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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8화)
2장, 무림학관(2)


“난 화무린이라고 해. 열일곱 살이니까 내가 언니겠네?”
모용수미가 꾸벅거리면서 인사했다.
눈을 반짝거리는 것이 말 몇 마디로 인해 경계를 풀고, 자신에게 존경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점을 보자면 애들은 확실히 다루기가 쉬웠다.
“안녕하세요. 언니.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화무린이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잘 지내보자꾸나.”
둘은 마땅히 할 것도 없어 주변이나 구경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모용수미는 오늘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화무린을 무척이나 따랐다.
원래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자제들은 무척이나 엄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교육들은 대부분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은데, 그래서 명문자제의 아이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낯선 이들을 경계하기 마련이다.
모용수미는 다행히도 그러한 점은 없었다.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요즘같이 대문파의 자제랍시고 거들먹거리거나 남을 업신여기지 않아서 좋았다.
아직 어려서인지 천성이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무린은 그런 모용수미가 싫지 않았다.
모용수미가 뒤따르면서 말했다.
“언니 머리카락이 진짜 예뻐요. 마치 보석처럼 찰랑거려요.”
“칭찬 고맙구나. 별거 아니야. 너도 조금만 지나면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게 될 거야.”
“진짜요?”
“그래. 언니도 너 나이 때쯤에는 머리카락이 빗자루처럼 거칠었었지.”
“그래요? 그러면 저도 조금 더 크면 언니처럼 변할 수 있을까요?”
모용수미는 조금은 작은 키에 아이 같기 만한 자신의 몸과 화무린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을 반짝반짝 거렸다.
사실 그건 모용수미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자신이 또래들과는 다르게 발육이 뒤처진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큰 걱정 중 하나였던 것이다.
모용수미의 부모님은 그런 걱정거리를 듣고, 걱정 말라며 그냥 웃어넘겼다지만 모용수미는 그러지를 못했다.
화무린은 걱정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
“걱정 마렴. 네가 무림학관을 졸업할 때쯤에는 이 언니보다 훨씬 더 예쁘게 변해 있을 테니까. 아마 너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가 줄을 서게 될 거야.”
“진짜요? 진짜 그럴까요?”
어린애 한 명 속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아니 이것은 속이는 것이 아닌, 아이의 동심을 지켜 주는 선의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물론, 모용수미가 절색미인으로 변화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그럴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화무린이 쐐기를 박았다.
“물론이지.”
“헤헷.”
모용수미가 그 말에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 * *

무림맹은 크게 집법전과 원로원으로 양분되어 나뉘었다.
집법전은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는 크고 작은 스물아홉 개의 무력 단체를 이끌며, 맹의 외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원로원은 주로 내전에 관계된 일을 맡아보고 있으며, 인사 문제나 외교적인 일을 맡아 맹의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집법전과 원로원은 무림맹을 떠받히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무림맹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림맹에 이런 핵심 단체가 두 개인 이유는 바로 집법전과 원로원이라는 두 개의 세력이 서로를 상호 견제하여, 어느 한쪽의 세력에 의해 맹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허나, 평화의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된 탓일까?
현재의 무림맹은 그 이름이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썩어 가고 있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그 끝이 없을 정도로 탐욕스러운 것. 가진 것에 안주하지 못하고 늘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탈을 쓴 짐승이 아니던가?
그것이 권력이라는 이름하에 내던져질 때는 더욱 그러하다.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그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져 가는 무림맹은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점점 변질돼 가는 무림맹의 모습을 보며 환멸을 느낀 많은 무림명숙들이 맹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의 무림명숙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는 반대로 부와 명예를 탐내는 사파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원로원 같은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는데, 작금에 이르러서는 원로원의 삼십 명 중 스물 명이 사파의 고수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천하는 사파 천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수뇌부들만 모이는 회의실에 때 아닌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실내에는 숨 막힐 듯한 살기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인원은 총 열여섯 명.
모두가 원로원의 고수들 사파 출신들로만 이루어진 자들이었다.
여기 모여 있는 자들 중 무공 수위가 제일 약한 자가 일류급이요,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이겨 내지 못하고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단 한 명.
바로 노상춘 장로였다.
그는 사도련 내에서 제 이인자로 알려져 있으며, 부련주직과 무림맹의 원로원주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노상춘은 극양지체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 극양마공을 칠성까지 익혔는데, 그로 인해 그의 눈동자에서는 늘 은은한 붉은색 기광이 뿜어져 나왔다.
노상춘은 화가 났다는 것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지 고스란히 자신의 기운을 노출시키며 장내를 쏘아봤다. 그의 눈빛은 진득한 살기가 녹아들어가 있었다. 그 눈빛에 닿는 이들은 한결같이 몸을 움츠리며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가 노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장내를 훑어보며 물었다.
“계집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소?”
그 말에 가뜩이나 움츠려 있던 이들은 아예 고개도 들지 못했다.
우지직!!!
그가 쥐고 있던 의자 손잡이 부분이 부서지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삼뇌마야 당수기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는 사파제일의 두뇌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는데, 뇌가 세 개라고 하여 삼뇌마야라고 불리고 있었다.
노상춘이 딱히 자신을 지목하여 묻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 화살의 방향은 자신에게로 올 것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무서워 노상춘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삼뇌마야 당수기는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용기를 내어 입을 떼었다.
“죄송합니다. 사람을 풀어 찾아보고 있으나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시일을 주신다면…….”
그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쾅!!!
노상춘은 자신의 앞에 놓인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친 것이다. 노상춘의 주먹에 맞은 탁자는 그대로 갈라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대체 언제까지 그 말만을 반복할 것이오?! 사파 제일의 두뇌라는 자가 여지껏 십칠 년 동안이나 감춰져 있던 계집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오? 그러고도 그대가 사파제일의 두뇌라고 할 수 있겠소?”
“죄, 죄송합니다. 허나, 황오현 장로 측에서 작정하고 감춰 왔던 터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벌써 꽤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자도 없었고… 관련자들 또한 모조리 잠적해 버린 탓에…….”
갈수록 삼뇌의 말은 작아졌고, 노상춘은 싸늘한 얼굴로 삼뇌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되었지. 바로 집법전의 양당주에 의해서!”
그 말을 들고 한쪽 벽에 서 있는 자가 고개를 숙였다.
양당주는 집법전의 소속 당주로, 이번에 노상춘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였다. 이런 중대차한 회의에 당주의 신분으로 참석한 것은 그가 제공한 정보가 워낙 대단한 탓이었다. 노상춘이 그를 바라보며 치하했다.
“양당주가 아니면 큰일 날 뻔했소이다. 내 이 신세는 언제고 크게 한번 갚겠소.”
노상춘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었다. 그는 당근과 채찍을 확실히 이용할 줄 아는 자였다. 부릴 때는 확실히 부리고, 공을 치하해 줄 때는 확실하게 치하해 준다. 그가 안겨 주는 권력과 재물은 상상도 하기 힘든 막대한 것이라 그 맛을 본 자들은 헤어나지를 못했다.
“삼뇌! 더 핑계될 말이 있소?”
“아, 아닙니다!”
당수기는 아예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죄송합니다. 소인이 무능하여 그만…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수하들을 시켜 그 계집의 행방을 추적 중에 있습니다. 신원이 파악되는 대로 사람을 붙여 놓을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노상춘도 삼뇌가 말한 것밖에 뾰족한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는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속내를 수하들에게 드러내 보일 만큼 어리숙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자였다.
이럴 때는 몰아붙이기보다는 너그러움을 보여 주는 편이 더 나았다. 쥐구멍에 몰린 생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기에.
“좋소. 시간을 더 드리리다. 허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오래 기다릴 수는 없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처리해 주시오. 내 그대에게 비영대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겠소.”
“비, 비영대요?”
비영대는 사도련 내에서도 비밀리에 운영되는 정보단체로 하나같이 일류급 고수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개개인이 극도의 경공술을 익힌 자들로, 주로 어려운 첩보활동이나 주요임무 등에 투입되어 활동을 했다.
그런 자들이 오십 명이나 되니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일은 그대에게 일임하도록 하겠소.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 시! 단단히 각오를 하는 것이 좋을 거요!”
당수기가 바닥에 머리를 부서져라 박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