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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14화)
4장, 삼백이호의 인연들!(2)


사천당문은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오대세가 중의 하나인 그들은 무림에서도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어 외부의 사람은 절대 가문으로 들이지 않는다.
가문의 전통과 독, 암기의 제조 비법을 지키기 위해 사천당문은 가문만의 독특한 규칙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데릴사위제였다.
당문의 여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데릴사위로 들여와서 남자의 성을 바꾸게 한다.
한 번 사천당문의 사람이면 죽어서도 당문의 귀신이 되어서 죽으라는 뜻이다.
사천당문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지키면서도 여지껏 오대세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독과 암기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어서였다.
그들은 은원관계에 의해서도 철저하기로 소문나 있는데, 한번 은원을 지게 되면 대물림을 해서라도 갚기로 유명했다.
그만큼 사천당문은 악독하면서도 집요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들은 독에 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말인즉, 그들은 의술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말이다.
독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해독제도 필히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천 종의 약초를 알고 있어야 하며, 독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체의 중요기관이나 혈에 관한 지식, 기타 등의 전반적인 전문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지간한 의원들보다도 의술이 더 뛰어나다.
실제로 사천당문에서는 의술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이들도 심상치 않게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당기준이었다.
그는 백불침의라는 별호도 가지고 있었는데, 백 개의 침만 있으면 못 고치는 환자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당기준은 당문화의 사숙이 되는 위치에 있으며, 무림학관에 있는 의왕전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무림학관에는 삼천 명이 넘는 인원이 대규모로 밀집해 있는 거대한 단체! 그러기에 아픈 환자나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무림학관 내에 있는 의왕전은 그러한 환자를 돌보는 곳이었다.

같은 시각. 의왕전 내부.
한쪽 벽에 놓여져 있는 탁자 위에는 향이 타오르고 있었고, 나무로 만든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두 명의 인영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두 개 올려져 있었다.
의왕전의 뒤편에는 당기준이 직접 가꾸는 텃밭이 있었는데, 그는 주로 그곳에다가 찻잎을 재배하고 길렀다. 지금 그들이 마시고 있는 것도 그곳 텃밭에서 가지고 온 찻잎을 넣고 우려 낸 것이었다.
당기준의 맞은편에는 고풍스러운 수염을 가진 노인이 앉아 있었다.
체구는 작고 왜소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만큼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찻잔을 움켜쥐고 마시는 그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는 세월을 거스를 만큼의 거유의 힘이 느껴졌다.
그는 이곳 무림학관의 관주직을 맡고 있는 진상풍이었다.
그는 무림학관의 운영을 벌써 십 년이 넘게 맡아 오고 있었다.
그는 정파인이었으나, 무림학관의 운영에 있어서는 정파든 사파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매사에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매사에 앞뒤 꽉 막힌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어떨 때는 유동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또 어떨 때는 고집스러움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개인적인 사리사욕에 의해 무림학관을 이용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십 년 동안이나 무림학관의 관주직을 맡아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점들이 주효한 까닭일 것이다.
“허허, 여기 오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향 내음과 차 맛이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왠지 이곳에만 오면 젊었을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듭니다.”
“이곳을 좋아하시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여기는 어인 일로 오신 겁니까?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계신 겁니까?”
“허허, 오늘따라 당 당주께서 급하시구려. 알았소이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리다.”
진상풍은 차를 홀짝이고는 말을 이었다.
“당문의 당문화 소저가 무림학관에 입관했다는 소리를 들었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당기준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휴, 저는 벌써부터 골치입니다. 그 말썽꾸러기가 여기 와서 사고나 치지는 않을지…….”
운을 떼놓자 말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아무리 사고뭉치라고 한들, 남의 집 자식을 면전에 대놓고 이러쿵저러쿵하기는 곤란한 법이다.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상기시키며 진상풍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쪽으로 대화로 이끌어 내는 것은 무림학관을 맡고 있는 관주로서도 꼭 필요한 재능 중 하나였다.
그런 점에 있어서 보자면 진상풍 관주는 이곳에 꼭 맞는 적임자라 할 수 있었다.
“너무 염려 마시오. 그만 때쯤이면 아이들이야 다 사고를 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아니겠소? 당 소저는 그저 혈기가 왕성한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식당에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고 들었는데…….”
“소란이요?”
“상대에게 살수를 펼쳤다고 하더이다.”
당기준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제가 왜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늘어놓겠습니까?”
“사, 상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크게 다쳤다고 합니까? 설마 죽은 것은 아니겠지요?”
당문화에 의해 상대가 해를 입기라도 했다면 이것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행여 상대 가문에서 책을 잡든가 무림학관 측에서 규율을 따지고 문책이라도 한다면 당문화는 퇴학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사천당문 또한 이래저래 불편한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 판국이었다.
“다행히 상대는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당기준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진상풍이 빙그레 웃었다.
“당주께서 그 아이 때문에 십 년은 더 늙겠습니다. 허허.”
“말도 마십시오. 아주 골칫덩이인 녀석입니다. 졸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가 의문입니다. 모쪼록 관주님께서 너그러이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만을 바랄뿐입니다.”
그 말에 순간 진상풍의 눈에 이채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그리고 그 빛은 떠올랐을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오만…….”
진상풍의 목소리는 은밀하면서도 조용했다.
“나는 당문화 소저를 무탈 없이 졸업시켜 주고 싶소. 큰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오늘 있었던 일도 내 선에서 최대한 덮어 주고 싶소.”
“예? 그게 정말입니까?”
“허나, 당 당주도 제게 약조를 하나 해주셔야겠소이다.”
“무슨?”
“아마 조금 있다가 당 소저가 와서 배정받은 방을 바꿔 달라고 할지도 모르겠소.”
“방을요?”
“당주께서는 그 일을 모른 척 해주시오.”
“흐음.”
당기준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사실 무림학관 내의 규칙은 한번 배정받은 방은 다시 바꾸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조직을 꾸려 가다 보면 너무 규칙에만 매달려서는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만일 은원이 얽혀 있는 두 가문의 자제들을 한 방에서 지내게 한다면 어찌 사고가 생기지 않겠는가? 또한 사고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묻는단 말인가?
진상풍 관주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꽤나 유동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무림학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당주들이나 교관들도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방 문제에 대해서는 말썽이 생기지 않게 원하는 이들에 한해서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편의를 봐줄 수 있도록 조치를 해오고 있었다.
진상풍 관주는 그러한 편의를 봐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흐음.”
진상풍 관주는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 늙은이가 말년에 들다 보니 세상 근심사가 모두 내 일 같아서 말이지요. 내게는 무림학관의 아이들이 모두 내 손자 같고 손녀 같아서 자꾸 눈에 밟히는구려. 당문화 그 아이와 같이 방을 배정받은 아이들에 대해서 알아봤소. 모용 소저와 화 소저는 성격과 그 마음 씀씀이가 좋아 당문화 그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오.”
당기준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관주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말하기 어려우니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요. 이만하면 당 당주께서는 내 말의 뜻을 헤아려 주었으리라 믿겠소이다.”
착각이었을까? 순간 당기준 당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당기준은 당문화의 출생에 관해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당문화가 사천당문으로 처음 온 날 자신과 아들 내외를 불러 신신당부를 하던 당학련 가주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훤했다.
당기준은 당문화를 친조카 이상으로 예뻐했는데, 그녀에게 드리워진 암운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해마다 천지신명께 빌고 있었다. 그녀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그냥 이대로 당문의 여식으로 조용히 늙어 죽을 수 있기를 말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진상풍 관주의 말에서 당문화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결국은 오지 않기를 바란 그때가 온 것이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해 가기를 그토록 바랬건만.’
당기준 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며칠 전, 진상풍 관주는 한 사내의 방문을 받았다.
흑의무복에 죽립을 쓴 사내가 모두가 잠든 밤 은밀히 자신을 찾아와서 황오현 장로의 서찰을 전한 것이다.
그것은 철가장의 화무린이라는 여아가 입관하면 꼭 당문화와 함께 같은 방에 배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진상풍 관주와 황오현 장로는 무림에서 차지하는 배분도 비슷한데다가 성격도 잘 맞아, 젊었을 때부터 호형호제한 사이였다. 그 정도의 부탁쯤은 손쉽게 들어줄 수 있었다. 서찰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담겨져 있었고, 이 일은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달라는 신신당부의 말이 적혀져 있었다.
평소 강직하고, 부도덕한 일을 싫어하는 황오현 장로의 성품을 보았을 때, 나쁜 일을 행할 목적으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진상풍 관주는 황오현 장로를 믿고 당문화가 배정받은 방 안에다가 화무린을 집어넣은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 있었는지라 진상풍 관주는 사실 그대로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럼 당 당주께서 수락하는 걸로 알고 이만 돌아가겠소이다.”
진상풍 관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