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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10화)
3장 평정심 (4)
“몸은 좀 어떠냐?”
이충호가 커피를 탄 컵을 내밀며 물었다. 그러자 좌공을 하며 앉아 있던 준원이 눈을 반개하며 대답했다. 동시에 준원의 몸 전체에서 뿌옇게 아지랑이 피던 것들이 차츰 흐릿해져 갔다.
“괜찮습니다.”
“그건 뭐하는 짓이냐?”
이충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좌공에 대해 묻자, 준원은 대답 대신 아리송한 미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무예를 익혔다 말하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이충호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준원의 심사를 읽었던지, 더 이상 그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대신 준원과 마주 앉은 채로 화제를 돌렸다.
“네가 내게 가르칠 것은 마땅히 군에서도 익히는 전술적인 것들이다. 그뿐 아니라 각 나라를 오가는 에이전트들이 기품을 차리는 예절을 비롯한, 스포츠 그리고… 살상 법이다. 살상법이 반드시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하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
준원이 눈을 빛내는 와중에, 이충호의 말이 이어졌다.
“통칭, 내가 몸담았던 곳에서는 사람을 옭아매는 전술적 계획을 설계라고 한다. 설계의 그물은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이 촘촘하게 엮여야 하지. 주변 인물 탐색을 통한, 예외의 변수들을 늘상 통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네.”
“너는 그것들을 배워 나갈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상 법 또한.”
굳은 표정의 이충호에게서 방금 전 가벼웠던 말투와는 달리, 준원의 속내라도 꿰뚫어 볼 듯한 날카로운 느낌이 전해졌다.
“총기류에 대한 훈련도 같이 겸할 것이다.”
이어지는 말에 준원이 놀랐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놀랐느냐.”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치안의 특성상, 총기류 반입은 절대 불가능했다.
특히나 정부는 이를 구실로 대한민국의 치안은 세계 최정상을 달리고 있다 말할 정도였으니, 총기류에 관한 규제가 얼마나 엄격한지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총기류 훈련이라니?
준원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금 되물었다.
“총기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냐.”
이충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태연하게 말하는 것치고는 누가 들어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총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내려가 보던지.”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지하. 따라와.”
커피 잔을 내려놓은 이충호가 지체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일러실 입구에 들어가자, 쾌쾌한 기름 냄새만 가득했다.
“어디로 가는 거냐. 이쪽이야. 인마.”
뒤를 따라가던 준원이 방향을 잃고 헤매자 어느새 보일러 옆 장롱을 세워 둔 틈 사이로 들어갔던 이충호가 고개만 배꼼 내밀며 말했다. 아무래도 또 다른 지하로 통한 입구인 모양이었다. 이윽고 준원이 뒤를 따라나서자 둘은 자동보안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문 앞에 서게 됐다.
“비싼 돈 좀 들였지.”
그는 자랑하듯, 문을 툭툭 두들기고는 문 옆에 보이는 버튼 속으로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띠―! 인식이 완료 되었습니다―!
지문 인식이 완료되자 문이 ‘쿠쿵’ 하는 소리를 내며 미닫이문처럼 옆으로 열렸다.
“들어와.”
먼저 걸음을 옮긴 이충호가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자 준원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각종 진열되어 있는 총들이 준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더불어 총기 진열대 앞에 위치한 창 너머 길게 이어진 복도에는 사격이 가능하도록 방탄유리와 방음장치가 함께 설계 된 사격대가 있었다. 일부러 이러한 지하를 설계하지 않고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대단하군요.”
준원이 처음으로 감탄했다. 그러자 이충호도 만족스러웠던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사격술을 익힐 곳이다. 최근 쏟아져 나온 최신형 총들은 들여오지 못했다만, 얼마 전까지 특수부대용으로 쓰여졌던 총들이니 꽤나 쓸 만할 게다. 어차피 신형 총기류가 보급된다 하더라도 막상 그걸 활용해서 쓰는 건 몇몇 특수부대밖에 없거든. 예산 문제래나 뭐래나. 아무튼 군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진열되어 있으니, 전부 익혀야 하는 건 당연하고 분해 결합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빠른 속도 내에. 물론 그것들은 모두 사격술의 기본 근간이 되는 것들이고. 네가 진짜 익혀야 될 건… 언제 어디서든 상대방을 맞출 수 있는 감각을 익히는 거지.”
진열되어 있던 라이플을 들어 올려 익숙한 듯 장전하는 그의 모습은 아직도 현역에 몸담고 있는 군인을 연상케 했다.
“자. 이곳도 봤으니 이제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슬슬 감이 오지?”
이내 라이플을 내려놓은 이충호가 떠보듯 준원에게 물었다.
“뭘 하면 되겠습니까.”
이미 준원은 다음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징한 놈. 조급하기는. 어차피 맛만 보라고. 훈련은 내일부터 강도 높게 다뤄 주마.”
나이 칠십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이충호의 눈은 여느 때보다 뜨거워 보였다.
다음 날.
“인마. 일어나라. 응?”
준원이 누워 있던 이부자리를 걷어차던 이충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곤히 잠들어 있던 녀석이 온데 간데 사라진 탓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준원이 가져온 짐짝을 보니 예상과는 달리 짐짝은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떠난 것은 아닌 셈.
팔짱을 낀 이충호의 눈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어딜 쏘다니다 오는 거냐?”
이충호가 인상을 쓰며 타박하자, 준원은 어딜 다녀왔는지 입고 있던 옷이 흙먼지로 가득해져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산을 좀 오르고 왔습니다.”
“산?”
“예.”
“좋아. 오늘 훈련 장소는 앞산이다. 따라와. 자식이 멋대로 행동반경을 설정하고 말이야. 상관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어. 빨리 안 와?”
언제부터 상관이 됐는지 모르지만 이충호가 우기니 준원은 할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우리나라든 남의 나라든, 결국 부대의 중요한 것이 뭔 줄 아냐?”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선 이충호가 헐떡거리며, 돌 위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모릅니다.”
반대로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준원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체력이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그러니까 지금 네가 올라온 거리만큼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열 번만 반복하자. 별것 아니지? 특수부대는 다 하는 거야.”
놀리는 건지, 진심인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준원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산 아래로 무섭게 달려갔다.
돌 아래로 뛰어내려 가던 것이 방금 전이었는데 준원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산 아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충호의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꾸벅꾸벅 졸던 이충호는 땀에 젖은 준원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침을 닦았다. 추운 겨울날 산 위에서 졸다 보니 오한이 왔다.
“으으.”
한 차례 몸을 잘게 떤 이충호가 이내 준원과 시선을 마주했다.
“왜? 빨리 하라니까. 인마. 아직 멀었어. 에취!”
“아직 겨울입니다. 집에 들어가 계시죠.”
“네가 남 걱정할 때냐? 너나 빨리 열 번 왔다 갔다 해. 왜? 다리가 후들거려서 못하겠냐?”
“다 끝내고 여기 있는 겁니다.”
“지랄.”
시계를 보니,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도 이런 시각에는 산을 열 번 오르락내리락 하지 못한다. 아무리 시골 앞산이라 해도 불가능하다 생각한 이충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굴 속이려고! 목숨 건다는 놈이 이까짓 게 힘들어서 거짓말을 쳐?”
“거짓말 아닙니다. 졸고 계셔서 못 본 것 아닙니까.”
“좋아. 네놈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자.”
이충호는 그 말을 하고는 언제 준비했던지, 비디오카메라를 돌 위에 올려놨다. 녹화를 시킬 요량인 듯했다.
“내가 나이가 있어, 네놈을 따라다닐 수는 없으니 산 아래에서 너를 기다릴 게다. 그럼 너는 이 카메라를 열 번 녹화시켜 놔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산을 정확히 올라갔다 내려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인 셈이었다. 그의 말에 준원은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무예를 익힌 것을 모르는 이충호에게 체력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생각한 것이다.
“좋습니다.”
“어디 한 번 보자. 얼마나 뛰어난지.”
흔쾌한 대답에 이충호는 ‘설마’ 하는 얼굴로 웃었다.
곧 들통이 나면 훈련이 힘들어서 그랬다는 변명을 듣게 되리라.
‘저놈이 벌써 포기할 리가 없을 텐데.’
사실 추운 칼바람 속에서 하루 종일 무릎 꿇고 있던 독기를 생각한다면, 벌써부터 포기할 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 한 시간 내에 산을 열 번 오간 것이라는 말인가? 이충호는 산 밑을 내려가면서 고개를 몇 번이나 계속 갸웃거렸다.
“허허.”
한 시간이 흐르자 이충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디오카메라 화면을 쳐다봤다. 시간에 맞춰 준원은 정확히 산 정상을 찍고 산 아래에 있던 이충호에게 확인을 맡았다. 중턱에서 쉬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준원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이야기다. 괜히 무안해진 이충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콧잔등을 긁었다.
“다음은 뭡니까.”
배려였을까? 준원은 굳이 이번 일을 걸고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다음 훈련을 자연스레 물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것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실 준원은 이충호를 설득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혈한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훈련과 배움이 설계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오로지 상대의 죽음만을 원하는 복수를 전제로 한 설계!
반드시 그들을 옭아매는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준원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돌연 이충호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체력적으로 준원이 보통의 수준을 훨씬 웃도는 능력이라면 애초의 계획된 훈련 전부를 모두 수정해야 했던 탓이다.
준원이 가진 한계를 모두 끌어낼 수 있게끔 바꿔야 했다. 진지해진 그의 표정에 준원도 아무 말없이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집으로 돌아가자.”
고개를 돌린 이충호의 눈이 반짝였다.
* * *
또다시 일 년은 금세 흘렀다. 준원은 이충호의 정해진 훈련 방식대로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수많은 훈련들을 받아 갔다. 김소흥과 무예 수련을 할 때와 또 다른 기회이자, 경험들이었다.
지하 사격장.
탕―! 탕―!
SSG―3000의 육중한 총성이 사격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예리한 저격총이라 불리는 SSG―3000은 지닌바 명성답게 성능이 탁월했다. 유효사거리 1,000 야드에 달할 정도의 사거리까지 있으니, 저격총으로써는 단연 으뜸이었다.
‘녀석.’
어느새 지하 사격장으로 내려온 이충호는 팔짱을 낀 채, 말없이 준원의 사격술을 응시했다. 사격이 끝날 때까지는 입을 열지 않을 생각이었다.
탕―!
마침내 마지막 한 방의 총성이 울려 퍼지자, 준원이 쓰고 있던 방음 귀마개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법이구나.”
김소흥과 마찬가지로, 꽤나 칭찬이 야박한 이충호가 일 년 만에 감탄했다. 하지만 준원은 만족한 표정도 없이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