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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12화)
4장 건달과 의뢰인 (1)
서울에 도착한 준원과 일행은 안암동에 있는 사무실로 우선 들어갔다. 안암동에 위치한 사무실은 마치 동네 복덕방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앉아라.”
소파에 소리 나게 앉은 오봉준이 준원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서 있는 게 편합니다. 바로 출발하죠.”
“뭐가 그리 급해서 서두르는 거냐?”
“급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서두르죠.”
“썩을 놈.”
오봉준은 준원의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났다.
그리고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해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잠깐.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꾸나. 너와 나는 거래를 했지만 어느 쪽이 먼저 거래의 성과를 보여 주냐에 대한 얘기는 안 한 걸로 안다만.”
“간단한 일이니 제 일부터 처리하려는 겁니다.”
준원은 과거의 일들을 굳이 오봉준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간단한 일을 왜 흥신소까지 동원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 게다. 나는.”
그도 밑도 끝도 없이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요점을 파악하고 정리한 뒤에 움직이는 눈치라도 없었으면 정보 계통에서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준원의 심사가 궁금했다. 제아무리 자신이 해결하려는 일에 준원이 필요할지라도 목숨을 거는 일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탓이다. 물론 목숨을 건다는 것이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었으나, 준원의 눈빛을 보면 예삿일은 아닌 듯했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서 나쁠 것은 없잖은가?
때문에 오봉준은 준원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그림을 찾고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준원은 결단을 내렸다.
‘그래. 차라리 반쯤 솔직해지자.’
“궁지에 몰렸을 때는, 진실과 거짓을 반반씩 섞는 게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다. 물론 그것도 상황을 봐가면서 써야겠지.”
준원은 과거 이충호가 해준 조언을 기억하며 이미 말꼬리가 물렸다면 도리어 반쯤 솔직해지는 것이 낫다 생각했다. 차라리 그편이 그 일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의문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야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역시나 준원의 예상대로 오봉준은 그림에 관한 것을 질문할 뿐, 그림에 얽힌 사연은 묻지 않았다.
“그 그림을 왜 찾는데?”
“어머니가 남겨 주신 유품입니다.”
“어머니가?”
“네.”
“그럼 그 그림을 왜 굳이 우리를 통해 가져오려 하는 거냐?”
“대출 때문에 빚을 져서 사채업자들을 피해 그림을 숨겨 놨다면 믿을 겁니까? 더구나 그들이 제 얼굴을 안다면?”
“그럼 말이 되지.”
“집 문까지만 도착하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지하 문이니, 그곳으로 딱히 시선을 둘 일도 없을 테죠.”
“그렇겠지?”
“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선 사람이 갑자기 동네에 등장한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냐?”
이미 오봉준은 준원의 얘기를 믿는 것 같았다. 굳이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크게 별 다른 위험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서 수락을 한 듯했다.
만약 준원의 속사정을 알았다면 허락하지 않았을 테지만.
“자. 그럼 그림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끝내자꾸나.”
“그러죠.”
“거래가 끝난 뒤 쌍방이 화목해야 그게 진짜 거래지.”
오봉준의 말에 준원이 그제야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제…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 들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만.”
“얼마 전 받은 의뢰다. 지금까지 진행된 건,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되겠지?”
“네. 상관없습니다.”
“그래. 아무튼 형제들 간의 문제가 엮였는데, 이게 조금 곤란해졌다. 토지 문제 때문에 말이야.”
“의뢰인은 누굽니까?”
“동생이다. 웬만하면 형과 법정 공방까지 원하지 않는 것 같은데, 형이 조금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지역 건달하고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더구나.”
“그럼 그 건달을 막아드리는 게 제 몫입니까?”
핵심을 묻는 준원의 질문에 오봉준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서 문제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준원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토지 문제에 관한 법적 공방은 끝이 났다. 아버님의 직접적인 유언장이 남겨져 있어서 동생의 소유로 판결문이 나왔지. 그런데 형 쪽에서 거기에 앙심을 품고 아예 건달들을 계속 동원해서 땅을 파헤치거나, 집 안에 쳐들어와서 난장판을 부린다더구나. 그런데도 동생은 평화롭게 해결했으면 한다고 계속 얘기하니 우리 쪽에서는 너를 동원해서 힘을 쓰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기도 뭐한 상황인 게야.”
“그래서 결정하신 방법은 뭡니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 잘 알게야. 형님께 훈련받은 너라면, 속담을 인용하면 답이 나오지 않으냐?”
“훈련 받았다는 얘기는 안 했습니다.”
“척하면 척이다. 하다못해 흥신소는 냄새 못 맡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는 직종이야. 내가 그것도 눈치 못 챌 줄 알았느냐? 아무튼 대강 견적이 그려지지 않냐.”
“말씀하신 투로 보니, 지역 건달보다 더 높은 건달 흉내라도 내실 생각인 것 같군요. 그렇지 않으면.”
“동생을 상상 그 이상의 사람으로 탈바꿈시키는 거지.”
오봉준이 씩 웃으며 준원 대신 뒷말을 덧붙였다.
“효과적이겠습니까.”
준원이 물었다.
“우리가 연기를 했다는 걸, 들키지만 않는다면 멀쩡하지 않겠냐. 그리고 저놈들이 아예 건드리지도 못하는 조직도 관련됐다는 뉘앙스만 풍겨 주면 감히 뒤를 캘 생각도 못할 거다.”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우선 그 형이라는 놈 집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 도청부터 하자꾸나.”
“불법이군요.”
준원이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요새 불법, 합법, 가리고 살면 먹을 것 하나도 없이 뼈만 쪽쪽 빨아야 되는 것도 모르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움직이려는지 소파에 앉아 있던 오봉준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렇게 일행이 형을 도청하며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바로 형(김용수)가 의뢰인(김홍진)의 토지를 협박을 해서 빼앗게 되면 토지를 되팔아 도움을 준 지역 건달과 50:50으로 이익을 나눈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활동 시일은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김용수가 통칭, 전갈이라 불리는 건달을 움직여 모래 저녁 동생의 집을 급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그 조직과 형 전부를 떼 놓을 만한 작전을 시작해야 했다.
“우선… 의뢰인의 신상 정보를 있는 대로 가져와라. 유복아.”
유복이 대답 대신 의뢰인이 팩스로 보내온, 신상 서류들을 파일 철에 껴서 가져왔다. 평범한 소시민이라서 그런지 서류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 부분입니다.”
함께 신상 파일을 검토하던 준원이 들고 있던 빨간 펜으로, 십여 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는 부분을 동그라미 쳤다.
“의뢰인을 데려와야겠어요. 유복 씨라고 했습니까.”
유복도 상황의 급박함을 느끼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도 모르게 약속을 잡고 새벽쯤 그를 차에 태울 겁니다. 미리 연락해 둬요.”
“알았다. 쑨원.”
준원의 지시를 받은 유복이 대답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오봉준이 턱을 쓸어 담으며 물었다.
“의뢰인을 데려와서 어쩌려고?”
“가능한 한 형이라는 사람이 모르는 신상 정보를 뽑아내서 이 유학 기간의 일들을 전부 새로운 것들로 바꿔야 되지 않겠습니까. 피 냄새가 나야 물러나겠죠. 전직 대 테러 요원이라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지 않겠습니까. 적당한 협박만 한다면 말입니다.”
냉정한 눈빛으로 입을 연 준원의 싸늘함에 마주하던 오봉준이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대체 넌 뭐하다 온 놈이냐?”
“알고 있는 대답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괴물 같은 놈.”
단지 훈련만으로, 웬만한 정보원 뺨치는 준원의 대처 능력에 오봉준은 감탄밖에 할 게 없었다.
상황을 분별해서 그에 맞게 움직이는 역량은 사건들을 많이 접하지 않은 에이전트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준원은 몇 가지 서류만으로 재빨리 상황을 분석하고 움직이려 했다. 이런 놈은 정말 괴물이란 말이 가장 적당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가죠.”
어느새 자리를 정리한 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둘렀다.
―네?
“의뢰인께서는 잠자코 제 말만 듣고 움직이면 되오. 알았소?”
―그… 그러겠습니다.
“집 밖 골목으로 나오시오.”
―네.
동시에 봉고차 한대가 김홍진과 집 사이를 교묘히 가리며 정지했다. 놀란 김홍진이 두리번거리던 사이 문이 벌컥 열리며 억센 손이 김홍진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겼다.
우당탕―!
차 안으로 납치되듯 끌려들어간 김홍진이 소리를 지르려 하자, 준원이 급히 반대 손으로 김홍진의 입을 막았다.
“쉿.”
싸늘한 준원의 눈과 마주하자 김홍진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안심하시오. 다 의뢰인의 안전을 위해서요.”
맞은편에 함께 앉아 있던 오봉준이 태연한 얼굴로 말하며, 놀란 김홍진을 안심시켰다.
그제야 준원도 김홍진의 입에서 손을 떼며 물러났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오봉준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 그러겠습니다.”
처음 의뢰를 맡겼을 때는 보지 못했던 분위기에, 김홍진도 압도된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신상에는 조기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간 겁니까?”
“예. 제 아버지께서는 저를 무척이나 예뻐하셨습니다. 형보다 더 사랑을 주셨죠. 눈으로도 보이는 사랑이었습니다.”
“똑같은 자식을 두고 사랑을 다르게 준다? 약간 비약이 있는 것 같지 않소? 솔직히 얘기해 주시오. 앞으로 일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것들이오.”
“얼마 전 의뢰를 청할 때는 그런 말씀 없으셨습니다.”
“그거야 지역 건달이 얽혀 있는 걸 몰랐을 때고.”
“죄송합니다.”
“그 얘기를 내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무안 주려고 꺼낸 얘기는 아니오. 그러니까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시오. 그래야 나도 이번 의뢰를 해결해 줄 수 있소.”
“알겠습니다.”
누그러진 오봉준의 음성에 긴장이 풀렸던지 김홍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실은 저와 형은 배다른 형제입니다. 물론 어머니들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재혼을 하신 거군.”
“예. 그래서 형은 제가 형이 물려받아야 할 재산을 빼앗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줘버리고 싶지만.”
“땅을 주고 말고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준원이 나섰다.
“아마도 형이라는 분은 김홍진 씨가 힘겹게 벌어들인 모든 수익들을 가지고도 늘 김홍진 씨를 괴롭힐 겁니다. 욕심은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김홍진 씨를 건드릴 수도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편이 낫겠죠. 그럼 적어도 조용히는 살아 줄 테니 말입니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누구… 시죠? 의뢰할 때는 뵙지 못했었는데요.”
“허허. 내 조수요.”
김홍진이 준원의 삭막한 인상을 쳐다보며 경계하자, 오봉준이 급히 끼어들며 그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그가 정신도 차리지 못하게 말을 빠르게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