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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21화)
8장 그놈도 틀림없는 법사(3)


무당법문의 후계자인 법사.
하지만 날아다닌다고 해도 다 같은 독수리가 아니듯, 무당파가 원하는 건 사숙인 현허이지 그 제자인 백천성이 아니었다.
무덕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서찰에서 적혀 있듯 무림맹에서 법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달리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끄러워. 설마 네 녀석은 사숙인 내게 명령이라도 내릴 셈이냐?”
현허가 버럭 소리치자, 무덕은 찔끔 놀란 얼굴을 했다.
“제…… 제가 어찌 감히……. 하나 사제가 아직 연소한지라…….”
“천성아, 잘할 수 있지?”
현허는 뜬금없이 백천성에게 고개를 돌리며 불쑥 물었다.
백천성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사부, 제가 누굽니까? 무당법문의 후계자이자, 그 신묘함이 하늘에 닿으신 사부님의 능력을 유일하게 이어받은 제자가 바로 접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자신 있습니다.”
“들었지? 얘가 자신 있대.”
현허는 다시 무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 이놈을 무당파로 보낼 테니까, 무림맹에 파견을 하든 안 하든 네놈들이 알아서 해.”
동시에 그는 양손을 무덕을 향해 가볍게 내미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허공에 문득 회(回)라는 글자가 쓰이는가 싶더니, 곧장 글자는 빛이 되어 무덕의 전신으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후아아악…….
무덕은 극히 짧은 찰나에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곳은 장문 사형의 거처인데…….”
그랬다.
어느 틈엔가 그의 몸은 장문인인 무상자가 기거하는 내실 앞에 와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무당산을 다 뒤지다시피 하여 찾아간 영취봉과 무당파가 있는 곳까지는 적어도 십 리는 되는 거리였다. 한나절을 다 허비하여 찾아간 그였건만 불과 눈 한 번 깜박할 순간에 무당파, 그것도 장문인 거처 앞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이…… 이게 법술이란 말인가…….”
너무 놀랐기 때문일까?
무덕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거구를 휘청거렸다.
“아니, 사제…….”
그때 거처 안쪽에서 무상자가 걸어 나오며 뜻밖이라는 얼굴을 했다.
“무덕 사제, 어떻게 된 건가? 아직도 출발하지 않았단 말인가?”
무덕은 얼굴근육이 푸들거리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 장문 사형…….”
“……?”
“다…… 다녀왔소……. 현허 사숙님을 뵈었습니다…….”

“푸우…….”
현허는 힘겹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조금 전보다 진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회신술(回身術)을 펼치다니…… 힘깨나 쓰셨겠습니다.”
백천성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회신술은 상대를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법문의 술법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술법으로, 한 번 펼칠 때마다 적지 않은 법기가 손상되므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펼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흐흐……. 무덕이란 놈…… 야코가 팍 죽었겠지.”
현허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본래 그놈들이 평소엔 법술을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다. 법술이 무슨 무당의 푸닥거리 비슷한 걸로 알고 있는 놈들이어서 조금 무리를 했지. 아마 지금쯤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릴 게다.”
“근데 왜 내일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당장 가도 괜찮은데요.”
“한물간 생선도 튕기는 맛이 있어야 제값을 받는 법이다.”
그러니까 백천성이 한물간 생선이라는 말이었다.
‘제기…… 비유를 해도 꼭……. 그렇게 따지면 사부님은 물오른 생선이겠구먼.’
백천성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현허는 문득 얼굴을 굳혔다.
“천성아, 지난 십 년 동안 네 녀석은 무당법문의 모든 법술을 연성했다.”
“모두 사부님 덕분입니다.”
지난 십 년 동안 모진 훈련으로 길러진 습관성 아부가 자연스럽게 백천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청출어람이라고는 하지만, 대해 같고 태산 같으신 사부님과 비교하자면 일월과 비교되는 반딧불이며 태풍에 날아가 버리는 낙엽에 불과할 뿐입니다.”
“클클……. 말하는 본새를 보니 배우긴 제대로 배웠구나. 아무튼 우리 무당법문의 법술은 이 하늘 아래 가히 적수 없을 만큼 뛰어난 술법이다. 흔히 술법을 말하자면 모산파나 배교의 것들을 이야기하나…… 그것들은 우리 무당법문의 법술에 비하면 조잡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
“그것은 무공도 예외는 없다. 백도 백팔십종 무예와 마도 삼백육십오종의 마공도 예외 없이 우리 무당법문의 법술 앞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터……. 하나 하늘 위의 무공이라 불리는 세 가지 절학 신화천중삼무(神話天中三武)와 피와 살로 이뤄진 인간이라면 절대 연성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 마공…… 혈세역천금지사대마공(血洗逆天禁止四大魔功)만은 조심해야 한다.”
신화천중삼무!
말 그대로 전설과 신화 속에서만 회자되는 절대의 무공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 능력이 신의 영역에 들지 않고선 알고 있다고 해도 결코 연성하지 못할 세 가지 무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소림권공(少林拳宗) 백보무영신권(百步無影神拳).
무당신검(武當神劍) 태극혜검(太極慧劍).
낙뢰암절(落雷暗絶) 낙뢰분화우(落雷分花雨).

“태극혜검?”
듣고 있던 백천성이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건 무당파의 무공이 아닌가요?”
백천성이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극혜검이 어디 무당의 것만이겠느냐? 우리 무당법문이 법술에 바탕을 두기는 했으나 궁극적으로는 태극혜검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 무당법문이 말인가요? 하지만 난 태극혜검은커녕 일반적인 검법도 배우지 못했는데…….”
“도는 여러 갈래 길이 있으나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되는 터…… 나는 이미 네게 검을 쓰는 걸 가르쳤다. 게다가 태극혜검은 누가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혈세역천금지사대마공은…….”
혈세역천금지사대마공.
이는 허약한 육신을 지닌 인간이 스스로 악마가 되는 무공이라고 했다. 삼백 년 전에 혈세역천금지사대마공은 한 번 출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천하는 이 네 가지 마공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구유명옥수.
유령번뇌도(幽靈煩惱刀).
만겁혈마륜(萬劫血魔輪).
지옥혈인(地獄血刃).

“신화천중삼무를 펼치는 자를 만나게 되면 경각심을 가져야 하나,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혈세역천금지사대마공을 사용하는 자들을 만나게 되면 무조건 몸을 피해야만 한다. 네가 법술을 조화혼 단계까지 연성하지 못했다면…….”
그 말을 끝으로 현허의 말은 끝이 났다.
지난 십 년 동안 사부인 현허는 백천성에게 늘 ‘무당법문의 법술은 천하무적이다.’라고 말해 왔으니, 지금 이와 같은 말은 실로 뜻밖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명심했느냐?”
현허가 근엄한 음성으로 말하자, 백천성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내일 떠나야 할 테니까, 오늘은 그동안 따 놓은 찻잎들을 모두 제다해 놓도록 하거라.”
“컥…….”
느긋한 얼굴로 사부의 말을 듣고 있던 백천성은 일시에 숨 막히는 듯한 소리를 냈다.
“차…… 찻잎들을 모두 다 말입니까?”
“설마 그 많은 찻잎들을 사부보고 직접 하라는 건 아니겠지? 그럼 서둘러 찻잎들을 제다해 놓고 일찍 쉬거라. 내일은 무당파로 가야 하니까.”
그 말을 끝으로 사부는 휑하니 모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옥 뒤에는 그가 그동안 따 놓은 찻잎들이 쌓여 있었다. 그 양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언젠가 밤새도록 차를 제다한 양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이었다.
‘그걸 오늘 중으로 해 놓으란 말이지.’
끝까지 사부는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야 말았다.
“쓰파……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이럴 때면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
귀신은 뭐하나 몰라. 얄미운 사부 하나 안 잡아……?
뒷말은 생략이다.

9장 강호로 나서다(1)

다음 날 이른 아침.
백천성은 등 뒤로 자신의 몸집만 한 커다란 봇짐을 진 채 느긋한 걸음걸이로 영취봉을 내려오고 있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이렇게 걷는구나.”
다소 감회 어린 얼굴을 한 채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십 년 전 사부를 찾아왔을 때와 비슷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와 비교해 덩치가 커졌고, 허리에 한 자루의 새하얀 부채가 비스듬히 꽂혀 있다는 점이었다.
‘사부님의 말에 의하면 무림맹으로 가게 될 거라고 했지.’
그의 모습은 마치 소풍 가기 전날의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법술 수련은 물론이고, 밥하고 빨래하며 차 만드는 일 등의 고된 일을 도맡아 해 온 그였으니, 지금 산을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다 못해 날아갈 듯했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가면 언젠가 다시 오겠지만, 아무튼 난 간다…….”
절로 콧노래마저 흘러나왔다.
그가 영취봉을 벗어나 무당파가 있는 산기슭으로 접어들 때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백천성 앞에서 다소 차가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노도사.
그 앞에 평범해 보이는 한 노도인이 우뚝 서 있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은 날이 잘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보였는데, 바로 무검자였다.
“누구십니까?”
백천성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검자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본 도는 무덕의 사형이 되는 무검이라고 한다.”
백천성은 히죽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제게는 사형이 되시겠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백천성이라고 합니다. 무검 사형…….”
“…….”
무검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손주뻘도 안 되는 새파랗게 어린놈이 사형이라고 말하자 심기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당장 호통을 쳤을 일이나, 이미 사형이자 장문인인 무상자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았기에 화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
“본 도는 무당파는 물론이고 강호에서도 제법 인정을 받고 있는 검객이지. 만약 네가 내 사제 행세를 하려면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하는 터…….”
그는 천천히 우수를 들고 수도를 곧추세웠다.
단지 손이었으나, 무당제일검이라고 추앙받는 그였기에 이미 손이 아닌 한 자루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보고 사형의 일 수를 막아 보란 말인가요?”
백천성이 무덤덤하게 묻자, 무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싫다면 당장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된다.”
“에이, 우리 사부님이 사람을 얼마나 귀찮게 하는데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니…… 손을 쓰시지요.”
마치 고수가 하수에게 ‘손 한번 휘둘러 봐.’라고 하는 투의 말이어서 듣고 있던 무검자의 눈썹이 다시 한 번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실력이 그 말만큼 되는지 모르겠구나.”
번쩍!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우수가 비쾌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불과 삼 성의 힘만으로 펼친 수법이었으나 번개가 무색할 정도의 빠름을 보였다.
그는 눈앞에 있는 백천성이 결코 자신의 일 수를 막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비록 절학은 아니나 태극검법 중 가장 빠른 궁보괘벽(弓步쮽劈)이다. 바닥에 나뒹굴지만 않으면 합격으로 해 주지.’
무당파에 입문하여 기초 과정을 마친 뒤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검법이 바로 태극검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생기초는 아니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검법인 태극검법.
생각은 길었으나 실제로는 아주 짧은 찰나.
“이크! 아차 하면 다치겠습니다.”
지극히 장난스런 음성과 함께 백천성의 신형이 뒤로 스륵 밀려나는 것이었다.
마치 내뻗는 손길을 피해 자연스럽게 밀려 나가는 솜털처럼 전혀 무게감이 없는 움직임.
“……!”
무검자는 멈칫거렸으나 재차 손을 휘둘러 갔다.
그것은 태극검법 중 몇 가지 초식으로, 그가 손을 쓰게 되자 허공으로 눈부신 태극의 환영이 물에 번지듯 떠오르며 백천성의 전신을 뒤덮는 것이었다.
휘리릭…….
극히 유연하면서도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검세.
그러나 백천성은 신형을 이리저리 흔들며 무검이 펼치는 공세 사이를 빠져나갔다.
사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달리 신법을 펼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오랫동안 조화일심태극결을 수련하여 얻어진 기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쪽으로 몸을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알 리 없는 무검자는 적지 않게 놀랐다.
“제법이로구나. 그러나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내 사제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백천성은 즉시 무검자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