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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12화)
3장, 여자의 질투는 무죄(2)


“너를 그동안 귀엽게 봐준 것은 네가 무림인으로서 어느 정도의 자각심이 있다고 생각되어 내버려 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보니 내 생각이 틀린 듯싶구나. 무방비인 상대에게 살수를 쓰다니!!! 네가 이렇게까지 안하무인인 줄은 몰랐다.”
“오, 오빠!”
남궁현승은 신파극을 구경하고 있던 화무린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합니다. 이 일은 제가 남궁현승의 이름으로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애가 아직 철이 없습니다.”
무기도 없고, 무방비인 상대에게 살수를 썼다고 함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정의와 의협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정파인들이 아니던가?
만일 이 문제를 화무린이 걸고넘어진다면 당문화은 물론이요, 사천당가까지 크게 욕을 먹을 일이었다.
또한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일행들 또한 가문의 어른들에게 내려오는 추궁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남궁현승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화무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만일 그녀가 이 문제를 책잡고 들자면 꽤 일이 커질 수 있을 문제였다.
물론, 화무린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호오, 이거 봐라?’
화무린은 남궁현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남궁세가의 장자인 남궁현승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과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였다.
신세를 지면 꼭 되갚는 것이 무림인의 철칙. 남궁세가의 후계자로 알려진 남궁현승이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는 것은 꼭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신세를 갚겠다는 뜻이었다.
삼룡 중의 일인인 남궁현승의 명성은 그리 낮지가 않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것은 대단한 수확이었다.
화무린이 남모르게 쾌재를 질렀다.
‘생각지도 못한 월척!’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애가 크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다친 데도 없으니 저는 괜찮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궁현승은 물론 일행들도 얼굴색이 환해졌다.
화무린의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풍일이 화무린의 손을 덥석 잡았다.
“화 소저! 얼굴만 아름다우신 줄 알았는데, 무공도 고강하고, 더군다나 마음 씀씀이까지 이렇듯 훌륭하시니 인세에 마치 선녀가 강림한 듯합니다.”
남자가 남자에게 손을 잡히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를 깨기도 조금 그런지라 화무린이 슬그머니 손을 빼며 바짓가랑이에 쓱쓱 닦으며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아닙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무림사는 다시 쓰여야 합니다. 이제 중원은 무림이대미녀가 아닌 무림삼대미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풍일이 손을 불끈 쥐며 홍보대사를 자처하기라도 할 작정이다.
이… 이 사람이! 너무 앞서간다. 어차피 화무린이라는 존재는 곧 사라질 존재.
알려져 봤자 자신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화무린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는 조용한 것이 좋습니다. 지금도 가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공자께서는 설마 저를 구경거리로 만드실 속셈은 아니시겠지요?”
그 말을 들은 풍일이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고 생각됐는지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둘의 대화가 그렇게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남궁현승이 입을 열었다.
“조그마한 사과의 뜻으로 앞으로 소저의 식사는 저희들 쪽에서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주방장에게 이야기해 놓을 테니 소저도 앞으로는 이곳에서 식사를 하시면 됩니다. 혹시 저희들이 없더라도 불편함 없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 놓겠습니다. 설마 저희들의 호의를 거절하시지는 않겠지요?”
주는 호의를 마다할 그녀가 아니었다.
당문화 덕분에 뜻하지 않은 횡재의 연속이었다. 화무린은 그녀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내비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
화무린은 못이기는 척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고맙게 받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저 여우 짓 하는 것 좀 봐봐! 어휴, 속 터져!”
당문화가 그런 화무린을 보고 소리쳤다.
“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조용해라!”
남궁현승이 냉랭한 목소리로 당문화를 꾸짖었다.
“너한테 적잖아 실망했다. 소저에게 정식으로 사죄를 드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하, 하지만 저년이 먼저!”
“어허! 이제는 내 말도 듣지 않는 것이냐?!”
당문화가 억울하다는 듯이 화무린을 쏘아보자 또다시 전음이 들려왔다.
―이년아, 눈에 힘 빼고 오빠 말 들어라. 오빠 실망할라.
저 요사스러운 년 입에서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당문화의 눈에서 불통이 튀었다.
“이, 이… 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까지 나왔다. 저 요사스러운 게 어떻게 오빠를 홀렸는지 모르겠지만, 오빠가 자신보다는 저년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다.
“어허, 어서!!!”
당문화는 입술을 질끈 물고, 분해서 부들거리는 입술로 한자 한자 간신히 떼어 놓았다. 그녀는 다른 것은 다 견딜 수 있어도 남궁현승의 미움을 받는 것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죄… 송… 합… 니… 다.”
쯧쯧, 그놈의 사랑이 뭐라고 저렇게 자존심까지 굽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그것은 둘의 문제니까 놔두기로 하고, 화무린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받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한 웃음까지 띠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동생.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보자. 아참, 내가 한 살 더 많으니까 말 놔도 되지?”
당문화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옆에 있던 이들이 거들었다.
자신에게 살수를 쓴 상대를 용서해 주는 것은 여자는 물론, 남자라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어려워할까 봐 미소까지 띠우며 용서해 주는 배려심이란 보는 이로 하여금 크게 감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보는 이까지 훈훈해지는 장면이었다.
“하하, 그러면 되겠군요. 화문이는 앞으로 언니를 각별하게 모셔야 할 것이다.”
“화문이는 좋겠네. 저런 좋은 언니가 생겨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지만 당문화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귓가로 또다시 얄미운 전음이 들려왔다.
―잘해 보자. 킥킥!

“아우씨, 화나!”
당문화는 식당에서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오빠들이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 그것도 그깟 계집애 때문에?”
“응? 지금 내 얘기하는 거야?”
당문화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등 뒤에는 어느새 그 재수 없는 년이 방실방실 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당문화는 열불이 끓어올랐다.
화무린이 놀리듯이 말했다.
“이봐 동생. 동생은 화 삭히는 법부터 배워야겠어. 명색이 무림인인데 그렇게 다혈질이여서 어디 장수할 수 있겠어?”
“흥, 내 걱정 말고 너나 잘해. 그리고 내가 왜 니 동생이야?”
“조금 전에 그러기로 한 거 아니였어?”
“미쳤냐? 내가 너 같은 것을 언니로 삼게?”
“남궁 소협한테 이른다?”
“흥, 그깟 협박?! 네가 우리 오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오빠가 언제까지 네 농간에 놀아날 것 같아? 어림도 없는 소리지! 이 불여우 같은 년아!”
당문화는 주위를 둘러보다 근처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식당 안에서야 이목이 신경 쓰여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저 불여우 같은 년을 혼쭐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흥, 아까는 무슨 우연으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두 번의 요행은 바라지 마라!”
사실 그것은 화무린이 노린 것이었다.
당문화의 기가 보통 센 것이 아니었기에, 그 기를 꺾어 줄 요량으로 쫓아온 것이다. 앞으로는 그녀와 마주칠 일이 많을 텐데, 그럴 때마다 피곤하게 신경전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이참에 확실히 누가 우위인지를 보여 줄 속셈이었다.
“받아라!”
당문화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장법을 뿌려 댔다.
조금 전에 펼쳤던 적련신장이었다. 그녀의 손에서부터 떠난 기운이 화무린의 전신요혈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당문화는 이제 피떡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작은 쾌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화무린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손만 내밀어서 그녀의 장법을 무마시켰다.
“이, 이게 무슨!”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공중에 몸을 띄워 화무린에게 연환퇴의 수법으로 각법을 뿌려 댔다.
그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태허마령각(颱噓魔靈脚)이었다. 순간 열다섯 개의 발자국이 허공에 뿌려지며 화무린을 압박했다.
“호오, 제법?”
화무린이 신형을 움직이며 보법을 밟았다. 그녀는 약을 올리기라도 작정했는지 꼭 한 푼의 차이로만 발차기를 피해 냈다.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던지 그녀의 신형은 마치 열다섯 개로 늘어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각법을 완전히 피해 낸 그녀가 신형을 바로 세우며 히죽거렸다.
“또 보여 줄 거 남았어?”
“으드득, 이것도 피해 봐라!”
그녀는 몸에 지니고 있는 암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 던졌다. 수십 개에 해당하는 암기가 하늘에 수놓으며 소리도 없이 화무린에게 쏘아져 갔다.
그 때 화무린의 양손이 서로 교차하는가 싶더니 이내 큰 원을 만들었다.
손에서 발생된 무형의 기운이 암기를 끌어당기더니 이내 암기들이 화무린의 바닥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조금 전에 식당 안에서 보여 준 그 수법이었다.
당문화는 자신의 공격이 모조리 무위로 돌아간 것을 알자 허무감이 밀려드는 동시에 분통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자부심을 느껴 왔던 무공들이 전혀 통하지가 않자 왠지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무력감에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무공을 쓰더라도 저 앞에 불여우를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여지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화가 났고, 분했지만 무엇을 해 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사천당문의 금지옥엽으로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자란 그녀였기에 이러한 생소한 경험이 더욱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