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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6화)
1장, 청부의뢰(6)


“젠장, 젠장, 젠장!”
무황이는 근처 객잔에 방을 잡고 틀어박힌 채 머리를 마구 쥐어짜고 있었다.
황오현 장로가 짐작한 대로 무황은 무영문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무영문의 이십오대 문주인 무영천존으로부터 그의 성명무기인 무영귀갑을 물려받고, 그의 절학을 가르침 받았다. 원래 무황은 갓난아기 때 버려진 고아였는데, 지나가던 무영천존이 그를 주워다가 길렀다. 무황의 이름은 다름 아닌 바로 무영문의 무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었다.
무영문은 말 그대로 형체가 없는 문파. 아니, 문파라고 불릴 수도 없는 곳이다.
일인전승이면서 일인전승이 아닌 문파이기 때문이다.
무영문은 이백 년 전, 십삼대 황제인 성락제의 명에 의해 처음 개파되었다.
무림의 세가 점점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성락제는 자신의 눈과 귀가 될 수 있는 문파를 무림에 두길 원했는데, 그래서 은밀히 만들어진 문파가 바로 무영문이었다.
원래 그들의 주된 임무는 바로 무림의 동향이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성락제는 무영문에게 그들만의 독특한 운영 방식을 요구했는데, 그것은 바로 당대문주에게 정오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주고, 일인전승의 승계 방식을 요구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주가 제자를 들여놓게 되면 문주의 직위는 자동으로 회수되고, 그 제자가 정오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세습하게 되는 것이다.
무영문의 존재는 극비였으며, 이는 성락제와 측근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무림고수들로 철저한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영이라는 이름하에 백 명을 채 넘지 않았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제각기 활동하고 있으며, 전서구를 통해서만 정보를 교환했다. 허나, 성락제는 숙부인 기륭의 반란으로 폐위를 당하고, 그의 측근들이 참수당하자, 무영문의 존재는 황실 내에서도 유명무실해져 버리고 말았다.
문파를 개파한 지 고작 이십오 년만의 일이었다.
황실에서부터 독립된 무영문은 그 후, 재정이 어려워지자 문파의 존속을 위해서 의뢰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당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대의 문주는 무황이었다.
무황이 열다섯 살이 되던 날, 무영천존이 무황에게 문주임을 알리는 무영귀갑을 건네주면서 말한 것이 있다.
“문주가 되면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의뢰를 받아 문파를 존속하게끔 해야 하며, 스무 살이 되면 서른 살까지의 강호행에 보장된다. 하지만 그 후 서른 살이 되면 문파로 돌아와 문주 자리를 계승할 제자를 길러야 한다. 그 후 제자에게 문주 자리를 계승해 주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지. 바로 나처럼.”
무영천존은 그 다음날 변방 구경을 한다며, 홀연히 떠나 버렸다.
그 후, 무황은 이 년간 의뢰를 받아 돈을 꽤 많이 벌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었다. 그 돈을 행수전장에 맡기면 무영들이 활동비 목적으로 돈을 찾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가난했다.
문파의 존속을 위해 벌써 백 년도 넘게 그렇게 해왔다지만, 무황은 항상 그게 불만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거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유명무실한 정오품의 벼슬자리가 뭐 대단한 거라고.
“제기랄! 우라질!”
벌써 수백 번은 말한 단어다.
무황은 동이 틀 때까지도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영문에서 무림행을 할 수 있는 이는 자신에게만 국한되어 있으며, 설혹 누가 도와준다고 해도 하루 안에 이곳에 올지도 의문이었다.
무황이 비록 문주 자리를 계승받았다고는 하지만, 정작 무영문에 대해서 아는 것은 무영객잔이라는 정보처와 전서구로 이용되는 금아의 존재밖에 몰랐다.
더군다나 이번 의뢰는 선수금으로 십만 냥을 받았다. 만일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돈의 세 배인 삼십만 냥을 배상해야 한다.
말이 삼십만 냥이지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다.
여지껏 자신이 번 돈보다도 많은 액수.
“후우… 후우!”
무황이는 심호흡을 했다.
뭔가 번뜩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하지만 무황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했다.
그것은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아니,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한 시진, 두 시진… 점점 애꿎은 시간만 흘러가고 불안과 초조함에 무황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벽에 머리를 마구 부딪쳤다.
쿵쿵쿵쿵쿵!!!
그래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떴다. 이제는 정말로 뭐라도 해야 하는 시간이다. 오늘을 넘기면 무림학관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제기랄, 그 자식 만나면 죽여 버릴 거야.”
무황은 굳은 얼굴로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그리고 곧 무황의 얼굴근육이 먼젓번 흑의경장 사내를 만났을 때처럼 꿈틀되기 시작했다.

“아, 어떤 썩을 놈이 지랄이야!”
객잔 일층에서 졸고 있던 객잔 주인은 기둥이 흔들리는 굉음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이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층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손님들은 지붕이 내려앉는다고 급히 밖으로 나가 버리고, 주방 선반에 놓아두었던 식기들은 죄다 바닥으로 쏟아져 버렸다.
그 바람에 주방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점원 말로는 웬 소년이 묶고 있는 방이라고 하던데, 주인은 그 소년에게 손해비 명목으로 단단히 돈을 뜯어낼 작정이었다.
탕탕탕!
주인이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화가 단단히 난 상태인지라 자연 나오는 목소리도 곱지가 않았다.
“이보시오!!!”
그래도 투숙객인지라 주인은 최대한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했다.
“안에 있는 거 아니 빨리 나오시…….”
주인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문이 반쯤 열리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러시죠?”
참으로 영롱하면서도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주인은 그 덕분에 화가 난 것이 조금은 수그러들어졌다.
만일 목소리의 주인공이 소란을 피운 것이라면 용서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문이 완전히 열리고 주인은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눈이 확장되면서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나이는 열일곱 살 정도나 됐을까?
깎아 놓은 듯한 이목구비와 시원스럽게 내리뻗은 콧날, 그 아래로 붉은 장미를 머금은 것처럼 보이는 도톰한 입술은 만져 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귀여우면서도 절제된 듯한 요염함이 몸 전체에서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데 어찌 한 사람이 저렇게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디 그뿐인가, 인중 아래로 꾹 다문 입술은 남자라면 자칫 고집스럽게 보일 수가 있었는데, 소녀의 입술은 도톰하기 그지없어 여자 특유의 도도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주인은 객잔 운영을 하면서 아름다운 소녀를 숫하게 봐왔지만, 이 소녀는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이었다.
예전에 무림삼화 중 한 명이라는 용봉이 자신의 객잔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이 소녀의 용모는 가히 그녀와 비견될 만할 정도였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듯한 무명옷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 때문에 그녀의 외모가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그 점이 심히 안타까웠다.
주인은 얼굴에 미소까지 띠우면서 말했다.
“다름이 아니옵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한번 올라와 봤습니다.”
“아, 그래요?”
소녀는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재빨리 순발력을 발휘해 대답했다.
“조금 전에 방 안에 쥐가 한 마리 들어와서 제가 놀래서 그랬나 봅니다.”
“쥐요?”
그 말에 주인이 오히려 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아무리 청결해도 쥐들이 드물게 객잔 안에 나타나기도 했다.
“네. 저는 쥐를 무척이나 무서워하거든요. 혹시 많이 시끄러웠나요?”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죄송스럽습니다.”
주인은 두 손까지 내저어 가며 과장되게 몸짓을 했다.
“그런데 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행히 창문 밖으로 도망갔습니다. 어찌나 놀랬던지…….”
소녀는 앙증맞은 손을 가슴 깨로 얹으며 쓸어내렸다. 참으로 가증스러웠지만, 주인장의 눈에는 깜짝 놀란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허허, 소녀께서 저희 객잔에서 그런 몹쓸 일을 당하셨다니. 죄송스럽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언제고 다시 한 번 저희 객잔에 들려 주십시오. 그때는 저희가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공짜로요?”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주인은 그 모습이 참으로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 * *

무림학관의 정문 앞.
늘 그렇듯이 나른한 오후를 맞이하여, 몸이 축 늘어지고 있던 면접관은 기지개를 피다가 해괴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저 먼발치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여인임은 분명한데, 사내 옷을 입고 마치 사내처럼 어기적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여기요.”
여인이 앙증맞은 손에 꽉 쥐고 있던 입관패를 내밀었다.
헌데, 신기하게도 목소리는 꾀꼬리나 다름없을 정도로 영롱하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용모는 또 어떠한가.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피부 또한 순백색이었다. 허나 눈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는 게 어딘가 모르게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심경을 대변해 주듯 목소리도 퉁명스럽고 짜증이 묻어 나왔다.
면접관이 확인하니 그 뒤에는 절강의 철가장 화무린이라고 적혀 있었다.
면접관은 뛰어난 기억력으로 어제 찾아왔다가 되돌아간 소년을 떠올렸다.
‘아, 어제 그 소년을 보냈던 여인이구나.’
그러고 보니 얼굴이 조금 닮아 있었다.
면접관이 깨알같이 적혀 있는 방명록에 화무린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으며 말했다.
“어제 온 소협이랑은 남매이신가 봅니다. 두 분이 닮으신 것 같네요.”
“그래요?”
“절차에 따라 저 안으로 들어가면 간단한 시험이 있을 겁니다. 통과하시게 되면 방 배정을 받고, 무림학관 소속의 학생이 되어 삼 년간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 후에는 맹이나 련의 무사가 될 수도 있고, 무림고수가 되어 강호행을 하셔도 됩니다.”
무황, 이제는 화무린이 된 그녀가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물어보십시오. 아는 한도 내에서는 대답해 드리지요.”
“혹시 당문화라는 소저가 이곳에 들어갔나요?”
“당문의 당문화 소저요?”
면접관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대답했다.
“분명히 오긴 왔습니다. 한 이삼 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만. 어디 보자…….”
면접관은 방명록까지 뒤척이면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친절을 베풀었다.
“여기 있네요. 당문화. 이틀 전에 왔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들은 화무린은 씨익 웃으며 무림학관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모습이 생긴 거와는 다르게 왠지 모를 괴리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당당하고 자신 있어 보였다.
“건투를 빌겠소!”
면접관이 크게 소리쳤다.
화무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