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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3화)
1장, 청부의뢰(3)


이름 당문화.
청부자는 무림맹의 장로인 황오현 장로.
삼 년 동안 당문화를 호위해야 함.
의뢰비는 이십만 냥. 선금 십만 냥 받음.
무림맹에서 청부한 것으로 당문화의 출생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음.

사내는 종이를 꾸기더니 중얼거렸다.
“무림맹에서 당문의 계집을?”
짤막한 서신을 통해서 사내는 무황이 품었던 의문을 그대로 유추해 냈다.
추측하건대 무림맹과 사천당문 사이에 뭔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이다.
“이십만 냥짜리 청부라. 잡놈이 웬일로 큼지막한 건수를 받았군.”
사내의 손에서는 삼매진화가 일어나더니 이내 종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허공에서 사라졌다.

* * *

무림학관.
백여 년 전 세외사마와 마교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인해 무림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을 무렵, 각 문파의 종주들은 정, 사파의 단합을 목적으로 세운 곳이 바로 무림학관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림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도발할지 몰랐고, 정파와 사파가 무림을 두고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으르렁거렸다고는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는 법.
무림 안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지키고자 하려면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무림은 많은 고수들과 명숙들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짧게는 수십, 오래 버텨 봤자 백 년. 아마도 그쯤이면 당대를 호령하는 고수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터, 그들의 독문절기나 절학 등도 그와 같이 유실될까 염려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무림의 쇠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강구책으로 내놓은 방법이 바로 무림학관의 설립이었다.
정파와 사파의 무공을 익히는 것은 물론이요, 아울러 변황이나 마교, 천마교의 무공까지 연구하여 그 파훼 방법을 배우고 익히게 하는 곳이 바로 무림학관의 설립 취지였다.
구파일방을 비롯, 오대세가와 사파의 총연맹인 사도련.
그밖에 무수히 많은 무림의 명숙들의 지지 아래 무림학관은 광동성에 설립되었다. 그렇게 설립된 무림학관의 역사가 팔십여 년!
무림학관은 수십 개의 전각이 모여 하나의 구조 형태를 이루고 있다.
깨끗하고 고풍스럽게 생긴 전각들은 수십 명의 기관진학의 대가들과 지리학. 건축에 능통한 대가들이 십여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십 명의 교관들이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일류급 이상들의 고수들이었다.
무림학관의 관주는 칠 년마다 한 번씩 선출되며, 관주는 정, 사파의 명숙들로 이루어진 원로원의 장로들에 의해 투표로 선출된다.
신입생은 매해마다 천 명을 뽑으며, 천무학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지원서를 내야 한다.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면접관들은 지원서를 면밀히 검토한 후, 합격된 가문에 신분을 증명해 줄 수 있는 패를 보내 준다. 제자들이 많은 무당이나 소림 같은 대문파의 경우에는 많게는 대여섯 명 어린 제자들이 한꺼번에 천무학관에 입관하기도 한다.
삼 년의 훈련을 거쳐 전반적인 무공을 배우게 되면 그들의 진로를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무림맹이나 사도련의 무사가 되어 맹을 위해 일을 할 수도 있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문의 부흥을 위해 강호에 발을 내딛을 수도 있었다.
대부분 대문파의 제자들은 가문으로 돌아와 가문을 위해 일을 하지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가문의 장자나 제자들은 정파냐 사파냐에 따라 나뉘어 무림맹 혹은 사도련에 투신하기도 한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었다.
천무학관에서 가르치는 무공은 대부분 널리 알려진 것도 있었지만, 꽤 쓸 만한 것도 많았다.
소림사의 칠십이절기 중 스물여덟 개를 천무학관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청성의 청풍검법이나 벼락문의 뇌풍검법 등은 대성을 이룬다면 능히 일류급 고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검법들이었다.
사도련에서 입문용으로 내놓은 무공서들도 꽤나 쓸 만한 편이었고, 그중에는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무공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일류급의 무공서가 없는 가문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문의 아이들을 무림학관에 입학시키려고 애를 쓰는 실정이었다.

* * *

광동성 외각을 따라 일자로 쭉 뻗은 산길에는 한 사내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아니, 사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려 보이는 소년이다.
그의 오른손에는 나무로 만든 동그란 패가 들려 있었는데, 그는 그 패의 뒷면을 보고 있었다.
뒤에는 붓으로 써 놓은 것이 아닌 뾰족한 물체를 이용하여 음각의 기법으로 파 놓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보통 패의 뒷면에는 패를 가진 사람의 신분을 적어 놓게 되어 있었다.
절강의 철가장.
화무린.
처음 들어 본 이름의 가문이다.
아마도 오래전에 망한 가문이던가, 의뢰를 맡긴 황오현 장로 측에서 허구로 만들어 놓은 가문임이 분명하다.
어차피 입관은 서류 심사만을 하는 것이 원칙이니, 자신의 신분이 거짓임이 들통 날 경우는 없을 것이다.
소년은 패를 주머니에 넣고,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꺼내 펼쳤다.
두 시진 전에 금아를 통해 받은 서신이다.
종이에는 짤막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당문화.
사천당문의 여식.
이란성 쌍둥이로 오빠가 한 명 있음.
무공보다는 암기에 능하며, 성격이 충동적이고 다혈질임.
무공수위 중(中).
무림맹과 사천당문과의 관계는 밝혀진 바 없음.

“흐음.”
무황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가느다란 신음성을 토해 냈다.
다른 내용이야 별 기대한 것도 없다지만, 황 장로 측에서 왜 그녀를 보호하려고 드는지는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재 무림맹은 이등분으로 분열되어 맹주의 세력과 대공자의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 불리는 작금의 무림맹주와는 다르게 대공자는 무서운 속도로 그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늘리고 있었다.
황오현 장로는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맹주를 지지하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이런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그것은 곧 맹주의 뜻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실마리라도 있다면 갈피라도 잡을 수 있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와 무림맹주와의 연관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영객잔에서 알아내지 못했다면 그것에 관한 정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신분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작정하고 꼭꼭 숨기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은 몸으로 부딪혀서 모든 것을 알아내야 한다는 소리!
“뭐 아무렴 어떠냐?”
무황은 히죽거리며 호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 씹었다.
육포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그는 틈만 나면 육포를 꺼내 씹었다. 육포를 오물거리는 것이 마치 세상을 모두 다 가진 듯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역시 육포는 산동성 태산에서 나온 육포가 최고야. 퍽퍽하지 않고 씹히는 질감이 그만이거든!”

같은 시각, 그런 무황이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광동사귀라고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귀견사귀라고도 불리는 자들로, 광동 지방에서는 꽤나 유명한 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소싯적에 종남파의 무공을 배운 자들로 종남파의 이름으로 온갖 패악질을 하다가 결국 문파에서 추방당했다. 무공 수준은 삼류에 불과하나 그 정도만 되더라도 한 지역에서 패악질로 먹고살기에는 넘치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산기슭에 바짝 엎드려서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 저놈입니다.”
사귀 중 막내가 손가락으로 무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혼자가 확실하냐?!”
“예! 제가 줄곧 따라오면서 관찰해 봤는데 동행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 큭큭큭!”
요즘에 광동사귀는 웃음이 끊이지가 않았다. 이맘때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무림학관에 입관하려고 얼뜨기들이 대거 모여들기 때문이다.
대문파들의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보호자들이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외진 곳이나 쇠락한 가문의 아이들은 대개 혼자 오거나, 짐꾼 한 명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무림의 경험이 일천한 아이들은 광동사귀 입장에서 보자면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금덩어리나 다름없어 보였다.
광동사귀 중 첫째가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슬슬 가 볼까?”
“자, 잠깐만요!”
넷째가 급하게 외친다.
“뭐냐?”
“저쪽에 누군가가 오고 있는데요?”
넷째의 손끝에는 웬 여행복 차림의 소년이 종종걸음으로 뒤쫓아 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황을 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소년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봐요! 저기 앞에 가는 분!”
남들보다 청각이 몇 배나 발달해 있는 무황이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무황이 걸음을 멈췄다.
무황이 걸음을 멈춘 것을 확인한 소년은 헉헉거리며 곧장 뛰어왔다. 그는 무릎까지 굽히며 힘겹게 숨을 헐떡거렸다.
“헉헉, 뭔 걸음이 그렇게 빠르오? 아까부터 쫓아왔건만 겨우 따라잡았네.”
“응? 나한테 볼일이 있어?”
“이 길이 광동성 성내로 가는 길 맞소?”
“맞는데?”
“휴, 맞게 찾아왔구나.”
그 말을 들은 소년이 안심의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보고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바로 광동사귀들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한 놈이든 두 놈이든 상관없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게다가 둘 다 어린애들 아니냐?”
둘째가 말을 받았다.
“아무렴, 우리 광동사귀가 저런 어린애들 두 명도 어찌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그냥 나갑시다!”
첫째가 명령을 내렸다.
모두가 고대하던 명령이었다.
“좋다! 저놈들을 포위해라!”
“두 놈 다 그 자리에서 멈춰라!!!!”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광동사귀는 산기슭에서 뛰어내려와 두 소년 앞에 착지했다. 두 놈은 뒷길을 차단하고 두 놈은 앞길을 가로막았다. 겁을 주는 건 가장 험상궂게 생긴 막내의 차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