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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18화)
7장 후계자 인증하기(3)
‘그가 만수혈마라면 우리는 결코 그의 적수가 될 수 없다…….’
갑자기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답답해진 남운룡이었으나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눈에도 폐가나 다름없는 도관 안, 아마도 도관이 번창했을 무렵에는 귀한 물건 등을 보관해 두었을 듯한 밀폐된 공간에 자신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저자의 이목을 속이고 도망칠 수는 없겠구나. 유일한 출구는 귀호가 막고 있으니…….’
그의 그런 생각을 짐작한 듯 만수혈마는 날카로운 웃음을 날렸다.
“크크크……. 어리석은 놈! 감히 나 만수혈마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어서 내게 와서 피를 바쳐라!”
그는 양손을 그들을 향해 쭉 뻗었다.
쓰우우우…….
그의 손에서부터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오며 두 사람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사…… 사형…….”
운여청은 안간힘을 썼으나 이내 그의 손으로 조금씩 끌려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남운룡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당하진 않는다!”
막 그의 손에 이마가 닿을 순간, 남운룡은 발작적으로 오른쪽 발을 기쾌한 속도로 걷어찼다.
무당파 절학 중의 하나인 운형각이었다.
그것은 만수혈마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불의의 공격이었기에 흠칫 놀라며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남운룡은 재빨리 우수를 검처럼 세워 현청검법을 펼쳐 갔고, 운여청 역시 양손으로 유수장을 펼치며 만수혈마의 주요 요혈들을 노려 갔다.
파츠츠츳…….
우르릉…….
사실 두 사람이 사남매간이고, 오랫동안 같이 수련해 온 터라 불시에 펼치게 되었으나 빈틈없는 공격을 보였다.
그러나 만수혈마는 피식 실소를 날렸다.
“고작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는 가볍게 일 장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두 개의 혈룡들이 떠오르더니 곧장 그들의 가슴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펑! 퍼펑!
“으음…….”
“커억…….”
그들은 이내 바닥에 나가떨어지며 울컥 한 모금의 피를 토해 냈다.
“이런 피를 토하다니…… 그 아까운 피를…….”
만수혈마는 그들을 보며 아까운 듯 혀를 찼다.
“더 이상은 네놈들과 놀아 줄 시간이 없다. 네놈들의 피는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그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후와악…….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거센 기운이 쏟아져 나오며 그들의 신형을 잡아당겨 갔다.
바로 그 순간.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건가?”
어느 틈엔가 귀호의 등 뒤에서부터 한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새하얀 백의를 걸친 청년, 바로 백천성이었다.
크왕!
귀호는 난데없이 사람이 나타나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포효성을 내질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백천성이 빠르게 귀호의 앞으로 다가와 소리쳤다.
“시끄러! 네놈은 인증을 해야 하니까 저기 가서 처박혀 있으라구.”
그는 품속에서 누런 황지를 꺼내 귀호에게 홱 던졌다.
슈욱…….
부적은 비수처럼 날아가더니 귀호의 목에 찰싹 달라붙는 것이었다. 그러자 귀호가 흡사 거대한 고무공에 맞고 퉁 튕겨지기라도 한 듯 뒤로 날아가더니 벽에 착 달라붙어 꼼짝달싹도 못하는 게 아닌가!
‘크와아앙……!’
귀호는 벽에 등이 달라붙은 채 사지를 버둥거리며 울부짖었으나, 그것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다…… 당신은…….”
남운룡과 운여청은 느닷없이 나타난 백천성을 보며 반색을 했다.
아차 하면 죽을 순간에 출현한 그로 인해 위기를 넘겼으니, 죽은 할아버지가 무덤을 열고 살아온다고 해도 그보다 반가울 수는 없었다.
“아무튼 또 만나게 되어 반가워.”
백천성은 그들을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만수혈마는 낯빛을 굳혔다.
“귀호가 꼼짝 못한다는 건 심령으로 놈을 조정하고 있는 나의 힘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뜻…… 나 만수혈마조차 모르는 술법이 존재한단 말인가?”
백천성은 피식 실소했다.
“이봐, 늙은 뼈다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술법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개나 소나 다 알 정도면 그건 술법도 아닌 거지.”
“느…… 늙은 뼈다귀…….”
“아아…… 어쨌든 좋아. 난 빨리 일 끝내고 인증해야 하니까. 조금 서두르지.”
“뭘 서두른단 말이냐?”
“늙은 뼈다귀가 그다지 좋게 살아온 것 같지도 않고, 하는 짓도 개판인 것 같으니까 일찍 이 세상 하직시켜 주겠다는 말이지.”
그는 말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죽여 주겠다는 말이었다.
만수혈마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다.
자신이 누군가? 자기 이름이면 우는 아이들도 울음을 뚝 그친다는 공포의 존재이며, 천하가 인정하는 대마두였다.
“이마빡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놈이 죽는 게 소원이라면…… 헉!”
갑자기 그의 입에서 바람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앞에 서 있던 백천성이 어느 틈엔가 번개같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늙은 뼈다귀…… 이빨은 죽고 난 뒤 염라대왕과 하라구.”
휘익…….
달려들던 그의 몸이 갑자기 흔들리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서너 개로 쭉 갈라지는 것이었다.
“허억…….”
만수혈마는 손을 들어 반격을 하려다 말고 멈칫거렸다.
사실 달려드는 백천성의 신형이 갑자기 네 개로 늘어난 것은 무당법문의 자랑인 법술 중 구분환영술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한 번 펼치게 되면 아홉 개의 분신을 만들어 내는 구분환영술을 그가 고작 네 개만 만들어 낸 것은 그의 법술이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닌 까닭이었다.
그러나 먹장구름 속을 가르는 섬광을 백만 분의 일로 나눈 듯한 짧은 순간에 네 개의 분신을 만들어 내며 달려들자, 만수혈마는 일시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꽝!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백천성은 주먹을 그의 면상에 꽂았다.
“커흑……!”
만수혈마는 숨넘어가는 듯한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코…… 코피를 흘리다니…… 말도 안 돼……. 내가 어째서…….”
그는 마치 치매 걸린 노인네처럼 넋두리를 했다.
사실 그는 이미 혈정마공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 두 명의 피만을 흡수하게 되면 그야말로 금강불괴가 될 수 있을 정도인데, 고작 애송이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코피가 흐른다는 건 그의 상식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백천성이 모두 법술을 연성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이 법술이라는 것이 각종 사기와는 극성을 이루고 있는 터라 인간의 피를 흡수하여 수련하는 혈정마공에게 있어선 한마디로 쥐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너무 아파서였을까? 한 대를 맞고 보니,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난 법술뿐만이 아니라 음양조화신공을 끌어 올린 상태……. 때리면 때릴수록 맞는 상대에게서 흡기취정으로 그 힘을 빨이게 된다.’
백천성은 신이 난 듯 번개처럼 주먹을 날렸다.
퍽! 퍼퍼퍼퍽!
‘으아아악!’
만수혈마는 온몸의 관절이 그대로 부서져 나갈 듯이 삐거덕댔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입 밖으로 비명을 못 지르는 건 비명 지를 새도 없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음양조화신공을 운기하여 때릴 때마다 흡기취정의 수법으로 그의 기운을 흡수하는 터라,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이렇게 맞다간 죽고 만다……. 그건 안 돼……!’
만수혈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고는 지난 오 년 동안 고련하여 연성 중이던 혈정마공을 끌어 올린 채 일 수를 휘둘렀다.
“죽어라! 이놈!”
그는 지난 오 년 동안 고련한 혈정마공을 잔뜩 끌어 올려 눈앞에 있는 백천성에게 쏟아부어 한 줌의 혈수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다.
과우우우웅…….
도관 안을 온통 붉게 채워 버리는 핏빛의 혈강이 그의 손에서부터 뿜어져 나왔고, 그것은 다시 혈룡의 형태로 변한 채 백천성을 향해 날아갔다.
그저 스치기만 하면, 그대로 전신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릴 듯한 맹렬한 기세.
‘이크……!’
백천성은 움찔 놀라며 재빨리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만수혈마는 이내 그에게로 바짝 다가오며 양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한 채 비쾌하게 휘둘렀다.
“크크…….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파츠츠츠츳…….
삽시간에 백천성의 눈앞으로 수십, 수백 마리의 혈룡들이 떠올랐다.
혈정마공으로 끌어 올린 채 펼치는 만수혈룡조의 위력은 실로 흉맹한 것이어서, 남다른 기감을 자랑하는 백천성으로서도 결코 방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쩐지 그 인증이라는 게 너무 쉽다고 했지. 뭐, 귀호만 잡으면 인증되는 거라고……?’
귀호가 아무리 공포스런 식인 호랑이라고 해도 한낱 호랑이에 지나지 않은 터, 그런 놈을 처리하는 걸로 무당법문의 후계자가 됐다는 걸 인증한다는 게 애초부터 의심스런 일이긴 했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 늙은 뼈다귀를 처치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망할 영감탱이…….’
그 인증을 하다가 아차 하면 골로 갈 판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사부가 시킨 일은 순전히 제자인 자신을 골병들게 하는 일뿐이었다.
파쇄애애액…….
츠파파팟…….
만수혈마가 휘두르는 만수혈룡조의 위력을 갈수록 맹렬해졌다.
순식간에 십여 초가 지나자, 점차 백천성이 뒤로 밀리는 듯 보였다.
“네놈은 혈정마공 아래 죽는 최초의 인간이 될 것이다.”
“꿈 깨, 늙은 뼈다귀…….”
만수혈마가 득의에 차서 소리치자, 백천성은 코웃음을 날렸다.
이어 그의 공격을 피해 재빠르게 오른쪽으로 돌아가서는 품속에서 누런 부적 십여 장을 꺼내 그를 향해 내던졌다.
“이거나 먹어! 화(火)…….”
슈우욱…….
십여 장의 부적들이 곧장 만수혈마 눈앞으로 날아가더니, 한순간 모두 불덩이가 되어 화락 그의 몸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 정도 술법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만수혈마는 두 손을 크게 휘둘러 자신의 몸 위로 떨어지는 불덩이들을 날려 버렸다.
바로 그 순간.
스윽…….
백천성의 신형이 소리 없이 그의 몸 안쪽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동시에 그의 왼쪽 팔목 안에서 극히 눈부신 섬광이 폭사되었다.
번쩍…… 팍!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만수혈마는 자신의 복부에 틀어박히는 것을 느꼈다. 불로 지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인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선.
자신의 단전에 거의 눈에도 안 보일 정도의 가느다란 은빛의 철선이 틀어박혀 있었다.
은밀지옥사.
바로 살왕 여가랍이 백천성에게 주었던 자신의 독문병기 유리은형살환의 변형인 은밀지옥사였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은밀지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