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6화
“크흐흐! 겨우 여기까지밖에 못 왔느냐!”
그와 동시에 거대한 충격이 창건의 등을 덮쳤다.
퍼엉!
“크아악!”
창건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배 속이 온통 뒤집어져 구역질이 나왔다.
“우, 우윽. 우웩!”
“크큭, 잔재주를 부리다니 무림맹의 쥐새끼답구나. 그러나 여기까지다. 목을 내놓아라.”
창건은 신물을 토해 내면서 질린 눈으로 상대를 확인했다. 뇌동고가 양손을 검게 물들이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죽어랏!”
절혼장의 기운이 밀려오자 창건은 몸을 굴려 피했다. 꼴사납다고 창피하게 여길 때가 아니었다.
‘죽을 수 없어! 이제야 풍운청룡단에 들어가게 됐는데! 최소한 출세는 제대로 누려 보고 죽어야지!’
절혼장을 피하고도 몇 바퀴를 더 구른 창건은 몸을 힘차게 튕겨서 떠올랐다. 허공에서 자세를 바꿔 낙일검법(落日劍法)을 펼쳤다.
“너나 죽어라!”
쉬리릭, 검의 그림자가 셋으로 분열되더니 뇌동고에게 쏟아졌다.
‘막아도 상관없어! 시간만 벌면 돼!’
낙일검법은 무림맹의 하급무사가 되면 배울 수 있는 검법이다. 그렇다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승의 검법은 제공할 수 없고, 하급의 무공으로는 무림맹의 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무림맹을 위해 점창과 화산에서 공동으로 개발한 실전적인 검법이었다.
“허억!”
순간,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뇌동고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다급히 몸을 빼는 것이 아닌가. 그 경망한 움직임에 창건이 당황할 정도였다. 몸을 조금 비트는 것만으로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여차하면 반격까지도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창건은 뇌동고의 반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어째서 저 정도의 고수가…… 낙일검법에 당황하지?’
길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창피를 당한 뇌동고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감히 내게 공격을 해! 사지를 몽땅 뜯어서 개 먹이로 주겠다!”
창건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공격당한 적이 없어? 맙소사, 저 녀석 실전 경험이 없는 거 아냐?’
마교의 강력한 무공은 배웠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가능성이 적은 얘기지만 상대의 꼴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공이 깊고 무공도 강한데…… 싸움이 미숙해. 그래! 아직 실전에 약한 게 틀림없어!’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창건 또한 실전 경험이라고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다만 뇌동고와 달리 창건은 수련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대련을 거쳤다. 비록 또래의 동기들과 겨룬 것이지만. 그래도 비무의 경험은 모의 실전과도 같았다.
‘어디…… 정말인지 시험해 볼까?’
창건은 허초를 펼쳤다. 힘으로 부딪쳤다가는 백이면 백 깨진다. 언제라도 거둘 수 있는 검격을 날렸다.
“이것도 받아 봐라!”
“죽여 버리겠다! 무림맹의 개!”
콰콰콰!
시커먼 장법이 폭풍처럼 창건의 검영(劍影)을 덮쳤다. 감히 감당할 수도 없을 위력이다. 창건은 자연스럽게 원을 그리면서 검격을 거두고 몸을 피했다.
콰드득!
창건의 뒤에 있던 나무가 애먼 공격을 받았다. 허리께가 뜯겨 나갔다.
“크윽!”
창건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완벽히 피하지 못해서 오른쪽 어깨에 스쳤다. 어깨가 부서질 듯이 아파 왔다. 뇌동고를 시험한 덕분에 비싼 값을 치렀다.
‘좋아! 비무 경험조차 거의 없다고 봐도 돼! 이 정도라면 일 초에 죽는 건 면할 수 있어. 살살 도망치다가 기회를 봐서 제대로 내빼는 거야!’
살 가능성이 조금쯤은 높아졌다.
뇌동고의 절혼장은 매서웠으나, 적당한 연격이 들어오질 않았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둘이 맞부딪치니 손발이 어긋나고 공격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콰앙! 콰쾅!
빗나간 절혼장의 기운으로 사방의 나무가 상처를 입었다. 창건은 간간히 틈이 날 때마다 견제용으로 검격을 날리고는, 나무 뒤에 숨는 것을 반복했다.
‘대응이 느려. 엄청난 공력을 갖고도 사용할 줄을 몰라. 도대체 어떤 수련을 거쳤는지 몰라도…… 내 무공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이기는 것도 무리가 아닐 텐데!’
그러나 지금의 경지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창건이 비록 경험이 많다고는 하나 상대는 격이 달랐다. 경험은 적지만 안력이 날카롭다. 같은 공격을 두 번 이상 날리면 가소롭다는 듯이 피했다.
게다가 자신보다 훨씬 빨랐다. 육체적인 능력의 차이가 경험 차이로 메우기에는 너무나도 컸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 다닐 셈이냐!”
뇌동고가 버럭 소리쳤다.
“쥐새끼가 칼 든 것 봤냐!”
창건은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흥분하면 진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목이 날아간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한편, 뇌동고는 내심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이 훨씬 강해도 단숨에 죽이지 못하는 건 순전히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장로들이 시킬 때 사람을 상대하는 훈련도 할 것을 그랬다. 내공심법과 파괴력이 강한 무공만 익히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작 싸우는 데 서툴렀다.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를 두들겨 패는 데만 익숙했다.
어차피 교주가 되면 절대무적의 무공을 이어받으니, 그런 훈련은 전혀 필요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숲 속의 싸움은 창건에게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비교적 숲에 익숙한 창건의 운신이 뇌동고보다 조금 나았다.
“허억, 허억…….”
그러나 먼저 숨이 가빠진 것은 창건이었다. 기본적인 내공의 차이가 극심했다. 한 대라도 맞으면 죽을 것 같았기에 죽을힘을 다해 피하다 보니 몸이 물먹은 솜처럼 점점 무거워졌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뇌동고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의 절혼장은 또다시 애꿎은 나무를 뜯어 놓았다.
콰지직!
그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창건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었다. 머리에서 김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 도망치면 분명 따라붙겠지.’
창건은 뇌동고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서 도망칠 가능성을 점쳤다.
‘제기랄, 무리야.’
이미 내공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뇌동고는 어디서 샘솟는지 끊임없이 장력을 토해 내고 있었다. 내공이 그만큼 정순하고 깊다는 증거다.
‘나랑 동년배로 보이는데…… 정말 대단하다.’
창건은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허억, 허억. 이제 그만 나를 놓아주는 게 어때? 어차피…… 이렇게 계속 힘만 쓸 거면 말이다.”
“내가 미쳤냐? 다 잡은 녀석을 놓아주게. 미친 소리 말고 이리 와 목을 내놓아라.”
저벅저벅. 뇌동고가 쌍수를 좌우로 넓게 벌리고 창건에게 다가왔다. 그는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왜 또 웃고 지랄이야!’
창건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순간, 등에 무언가 닿았다. 힘차게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는 거목이다. 창건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빌어먹을! 이쪽으로 몰았어! 퇴로를 확인 못하다니……!’
후방뿐만이 아니라 좌우에도 빽빽이 나무가 있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나무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면 빠져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뇌동고의 일 장이 날아올 터였다.
뇌동고가 폭소를 터뜨렸다.
“크큭, 크하핫! 쥐새끼처럼 피하는 것도 여기까진가 보다. 이제 지겨운 사냥을 끝내자꾸나!”
뇌동고가 쌍장을 한껏 당겼다. 우우웅, 그의 육장에서 기묘한 공명음이 들리더니 새카만 기운이 넘실거렸다. 절혼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창건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에 오니 전신이 와들와들 떨렸다.
“크하핫! 떠는 꼴이 볼만하구나!”
뇌동고가 폭소를 터뜨리며 창건을 비웃었다.
‘여기서……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십칠 년의 삶, 이제 시작이라고 느꼈는데.
겨우 노력한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고, 고생의 보답을 받는다고 여겼는데,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이럴 수는 없어!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려고 그 힘든 수련을 견딘 게 아니라고!’
죽음의 공포보다 세상에 대한 억울함이 더했다. 창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사위는 이미 어두워져 달빛만이 숲을 비췄다. 달을 등진 뇌동고의 얼굴은 음산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런 미치광이 마교인에게 죽으려고 살아왔단 말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야말로 진정 자신이 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대로 죽는다고? 이렇게 덧없이? 허무하게?’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일 장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한 대쯤은 제대로 먹여야 그동안의 수련이 억울하지 않을 터였다.
‘이렇게,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한 대라도 쳐 보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분노가 공포를 밀어냈다.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자신의 목숨을 멋대로 끊는단 말인가. 어째서 저렇게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놀려 드는가.
‘이대로는 못 죽어! 억울해서 못 죽어!’
으드득.
창건이 이를 갈아붙였다. 갑자기 떨림이 서서히 멎어 갔다. 긴장으로 굳은 근육이 부드럽게 이완됐다.
‘설령…….’
눈앞에 주마등처럼 무림맹의 수련 시절이 떠올랐다. 코찔찔이 때부터 받던 수련, 하급무사로 승급하며 받았던 가르침,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금 죽는대도…….’
우지직.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서로에게 집중한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시원하게 한 대 먹여 주고 말겠어. 기필코!’
창건은 단전에 고여 있던 한 오라기의 내력마저 모두 끌어올렸다. 삼 년 동안 꾸준히 익혔던 낙일검법에 모든 것을 맡길 셈이었다.
“나도 정도인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네게 정도 무인의 기상을 보여 주마!”
“크하핫! 본좌 앞에서 재롱을 부리려고? 마음껏 해 보아라. 간닷!”
죽음을 앞두니 세상이 느려지는가. 창건의 눈에는 모든 게 느려 보였다.
콰콰콰!
뇌동고가 진각을 밟으며 힘차게 쌍장을 내뻗는 모습이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그러나 창건 자신의 몸도 느렸다. 그에 대응하는 낙일검은 일곱 개의 그림자를 만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절혼장보다 빠를 수 없었다.
‘뭐야…… 역시 무리인가.’
창건이 막 체념할 때였다.
우지지직.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번에는 훨씬 컸다. 절혼장을 뻗어 내던 뇌동고마저 놀랄 정도였다. 그의 어깨가 흠칫 떨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서서히 쓰러지는 나무가 보였다.
‘저 방향이면…… 저놈이 깔린닷!’
우지직!
죽음 앞의 집중력이 끊어졌다. 갑자기 세상이 빠르게 흘렀다. 뇌동고의 등을 향해 기울어지던 거목이 번개처럼 떨어졌다.
‘깔려라!’
창건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익!”
뇌동고는 거목의 기척을 느끼고 절혼장을 황급히 거두며 측면으로 피했다. 그리고 창건은 자기도 모르게 뇌동고가 피하는 쪽으로 따라붙었다.
그가 쥔 검은 여전히 낙일검법의 일곱 잔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딜……!”
뇌동고가 날카로운 고함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회수했던 공력을 다시 손으로 집중하여 창건에게 뻗었다. 힘차게 일장을 내지르는데 갑자기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한 장로……!’
절혼장을 펼치는 뇌동고의 몸이 휘청였다. 한설 장로에게 두들겨 맞은 부위가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경직 된 것이다.
창건의 검은 흔들리는 절혼장을 피하고 들어갔다.
푸욱.
“……커, 커헉.”
“어?”
창건의 검이 뇌동고의 명치를 관통했다. 부우욱, 살을 가르는 느낌이 생생히 손으로 전해졌다. 창건은 기겁을 하며 검을 놓았다.
“이…… 이런…….”
뇌동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빌어먹을…… 커허억!”
그는 말을 하다 말고 피를 토했다. 창건은 눈을 부릅뜨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차가운 거목이 등에 닿는 게 느껴졌다.
“너…… 죽여…… 버리겠어…….”
뇌동고는 쓰러지지 않았다. 명치에 검을 꽂은 채로, 한 발짝 창건을 향해 내디뎠다. 창건은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 나는…….”
그게 한계였다.
뇌동고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창건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쿵. 지면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창건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로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정말 꿈이 아닐까 싶은 일이 벌어졌다. 마교의 고수와 싸움이 붙은 것부터 시작해서, 천재일우의 기회로 역습을 가한 것까지. 그러나 곧 창건은 막연한 행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뇌동고를 덮친 거목, 그 허리 둥치는 무언가에 심하게 뜯기고 파인 자국이 있었다.
‘절혼장…….’
창건은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거목이 받쳐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이미 손은 과도한 움직임으로 달달 떨리고 있었다.
‘정말 이긴 건가?’
설마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목숨을 구하면 다행이라고, 단지 살기 위해서 싸웠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누워 있는 건 뇌동고였다.
‘가만……. 움직이지를 않잖아.’
창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뇌동고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이, 이봐.”
창건은 뇌동고를 불렀다. 왠지 이상했다. 겨우 한 번 찔렀을 뿐인데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봐, 마교인.”
창건은 조금 커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설마…….’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 의미를 창건은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