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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13화)
4장 건달과 의뢰인 (2)


“고로 우린 지금부터 형이라는 사람이 모르는 김홍진 씨의 신상을 알아야 합니다. 방금 전의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자, 조기 유학을 갔다 왔다고 했소? 그 사실을 형이 알고 있소?”
“네, 압니다.”
“그럼 십 년간 어떻게 지냈는지도 알겠구먼?”
“네 편지를 늘상 보냈습니다. 아버지께. 함께 봤을 겁니다.”
“어디로 갔었습니까?”
“아버지는 제가 오하이오 주에서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다고 아셨지만 스무 살 때 저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는 분을 통해 곳곳에 적십자 구호활동을 다니게 됐습니다. 학교 학생들도 제법 됐었습니다.”
“그 사실을 형은 모르겠군.”
“예. 아버지께서 만약 제가 아프리카를 다녔다는 사실을 돌아가시기 전에 알고 계셨다면 크게 화를 내셨을 겁니다.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가면 병이 옮는다고 생각하셨거든요.”
“그겁니다.”
고민하던 준원이 가장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찾은 것마냥 말했다.
“우리는 알고 상대하는 적들은 모른다. 그럼 기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맞설 수 있죠.”
스스로 맞선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후에도 흥신소를 비롯한 준원의 도움이 없이도 김홍진이 지역 건달들의 손아귀에서 무사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겠구나.”
의중을 파악한 오봉준도 만족스럽게 동조했다. 그러자 준원이 이해하지 못하는 김홍진을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김홍진 씨는 세계 곳곳으로 구호를 다녔습니다. 가끔은 혼자 다닐 때도 있었을 겁니다. 내 말 틀립니까?”
“네. 분쟁 지역으로 가려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서 저같이 먼 곳에 살던 회원들은 그쪽 지역에 상주하며 머무는 사람들을 혼자 찾아가고는 했었습니다. 정말 위험했었죠.”
김홍진은 그 말을 하며, 과거라도 회상하는 양 자신의 공훈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
“저는 그곳에 머물며 아이들을… 그 전쟁 통 속에서도.”
“그만.”
그쯤 되자 준원이 김홍진의 말을 잘랐다.
그러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우린 홍진 씨의 신상을 특수부대 출신 용병으로 만들 겁니다.”
“예?”
“지역 건달쯤은 혼자 맞설 수 있게끔 만든다는 거죠. 아니, 상위 조직들도 건드리지 못할 만큼. 그 동료들이 찾아온다는 시나리오까지 얹힌다면 건드릴 수조차 없겠죠.”
“제가 특수부대요?”
“그래요. 홍진 씨는 가족들 몰래, 은밀하게 작전 부대에 입대했었고 이후 각 분쟁 지역에서 전쟁을 해온 겁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을 돕는다는 구호 활동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거죠. 이해되십니까.”
“그걸 믿겠습니까?”
“믿지 않는다면 믿게끔 만들면 됩니다.”
다부진 준원의 힘 있는 음성이 차 안에 싸늘하게 감돌았다.

“만약 대항하고 있는 놈들에게 좀 더 두려움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 것 같으냐?”
“근처에다 크레모아라도 터트려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 때때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지만 그것보다는 그들 내부에 끈을 심어 두는 것도 상대를 기만하는 방법 중 하나지.”
“끈을 심어 둬서 더욱 혼란을 가중시키기라도 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제법 눈치가 빨라졌구나.”

준원은 이동하면서, 일 년 전 이충호가 임무를 해결하며 힘든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기록해 놓은 일기와 서류들을 보며 대화를 나눴던 것을 떠올렸다.
이충호는 자신이 해온 임무들을 통해 준원을 가르치려 했고 준원도 스펀지처럼 그의 것들을 끊임없이 익히고 습득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러한 훈련의 결과가 빛을 발할 때였다.
“사장님. 다 왔다.”
진입하려는 다방과 멀리 떨어진 곳에 다른 차들과 함께 주차한 유복이 외쳤다. 그러자 여전히 계획을 세우고 있던 오봉준이 대답했다.
“그럼 입 다물고 mp3나 들어 주겠느냐. 유복아.”
“어려운 일 아니다. 근데… 사장님 월급 밀렸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보너스까지 넣어 주마.”
“진작 그래야지.”
지지 않고 응수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 유복의 행동에 오봉준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치며 한숨을 쉬었다.
“네 말대로 끈이 있는 곳으로 왔다만, 행동대장이라는 놈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
다시 준원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가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디스 한 개비 꺼내 입에 물며 물었다. 그러자 준원이 다짜고짜 차에서 내렸다.
“도움이 될 겁니다. 제가 그쪽으로 진입하는데.”
“진입? 무슨 진입?”
“살면서 건달 한 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겠습니까.”
“하?”
오봉준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복 씨.”
준원이 mp3를 듣고 흥얼거리던 유복을 크게 불렀다. 놀란 유복이 고개를 돌리자, 준원이 그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꿔 입죠.”
평소 유복이 입은 옷 스타일이 누가 봐도 건달이었다는 것을 아는 오봉준이기에, 그는 별말없이 얼른 바꿔 입으라는 듯 턱짓을 했다.
이윽고 옷을 갈아입은 준원은 영락없는 동네 건달이었다. 워낙 유복이 입고 있던 옷이 독특해서인지도 몰랐다.
단추를 두 개 푼 꽃 남방에, 흰 양복에 흰 구두까지, 과도한 연출이기는 했지만 분위기만큼 건달 못지않았다.
갈아입고 온 준원을 본 오봉준이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하! 그렇게 그 옷이 잘 어울리는 놈은 처음 봤다.”
“멋있는데?”
반대로 유복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자신이 입던 옷을 입었을 뿐인데, 옷맵시가 확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 탓이었다.
물론 정작 옷을 입은 준원은 여전히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우선 접선하는 방법은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할 겁니다.”
그가 옷은 아랑곳 않고 입을 열었다.
“뭐?”
“자금을 대주는 겁니다. 행동대장이라는 작자가 도벽이 있다고 하니, 그걸 이용하는 것이 좋겠죠. 하지만 여기서 도와주실 부분이 있습니다.”
“대강 예상했다. 너는 판에서 타짜를 다뤄 본 적 없을 테니, 너는 내 똘마니 정도로 신분을 가장하자.”
“직접 나서실 겁니까.”
“내가 하는 것이 더 맞겠구나. 어차피 내게 온 의뢰였지 않으냐. 그리고 그러기 전에 지역 건달 놈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타짜 하나 섭외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자금이 필요하려면 돈을 좀 잃어야 될 테니까.”
준원과 마주한 오봉준의 미소가 짙어졌다.
오봉준이 전화를 건 뒤, 한 시간여 후에 차에 올라 탄 남자는 무척이나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날카로운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마치 한 번 보고 나면 잊혀질 듯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느껴지는 눈빛의 예기는 분명 평범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반갑소. 형씨. 나 김원석이라 하요.”
자신을 김원석이라 밝힌 남자가 악수를 청했다. 내민 손을 본 준원도 거부하지 않고 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강준원입니다.”
“떡대가 좋소. 그나저나 무슨 일로 날 보자 하셨소. 영감님.”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 김원석이 오봉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른을 봤으면 어른부터 인사를 올려야지. 예의 없는 놈이.”
“거참. 오랜만에 뵈도 변한 게 하나 없으시오. 무슨 일이오?”
“손 씻었다며?”
“당연한 소리를.”
“손 씻었다는 놈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는 건 뭐냐.”
“그거야 뭐. 동네 자장면 아르바이트 가지고는 애 귀저기 값도 안 나오니 하는 겁니다.”
“녀석. 손 털기가 쉽지는 않겠지.”
“그렇게 말씀하지는 마시오. 손은 털었소. 단지…….”
“절제만 한다면 문제 될 것도 없지 않겠냐.”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영감.”
“네게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다.”
“판 얘기를 하는 거 보니, 판에 올려놓을 생각인가 보오? 영감도 그런 데 취미 있었소?”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이다.”
“이거야 원. 그런 일에 나 같은 타짜를 껴요?”
“아니. 넌 돈만 잃게 하면 돼.”
“보니까 이 지역 건달 놈들만 가득히 모이는 것 같은데. 시부랄.”
봉고차 차창 밖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오기를 반복하는 남자들을 보며, 원석이 투덜거렸다. 쉽지 않은 일임을 눈치챈 것이다.
“칼이라도 들고 설치면?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 종자들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정 판 떼기에서 찌르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찌르겠지만 그리 걱정할 건 없다.”
“어쨌든 찌르는 거잖소! 해도해도 진짜 너무하시네. 영감님.”
“그러니까 적당할 때쯤 우릴 부르란 말이야. 감으로 칼을 뽑을 때 정도는 계산하지 않냐.”
“뭐. 그거야, 목숨 걸고 할 때야 그랬지.”
“그럼 그 감 좀 살려 봐라. 적당할 때 우리가 투입하겠다.”
“투입이고 자시고. 투입해서 뭐 칼이라도 대신 맞아 줄 거요?”
“칼보다 더 한 녀석이 있지 않으냐.”
오봉준이 준원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결국 오봉준의 성화에 못이긴 원석은 소형 마이크를 달고, 판 떼기로 향했다.
투입 여부 신호는 ‘아 배가 부르네.’ 로 정했고, 오봉준은 행동 대장의 자금줄을 대주는 역할로 그와 접선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근데 돈은 어디서 나셨습니까.”
준원이 대뜸 물었다. 원석을 판 떼기 앉히게끔 하는 돈과 행동 대장과 접선을 하기 위해 투입하는 자금을 묻는 것이었다.
“그간 번 돈이 좀 있어서 해 놨다. 그리고 굳이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니거든. 잠깐, 근데 그걸 묻는 건 네 처음 계획이 자금 투입이 아니었다는 얘기냐?”
“예. 처음에는 자금이 없는 것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짠 겁니다. 판에 타짜를 올려놓고 자금을 마르게 해서, 자금줄로써 접선을 할 생각은 배제했죠.”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극단적인 방법을 쓰려고 했습니다. 토지 문제에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근처 한 곳을 폭발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이곳으로 올 때 크레모아를 비롯한 폭발물을 좀 챙겨 왔습니다.”
“하?”
오봉준은 기가 막혔던지 헛웃음만 지었다.
“그래야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겠죠. 충격 효과도 있을 테고.”
“차라리 그편보다는 이 방법이 낫겠구나.”
“그래서 가만히 있었던 겁니다.”
준원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궁금한 건 없냐?”
“단지 신체가 건장하다고 해서 사시미를 피할 수 있다는 걸 알 수는 없습니다. 왜 굳이 무리를 하신 겁니까.”
“네가 잘 훈련 받았을 거라 믿었다. 형님이라면 제대로 된 놈 하나 키워 놨다 싶어서 얘기한 건데, 왜 뭐가 잘못됐냐?”
“확신도 없이 처리하신 셈이군요.”
“깐깐하기는. 가끔 세상은 확신보다 직관을 믿을 때가 더 많은 거다.”
그때였다.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귓가로 스피커 속, 원석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장면을 잘 먹었더니 배가 부르구먼. 형님들도 그렇소? 하하. 다들 배들도 찼으니, 슬슬 가 봅시다. 오늘 형님들 운명은 내가 바꿉니다.
분명 약속한 신호였다.
“준비됐냐?”
이어지는 오봉준의 물음에 준원이 대답 대신 봉고차에서 문을 열고 내렸다.
“성질도 급하기는.”
먼저 걸어가는 준원을 보며 오봉준이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