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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18화)
5장, 무림학관 입관식 첫날!(4)
그녀가 방 안에 들어와서는 뒹굴뒹굴 거리고 있는 화무린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어머, 언니 생각보다 게으르다. 세수도 안 했어요?”
화무린은 자신의 침대 위로 몸을 날린 채 인사를 받았다.
“볼일 보고 왔어?”
“네.”
“그래?”
화무린이 그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빠르게 방을 나선다. 그녀가 볼일을 보는데 걸린 시간은 일각 정도.
남자에 비해 여자는 변소에 들어가면 시간이 더욱더 걸린다. 바지만 내리고 볼일을 보면 되는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변소에 들어가면 옷고름을 푸르고, 치맛단을 풀러 그것을 옷걸이에 걸어 두어야 한다.
아니면 바닥에 치마가 쓸려 본의 아니게 변소 바닥 청소를 해주게 된다. 속옷도 취향에 따라 완전 탈의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럴 경우에는 시간이 더욱더 걸리게 된다.
화무린이 변소간의 문을 열자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나 여자나 신체의 외형만 다를 뿐. 배변 냄새가 지독한 것은 매한가지다.
여자의 배변은 냄새가 안 날 것 같다는 생각은 지극히 변태적인 사고방식이다. 음식물을 먹고, 그것이 분해되어 장에 쌓여 있는 것이 나오는 게 배변인데, 그것에 남녀의 차이를 둘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화무린은 변소간의 천장, 벽, 바닥을 꼼꼼히 검사했다.
청부살인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잠든 사이에 창문을 통해 저지르는 살인이고, 두 번째가 독살이다. 하지만 대상자가 호위를 두거나 독에 대한 대비가 철저한 무림 고수일 경우 위의 방법은 잘 통하지가 않는다.
그래서 암살자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 바로 변소간에 매복해 있는 것이다.
남녀노소, 무공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하의를 벗고 배설을 하는 순간 주위에 대한 경비가 가장 느슨해지고, 몸의 반응속도가 저하되기 마련이다.
그 순간 암살자들은 변소간 아래에 숨어 있다가 경계가 가장 느슨해지는 배설이 순간을 틈타 대상자를 죽이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상당히 고전적이지만, 가장 확실하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죽이고자 하는 이가 규칙적으로 변소를 가야만 하고, 숨어 있는 암살자가 극도로 훈련된 이가 아니라면 힘들다는 점이다.
변소 아래에 숨어 있자면 자연히 인분이 쌓여 있는 웅덩이에 몸을 담구고 있어야 하는데, 인분의 독기는 생각보다 지독하고 냄새도 고약하여, 제정신을 가진 이라면 반나절도 그 안에서 버티고 있기 힘들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암살자들이 인분 냄새에 취해 그 안에서 질식사하는 경우도 종종 나오기도 했다.
요즘에는 살막에서도 잘 쓰지 않는 방법 중 하나였다. 구멍이 난 아래까지 샅샅이 훑어본 화무린이 중얼거렸다.
“흠. 이상 없군.”
방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모용수미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는 당문화의 모습이었다.
수다를 떠는 그녀의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평범한 옷에 조금은 뛰어난 무공 수위. 얼굴은 조금 예쁘장한 편이었지만, 성격은 제멋대로인 당문 아가씨.
어떻게 보면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보니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그저 그런 열여섯 살의 소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기에 삼 년 동안이나 그녀를 지켜야 하는지 화무린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긴 내가 그걸 알아서 뭐하냐. 나야 일에만 충실하면 되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당문화가 물어 왔다.
“언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아니에요?”
조그마한 게 귀는 더럽게 밝은 편인가 보다.
내친김에 한번 물어나 볼까?
“너 혹시 누군가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 있어? 죽을 뻔한 위기나 뭐 그런 거.”
당문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러면 누구한테 원한을 진 일은?”
“그런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죠. 그런데 그것은 왜요?”
당문화가 돌연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고름과 띠를 풀었다.
웃옷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며 쇄골과 어깨, 그리고 배를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붉은색의 가슴가리개만이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공을 쌓아서인지 불필요한 군더더기 살은 보이지 않았고, 균형 잡힌 몸매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목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는 불그스름한 옥패를 걸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것은 정확하게 절반이 쪼개져 있었다.
얼떨결에 그녀의 속살을 보게 된 화무린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 씨발! 깜짝이야!”
덩달아서 방 안에 있던 그녀들도 놀라며 물었다.
“왜 그래요?”
화무린은 자신이 너무 과잉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반사적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기! 지금 바퀴벌레가 지나갔어!”
“바퀴벌레요?”
당문화가 옷을 갈아입다 말고 침대 옆에 놓아 준 암기를 손에 쥐며 외쳤다.
“어디요? 어디?”
어려서부터 온갖 독충을 보고 만지며 자란 당문화은 바퀴벌레 따위는 단숨에 꿰뚫어 버릴 심산으로 출수할 준비를 하며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바퀴벌레가 눈에 띌 일이 만무하다.
모용수미가 뜬금없이 물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남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남자 목소리?”
그러고 보니 화무린은 조금 전 자신의 안면근육이 조금 당겨 왔음을 상기시켰다. 깜짝 놀란 나머지 진기의 흐름이 잠시 끊어진 모양인데, 그로 인해 변체환용술이 풀릴 뻔했나 보다. 아마도 그 때문에 자신의 목구멍에서 남자 목소리가 튀어 나간 모양인데, 다행히 그것을 눈치챈 이는 없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화무린이 시치미를 딱 떼며 대답했다.
“아니, 전혀 못 들었는데?”
모용수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네. 분명 들은 것 같았는데.”
“언니, 바퀴벌레 없는데요?”
당문화가 암기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하의를 마저 탈의하려고 하자 화무린은 화들짝 놀라며 아예 이불 속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성격이 표독스러워서 그렇지 당문화는 얼굴도 제법 예쁜 편이었고, 몸매도 훌륭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귀여운 구석도 있는 것 같고.
당문화의 속살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 그녀의 벗은 몸을 본다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어 변체환용술이 풀릴지도 몰랐다.
화무린이 진탕되는 마음을 가라앉힌 채 소리를 빽 질렀다.
“야! 너는 다 큰 게 어디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
당문화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머, 여자들끼리인데 무슨 상관이에요? 언니는 옷 안 갈아입어요? 언니, 설마……?!”
당문화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이불에 둘둘 말려 엉덩이만 빼쭉 튀어나와 있는 화무린을 쳐다봤다.
‘설마, 뭐?! 혹시 내가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걸까?’
화무린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당문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바퀴벌레가 또 나타날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죠?”
뭐야, 그런 거였어?
“으, 응? 마저! 난 바퀴벌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화무린이 아무리 청부업으로 닳고 닳은 무림인이라고 하지만 나이는 열일곱 살에 불과한 소년이 아니던가? 여자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무공의 습득을 위해서였을 뿐, 실상 정말로 관계를 맺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 한참 피 끓어오를 나이에 당문화 같은 여인이 옷을 거침없이 벗고 있으니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이건 죄악이야. 죄악!’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긴 했지만,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다. 보고 싶다는 마음과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교차되면서 화무린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빠져들고 말았다.
‘으으…….’
마침내 결단을 내린 화무린은 마음을 가라앉힌 채 꼼지락되면서 이불을 슬그머니 들췄다.
하지만 당문화는 이미 옷을 다 갈아입은 상태로 의자에 앉아서 동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한숨이 튀어나왔다.
“휴, 뭔가 아쉽네. 쩝.”
화무린이 입맛을 다시며 지금의 심경을 표현했다.
“네? 뭐가요?”
“아니. 그런 게 있어. 그보다도 목걸이를 걸고 있었는데. 그것 좀 보여 줄 수 있어?”
“어머, 그건 또 언제 봤대요?”
“조금 전에 봤잖아. 이 노출증 환자야!”
“나 참, 누가 누구 보고 노출증이래. 수미 말 못 들었어요? 언니는 잘 때 막 벗고 자거든요?”
당문화는 투덜거리면서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풀어 내밀었다.
“자요.”
화무린이 손을 내밀어 옥패를 받아들어 찬찬히 그것을 살폈다.
옥의 재질은 백옥.
그것도 최상급이었다.
이 정도의 최상급 백옥이 생성되는 곳은 대륙 지방에서도 흔하지가 않다.
더군다나 옥에 새겨져 있는 반쪽짜리 봉황은 음각의 기법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한 치의 두께도 틀림없이 일정하게 봉황의 그림을 유지한 채 그려져 있었다.
최상급의 백옥을 이렇게 정밀한 두께로 파내고 그림을 그려 넣으려면 조각 기술뿐만이 아니라 일정 수준에 이르는 내공도 필요하다.
화무린이 아는 자 중, 이런 조각술을 펼칠 수 있는 자는 딱 한 명이 있었다.
십장선생 조일학!
어느 날 그가 담벼락에 십장생을 그렸더니, 그 동물들이 살아 움직여 하늘로 날아갔다고 하여 붙어진 별호.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는 여자를 상당히 밝혔는데, 듣는 바에 의하면 고관대작의 첩실에게 손을 댔다가 병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상당히 예쁜 옥패이네. 어디서 났어?”
“당학련 할아버지께서 태어날 때 선물로 주셨대요.”
“그런데 원래 반밖에 없었어?”
“네. 반밖에 없으니까 뭔가 있어 보이죠? 헤헷!”
“나머지 절반은 어디에 있어?”
“글쎄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요? 아마도 할아버지한테 있겠죠?”
“흐음. 그래?”
옥패의 단면은 검기로 인해 잘려 나간 것으로, 반듯한 모양이 아닌 갈지자의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이것은 필시 옥이 깨어질까 봐 옥의 단면을 보고 자른 모양인데, 이렇게 작은 옥의 단면만을 볼 수 있는 자라면 최소한 일류급. 하지만 그것을 그 단면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는 것은 초절정에 이르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당학련이 직접 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그럴 일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누가 당문화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증표로 옥패를 잘라서 걸어 준 모양인데…….
초절정고수라면 무림에서 활동하는 이로만 추슬러도 백 명이 넘는 숫자. 은거고수나 알려지지 않는 이까지 합친다면 아마 그 숫자는 천 명이 가까울 것이다. 그 많은 인원들을 일일이 조사하여 당문화와의 관계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조일학을 찾아야 하나?’
“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응? 아냐 아무것도.”
화무린이 옥패를 되돌려 주자 당문화가 그것을 다시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