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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7화)
2장, 무림학관(1)
시험은 면접관의 말처럼 무척이나 쉬웠다.
간단한 시력, 청력검사를 하고, 사물이나 물체에 대한 인지능력이나, 어떠한 상황에 처해져 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 사고능력, 무공에 대한 이해 등. 간단한 것을 묻고 답하는 게 끝이었다.
무림학관에서 보는 시험이라기에 대단한 것인 줄만 알았는데, 면접관의 말처럼 사지육신만 멀쩡하다면 누구나 붙을 법한 시험들이었다.
시험을 끝내자, 안내원으로 보이는 듯한 이가 다가와 옷 두 벌과 책자 한 권, 누런 용그림이 그려져 있는 황동패를 주며 설명했다.
“처음 무림학관에 들어오는 이에게는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이 새겨져 있는 황동패를 지급합니다. 다음 해에는 은패를 지급. 졸업반이 되면 금패를 지급해 드립니다. 이것은 자신의 신분과 학년을 뜻하는 것이니 항상 가지고 다니셔야 합니다. 절대 잃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요. 그러도록 하죠.”
“이것은 무림학관의 신입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책입니다. 읽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네.”
“저를 따라오십시오. 방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옷은 배정받은 방에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옷이요?”
“처음 입관한 학생들은 육개월간 훈련 생활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규정이니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어요.”
“혹시라도 집으로 보낼 물건이 있으시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잘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화무린은 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들고 온 것이 없었으니까.
“방이나 보도록 하죠.”
화무린은 길을 가는 도중 궁금해서 책을 펼쳐 봤다.
책 안에는 무림학관에 관한 규칙과 규율, 각 건물의 이름이나 사용 목적 등이 쓰여 있었다. 그중에는 화무린이 아는 것도 있었고, 모르는 것도 있었다.
“청무관은 뭐고 백무관은 또 뭐야?”
화무린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안내원은 그런 화무린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청무관은 기초적인 체력훈련이나, 무공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알려 주는 곳입니다. 백무관은 주로 내공심법과 체질에 걸맞는 무공을 배우는 곳이지요. 어떠한 것을 익히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곳에 배치되어 있는 교관들이 친절하게 지도해 줄 것입니다.”
“오호, 그래요?”
“하지만 소저의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저마다 어려서부터 갈고닦아 온 무공이나 내공심법이 있으니까요. 그럴 경우에는 다음 학년이 될 때까지 자율훈련으로 수련하시던 것을 계속하시면 됩니다. 학년이 바뀌면 개방되는 무공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거든요. 다 왔습니다. 여기입니다.”
안내원이 걸음을 멈춰선 곳은 엄청나게 큰 규모의 건물 앞에서였다. 고풍스럽게 지어진 건물의 규모는 그 높이만 십 장은 족히 넘어 보였다.
안내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부터는 혼자 가셔도 될 것입니다. 방은 총 오십 개로 나뉘어져 있으며, 한 방에 세 명씩 생활하게 될 겁니다. 소저가 묶게 될 곳은 삼백이호실입니다. 지금은 빈방이 조금 있으나 오늘까지는 학생들이 입실 예정이오니, 방이 모두 채워질 것입니다. 내일 입관식 행사 후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은 푹 쉬시며 구경이나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화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원이 돌아가자 화무린은 그녀의 말대로 걸음을 옮겨 삼층으로 향했다. 건물 안에는 딱히 장식이랄 것도 없는 수묵화로 그려진 그림이나 서체 등이 걸려 있었다. 그 옆으로 신입생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저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입생들은 저마다 화무린을 보며 힐끔거렸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쟤 뭐야, 저거 남자 옷 아니야?”
“그러게,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남자 옷을 입고 있지?”
힐끔힐끔.
그러고 보니 화무린은 자신이 아직까지 무황이었을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아까부터 사람들이 자꾸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니.
의식을 안 할 때는 모르겠으나,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자꾸 신경이 쓰였다.
화무린은 삼층까지 올라가 삼백이호라고 써져 있는 방 앞에 멈춰 섰다.
문은 미닫이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지 방 안은 조용했다.
드르르륵―!
방은 깨끗하고 생각보다 큼지막했다.
적당한 위치에 침대까지 놓여져 있었다.
침대 위에는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탁자 모양의 수납공간 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 위에는 임자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추측컨대 이방에는 이미 한 명이 입실해 있는 상태이고, 자신 이외에도 한 명이 더 올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침대는 입구 쪽과 그 반대편에 있는 모서리 쪽.
전망 좋은 창가 쪽은 이미 주인이 있었다.
“이쪽이 마음에 드는군.”
화무린은 입구 반대쪽 침대를 선택했다. 여자들은 보통 전망이 좋은 곳에 침실을 꾸미는 경향이 있는데, 화무린이 보기에는 그것은 어리석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암살자가 누군가를 죽일 작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려면 창문을 통해 침투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련한 무인들은 보통 객잔에서 투숙을 할 때에도 창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에서 잠을 청하고는 한다.
화무린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입고 있는 옷을 집어 던진 후, 안내원이 내어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은 맞춘 듯이 꼭 맞았다.
화무린은 한쪽 벽에 놓여진 동경을 쳐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모습이긴 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들어갈 때는 들어가고 나올 때는 확실히 나왔다. 몸매의 굴곡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완벽한 절제미를 갖춘 체형이다.
청부 일을 계속 맡다 보면 본의 아니게 여자가 필요할 때가 종종 있는데, 화무린은 그럴 때마다 변체환용술을 사용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일을 하곤 했다.
뚱뚱하고 못생긴 것보다는 아름답고 예쁜 것이 훨씬 좋지 않은가?
일의 능률도 오르고, 보기에도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의 묘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처음에 사부에게 이 무공을 배웠을 때가 생각난다.
화무린이 익히고 있는 이 무공은 천마교의 구마 중 한 명이라는 환마의 무공을 본떠 만든 것으로, 환희소소공과 축골공(縮骨功)을 변형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 것이라고 했다.
명칭은 이른바 무영환용술!
무영환용술을 펼치게 되면 환희소소공을 발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미혹시키는 기운을 은은히 내뿜게 된다.
상대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기운에 매료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무영환용술에도 단점이 존재했으니.
그것은 바로 무영환용술을 유지하려면 내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지간한 내가고수들은 정신을 완전히 잃던가, 내공이 바닥이 나지 않는 이상 몸 안에서 스스로 내력을 만들어 발생시키기에 내력이 끊길 걱정은 없으나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이다.
그에 따른 심력도 낭비해야 하니 이것 또한 단점이라면 단점이랄 수 있었다.
처음 화무린은 그것을 자신이 살고 있는 홍등가의 여인들에게 실험 삼아 써 본 적이 있는데, 그 효과는 매우 탁월했다.
내친김에 화무린은 사부에게서 배운 잡기들과 방중술 등을 실험해 볼 요량으로 매일같이 홍등가에 드나들었다. 그 덕분에 색마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한 적은 없었다.
화무린이 발휘하는 섭혼술에 걸려 세뇌당한 여인들이 저마다 동침을 한 것으로 착각을 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화무린이 동경에 비친 자신이 모습을 보고 흠뻑 젖어 있을 때, 누군가가 방 안으로 쓰윽 들어왔다.
화무린은 둔부 부분이 조금 쳐졌나 싶어 쓰다듬다가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욕설부터 내뱉었다.
“시팔, 깜짝이야!”
그 말을 듣고 들어온 여인이 화무린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 보이는 소저였다.
“죄, 죄송해요. 방 안에 사람이 있는지 모르고.”
들어온 소저는 얼굴까지 시뻘개져서 고개까지 꾸벅 숙였다.
사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동경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있었던 것은 화무린이었으니까. 괜히 이상한 모습을 보인 게 아닌가 싶어 화무린이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온 소저를 반겼다.
“어머, 미안해라! 나도 모르게 그만. 호호호!”
들어온 소저가 화무린을 보고 힐끔거린다.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그것은 화무린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그녀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수줍음이 아니라 낯선 이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어린 소저는 화무린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 이방에서 묶을 신입생 맞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끄덕.
“남은 곳은 저곳밖에 없으니 그곳에다가 짐을 풀면 될 거야.”
화무린이 입구 쪽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어린 소저가 쭈뼛거리며 여장을 풀어놓았다.
눈치를 보면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워 보였다.
“이봐 동생, 몇 살이야?”
화무린이 물었다.
“열다섯 살인데요.”
그녀가 대답했다.
“혹시 요령성 심양에서 왔니?”
그녀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래? 그렇다면 모용세가의 둘째딸 모용수미가 너겠구나?”
그녀는 너무 놀라 눈만 껌뻑거렸다.
완전 귀신이 따로 없었다.
“호호호, 별거 아니야. 네가 입고 있는 옷은 요령성 특유의 무늬가 그려져 있지. 재질이 좋은 비단옷은 심양에서 큰 포목점에서 주로 판매되는데, 무림학관에 입학할 정도의 신분과 재력을 가진 곳은 요령성에서 모용세가밖에 없지. 안 그래?”
“우와!”
모용수미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