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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10화)
2장, 무림학관(4)
“내 이름은 천개팔이라고 한다. 혹시나 생활하다가 어려운 게 있으면 나를 찾아와라. 내가 뭐 도움이 되겠냐만은 혹시 또 도와줄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저는 화무린이라고 합니다. 얘는 모용수미이고요.”
“그래, 그러면 어서 먹고 가 봐라. 나는 저녁 배식을 준비하려면 이것저것 할 일이 많으니.”
화무린은 천개팔이라는 이름을 대뇌이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천개팔이라는 중년 사내는 건성으로 손짓을 하며 주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무린은 그의 뒤를 보다가 기분 좋게 외쳤다.
“자, 그러면 식사를 해 볼까나? 응?”
모용수미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아 벌써 주먹밥을 먹고 있었다.
자신의 주먹만 한 밥을 들고는 입에 밥풀까지 묻혀 가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그가 주먹밥을 싸 놓은 보자기가 펼쳐져 있었는데, 보자기 위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화무린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수미야 주먹밥은?”
모용수미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다섯 개를 전부 다?”
“응! 맛있어!”
눈을 반짝반짝 거리는데 화무린은 거기다가 대놓고 할 말이 없어졌다.
화무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당에서 나온 화무린과 모용수미는 무림학관 내에 있는 뒷산으로 올라갔다. 저녁 시간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숙소로 돌아가자니 답답해서 싫고, 학관 내를 구경하자니 사람들의 시선이 귀찮고,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자그마한 언덕이 있는 뒷산이었다.
별 기대하지 않고 그냥 간 것인데 나무가 우거지고 적당한 그늘도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둘은 그늘 아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발아래로 무림학관 내에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좋은 장소가 있는지 몰랐네? 앞으로는 종종 와야겠다.”
발아래 오른쪽에는 제이수련관이 있었는데, 밀폐된 공간이 아닌 그저 바닥을 평평하게만 만들어 놓은 연무장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수련생이 교관의 구령에 맞춰 초식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림의 대력장이라는 것이었는데, 일종의 내가수법의 장법으로 소림의 칠십이절기 중의 하나였다. 대성을 하는데 시일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대성만 한다면 장법 하나만으로도 능히 일류무사가 될 수 있는 무공 중 하나였다.
화무린도 소림의 무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그들이 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거리가 조금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백 장 거리에 있는 물건도 확연히 볼 수 있는 화무린이라 그런 것쯤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이렇게. 손바닥을 뒤집은 다음 연환퇴 수법으로 차올리고 몸을 회전.”
화무린은 직접 몸을 움직여 가며 그 동작들을 따라 했다.
연결되는 동작 하나하나가 신묘한 묘리를 가지고 있어, 굳이 내공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무궁무진한 쓰임새가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소림이군. 훌륭한 무공이야.”
“아버지가 그랬어요. 대력장은 훌륭한 무공이지만, 여자들이 익히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모용수미는 화무린이 뭘 하나 싶어 보고 있다가 대력장을 시전 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버지가?”
모용수미의 아버지라 함은 모용세가의 현 가주로 있는 모용천이다. 모용세가는 검과 장법으로 알려진 무가인데, 현 가주인 모용천은 특히나 장법을 잘 쓰기로 이름난 고수였다. 아마도 그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네, 대력장은 장이지만 보법을 밟고 장을 내밀어야 그 위력이 제대로 나온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보법이라는 게 투박하지만 몸의 체중을 많이 실어야 해서 하체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고 그랬어요.”
“너도 대력장을 익혔니?”
모용수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거 익히면 다리가 굵어진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전 안 익혔어요.”
“흐음. 그래?”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소림의 무공은 화려하지도, 빠르지도, 패도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소림의 무공은 그 동작 하나하나에 중후함, 무거움이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 소림의 무공은 근력과 하체의 힘을 많이 필요로 하는 동작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체를 많이 단련하게 되면 자연히 다리가 굵어지기 마련인데, 남자라면 상관이 없으나 외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여자라면 자신의 다리가 굵어지는 것은 누구라도 싫어할 것이다.
소림에 여자 고수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하하, 그 말이 맞소. 장법에 관심이 있다면 대력장보다는 본가의 천뢰장을 익히는 것이 나을 것이오. 대력장은 여자가 익히기에는 아무래도 힘든 무공이니까.”
뒤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고, 그 중심에는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곧장 화무린과 모용수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가운데 청년이 먼저 모용수미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수미야.”
“어? 오빠!”
“네가 입학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는데 여기 있었구나.”
“헤헷, 그랬어요?”
“그래 녀석. 이제는 제법 숙녀티가 나는구나. 말괄량이 때의 시절은 모두 잊어야겠어.”
“치,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저도 이제 열다섯 살이나 됐다고요!”
모용수미와 담소를 나누는 것이 무척이나 가까워 보이는 사이 같았다.
얼굴은 제법 잘생긴 편이었고, 입고 있는 옷도 비단 재질로 만든 질 좋은 옷이다. 체격도 좋아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신체였다. 천뢰장을 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남궁세가밖에 없는데, 현승이라면 남궁세가의 장자.
남궁현승밖에 없었다.
남궁현승은 떠오르는 후기지수로 요즘 무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삼룡사봉 중의 일인이었다.
똑똑하고, 처세술도 좋은데다가 무공 수위도 뛰어나 세인들은 삼룡사봉 중에서도 그를 가장 수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런 남궁현승이 화무린을 보고 포권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남궁세가의 남궁현승이라고 합니다.”
“전 화무린입니다.”
원래 통성명을 할 때는 자신의 가문이나 지역, 무림 명이 있다면 무림맹을 붙이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져 오고 있었다. 상대의 출신을 미리 알아 행여 있을지도 모를 실수를 방지하고자 함인데, 그와 같은 관행은 배분이나 사문을 특히 많이 따지는 무림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남궁현승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뒷말을 기다리다가 그것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얼른 말을 받았다. 이름만을 말하고자 함은 사문이 숨기고 싶을 정도로 비천하던가, 아니면 신분을 알리고 싶지 않음이 분명했다.
“하하, 화무린 소저였군요. 오늘 입관하셨나 봅니다.”
“네.”
“무림학관 구경을 다 하셨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하하, 사실 이곳은 볼 게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소저께서 구경할 만한 곳을 추천해 드린다면 남쪽에 있는 천향각에 가 보십시오. 그곳에 심어진 연꽃이 만개하여 소저가 보시기에는 제법 볼만할 겁니다. 원하시면 제가 안내도 해드리겠습니다.”
화무린은 시원시원한 성격의 남궁현승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야비해 보이지도 않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 무림의 후기지수 중의 한 명으로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 출신에 삼룡이라는 별호까지 얻고 있다면 다소 자만심이나 허영심에 빠질 수가 있는데 이 청년은 그러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음 씀씀이도 저만하면 괜찮은 것 같고.
그렇지 않아도 무림학관 내에서 지내면서 여러모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조력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남궁현승이 제격이었다.
뎅뎅뎅―!
무림학관 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유시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화무린은 허기진 배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제가 먼저 청하고 싶군요. 하지만 오늘은 허기를 달래는 것이 먼저니 다음에 가도록 하죠.”
남궁현승이 물었다.
“식당에 가십니까?”
“네.”
“마침 저희도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괜찮으시면 같이 동행하도록 하죠.”
생각지도 못한 제의였다. 아니 애초에 남궁현승을 만날 것이라고 예상도 못했으니 생각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모용수미를 쳐다봤다.
그녀는 좋다는 의사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화무린도 뭐, 이들과 사귀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야호!!”
“아싸!!!”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궁현승과 같이 온 일행들 사이로 환호성이 들려왔다.
매일같이 냄새나는 남자들 사이에서 고된 훈련만 받다가 풋풋한 신입생 소저들과의 저녁 식사라니. 그들이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무림학관 내에 여자들이 있다고는 하나, 그 수가 남자에 비해 월등히 적었고, 대개는 가문에서 금지옥엽 키운 딸들인지라 대가 세도 보통 센 것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집 안끼리의 정략결혼이다 뭐다해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여인이 절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림학관 내의 남자 학생들은 이래저래 여자에 굶주려 있었다.
여자의 분내만 맡아도 좋아서 환장하는 그들에게 아리따운 소저들과의 저녁 식사라니!
“이게 얼마 만이냐? 안 그래?”
“인마, 말 시키지 마라. 침 튀기니까.”
그들은 한결같이 입이 입가에 걸린 채 좋아서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난리였다.
남궁현승을 선두로 그들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화무린은 정작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남궁현승이 의외로 무림학관 내에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것.
그리고 여자들의 질투는 의외로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