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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11화)
3장, 여자의 질투는 무죄(1)
남궁현승의 일행들은 식당 안으로 들어오더니 계단을 통해 곧장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 올라가자 일층과는 다르게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일층과는 달리 곳곳에 고풍스러운 장식과 그림이 걸려 있었고, 탁자의 수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산만해 보이는 일층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일층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화무린은 대번에 감을 잡았다.
‘이곳에서도 특권 의식은 존재하는 건가?’
화무린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무리 중 한 명이 말해 줬다.
“원래 이곳은 무림학관에 방문하는 귀빈들이나 교관님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곳이었으나, 식당 하나가 본관 옆에 별도로 운영되고 있는 탓에 지금은 어쩌다 보니 저희들이 쓰고 있습니다. 이곳은 주로 무림학관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가문들이 공동으로 쓰고 있습니다. 주방은 각 문파에서 보낸 주방장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최고급 재료만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듭니다. 모두 실력이 있는 주방장들인지라 어지간한 객잔의 음식보다는 맛있는 편입니다.”
“흠. 그런가요?”
화무린은 겉으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입가는 씰룩거리고 있었다.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횡재였다.
그녀는 은근히 미식가였다. 청부를 받아 전국 방방 곳곳을 떠돌 때 유일하게 그녀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바로 각 지역에서만 나온다는 산해진미들이었다.
힘들게 청부 일을 끝내고 오향장육에 청엽주를 한잔 곁들여 먹을 때의 그 기분이란!
아, 침 넘어 간다.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서문세가의 서문휘입니다.”
그에 뒤질세라 다른 이들도 저마다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독고세가의 독고진입니다.”
“종남파의 풍일이라고 합니다.”
화무린은 일일이 포권을 하며 소개를 받았다.
그사이 주방장이 음식을 날라 오고 있었다. 오향장육에 버섯잡채, 오리요리, 동파육, 몇 가지 채소를 볶은 것이 줄줄 탁자 위에 놓아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음식 냄새가 가득 퍼지자 화무린은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허기가 몰려왔다.
다 맛있어 보이지만 화무린은 그중에서 가장 큰 접시에 놓여 있는 오향장육에 눈이 돌아갔다.
남궁현승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음식이 괜찮군요. 혹시 오향장육을 좋아하십니까?”
화무린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벌어졌다.
“그럼요! 아주 환장해요! 거기에다가 죽엽청 한 잔을 곁들이면… 아흑! 끝내줄 텐데요!”
“네, 네?”
그 격의 없는 말에 일행들은 모두 눈이 동그래졌다.
화무린같이 아리따운 소저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런 화무린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독고진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하하,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무림학관 내에서는 술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군요.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 한번 저희가 밖에서 모시겠습니다.”
화무린은 주위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에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눈앞에 놓인 오향장육밖에 없었다.
“이곳 주방장은 오향장육을 제일 맛있게 잘한답니다. 어서 드셔 보시지요.”
남궁현승이 흐트러진 표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화무린이 행복한 표정으로 막 오향장육 한 점을 집어 먹으려고 할 때였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풍기더니 웬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다짜고짜 화무린을 손가락질하더니 표독스럽게 외쳤다.
“야, 너 모야?! 그 자리에서 안 비켜?”
…썅,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화무린의 미간이 갈지자로 변했다.
화무린의 옆에 앉아 있던 풍일이 장내에 새롭게 나타난 그녀를 보고는 화무린에게만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소곤거렸다.
“저 소저는 사천당문의 당문화입니다. 이번에 학관에 신입생으로 들어왔습니다.”
“당문화?”
화무린의 시선이 당문화로 향했다.
당문화라면 바로 자신이 호위를 해야 할 인물 아니던가? 그렇지 않아도 밥을 먹고 나서 당문화를 슬슬 찾아볼 작정이었는데, 고맙게도 눈앞에 나타나 주었으니 해야 할 수고를 덜어 낸 셈이다.
“남궁현승 저 친구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현승이 저 친구가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만 봐도 질투를 할 만큼 질투심이 대단합니다.”
오호, 그런 사실이 있었던가?
이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화무린은 당문화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예쁘게 생기기는 했지만 사나워 보이고, 눈꼬리가 올라간 것이 성격도 나빠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느긋이 시일을 두고 당문화에 관한 세부 조사를 했었겠지만, 일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성격은 어때요?”
“음, 글쎄요. 생각한 것이 얼굴에 바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상대하기는 편하지만 화가 났을 때는 누구도 말리지 못할 만큼 저돌적입니다. 지금처럼요.”
“그래요?”
“사실 이번에 학관에 입학한 것도 저 친구를 쫓아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흐음.”
결국은 남자에 목맨 당문의 말괄량이라는 뜻.
사랑에 목맨 여자를 상대하는 것만큼 귀찮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상대하다 보면은 결국 결론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 오죽하면 사랑에 빠진 여자는 지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겠는가?
화무린은 자칫 중간에서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을까 염려되었지만, 아직 생기지도 않은 문제이니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의뢰자가 당문화 본인도 모르게 호위를 해달라고 했으니, 굳이 아는 척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오히려 이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당문화와 안면을 트게 되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화무린의 생각일 뿐.
당문화의 눈에 비친 화무린은 반반한 얼굴로 남자들이나 홀리는 여우같아 보인다. 자연 좋은 감정이 생길 수가 없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 무리 속에서 끼어 버젓이 식사를 할 수 있겠는가?
화무린이 무시하고 음식을 집으려고 하는데, 당문화가 화난 목소리로 화무린이 집고 있는 젓가락을 낚아채 가려고 손을 뻗었다.
“어쭈, 감히 내 말을 무시해?!”
당문화의 손이 화무린의 젓가락을 잡으려는 순간, 무형의 기운이 일어나더니 당문화의 손을 비껴 냈다. 당문화는 볼썽사납게 허공을 움켜쥐었고, 화무린의 젓가락은 보란 듯이 고기를 한 점 집더니 이내 입에 쏙 들어갔다.
오물오물.
“이, 이년이!”
당문화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는 듯 이번에는 오른손의 맥문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화무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거참, 성질 머리 한번 더럽구만. 이런 녀석을 앞으로 쫓아다니려면 나도 꽤나 고생해야겠는데?’
화무린은 앉은 채로 날아 들어오는 그녀의 손을 왼손으로 찰싹하고 때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손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섰다.
손이 금방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녀의 얼굴에는 부끄러움과 놀라움, 수치심의 감정 등이 한꺼번에 떠올라 있었다.
처음에는 당문화를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던 이들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다시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단단히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내공까지 끌어올리며 표독스럽게 외쳤다.
“오냐, 숨겨 놓은 재주가 있다 이거지? 어디 이것도 받아 낼 수 있는지 보겠다!”
당문화가 내공을 끌어올리고 장법을 뿌리자 손바닥에서 거대한 기가 응축되어 화무린에게로 날아갔다.
비록 삼성에 해당하는 내공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뿌린 장법은 당문에서만 전해져 오는 적련신장으로 극성에 달하면 손이 불그스름하게 변화하게 되는데, 당문화의 성취는 아직 오, 육성 정도밖에 되지 않아 눈에 띄게 붉은색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오, 육성의 적련신장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취였다.
“어, 어?!”
느닷없는 당문화의 공격에 옆에 앉아 있던 일행들은 너무한다 싶어서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당문화가 내공을 사용하여 공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만류하기는 이미 늦어 보였다.
그 때 화무린의 왼손이 쓰윽 올라가더니 그대로 날아드는 장에 손바닥을 뒤집으며 앞으로 밀어냈다. 마치 준비라도 해 놓은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쾅!
화무린이 내민 장과 당문화의 적련신장이 허공에서 마주치더니 쾅 소리와 함께 그대로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 이년이!”
설마 자신의 장법이 무위로 돌아갈 줄 몰랐던 당문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더군다나 볼썽사납게 구르고 있어야 할 화무린이 오히려 자신을 깔보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의 귓가로 들릴까 말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육성이 아닌 전음으로 들려오는 소리였다.
―네가 당문화만 아니었으면 지금쯤이면 몇 대 얻어맞고 땅바닥을 구르고 있어야 할 거다. 그러니 이쯤해서 그만하자. 그리고 자꾸 이년 이년 거리지 마라. 이년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당문화는 전음을 보낸 이가 누군가하고 두리번거리다가 화무린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화무린의 입꼬리가 쓰윽 말려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저년이었다! 전음을 보낸 년이!
화무린 딴에는 생각해서 보낸 전음이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고까웠나 보다.
“죽어라!!!!”
당문화는 자신이 농락당했다고 생각하며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는지 내공을 끌어올리며 소매를 떨쳤다.
그녀가 늘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폭우이화침 열 개가 화무린을 향해 쏘아져 갔다.
당문화의 암기술은 제법 숙달된 경지에 이르러, 그녀가 떨쳐 보낸 암기는 빛살과도 같은 빠르기였다.
슈슈슈슉―!
폭우이화침은 사천당문에서 특별히 제조한 극독에 침 끝을 백 일 동안 담금질하여 만든 것으로, 사천당문의 제자들이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암기의 일종이었다.
암기에 맞은 즉시 해독을 하면 문제가 없으나, 해독을 하지 못한다면 코끼리도 일각 안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살상력을 가진 암기였다.
그것을 보고 일행들이 기겁을 했다.
“피, 피하시오!”
당문화가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기는하나 이 정도로 대책이 없을 줄은 몰랐다. 더는 보지 못하겠는지 눈을 질끈 감는 이도 있었다.
암기가 화무린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그녀의 손에 무형의 기운이 일어나더니 부드럽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암기들은 거짓말처럼 원을 그리고 있는 그녀의 손에 빨려 들어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폭우이화침은 고스란히 화무린에 의해 회수되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음을 확인하고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소저 괜찮소?”
남궁현승이 가장 먼저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풍일과 독고진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다친 곳이 있나 살폈다.
그 모습이 또 꼴 보기 싫었는지 당문화가 내공을 잔뜩 끌어올린 채 외쳤다.
“이년이! 어디 끝까지 해 보자!”
다시 한 번 출수를 하려던 그녀 앞을 남궁현승이 막아섰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 같아서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만일 화무린이 조금이라도 다치기라도 했으면 아마 자책감으로 인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당문화!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오빠!”
남궁현승의 호통에 당문화가 끌어올린 내공은 봄기운에 눈 녹듯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태어나서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가끔씩 짓궂은 장난을 쳐도 항상 너그러운 웃음으로 야단치던 오빠였다. 이렇게 정색을 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남궁현승은 마치 자신이 알고 지낸 오빠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