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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15화)
6장 북어와 여자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3)
“과연 그럴까?”
처러러럭…….
갑자기 흑운 속에서 여러 조각의 검은 점들이 뚝뚝 떨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흡사 검은 공과 같은 흑운 조각들은 순식간에 맹렬한 기세로 무검자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과우우우우…….
“그 정도 눈속임으로는 본 도를 어찌할 수 없다!”
무검자는 나직이 외치며 우수를 기쾌하게 내뻗었다.
구궁장.
무당파의 절학 중의 하나인 구궁장이 그의 손에서 펼쳐지자, 아홉 개의 수영이 연속적으로 떠오르며 흑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조각들을 그대로 후려쳐 갔다.
퍽! 퍼퍼퍽!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검은 조각들을 날려 버린 그는 번개같이 흑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번쩍!
어느 틈엔가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검이 손에 잡힌 채 눈부신 검광을 토했다.
불가사의할 정도의 빠른 쾌검.
“크크…… 그 정도로라면 실망이로군.”
흑운 속에서 사악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흑운 속에서 이번엔 좀 더 큰 구체가 튀어나왔는데, 그것은 순식간에 얇게 퍼지며 마치 방패와 같은 형상을 하더니 무검자가 날린 일 검을 튕겨 내는 것이었다.
쿠왕!
검은 구체와 검이 충돌하며 엄청난 폭음을 일으켰다.
‘으윽…….’
무검자는 마치 철벽을 후려친 듯한 충격에 내심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지체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파츠츠츳…….
넘실대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검기들. 일 검 하나하나에는 천 근 바위라도 그대로 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한 엄청난 공력이 실려 있었다.
“고작 이 정도가 무당제일검의 솜씨란 말인가?”
흑운 속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어 이번엔 흑운이 크게 요동치더니, 거센 폭풍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쑤와아아아아…….
폭풍과 검기가 연속적으로 충돌했다.
푸콰앙…… 콰앙…….
과르르릉…….
천번지복할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 속에서 예의 음산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이다! 죽어라!”
휘우우욱…….
흑운 속에서 더욱 검은 두 개의 점이 천천히 튀어나왔다.
그것이 한 쌍의 손이라는 것과 지독히도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어 언뜻 보자면 검은 불꽃과도 같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바라보던 무검자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구유명옥수(九幽冥玉手)!”
인간이 만들었으되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금단의 마공 구유명옥수!
마치 허공을 부유하듯 느릿하게 다가오는 한 쌍의 육장은 순식간에 그의 눈앞까지 날아왔다.
과우우우…….
“태청무극!”
무검자는 혼신의 공력을 끌어 올며 검을 앞으로 곧장 내뻗었다.
화아악…….
그의 검이 노을빛과 같은 붉은 검광에 휩싸인 채 곧장 한 쌍의 손을 향해 날아갔고, 두 개의 서로 다른 기운은 그대로 충돌했다.
사실 흑운 속에서 구유명옥수가 뻗어 나오고 무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뻗기까지 걸린 시간은 낙뢰가 대지 위에 떨어진 시간을 수만 분의 일로 나눈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쿠와아아아앙……!
콰앙…… 후아아앙……!
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크크……. 생각보단 제법이구나……. 좋아, 오늘은 그만 물러나기로 하지.”
충격 때문에 크게 흔들리던 흑운이 스륵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다음엔 네놈뿐만 아니라 무당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말이 끝났을 땐 이미 사이한 음성은 삼십 장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크으윽…….”
그제야 무검자는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었다.
“내…… 내가 지다니……. 비록 일 검뿐이지만…… 태청무극을 펼치고도 내가 이런 지독한 내상을 입다니…….”
그의 신형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그것은 그가 지독한 내상을 입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사제!”
바로 그때, 한 줄기 백영이 그의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선풍도골의 신태에 배 밑까지 드리운 새하얀 수염과 도관을 쓴 노도인. 바로 무검자의 사형이자 현 무당파의 장문인인 무상자였다.
무상자는 그를 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싸우는 소릴 듣고서 달려왔는데…… 설마 사제가 부상을 입었단 말인가?”
무검자는 그를 보며 말라버린 입술을 달싹거렸다.
“구…… 구유…… 명옥…… 수…….”
쿠당!
그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채 앞으로 꼬꾸라져 기절하고야 말았다.
“구유명옥수…….”
무상자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엄청난 충격 때문이었다.
“서…… 설마 그 악마가 다시 되살아났단 말인가……?”
그의 얼굴은 쓰러져 있는 무검자의 낯빛만큼이나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 * *
룰루랄라…….
길을 걸어가는 백천성의 입에선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일진이 괜찮은 날이었다.
그동안 사부로 인해 쌓였던 화를 어리버리한 무당파 제자들에게 풀어 버렸으며, 또한 비싼 야광주까지 빼앗았다.
게다가 황 노야에게서 은자 오백 냥짜리 전표를 뜯어냈으니, 정말로 보람찬 하루라고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순순히 받아 냈단 말이야. 뭐, 그 늙은이가 꿍꿍이속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황 노야의 꿍꿍이속은 틀림없이 자신에게서 밀운룡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내 뒤를 따라오는 놈도 없었겠지.’
백천성은 아까부터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은밀히 따라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히진 않았지만, 무당법문의 후계자로서 지난 십 년 동안 수련한 법술로 인해 남다른 기감을 가지게 된 그였다.
‘조화일심태극결을 수련한 뒤론 귀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날 속일 수는 없는 일이지.’
사실 그러한 성과는 모두 사부 덕분(?)이었다.
사부의 악독할 정도로 혹독한 수련으로 인해 조화일심태극결뿐만 아니라 각종 법술이 비약적으로 늘었는데, 그로 인해 발달한 건 기감만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빨리 움직이고, 남들이 못 보는 것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게 모두 법술을 수련했기 때문이지.’
무당법문의 근간인 법술은 무공이 아니었다.
다만 세상을 어지럽히는 귀신들을 처단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는 무공을 연성한 무인들에게도 통용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여기까지 생각할 때였다.
“네놈이 백천성이지?”
갑자기 바로 앞에서부터 차가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흑의 장한들.
도합 열 명의, 매우 건장한 신체의 장한들이 그 앞을 가로막은 채 노려보고 서 있었다.
한눈에 척 봐도 힘깨나 쓸 것 같은 장한들. 게다가 한 손에는 무식할 정도의 커다란 도 등을 쥐고 있어 흉흉한 기세를 풍겼다.
백천성은 그들을 보며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누구지?”
장한들 중 돼지 얼굴을 한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우린 흑풍단이다. 난 단주인 저육이고…….”
백천성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흑풍단이라,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군.”
흑풍단.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이들은 오원 일대에서 활약하는 해결사들이었다. 돈만 준다면 무엇이든 처리하는 녀석들, 한마디로 동네 양아치인 것이다.
“그런데 왜 날 가로막은 거지?”
“흐흐……. 가짜 도사 놈에게 많은 은자를 주고 엉터리 부적을 사신 분들께서 네놈 몸의 일부분을 가지고 와 달라고 하더군.”
“그건 좀 곤란한데…….”
“별로 곤란할 것도 없어. 넌 그저 가만히 있으면 우리들이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저육은 그를 보며 누런 이를 드러낸 채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손에 쥐고 있는 커다란 칼을 흔들어 보였는데,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는 칼날은 단순히 위협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뜻밖에도 뒤쪽에서 차가운 말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저육 등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소녀.
대략 십팔구 세 정도 되었을까? 반듯한 이마와 초승달처럼 휘어진 아미, 유리알처럼 투명한 피부 등이 얼음 조각을 깎아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치렁치렁한 수발을 잘록한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는 소녀가 걸치고 있는 옷이 칠흑처럼 검은 도의라는 점이었다.
‘도의? 그럼 도사란 말인가? 물론 여도사라는 게 있긴 하지만…… 그런데 새까만 도의는 처음 보는걸. 게다가 꽤나 쌀쌀맞은 모습인걸.’
백천성이 흥미로운 눈빛을 할 때, 소녀는 차가운 음성으로 나직이 외쳤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꺼지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다.”
“……?”
저육 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계집이 뭐가 어쩌고저째?”
“흐흐……. 볼 것도 없이 저년부터 쓱싹하고 해치워 버립시다.”
“어쩔 수 없는 놈들이로군.”
소녀는 두 눈에 경멸의 빛을 떠올린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천천히 투명하게 빛나는 옥수를 들어 올렸는데, 그녀의 손에는 기이하게도 검은 기운들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악자필멸(惡者必滅)…… 이것이 바로 명왕(冥王)의 뜻일지니…… 죽어라.”
그녀의 옥수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어려 있던 검은 기운들이 흡사 밤안개처럼 퍼져 나겨 순식간에 저육 등을 비롯한 흑풍단 전체의 목을 휘감는 것이었다.
쓰으으으으…….
“커억…….”
“크윽…….”
그들은 일제히 단말마를 터트리더니 이내 바닥에 꼬꾸라져 죽고야 말았다. 실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고 검은 안개를 쏘아 보내 흑풍단들을 몰살시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저 숨 한 번 들이킬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
백천성은 너무도 돌연한 사태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모두 죽이다니…….”
소녀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살아서 해가 되는 놈들이었으니까. 죽어 주는 게 세상에 더 이득이 되겠지.”
실로 무미건조한 음성.
이어 그녀의 신형이 유령처럼 그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엇!”
움찔 놀란 백천성이 이내 손을 뻗으려고 했으나, 이내 그의 팔목은 그녀의 손에 잡힌 뒤였다.
그녀는 그의 팔목을 잡은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역시 생각대로 맥이 고르고 안정되어 있군.”
그녀는 팔목을 잡은 채 그의 전신을 훑어보더니, 다른 한 손으로 그의 가슴과 복부 등을 만지는 것이었다.
“몸이 따뜻하다는 것은 아직 동정이라는 의미……. 그렇다면 피가 깨끗하다는 말이 되겠지.”
여기까지 중얼거린 그녀는 힐끗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 싫은데…….”
백천성은 삐딱한 눈빛을 했다.
느닷없이 살수를 펼쳐 흑풍단들을 모두 죽인 정체불명의 소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을 했다.
“선택은 내가 한다. 넌 그냥 도움만 주면 돼.”
그녀는 말과 함께 앞쪽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엷게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앞을 가릴 정도로 어둡게 변했다.
“이 암흑연이라면 널 은밀히 지켜보고 있는 놈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은 나직해 가까이 있는 백천성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어 그녀는 그의 손을 잡은 채 허공으로 신형을 떠올렸다.
“결코 목숨을 해치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그러니 날 따라가야만 한다.”
휘익!
그녀는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갔고, 백천성은 그녀에게 끌려가며 악을 썼다.
“으앗! 난 싫어! 싫다구! 이 계집애야!”
그들이 사라지고 잠시 후.
시야를 가리고 있던 검은 안개가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졌다.
흑의인.
바로 그 자리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흑의로 감싼 흑의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낸 채 서 있었는데, 바로 황 노야의 명을 받고 백천성의 뒤를 은밀히 따르고 있던 흑암이었다.
“느닷없이 다른 자가 끼어들어 일을 망쳤군.”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백천성 등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내 시야를 가릴 정도의 사술을 쓰다니…… 설마 모산파 인물은 아니겠지. 모산파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는데…….”
두 개의 뻥 뚫린 구멍 사이로 흘러나온 그의 눈빛은 곤혹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황 노야의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돌아갈 수밖에…….”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더니 이내 소리 없이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조금 전 나타났던 소녀의 기이한 술법도 놀라웠지만, 지금 보여 준 흑암의 신법 또한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단순한 호위답지 않은 무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