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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15화)
4장, 삼백이호의 인연들!(3)


잠시 후, 진상풍 관주가 발걸음을 돌린 지 일각도 채 되지 않아 당문화가 의왕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헤헷, 당 사숙 저 왔어요!”
활기차 보이는 것이 예전에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당기준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반겼다.
“허허, 이렇게 너를 무림학관 내에서 보게 될 줄이야. 몇 해 못 본 사이 더 성장했구나. 이제는 시집을 가도 되겠어.”
“아이참, 사숙도!”
당문화가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남궁현승과의 결혼이라니! 생각만 해도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나저나 네가 이 야심한 밤에는 웬일이냐? 어제 입관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만, 찾아오지 않아 내심 섭섭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제가 어찌 사숙을 잊고 있었겠어요! 다만 새로운 곳에 오다 보니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찾아왔잖아요.”
“허허, 무슨 용건이 있어서 찾아온 것은 아니고?”
당기준은 당문화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진상풍 관주의 말이 아니더라도 당문화가 이렇게 새침을 떼면서 올 때는 항상 무슨 부탁을 할 때뿐이라는 것을 당기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어서 말해 보아라. 오늘은 또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온 거냐?”
“실은…….”
당문화가 입을 삐쭉거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배정받은 방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사숙님이 힘 좀 써 주셔서 방 좀 바꿔 주시면 안 돼요?”
“이상한 사람?”
“네, 완전히 미친년… 아니, 미친 사람이에요! 말도 안 통하고, 무식하고, 안하무인이고. 또 저한테 얼마나 함부로 하는데요. 아까는 막 저를 때렸다니까요?”
당문화는 화무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을 부르르 떨며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당기준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당문화를 때려? 저 아이의 무공이 결코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동갑내기들 중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거늘. 저 아이를 저렇게 겁줄 수 있는 여아가 무림에 있었던가?’
“혹시 그 아이의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화무린이라고 해요!”
“화무린?”
당기준은 그가 알고 있는 가문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화무린이라는 이름과 대조를 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문화를 제압할 만한 아이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가문의 여식인지는 알고?”
“듣자 하니 철가장이라고 하던데. 혹시 그런 가문 들어 본 적 있으세요?”
“철가장이라…….”
물론 처음 듣는 이름의 가문이다.
하지만 진상풍 관주가 화무린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면서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어도 좋을 만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화무린… 철가장이라.”
“사숙도 처음 듣는 가문이죠? 허접한 가문의 여식 주제에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언제 한번 사숙이 혼쭐을 내주세요!”
“허허허.”
당기준은 그냥 웃기만 했다. 이렇게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가 무림이라는 거친 풍파를 맨몸으로 받아야만 한다니.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이것이 당문화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이라면 당기준은 웃으면서 보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사람이 따라야 할 순리이고 이치이기에.
“방 바꿔 주실 거죠?”
평소 때 같으면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변호해 주기 바쁜 사숙이 오늘따라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당문화가 다시 한 번 더 재촉했다.
“미안하구나. 방을 바꿔 주는 것은 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방도 벌써 다 찼으니.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겠구나. 원래 밖으로 나오면 불편함이 많은 법이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생활하는 것도 네가 무림인으로 성장하는 방법 중에 하나겠지. 화무린이라는 아이와 잘 한번 지내보도록 하거라.”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당문화가 소리를 빽 하니 질렀다.
“사숙!!!!”
“밤이 너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봐라. 곧 있으면 소등 시간이니.”

밖으로 나갔던 당문화가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전례 없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어떠한 목적으로 나갔는지를 알고 있는 화무린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왜?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했나 보지?”
혹시나 방이 바꿔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여지껏 자신과 당문화의 숙소가 같은 방이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고 있던 화무린은 이번 일을 통해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과 당문화가 같은 방에 들어오게 된 것은 누군가 고의적으로 의도한 것임을.
자신의 일에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있다는 것은 화무린으로서도 내심 반기는 일이었다.
“쳇!”
기대감이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다. 어지간한 부탁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모두 들어줬을 당 사숙이었다. 그런 당 사숙이 자신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문화가 화무린을 슬쩍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사자와도 같은 모습.
방이 바뀌어졌다면 몰라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화무린과 같은 방을 써야 하는 그녀로서는 화무린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쩝, 더럽고 치사하지만, 이것이 양육강식의 법칙이라면 순응하면서 살아야겠지.
당문화가 갑자기 몸을 꼬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언니! 앞으로 우리 잘 지내 봐요.”
보기보다는 포기가 빠른 그녀다.
아니, 처세술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화무린이 피식 웃었다.



5장, 무림학관 입관식 첫날!(1)


다음 날 아침, 무림학관의 제일연무장에는 천 명의 입학생이 정렬을 유지한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림학관 내에 존재하는 연무장 중 가장 큰 연무장이 바로 제일연무장이었고, 가끔씩 축제나 행사를 할 때도 이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정면에는 급히 만든 단상 위에 무림학관의 관주인 진상풍 관주가 연설을 하고 있었고, 단상 아래에는 앞으로 일 년간 입학생들을 훈련하고 교육시킬 교관들이 입학생들을 예리한 눈빛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화무린은 입학생들 사이에 껴서, 나풀거리는 흙먼지를 손으로 내저으며 쫓아내고 있었다.
관주의 연설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화무린은 터져 나오는 하품을 간신히 참으며, 졸린 눈을 비볐다.
그걸 보고 모용수미가 조용히 물었다.
“언니, 어제 잠 못 잤어요?”
“응, 나 원래 잠자리 바뀌면 잘 못자.”
“진짜요? 이상하다. 눕자마자 자는 것 같았는데.”
“설마, 내가 얼마나 예민한 편인데.”
“그런가? 코까지 고는 것 같던데. 옷도 막 벗고.”
“내가 옷을 벗었어?”
“네. 답답한지 옷고름을 풀고 막 벗으려고 했어요. 언니 야해!”
모용수미가 곱게 눈을 흘겼다.
그 모습을 보고 화무린이 속으로는 내심 뜨끔했다.
어쩐지 일어날 때 가슴골이 마구 풀어 헤쳐져 있어서 이상하다 여겼는데 그 이유 때문이었는가?
무황이었을 때 그는 잠자리에 들 때면 늘 상의를 탈의하고 자든가, 아니면 얇은 마의만을 입고 주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여자의 몸이 되다 보니 감춰야 할 것도 많고, 입어야 할 것도 많으니 태생이 남자인 그로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나 가슴 부분. 가슴가리개가 잘 때면 얼마나 바짝 죄어 오던지.
‘젠장, 여자들은 불편해서 어찌 사는지 몰라?’
화무린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어넘겼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시시덕거리고 있는 덩치 큰 남학생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 둘은 자신의 앞에 있는 남학생의 무릎 뒤를 발끝으로 톡톡 걷어차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맞고 있는 학생의 무릎이 꺾이며 신체가 앞으로 휘청휘청 거렸다.
당하고 있는 남학생은 얼굴이 벌게진 채 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고 왜소하여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저기 쟤네들 뭐냐? 첫날부터 애를 왜 저렇게 괴롭혀?”
그것을 보고 모용수미가 속닥였다.
“아마 흑천부의 자제들일 거예요. 두 사람이 형제라고 알고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자세히 보니 두 명이 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사파 쪽에서는 제법 유명한 애들이에요. 성품이 잔인하고 무섭대요.”
“흠 그래?”
의뢰밥을 먹고 사는 화무린 또한 흑천부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흑천부의 두 망나니라면 자신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패악질만 일삼는 놈들이라는데 그 낯짝들을 보니 딱 그런 짓을 하게끔 생긴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한테 입학한 첫날부터 걸리다니 당하고 있는 저놈도 참 더럽게 재수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저놈 어디서 낯이 익는데?”
얼굴에는 패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자신에게 장난을 걸고 있는 놈들에게 한마디도 쏘아붙이지 못할 만큼 심약해서, 행여 첫날부터 교관들에게 흠 잡힐까 봐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녀석.
그 녀석과 자신에게 이빨을 훤히 드러내 보이면서 꼭 합격해서 다시 보자던 숭양문의 애송이의 얼굴이 겹친다.
자세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 녀석이었다.
‘이름이 길위천이라고 했던가?’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 훌륭한 무사가 되기 위해 입학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동떨어지기 마련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길위천은 근골이 나쁜데다가, 체격도 왜소하다. 쌓아 놓은 내공도 전무한 상태고, 결정적으로는 독심이 부족했다.
저런 녀석은 아무리 훈련을 한다고 해도 일류고수의 반열이 오르지 못한다.
잘해야 이류급 정도가 될 것인데, 이류급 무사들은 출세를 해 봤자, 무림맹 소속의 무력단체에서 십인장 자리나 꿰차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운이 좋았을 경우나 그렇고, 대부분은 이름도 모를 칼에 맞아 죽든가 팔이나 다리가 잘려 병신이 돼서 은퇴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불쌍하기는 하다.
“쩝.”
화무린은 보고도 못 본 척하자니 찝찝하고, 심심한데 장난이나 칠까 하는 요량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손톱만 한 돌멩이를 하나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가까운 녀석을 향해 슬쩍 손가락을 구부렸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돌멩이가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날아갔다.
쐐액―!
딱―!
“누구야?!”
멍청한 놈.
그걸 밝히려면 이렇게 몰래 돌멩이를 던졌겠냐?
녀석이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몸을 원래대로 돌렸다. 흑천부의 무공은 외공이 주로 발달되어 있었는데, 녀석도 외공을 익혔는지 머리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아프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쐐액―!
딱―!
“아씨, 누구야?!”
멍청한 놈.
같은 걸 또 물어보다니.
녀석이 또다시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화무린의 눈이 바닥에 돌멩이를 찾았다.
‘이거 은근히 재미있는데? 이번에는 삼연발이다!’
화무린은 돌멩이를 검지, 중지, 약지 손가락에 차례대로 끼워 넣었다. 예전에는 곧잘 이러고 놀았는데 여자 손이라서인지 자꾸 돌멩이가 옆으로 삐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