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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어이, 아니지? 내가 다가가면 기습하려고…… 그런 거지?”
창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사, 살아 있잖아. 그렇지? 내가 속을 줄 알아?”
문득 창건의 시선이 뇌동고가 쓰러진 주변으로 향했다. 해가 저물어서 몰랐다. 자세히 보니 그 주변의 흙들이 검게 젖어 있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설마…… 죽었냐?”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쉽게…….’
쓰러진 뇌동고의 등으로 비죽 솟아오른 검신이 보였다. 피를 흠뻑 머금은 칼날이 달빛을 받아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진짜…… 죽었어?’
창건은 하마터면 앞으로 쓰러질 뻔했다. 조금 살펴보려는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던 것이다. 창건은 아예 몸을 거목에 완전히 기대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살인, 이건 살인이다. 사람을 죽였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후우, 후우. 침착하자. 창건아, 일단……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는 거야. 정신만 잃었을 수도 있어.”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창건은 조심스럽게 쓰러진 뇌동고에게 다가갔다. 발이 너무나 무거웠다.
“야, 어이.”
창건은 뇌동고의 지척에 다가가서 그를 불렀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호, 혹시 진짜 죽은 척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창건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밀었다. 툭, 투욱. 뇌동고를 몇 번이고 발로 밀어 봐도 반응이 없었다.
“제길…….”
창건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생명은 의외로 질긴 법이다.
‘맥을 보면 알겠지.’
크게 심호흡을 한 창건은 숨을 참고 뇌동고의 곁에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뇌동고의 팔목을 잡았다. 아직 살아 있다면 규칙적인 맥박이 뛸 것이다.
‘……빌어먹을.’
뇌동고의 손목은 아직 따뜻했다.
그러나 맥박은 뛰지 않았다. 그저 아직 식지 않은 시신일 뿐이다.
‘정말 죽었어.’
창건은 맥이 풀려서 털썩 주저앉았다.
느끼고 있었다.
이미 뇌동고는 시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만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죽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좋지. 살인을 저질렀으니…….’
창건은 축 늘어져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살을 가르는 감촉이 손아귀에 생생히 남았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불현듯 창건의 표정이 바뀌었다. 창백하게 질렸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바보처럼 얼어 버리긴! 저 녀석은 마교인이잖아! 극악무도한, 죽어 마땅한 마교인이라고! 게다가 먼저 날 죽이려고 했단 말이야!’
창건은 힘껏 주먹을 쥐었다.
‘겁먹을 것 없어. 세상을 위해 옳은 일을 한 거야.’
가만 생각해 보니 무림맹에 돌아가면 칭찬을 받았으면 받았지, 책잡힐 일은 아니었다.
아직 이름도 없는 무림맹의 무인이 마교의 고수를 꺾었다. 아마 사실이 알려져도 무명(武名)이 높아지는 선에서 끝나리라.
“후우, 됐어. 돌아가자…….”
창건은 피로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창건의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냥 버리고 가면 안 되려나.’
뇌동고를 관통한 검이 문제였다. 명치를 관통한 장검이 등 뒤로 삐죽이 솟아 있었다. 솔직히 시체에 손을 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야, 혼날 거야.’
한시도 검을 떼 놓지 말라는 무림맹의 엄명이 있었다. 검을 잃고 맨손으로 터덜터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마교 고수를 잡느라 두고 왔대도 믿지 않을 것이고 말이야.’
그렇다고 검을 새로 사자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창건은 검을 회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흐읍.”
크게 심호흡을 했다. 공포를 떨치려는 행동이었는데 피비린내가 가득 몰려왔다. 창건은 한층 해쓱해진 얼굴로 뇌동고를 옆으로 굴렸다.
주르륵. 옷에 흠뻑 배어 있던 피가 손을 적셨다. 명치에 깊숙이 박힌 칼자루가 드러났다.
“흡!”
창건은 짧은 기합과 함께 검을 단숨에 잡아당겼다.
찌이익. 힘껏 잡아서 당기자 살을 가르는 예의 그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으윽, 토할 것 같아.”
차라리 밤이라 다행이었다. 대낮이었다면 갈라진 상처가 훤히 보였으리라. 창건은 무명천을 꺼내 대충 검을 닦아 냈다. 아무리 급해도 검을 이대로 보관했다가는 피 때문에 녹이 슬어 버린다.
‘후우, 제길! 어차피 청룡검을 지급 받을 텐데!’
무림맹의 내규만 아니었어도 진작 던져 버리고 도망쳤을 게다. 창건은 투덜거리면서 검을 다 닦고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도망 다니느라 엉뚱한 길로 들어온 데다가 밤까지 깊어져 자칫하면 숲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것만은 안 되지. 안 돼.”
사실 아침에 움직이는 게 안전하지만, 어찌 시체와 함께 숲에 있는단 말인가.
“그럼 성불해라.”
창건은 시신에게 인사를 던지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멈췄다.
“……묻어라도 줄까? 저대로 두면 짐승한테 뜯길 텐데.”
시체라도 온전히 보존하려면 땅에 묻어야 한다. 창건은 잠시 동정하는 마음을 품었다.
‘아니야, 내가 미쳤어? 날 죽이려고 했는데 왜 묻어 준단 말이냐. 그냥 까마귀며 승냥이며 할 것 없이 뜯어 먹혀라. 다 자업자득이니라.’
창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그는 짐짓 큰 걸음으로 몇 발짝 더 걸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다리가 무거웠다.
‘꼭 쳐다보는 것 같네.’
등골이 서늘했다. 뒤에서 누군가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창건은 슬금 고개를 돌려 시체를 확인했다.
분노에 찬 표정, 찢어질 듯 부릅뜬 눈. 뇌동고는 죽어서도 죽일 듯이 창건을 노려보고 있었다. 창건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하아아…….”
창건은 늘어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축 늘어진 걸음으로 시체에게 돌아왔다.
“네가 이뻐서 돌아온 게 아니야.”
창건은 시체에 대고 중얼거렸다.
“객사한 사람은 귀신이 되기 쉽다고 했지. 무덤이라도 만들어 줄 테니, 부디 성불해서 나한테 붙거나 하지는 말아라. 알겠지? 절대 따라오면 안 돼!”
푸욱. 푸욱.
창건은 비교적 보드라운 땅을 골라 맨손으로 파헤쳤다. 도구라고는 낡은 검밖에 없는데 땅을 파는 데는 쓸모가 없었다.
‘정식 무덤은 무리겠고…… 흙만 덮자.’
창건이 파낸 구멍은 길고 얕으며 좁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파인 것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창건은 그것만으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하아, 하아, 더 이상은 못 파. 이제 그냥 들어가라.”
비지땀이 쏟아졌다. 창건은 팔을 걷어붙이고 시신에게 다가갔다.
“어? 저게 뭐지?”
걸음을 옮기던 창건은 우뚝 멈춰 섰다. 땅바닥에 뻗어 있던 뇌동고의 시체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깨비불?’
창건은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눈을 부릅뜨고 상황을 확인했다.
‘아니, 도깨비불은 아니야. 뭐지? ……보물? 맞아, 왜 지금까지 저 녀석 소지품도 조사하지 않았지? 마교의 인물이라는 증거가 될 만한 게 있을 텐데. 아니면 돈이라도!’
마교도를 꺾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만 있다면, 창건으로서는 커다란 공을 세우는 셈이었다. 창건은 뇌동고의 시체에 다가가 옷 안쪽을 뒤졌다.
뇌동고의 옷은 피에 절어 있었다. 손을 대니 질퍽하게 묻어나왔다.
‘으윽, 피 냄새…….’
가슴 섶에서 작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꺼내 보니 사각형의 금패(金牌)가 나왔다.
소주(小主)
“작은 주인? ……뭐야, 이건 무슨 직책이야?”
금색으로 빛나는 게 값이 제법 나갈 듯했다. 창건은 금패를 챙겼다.
“어이쿠, 진짜 무겁네. 이거 정말 금덩이 아냐? 파, 팔면 얼마나 나오려나.”
손바닥만 한 금덩이라면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건이다. 하지만 창건이 생각한 바는 따로 있었다.
‘비록 실수라 해도…… 마교의 고수를 잡았어. 이걸 갖고 돌아가면 내 평판은 크게 올라갈 거야. 모르긴 몰라도 금패의 값어치를 보면 결코 낮은 지위라고 생각할 수 없으니…….’
창건의 눈이 번쩍 빛났다.
‘파는 것보다 갖다 바치는 게 득이다!’
소주라는 직책은 아마 꽤나 높은 사람의 자식 정도이리라. 창건은 마음대로 짐작해 버렸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 파장을 갖고 올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건 무덤 만들어 준 값 대신 내가 고맙게 가져갈게.”
창건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뇌동고의 시신을 질질 끌었다. 미리 파 놓은 구멍과 시신의 크기는 딱 맞았다.
“네가 마교에서는 얼마나 잘난 취급을 받는지는 몰라도, 길 가는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살수를 펼치면 곤란하지. 게다가 나는 길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고.”
사락. 사라락.
창건은 두 손으로 흙을 떠서 뇌동고의 시신에 뿌렸다. 계속해서 반복하자 뇌동고의 몸이 점점 흙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야. 보아하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단한 무공을 익힌 모양인데…… 노력을 안 했지? 내가 보기엔 너무 허술했어. 무공이라는 게 내력이 전부가 아니거든.”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막말을 하는 창건이었다.
“어쨌든 좋은 결투였다. 너도 그렇겠지? 아무런 원한도 갖지 말고 썩 성불해라.”
휘이잉.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뇌동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흙이 날렸다. 부릅뜬 눈동자가 나타나자 희희낙락하던 창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럼 난 간다. 원한 갖지 마라. 네가 먼저 덤빈 거야. 괜히 승천 못하고 나한테 붙거나 하면 안 돼.”
어지간히 소심한 성격이다.
창건은 대충 명복을 빌어 주고는 검을 들고 전속력으로 숲을 빠져나갔다. 다행히 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서 은근한 빛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제3장 계승(繼承)
창건은 한참을 헤매고서야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랜만이고 야밤인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조급해져서 자꾸만 엉뚱한 길로 들어서느라 늦어졌다.
땀으로 흠뻑 젖은 창건은 숲을 벗어나자마자 나타난 개울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나왔다! 크아앗! 다시는 이 길로 안 온다!”
조금 편히, 빨리 오자는 마음에 지름길을 택했다. 그런데 편하기는커녕 마교인을 만나서 죽을 뻔하지를 않나, 길을 잃지를 않나 첩첩산중이었다.
그러나 창건은 모든 불행을 감안해도 맹에 돌아가서 얻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액땜하려고 그러나. 그래, 이건 풍운청룡단에 들어가는 일종의 액땜인 거야.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좋게 생각하자!’
밤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창건은 허겁지겁 개울물을 들이켰다. 얼음처럼 시원한 물을 배 터지게 마시고서야 갈증이 가셨다.
그간 쌓인 피로가 단번에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일단 긴장이 풀리고 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후우, 정말 죽는 줄 알았네.”
창건은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그시 자신의 손을 응시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정말 내가…… 사람을 죽였나…….”
왠지 믿어지지 않았다. 미친 듯이 도망치던 기억이 꿈만 같았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는데 현실감이 없었다. 창건은 주섬주섬 가슴 섶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역시 혼자 꿈꾼 게 아니구나.”
소주라 새겨진 금패가 사실을 증명했다. 창건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어쩔 수 없었어. 날 죽이려고 했으니까 살기 위해서는 당연했던 거야. 후회할 필요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어.”
막연히 중얼거리던 창건은 피식 웃어 버렸다. 가슴을 꾹 누르는 답답함과는 별개로 묘한 감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 정말 강해졌나? 마교의 절혼장을 쓰는 고수를 쓰러뜨리다니. 비록 햇병아리 같긴 했지만…….”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막 마교인을 죽였을 때처럼 머릿속이 헝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리가 되질 않았다.
마교 고수와의 싸움에서 첫 승리를 거뒀기 때문일까. 마음이 온통 들떠서 쉽사리 진정되질 않았다.
‘좋아! 어쨌든 나는 이겼어! 이대로 금패를 가져가서 맹에 보고를 하자! 공을 세웠으니 출세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겠지!’
창건은 벌떡 일어나서 허리춤의 청강장검을 튕기듯이 뽑았다.
차앙!
시원한 검명이 울렸다. 검이 좋아서가 아니다. 순전히 창건의 검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창건은 검을 내지르면서 기합을 터뜨렸다.
“차앗! 낙일검법, 일몰(日沒)!”
차창! 차차창!
검이 허공에서 몇 번이고 방향을 바꿨다. 흐릿한 검의 잔영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