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천하제일 호위무사 1(21화)
6장, 화무린 사고 치다!(3)
진상풍 관주는 화무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는 얼굴조차도 몰랐다.
‘화무린이라… 평범한 아이는 아닌 모양이군!’
그녀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부각이 될수록 황오현 장로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다지 이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진상풍 관주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시오. 그 아이가 뭘 어찌했기에 연창 교관의 거기(?)가 터졌다는 것이요?”
“저도 그 자리에 없었기에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그 자리에 있었던 아이들의 말로는 연창 교관과 그 학생이 대련을 했다고 합니다.”
“대련이요?”
무림학관 내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었다. 교관이 학생들 상대로 대련을 하는 것은 훈련 일정에도 있는 내용이었고,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대련을 했다면서 거기는 왜 다친 거요?”
“그게…….”
교관이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련 도중 그 학생의 각법에 맞았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급습도 아니고, 대련이요? 정말로 연창 교관이 그 일학년생과 대련 도중에 급소를 다쳤다는 말이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연창이 비록 무거운 창을 주무기로 이용하는 바람에, 동급 고수들에 비해서 몸놀림이 느린 편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귀살창이라 명호까지 있는 일류급 고수다. 일류급 고수가 무림학관의 신입생의 각법에 의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그 말을 쉬이 믿지 못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그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고 하는 소리요?”
여지껏 잠자코 앉아 있던 부관주 추일봉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는 사파의 연합체라 불리는 사도련의 내당주로, 지금은 무림학관 내에서 부관주직을 맡고 있었다.
추일봉은 가진 바의 신분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자이며, 권력과 재물에 욕심이 무척이나 많은 자였다. 그가 무림학관의 부관주직을 이행하면서 모은 재물이 어지간한 장원 몇 채 값은 족히 될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연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사도련의 일원이기도 했지만 연창의 뒷배경이라고 알려진 파황부의 부주와도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연창이 무림학관 내에서 벌이는 짓들의 대부분은 추일봉의 묵인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게…….”
교관이 미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모두 사실입니다. 연 교관은 훈련 일정에 맞게 대련 지도를 했고, 그 도중에 화무린이라는 학생에게 급소를 맞았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모두 확인한 내용입니다.”
두 번이나 확인을 하였지만 추일봉의 얼굴은 쉬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관이 어떻게 학생을 지도하다가 부상을 입는다는 말인가?
추일봉이 생각하다 말고 흠칫거렸다.
뭔가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화무린이라는 아이의 미모가 빼어난 편이요?”
교관이 아는 대로 대답했다.
“빼어난 정도가 아니라 무림삼미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역시나… 그랬었구만!
그 말을 들은 추일봉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제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것도 같았다.
보다 마나 그 화무린이라는 아이의 미색에 눈이 뒤집혀서는 어떻게 한번 수작질 해 보려고 했나 보다. 그러다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공격을 허용했겠지. 운이 나쁘게도 하필이면 급소 부분을 다쳤고.
‘쯧쯧쯧.’
추일봉이 가볍게 혀를 찼다.
무림학관 내에서 여자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치근대는 그의 행동은 알 만한 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는 무림학관 내에서 여자 학생들과 관계까지 맺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었는데, 그것이 교관의 신분을 십분 이용하여 벌이는 행태라는 것을 추일봉도 잘 알고 있었다.
파황부에 있을 때도 연창은 쉴 새 없이 여 제자들에게 집적거리더니 개 버릇 남 못준다고, 여기 와서까지도 그놈의 물건은 한시도 쉬지 않았나 보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찌 됐던 연창은 자신이 뒤를 봐주고 있는 이들 중 하나.
파황부주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그냥 못 본 척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화무린이라는 아이의 본가가 철가장이라고 했소?”
“예,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철가장이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가문이다.
연창과의 대련에서 그에게 부상을 입힌 것은 뒷걸음질로 소를 잡은 격이라고 해도, 무림삼미와 견주어도 될 빼어난 미색에 무공도 범상하지 않은 수준이라면 어떻게든 소문이 났을 터인데 여지껏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니 조금 이상했다.
추일봉이 장내를 훑어보며 물었다.
“혹시 여기에 모인 이들 중에 철가장이라는 곳에 대해서 들어 본 이가 있소이까?”
교관들과 당주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슬며시 내저었다.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결론은 들어보거나 아는 이가 있다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옆에서 추일봉의 모습을 지켜보던 진상풍 관주가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슬며시 입을 열었다.
비록 일면식의 얼굴도 모르는 아이지만 황오현 장로와도 관계를 생각하자니 자연 팔이 안으로 굽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 부관주께서는 훈련 도중 생긴 일 가지고 너무 과민하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구려.”
그 말을 추일봉이 맞받아쳤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연 교관의 부상이 결코 작지가 않습니다. 그 가문의 가주에게 이 일을 엄히 따지고 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진상풍 관주를 포함한 몇몇 이들이 남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추일봉의 편협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공개 석상에서까지 대놓고 표현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학관 내에서 지도를 목적으로 하는 대련 도중 교관이 부상을 입었다고 하여, 그것이 어찌 학생의 책임이 된단 말인가? 오히려 교관의 부족함을 탓하며 학생을 독려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니겠는가.
아무리 무림학관이 썩었다고 한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였다.
“그렇다고 화무린이라는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요. 훈련 도중에 생긴 사고이거늘 이 일을 어찌 학생과 그 가문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 수 있겠소?”
“그러면 이것이 연 교관의 잘못이라는 겁니까?”
“내 말의 뜻이 그런 뜻이 아니잖소. 이런 일에 피해자니 가해자니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는 것이요. 더군다나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해 보시오. 연 교관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질 않겠소? 더 나아가서는 무림학관의 명성에도 누가 될 수 있을 것이고.”
하나같이 맞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때로는 편협해지면 눈과 귀가 멀어지는 법이다.
지금의 추일봉이 딱 그러했다.
“그러면 관주님께선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허허, 거참…….”
진상풍 관주는 쓴웃음만 지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자신이 뭘 어떻게 하고 자시고 할 게 없는 일이었다.
신입생보다도 실력이 부족한 이들이 교관으로 있다면 어느 누가 무림학관에서 무공을 배우려고 들겠는가? 오히려 이것은 관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문이 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연 교관의 회복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소이다. 당분간은 연 교관의 경과를 지켜보도록 합시다.”
“그러면 화무린이라는 아이는요? 이대로 내버려 두자는 겁니까?”
“그 아이는 내가 따로 만나 보도록 하겠소. 그런 다음에 차후에 다시 논의하도록 합시다.”
* * *
연창이 의왕전으로 실려 간 후, 화무린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물론, 삼백이호실 동기들의 눈에도 걱정스러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연창을 혼내 준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이 걱정스러운 까닭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얼굴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당문화가 뭔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화무린에게 물었다.
“언니, 이제 어쩌실 거예요?”
“어쩌자니 뭘?”
“연 교관을 건드렸으니 뒤탈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걸 어떻게 무마할 거냐고요.”
태평스러운 건지 아니면 자신감이 있는 건지 당문화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창의 더러운 행태는 이미 무림학관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데, 그러한 행태에도 불구하고 잘리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 파황부주의 사제이고, 부학관으로 있는 추일봉이 파황부주와 친분이 있어서였다.
그런 연창을 건드렸으니 차후에 연창이 어떤 식으로든 앙갚음을 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당문화는 바로 그러한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오호, 지금 나를 걱정해 주는 거냐?”
화무린의 눈이 옆으로 가늘어지면서 당문화에게 대꾸했다.
“제가 언제 언니를 걱정했다고 그러세요! 그냥 한번 물어본 거예요!”
당문화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눈초리와 눈동자는 그녀의 성격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듯하지만 그 속에 깃들어 있는 호의와 걱정스러움은 그녀의 진심이 엿보였다.
그녀의 진심을 읽어 낸 화무린이 잠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사갈 같은 계집인 줄만 알았더니, 이제 봤더니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질 않은가?
이래서 아직 애들은 애들이라고 하는가 보다.
“걱정 마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정말요?”
이번에는 모용수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모용수미 또한 연창에 관한 소문을 이미 접한 터라 내심 걱정이 되던 찰나였다.
“그래, 아무 걱정하지 마라. 이번 일 때문에 누구에게든 불이익이 생기는 일은 없을 터이니. 내 말 믿지?”
모용수미가 화무린을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어떠한 근거나 논리에 의해서 하는 말이 아니지만 기묘하게 믿음감을 주는 말이다. 모용수미는 신기하게도 그 말에 마음이 놓임을 느꼈다.
“헤헤, 전 언니 말을 믿어요.”
움찔.
모용수미를 쳐다보고 있던 화무린의 몸이 움찔거렸다.
정말이지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용수미의 얼굴을 보자면, 모든 근심 걱정이나 불의의 마음이 한 번에 씻겨 나가듯 정화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거짓된 모습이 투영되듯이 내비치는 게 마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화무린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에휴, 죄를 짓고는 못산다고 하드만 그 말이 맞나 보네.”
“네? 뭐라고요?”
무심코 튀어나온 말인데 혹시 들렸나?
화무린이 두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혼잣말이야 혼잣말. 그보다도 안 졸려? 벌써 해시가 다 되었는데 말이야.”
“약간요.”
“그래, 졸릴 때는 자는 게 최고지. 어서 자라.”
“우웅, 조금 더 놀다가 자고 싶단 말이에요.”
“애들은 빨리 자야 쑥쑥 크는 법이야. 어서 커서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아?”
모용수미는 화무린을 쳐다봤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들어갈 때는 들어가고 나올 때는 확실히 나온 구분되는 몸매를 훑어봤다.
여인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몸매!
그에 반해 자신은 영락없는 유아용 체형이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발육이 늦은 그녀였다. 또래를 보더라도 지금쯤이면 가슴이라도 조금 나와 줄 법한데 자신의 가슴은 밋밋하기가 그지없다.
모용수미가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일찍 자면 가슴도 커져요?!”
“물론이지.”
“정말이죠?”
“나는 거짓말 같은 거 할 줄 모른다니까?”
둘의 대화를 보고 당문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후, 뭐 어때. 이런 선의의 거짓말은 서로를 위해 좋은 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