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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13화)
3장, 여자의 질투는 무죄(3)


또르르륵.
한 방울 눈물이 눈가에서 맺히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 위로 주저앉았다.
그녀의 귓가로 화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집아! 그깟 일로 우는 거냐? 무림에서 생활하다 보면 너보다 강한 고수는 백사장에 모래알처럼 즐비할 테니. 네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갈고닦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너도 훌륭한 무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야. 너는 너보다 강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지금처럼 질질 짜고만 있을 거냐?!”
억울하고 분하지만 할 말이 없다.
워낙 실력의 차이가 분명하니 대꾸하고자 할 말도 마땅하니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저 불여우 같은 년에게 이런 충고나 듣고 있는데, 점점 격정 된 감정이 추슬러지고, 안정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터럭만큼도 남궁현승에겐 관심이 없다. 난 얼굴 희고, 기생오라비 같은 놈은 딱 질색이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당문화는 마음 한구석에서 진탕되어 오고 있는 감정이 안도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눈앞에 있는 저 불여우에 대한 적대감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처음 마주한 그녀가 무엇이 못마땅하여 자신이 그렇게 적대했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자신과 비교하여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외모를 가진, 아니 오히려 자신보다도 더욱 예뻐 보이는 화무린에게 행여 남궁현승이 호감을 갖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자격지심 때문에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복잡한 여자의 마음을 일목정연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 세상에서 가장 헤아리기 어렵고,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여심이 아니던가?
하지만 머릿속으로 정리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사천당문의 당문화가 아니던가?!
당문화가 소리를 빽 하니 질렀다.
“우리 오빠는 기생오라비가 아니야!”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귀여워 보이기도 하여, 화무린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딱이던데?”
화무린이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세워 주려고 손을 뻗자 당문화가 뾰족하게 외쳤다.
“흥! 됐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초리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더군다나 입버릇처럼 말하던 ‘년’자도 안 붙이고.
당문화는 엉덩이를 몇 번 털고는 일어났다.



4장, 삼백이호의 인연들!(1)


우연이 두 번 겹치면 인연이요, 세 번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숙소로 돌아와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던 당문화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화무린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악이라기보다는 경기에 가까웠는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당문화가 딱 그 짝이었다.
놀라기는 화무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 너가 여기 왜 들어와?”
“그건 내가 할 소린데. 네가 왜 여기 와 있어?”
“여긴 내 숙소라고!”
화무린은 방문 밖에 붙어 있는 숫자를 확인하고 말했다. 분명히 삼백이호라고 적혀 있었다.
“삼백이호. 내 방 맞는데?”
그렇다면 두 사람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하나다.
“설마 같은 방인가?”
화무린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말도 안 돼!”
당문화는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자기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기에 현실은 왜 자꾸 자신을 배신한단 말인가?
지금 기분으로는 도저히 그녀와 같은 방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번 배정된 방은 최소한 몇 달 동안은 바뀌지 않을 것인데. 그 오랜 기간을 저 여우와 어찌 같이 지낸단 말인가?
처음보다는 화무린에 대한 적대감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감정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시진도 안 되서 완전히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 배정을 다시 해달라고 해야겠네.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 분명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한번 배정받은 방은 바꿀 수 없다는 규정이 있던데?”
“흥! 처음 듣는 소린데?”
“이거 못 봤어? 여기에 적혀 있던데?”
화무린이 두꺼운 종이를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은 처음 입학할 때 받은 규정문이었다. 그곳에는 학생들이 무림학관 내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적혀져 있었는데, 가운데쯤에 화무린의 말처럼 분명히 그러한 규칙이 존재했다. 다만, 당문화가 몰랐던 것은 그녀가 규칙문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당문화는 인정하지 못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흥! 나 사천당문의 당문화야. 우리가 해마다 무림학관에 기부하는 돈과 약초가 얼마인지나 알아? 이런 것도 하나 못 바꿔 줘?”
“어디 한 번 해 보시던가.”
“하라면 내가 못할 줄 알고?!”
당문화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꾸했다. 무공은 자신이 낮다고 하지만 말싸움에서까지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천당문이라고 하면 무림에서는 알아주는 뒷배가 아니던가? 그녀는 자신의 가문을 이용해서라도 그녀의 앞에서 으스대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야…….”
화무린이 허리춤에 양손을 척하니 올리며 나지막이 말한다.
“근데, 이게 아까부터 자꾸 까분다? 이건 경고야. 봐주는 것도 이제 한계야. 더 이상 까불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으르렁거리는 말에 당문화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뭐, 뭐! 설마 그 잘난 무공으로 나를 때리기라도 하게?”
화무린이 다가오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그 기세가 정말로 자신을 때릴 것만 같았다. 당문화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다급히 입술을 오므렸다.
“……요?”
화무린은 잔뜩 주눅이 든 당문화를 보고 손을 내렸다.
“그래. 앞으로는 항상 존칭을 붙이도록.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너 혹시 황 장로라고 알아?”
“황 장로?”
“무림맹에 황오현 장로. 알아? 몰라?”
입술이 삐쭉삐쭉 툭 튀어나온 당문화가 잠시 망설이더니 소리를 빽 하니 질렀다.
“몰라! 내가 그런 것까지 대답해 줘야 해?”
화무린이 또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때릴 기세였다.
당문화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황급히 대답했다.
“알아요! 알아! 저희 할아버지랑 친분이 있어요! 가끔 본가에도 놀러 오셔서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시곤 했어요! 저한테도 가끔 맛있는 것을 사주시고요!”
당문화의 할아버지라면 전대가주인 당학련.
그는 현재 무림에서 은퇴한 전대고수이다.
당문의 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만천화우(滿天花雨)를 극성까지 익혔으며, 무공의 화후 또한 매우 깊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무림에서 당씨 성을 가진 사람 중 무공이 가장 고절하다고 알려져 있다.
“맛있는 거를 사줘? 너한테?”
“네. 제가 어렸을 때 그분이 당문에 오실 때면 꼭 당과를 사 들고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당과? 그 양반이?”
화무린이 알기로는 황오현 장로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기 자식도 아닌 당문에 들리기 전 당과를 사 가지고 방문한다? 그것만 두고 봤을 때 그에게 당문화는 뭔가 특별한 의미인 것이 분명했다.
‘흠, 뭔가 냄새가 난다!’
화무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분명 당문화에게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이 뭘까? 분명히 출생과 관련된 일이 분명할 텐데.’
어른이 아이에게 당과를 사줄 때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아이에게 호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이다. 더군다나 아이라면 질색을 하는 그가 뭣 때문에 당문화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일까?
‘설마 황오현 장로의 숨겨 둔 딸인가?’
화무린이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비약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걸리는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너 혹시 당문 가주의 친딸 맞아?”
화무린은 그냥 대놓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당문화가 펄쩍 뛰었다.
“무슨 그런 심한 소리를 하세요! 그런 질문은 저는 물론, 저의 가문까지 욕되게 하시는 거 모르시나요?!”
“아아, 미안. 농담이었어.”
“흥! 다시 한 번 그런 소리하면 진짜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화무린이 금방 수긍하며 손을 내저었다.
저런 반응을 내보인다는 것은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 그녀의 모습에서는 한 치의 거짓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가 정말로 친딸이던가. 아니면 친딸이라고 믿고 있을 만큼 아주 어린 나이에 입양을 했다던가.
그렇다면 또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당문의 가주는 슬하에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세상에 알려진 바로는 둘은 이란성 쌍둥이였다.
만일 당문화가 친딸이 아닐 경우라면, 그날 태어난 아이를 급히 당문으로 데리고 와 위장을 했다는 소리인데…….
굳이 왜 그래야만 했을까? 더군다나 그때쯤이라면 당학련이 가주였을 텐데.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자의에 의해서?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
이유야 어찌 되었던 여러 가지 정황상 화무린은 당문화가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다만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이지.
외인을 함부로 받지 않고, 폐쇄적인 성향을 지닌 사천당문만큼 아이를 숨길만 한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을 숨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셈인 것이다.
문제는 십 오년이나 지난 지금 무슨 이유에서 숨겨 둔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내보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황오현 장로가 왜 그녀를 지켜 달라는 청부를 했을까? 무슨 위험이 있어서? 누가 그녀의 신변을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자그마치 이십만 냥짜리의 청부.
그녀와 당학련 그리고 황오현 장로, 무림 맹주.
정말로 당문화의 추측대로 무림 맹주의 딸일까?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지만 쉽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별안간 당문화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화무린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여기서 뭔가 조금 더 생각한다면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에이, 너 산통 다 깨졌다.”
“뭐가요?”
화무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넌 몰라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