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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몸은 괜찮으신가요? 흑염군께서 말하시길, 소교주님이 대법을 받으셨으니 요양을 취하셔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말씀 낮추세요.”
“대법이라고요?”
“예, 본교 비전의 대법을 시전 받으셔서…… 아무 약도 소용없으니 며칠 동안 지켜보라고 지시 받았어요.”
마교 비전의 대법이라니,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무엇이었을까? 몸에 무언가 금제를 가한 걸까?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아마도 내공이 사라지고 몸이 상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세요? 얼굴이 너무 아파 보이셔요.”
시녀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아파 보이다뇨?”
창건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만져 보았다. 뺨 위로 핏줄이 불거진 게 만져졌다. 얼굴 전체로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도, 동경(銅鏡)을…….”
시녀가 재빨리 동경을 가져다주었다.
창건은 떨리는 마음으로 동경으로 얼굴을 비추었다. 손에 만져질 정도라면 얼마나 기괴하단 말인가.
“으, 으으……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동경 속에는 괴물이 있었다.
얼굴 전체에 핏줄이 불거지고, 눈이 시뻘겋게 변한.
챙그랑!
동경을 집어 던진 창건이 덜덜 떨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이건 지독한 악몽이다.

소교주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채 일 각도 되지 않아 흑염군이 창건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소교주께서는?”
“비명을 지르시다 조용해졌습니다.”
문 앞에 대기 중이던 시녀가 조용히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흑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어라.”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넓은 방이 나타났다. 거대한 침상 위에 털썩 주저앉은 창건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얼굴이…….’
창건의 얼굴을 본 흑염군의 눈빛이 흔들렸다. 얼굴 가득히 핏줄이 솟아올라 괴이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암천마령기의 부작용인가? 아직까지 이런 부작용이 있다고는 들어 보지 못했거늘.’
자신이 들어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흑염군은 인기척을 내면서 포권을 했다.
“흑염군이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어?”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제야 방에 사람이 들어왔다는 걸 깨달은 창건은 얼굴을 황급히 돌렸다. 흉측한 얼굴을 드러내는 게 싫었다.
“누, 누구라고요?”
고개를 돌린 채 창건이 반문했다.
“암혈일혼, 흑염군입니다. 갓 태어나셨을 때 뵙고 처음이니, 아마 기억 못하실 겁니다.”
“흑……염군?”
순간 창건은 전신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명실 공히 마도의 이인자, 실력을 헤아릴 수 없는 절대고수 흑염군을 직접 보다니.
‘맙소사, 진짜 그 흑염군이야?’
창건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래요?”
목소리가 떨렸다. 흑염군의 날카로운 시선이 송곳처럼 창건을 찔렀다.
‘제길, 그래요는 뭐가 그래요야. 어차피 정체를 들키면 죽을 텐데……!’
창건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이곳은 마교, 자신은 그야말로 호랑이 굴에 갇힌 것이다.
‘어쩌지.’
창건은 파르르 떨었다.
‘내공도 잃고……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데다가, 이곳은 마교라……. 하하, 재난이 겹치는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머릿속이 멍했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변했다.
‘그래, 들키기 전에 당당하게 밝히는 거야. 이 몸은 정도영웅무림맹의 일원이라고. 너희들의 소교주는 내가 죽였다고!’
이왕 죽을 운명이라면 멋지게 죽는 것도 좋으리라. 창건은 가슴을 폈다. 어찌 무림맹의 사나이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랴!
“나는…….”
“괜찮으십니까?”
막 창건이 입을 열려는 순간, 흑염군이 말을 건넸다.
“어, 아니, 그게요…… 나는…….”
맥이 끊겼다. 덕분에 창건은 흑염군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필 수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흐른다. 수염을 멋지게 길러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의 남자인데, 눈에서는 유독 맹수와도 같은 기운이 흘렀다.
“어, 그게, 나는…….”
창건은 계속 더듬거렸다.
“예, 말씀하십시오.”
“나는…… 나는…….”
창건은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흑염군의 눈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왜 말을 못해! 정도영웅무림맹의 무사라고 왜 말을 못하냐고! 움직여라, 입아!’
창건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만 더하면 되는데, 흑염군을 보고 있자니 간이 오그라들어 감히 진실을 밝힐 수가 없었다.
‘으으, 아니야. 나는…… 죽기 싫어!’
창건은 자신의 진심을 깨달았다. 멋지게 죽는 것 따위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구차한 상황이라도 잡초처럼 연명하리라.
“예, 말씀하십시오.”
창건은 흑염군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창건의 귀에 환청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멍청한 자식! 나는 뇌동고란 말이다! 당장 길을 안내하지 못할까! 목이 달아나야 정신을 차리겠냐!’

창건은 자기도 모르게 뇌리에 박힌 이름을 읊조렸다.
“뇌……동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맞아, 뇌동고는 그 녀석의 이름이야.’
흑염군이 서늘한 시선으로 창건에게 말했다.
“뇌동고 소교주님의 존함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창건은 다시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흑염군의 존재감은 그만큼 강렬했다.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그렇게 간단하게 포기할 인생이 아니잖아. 이들이 내게 소교주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겠어.’
창건은 마음을 다잡았다.
‘소교주 행세를 하면서 도망갈 기회를 노리겠어. 나는 살 거라고! 얼굴 좀 망가진 게 대수냐! 내공을 잃었으면 어때! 살면 되잖아!’
살아만 있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온다. 창건은 억지로 웃었다.
“그래요, 내 이름은 뇌동고……. 잘 부탁해요…….”
창건은 억지로 태연을 가장했다. 흑염군 앞에 서 있다는 사실 만으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제가 드려야 할 말씀입니다.”
흑염군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죠?”
창건은 말을 골랐다. 뭔가 자세히 질문할 수도 없었다. 뇌동고가 당연히 알아야 할 사실을, 자기도 모르게 물을 수 있으니까.
‘상대가 들려주는 만큼만 듣는 게 안전해.’
“교주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유령대주에게 이미 들으셨을 겁니다.”
창건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들었어요.”
“사인(死因)은 연공 중의 주화입마입니다.”
흑염군은 냉막한 표정으로 창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주화입마…….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죽었구나. 하긴, 파천마제라고 신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나.’
태어나서 무림의 절세고수가 주화입마 때문에 죽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하긴 파천마제 정도의 고수면…… 전혀 다른 이유로 주화입마를 겪을 수도 있겠지.’
창건은 파천마제가 어떻게 죽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이상해서 입을 닫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이라…….’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무표정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흑염군은 다행히 의심하지 않았다.
“상황이 급해서 소교주님께는 미리 설명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암천마령기가 흩어지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전이를 시켜야 했습니다.”
“아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창건은 고개만 주억거렸다.
“충분한 설명을 드리지 못한 것, 용서를 구합니다.”
“아,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천하의 흑염군이 정중히 사과한다. 그게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진 창건은 손사래를 쳤다.
‘물어봐도 되나…….’
창건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얼굴은요?”
흑염군은 천천히 창건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분명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잠시 진맥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
창건은 잠시 머뭇거렸다. 진맥을 했다가 정도 무공의 흔적을 읽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아니야, 태을지기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아. 게다가 거절하면 의심할지도 몰라.’
핑계를 대는 쪽보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창건은 손을 뻗었다.
“좋아요.”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흑염군은 눈을 감고 창건의 손목을 잡았다. 그가 흘려 넣은 약간의 진기가 창건의 혈맥을 타고 흘렀다. 마침내 진맥을 끝낸 흑염군이 탁기를 토하며 말했다.
“땀을 많이 흘리시는군요.”
창건은 긴장하고 있었다. 겁먹어서 흘리는 땀이라는 걸 들키면 곤란하다.
“아, 아니에요. 그냥…….”
식은땀이 흘렀다.
“혈도 곳곳에 암천마령기가 뭉쳐 있습니다. 아직 융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상하군요…….”
흑염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창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무지 암천마령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다는 몰라도 절반 이상은 융화되었어야 하는데…….”
“하, 하하. 수련을 게을리 해서 그런가? 내가 원래 좀 게을러요.”
창건이 억지로 웃으며 흑염군의 관심을 끌었다. 순간, 흑염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야, 내가 말실수했어? 들킨 거야?’
창건은 흑염군의 표정 변화에 시시각각 민감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니 작은 변화에도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흑염군이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입니까?”
“하, 하하…… 그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창건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뭐야, 또 무슨 소리야!’
창건은 위험을 무릅쓰고 질문을 던졌다.
“……에? 죽어요?”
“그렇습니다. 암천마령기는 최소한 이십 년 동안 성지에서 고련을 거쳐야 받을 수 있는 기운, 소교주님께서 십칠 년 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셨다면…….”
“죽나요?”
“아니요, 죽지는 않으실 겁니다. 십칠 년이면 몸은 거의 만들어졌을 테니까요. 다만 융화가 너무 느릴 겁니다. 이를 어쩐다…….”
흑염군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건 뇌동고 얘기고. 나는 창건이라고!’
창건은 기가 막혔다.
자다 깨어 보니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기운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다. 창건은 생각에 잠긴 흑염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그냥 궁금해서 하는 얘긴데, 암천마령기를 그냥 일반인이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흑염군이 굳은 표정으로 창건을 노려보았다.
‘윽, 내가 생각해도 의심 받을 얘기이긴 한데……. 제길, 의심하지 마!’
창건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아니, 그냥 나는 궁금해서…….”
이윽고 흑염군이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암천마령기는 마교의 교주가 될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기운, 일반인이 받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습니다.”
‘그 만에 하나가 여기 있다고!’
흑염군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약 자격이 없는 자가 암천마령기를 얻게 된다면 몸이 터져서 죽겠지요. 혈맥이 모두 들끓어 올라서, 몸이 터져 죽을 겁니다.”
“…….”
“아니면 암천마령기가 머릿속까지 파고들어, 광인이 되고 말 겁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십중팔구 폐인이 되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겠지요.”
무시무시한 얘기다.
창건의 표정이 점점 질려가는 것을 보더니, 흑염군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게 너무…… 무시무시한 얘기라…….”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불가능한 얘기라고. 게다가 성지에서 몸을 정화한 소교주님께서 무슨 걱정이십니까.”
창건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흑염군은 별 뜻 없이 한 말일 텐데도, ‘너 가짜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 그렇겠죠. 갑자기 터져 죽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죠.”
창건은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아직 죽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받으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 했지만, 암천마령기는 단전에 모인 게 아니다. 혈맥 속에 잠들었을 뿐이다. 즉,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죽을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흑염군의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어. 아직 내가 살아 있잖아. ……방법을 찾자. 여기서 빠져나가 무림맹에 돌아가면 뭔가 수가 생길지도 몰라.’
무림맹에는 의성(醫聖) 한지일(?知一)이 있다. 마교 교주의 비전 무공을 뺏어 왔다고 하면, 아마 포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오랜 마교와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큼 커다란 공이 될 가능성도 있다.
‘비록 내공을 잃었지만…… 그만하면 충분히 정도무림의 영웅이 될 수 있을 거야. 좋아, 그때까지만 살아남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득했던 창건에게 목표가 생겼다. 정체를 들켜서 죽으나 암천마령기가 잘못돼서 죽으나 살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그러기 전에 기회를 봐서 목숨을 걸고 도망친다.
정도무림맹에 커다란 선물을 가지고.
‘의성님은 내 몸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얼굴과…… 어쩌면 내공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창건은 결심했다.
소교주 행세를 해서라도 마교에서 살아남고 말겠다고.
“그럼 휴식을 취하십시오.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필요한 것은 시녀에게 말씀하면 됩니다.”
“음, 알겠어요.”
창건은 많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즉위식 날짜는 두 달 후인 팔월 십일로 잡혔습니다.”
흑염군이 방을 나서기 직전에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