임이 그들이 못 잡을 정도로 빠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느 면에선 두 사람에 비해 느리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다만 더디게 휘두르는 나뭇가지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번개같이 움직여 그들의 몸을 후려쳤는데, 마치 음악에서 말하는 엇박자처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눈에 뻔히 들어오는 나뭇가지에 계속 맞을 수밖에 없다.’
‘보면서도 피하지 못하고 당하다니…….’
백천성이 휘두르는 나뭇가지의 움직임은 극히 완만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느릿하게 움직이던 나뭇가지가 그들 눈앞에 이르러선 거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
나뭇가지가 오른쪽으로 날아오는가 싶으면 어느 틈엔가 왼쪽 옆구리에 틀어박히고,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다 싶으면 복부에 틀어박히는 등.
‘우…… 우리가 이렇게 맞다니…….’
‘사부님에게도 몽둥이로 맞아 본 적이 없는데…….’
운여청과 남운룡의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나뭇가지의 몽둥이찜질 세례에 정신마저 혼미해져 갔다.
“우리 문파의 유일한 재산이 바로 차에서 나오는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그대들은 본 문의 전 재산을 갈취한 거나 다름없어.”
백천성은 여전히 맹렬히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여유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얼마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은자 백은 줘야지. 백 냥, 어때? 그 정도면 아주 적당한 합의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은자 백 냥.
이 돈이면 사 인 가족이 적어도 이 년 이상은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액수다. 그러니 그의 말처럼 절대 적정한 합의금이라고 할 수 없었고, 어느 면에선 바가지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여청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리쳤다.
“아악! 줄게요! 돈 준다고요!”
옛말에 이르길, 북어와 여자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말을 듣는다고 했다.
긍지 높은 대 무당파의 장로인 무검자의 제자, 운여청은 옛말이 그르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품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야광주 한 알을 백천성에게 건네주었다.
사실 야광주의 가격은 엄청난 것이어서 적어도 은자 백 냥의 몇 배는 받을 수 있을 정도였으나 운여청은 아낌없이 주었다.
‘더 이상 맞았다간 내 엉덩이가 말 궁둥이처럼 부풀어 오를지도 몰라.’
이것이 그녀가 생면부지의 인물인 백천성에게 구타당하고 야광주를 준 이유였다.
그렇게 비싼 야광주를 받아 든 백천성은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이게 제법 돈이 나간다구? 설마 장물은 아니겠지? 아무튼 좋아. 돈을 주었으니 우리들 사이의 일은 원만하게 합의를 본 셈이로군. 기분이니까 이걸 선물로 주지. 아주 특별히…….”
툭…….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운여청과 남운룡의 눈앞으로 뭔가 떨어졌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도자기였다.
“내가 직접 만든 차이니까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시도록 해. 그럼 간다.”
그 말을 끝으로 휑하니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백천성이었다.
남운룡과 운여청.
그들은 백천성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아아…… 우리가 목숨을 구걸하다니…….’
‘그것도 야광주 한 알을 바쳐 가면서…….’
두 사람에게 있어 일진이 사납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날이었다.
몽둥이 찜질당하고 야광주도 빼앗긴 날…….
그리고 평생 동안 오늘의 일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할 것이기도 했다. 대 무당파의 제자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인물에게 죽도록 맞은 날이니까.

* * *

일향원.
무당산 아래에 가장 번화한 마을을 꼽으라고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오원일 것이다. 그 오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일향원이라 불리는 다원(茶院)이었다.
백천성.
그가 모습을 드러낸 건 일향원의 정문 앞이었다.
“어서 오세요.”
일향원의 최고 다녀 중 한 명인 청앵이 그를 보며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원주님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청앵이는 갈수록 더 예뻐지는걸. 어때? 한번 시간 내는 게…….”
“호호……. 백 도사님은 여전하시군요. 절 따라오세요.”
청앵이는 백천성의 느끼한 농담이 싫지 않은 듯 눈을 흘기며 몸을 돌렸다.
백천성은 뒤따라가면서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를 바라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전보다 더 커졌군. 빵빵하게…… 꿀꺽…….’
왜 침이 저절로 삼켜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드득.
“드시지요.”
청앵이 내실 문을 열어 주자, 백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기보다는 분위기 있게 꾸며진 내실 안엔 붉은 홍의를 걸친 다소 뚱뚱한 체구의 중년인과 다소 마른 체격에 화려한 금삼을 걸친 칠십 대 인물이 원탁을 마주한 채 앉아 있었다.
홍의 중년인은 안으로 들어선 백천성을 보며 반색했다.
“어서 오게.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네.”
그는 바로 일향원의 원주인 전석이었다.
“조금 늦었네요.”
백천성은 그가 미리 준비해 놓은 자리에 가서 털썩 앉았다.
전석은 그의 거침없는 모습에 멈칫했으나 이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백 도사는 도인이라 속세의 예의에 구애받지 않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야…….”
전석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금삼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하지만 자네가 말한 정도의 차가 아니라면 난 정말로 괜찮지 않아질 걸세.”
“무…… 물론입니다. 노야…….”
“…….”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던 백천성은 그제야 흥미가 선 눈빛으로 금삼 노인을 바라보았다.
‘욕심 많은 전석이 노야라고 했으니, 저 늙은이가 황 노야로군.’
황 노야.
그는 이 오원에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고, 오원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반 이상은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객점에서 술과 음식을 먹고, 그가 관여하고 있는 대장간에서 각종 농기구 등을 사며, 또한 그의 이름으로 된 각종 영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등. 황 노야는 적어도 오원에 있어선 단순히 거부의 차원을 넘어선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