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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14화)
4장 건달과 의뢰인 (3)
“시팔. 이 새끼. 밑장 깐 거 아냐! 아니야. 수채 구멍에 탄 바꿔치기 했지. 이 개새끼야.”
전갈파 보스 전갈의 직속 행동대장 유영광이 수채 구멍 확인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에헤. 1땡 나온 거 가지고 너무들 하시네.”
원석이 지닌 패를 슬쩍 내려놓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안 와. 시부랄.’
당장이라도 사시미를 빼들 것 같은 건달들 표정에 원석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들. 난 이만 약속이 있어서.”
“돈은 놓고 가라. 알았냐?”
조직원으로 보이는 건달이 돈 가방을 든 원석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자, 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개놈의 새끼가 어느 손이라고, 손을 막 확확 잡아대? 똘마니 주제에. 시부랄 놈이.”
도리어 기세를 잡으려는 듯, 원석은 손목을 확 뿌리치며 돈 가방으로 조직원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기습적으로 머리를 맞은 건달이 뒤로 물러나며 휘청거렸다.
“저 새끼 조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원석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때였다. 밀실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가려진 커튼을 열고 노인과 남자 하나가 들어섰다.
“어이. 유영광 사장.”
어느새 건달로 빙의라도 한 것마냥, 오봉준의 연기는 태연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영광이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 털썩 앉으며,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내려온나. 아가야.”
오봉준이 식탁 위에 올라서 발광하던, 원석을 향해 손짓했다. 원석이 기다렸다는 듯 식탁에서 내려와 그의 뒤로 돌아가서 섰다.
“이 새끼들이.”
그러자 나머지 조직원들이 칼을 빼 들었다. 그 순간 침묵하던 유영광이 한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제지했다.
“멈춰라.”
“예. 형님.”
장내에 남아 있던 조직원 세 명은 어느새, 유영광의 등 뒤로 자리를 옮겨 눈을 희번덕거렸다. 오봉준과 유영광의 대치 상태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채 서로를 노려보던 그들의 침묵이 이어졌다.
“영감님은 누구시오?”
유영광이 침묵을 먼저 깨고 물었다.
그러자 오봉준이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어이. 유영광 사장한테 할 말이 있어 왔지. 땅 하나 공사 치고 있다믄서?”
“그런데?”
“내가 거 따가 집 한 채 지으려고 하는데 말이야. 크게 한판 놀아보자 하고 왔지. 이제 이해됐는가?”
유영광은 대답 대신 조직원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동시에 준원이 다가오는 그들에게 맞섰다.
쒜액―!
사시미 하나가 준원의 가슴 언저리를 노리고 다가오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왼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해 팔꿈치로 조직원의 턱을 가격했다.
한 명이 순식간에 무너지자, 나머지 둘이 잇달아 달려들었다. 준원은 또다시 날아온 사시미 두 자루를 어깨를 좌우로 흔들어 피하고 양손을 뻗어 사시미를 쥔 조직원들의 손목을 잽처럼 끊어 내리쳤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지던 사시미마저 몸을 낮춰 번개처럼 받아 내며 도리어 준원을 노리던 조직원들의 목덜미에 양손에 쥔 사시미들을 겨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유영광이 눈만 끔뻑였다.
‘범상치 않은 놈들이다.’
범상치 않은 것뿐만 아니라 꼼짝 없이 당한 셈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생각으로 우선 눈을 굴렸다. 그러다 조소하고 있던 오봉준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되레 성질을 부리며 강짜를 놓았다.
“맘대로 해 봐. 호구 새끼들이.”
“아가. 호구는 유. 영. 광 씨 별명 아니냐?”
오봉준이 시선을 힐끗 돌려, 옆에 서 있던 원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원석이 짜여진 상황극처럼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예. 맞습니다. 형님.”
“자. 유. 영. 광. 씨.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 볼까. 아아. 우선 돈부터 돌려 드리지. 우리 애들이 예의가 좀 없어서 말이야. 돈 올려놔라. 아가.”
원석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고는 들고 있던 가방을 열어 원금을 챙겼다.
“원금만 챙기고 나머지 다 드려라 아가.”
그렇게 원금만 챙겨 다시 가방을 챙겨든 원석과 함께 유영광의 눈에도 놀람이 서렸다. 설마 딴 돈을 돌려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유영광 사장에게 돈을 돌려 드리는 대신, 힘 좀 써줘야겠소.”
“…무슨 힘을 써드립니까.”
제법 공손해진 유영광의 말투에 오봉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양 빠지게 아마추어처럼 이러지 맙시다.”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갈 사장. 아니, 사장은 여기 있으니 회장인 셈이지.”
“그분을 왜 찾소?”
“말했잖소. 땅에 관심이 많다고. 같이 일하면 크게 문제될 것 없을 거요.”
“전갈 형님은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않소.”
“그럼 상종을 하게끔 개가 되면 되겠는가? 응?”
오봉준이 힐끗 준원 쪽을 쳐다보자, 준원이 양손에 들고 있던 사시미로 겨누고 있던 조직원들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털썩―! 털썩―!
목덜미를 가격당한 조직원들이 힘없이 쓰러지자 유영광이 급히 손사래를 치며 외쳤다.
“좋소!”
“지금 당장.”
“그건 어렵겠지만… 해 보겠소. 판돈도 돌려줬으니 그 정도는 해드려야지.”
“그럽시다. 안내하시오.”
오봉준이 고갯짓을 하자 유영광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근처 다방.
“그래서? 내 동생을 잡아 족치려고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전갈이 싸늘하게 웃으며 물었다.
“혀… 형님. 그게 아니라.”
유영광은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급히 중재에 나섰지만, 이미 전갈은 단호하게 생각을 굳힌 뒤였다.
“판돈을 구걸해서 받아오는 것도 모자라서, 목숨까지 구걸했냐? 앙?”
전갈이 유영광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보고 있던 오봉준이 마시고 있던 차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연기는 그만하시고 이번 일 같이 합시다. 전갈 회장.”
“연기?”
전갈이 반문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빤히 보이는 쇼가 연기가 아니고 뭐요? 난 사업 얘기를 하러 왔지. 쇼를 보러 온 건 아니요만.”
전갈의 표정을 본 오봉준이 짐짓 심드렁한 투로 귀를 파며 말했다. 정말 그의 말 대로였다. 그는 오봉준의 기세부터 꺾고, 대화를 하고자 유영광을 향해 계속 욕설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걸 알고 있던 유영광도 그의 연기에 같이 장단을 맞춰 준 것이고.
‘제법 거물을 물고 왔구나.’
전갈은 이 정도 눈치까지 있다면 평범한 놈들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방금 전 거만하던 태도는 싹 지운 채, 제법 공손해진 태도로 대화에 임했다.
“사과하지요.”
대뜸 전갈이 입을 열자, 오봉준은 이해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쪽에 사업 계획이 하나 있소. 근데 그 땅을 좀 먹어야겠는데.”
“미안하지만 이번 일을 어떻게 알고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쉽게 거래를 하지 않소. 더구나 이런 일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등을 보여 줘야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소?”
이어지는 오봉준의 제안에 전갈이 들어 보겠다는 양 눈을 빛냈다.
“땅을 얻든 말든, 우린 방관하겠소. 대신 땅 문서만 얻게 된다면 우리 쪽으로 그 땅을 넘기시오. 원래 시세의 두 배를 주지.”
“그럼 그 땅이 꽤나 비싸게 받을 만한 곳이란 소리가 아니오? 아무래도 안 되겠소. 경매 시장에다 붙여도 그거보단 많이 받을 것 같은데 말이요.”
전갈은 자신들이 공사 칠 땅이 제법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오봉준에게 듣고는, 거들먹거리며 발을 빼려 했다. 그러자 오봉준이 전갈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사업을 이끄는 건 내가 아니라, 윗분들이시니 굳이 그 땅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소. 뭐 땅이야 구하면 그만이니.”
“어허. 뭘 그리 급하게 가시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전갈이었다. 전갈은 앞뒤 잴 것도 없이 욕심에 가득차서는, 오봉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윗분들을 좀 만나고 싶소만.”
“상의는 나하고만 하셔야 하오. 윗분들도 낯선 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거든.”
“좋소. 그럼 사업 계획서나 좀 보여 주시오. 그래야 우리도 땅을 맡기지 않겠소?”
“그럽시다. 그 전에 땅 문제를 언제쯤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나 말해 주시오.”
오봉준의 물음에 사업 계획서를 살피던 전갈은 잠시 갈등했다. 범죄의 준하는 일이라 낯선 자에게 얘기하기가 좀 꺼려졌던 탓이다. 하지만 사업 계획서를 보니, 자신에게 떨어질 부수입이 제법 될 것 같았다. 이 정도 액수라면 위험부담을 안고 갈 만했다. 이내 마음속 결단을 내린 전갈이 입을 뗐다.
“당장 내일 저녁에 일을 벌일 거요.”
애초 준원 일행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진행에 오봉준은 순간 눈을 빛냈다. 자칫하다가는 일이 모두 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갈과의 끈은 준원 일행의 생각대로 이어졌다. 남은 건 그들이 땅 문서를 탈취하려 하기 전에 그들의 행보를 막는 것뿐이었다.
전갈과의 만남 이후 준원 일행은 봉고차 안에서 회의를 가졌다.
“넌 안 가냐?”
그러다 문득, 원석이 집에 돌아가지 않고 함께 있다는 것을 자각한 오봉준이 대뜸 그에게 물었다.
“가져다 쓸 땐 언제고?”
오봉준의 물음에 원석이 섭섭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고생했다고 돈도 챙겨 줬는데 네놈이 안 가니 이상해서 그런다.”
“남 도와주는 게 뭐 잘못이요. 나도 도와주겠소. 그나저나 준원 씨 장난 아니던데? 난 영화 보는 줄 알았다니까? 아뵤.”
원석이 까불거리며 떠들어대자 준원은 대답 대신, 화제를 돌렸다.
“우선 저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건 아실 겁니다. 그러니 내일 오후쯤 전갈을 찾아가야 합니다.”
“바람잡이 노릇을 하라는 얘기구나.”
“네. 미리 준비해 둔, 김홍진 씨의 위장 파일을 가지고 가셔야겠죠. 전직 대 테러부대 부대원으로서 많은 용병들과 많은 일들을 벌였다고 확신을 줘야 합니다. 마치 당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입니다. 그럼 가장 먼저 행동 대장에게 전화를 하겠죠.”
“그렇겠지?”
“그때 제가 움직일 겁니다. 유영광의 차를 터트리겠습니다.”
“완전 미친 생각이구만.”
듣고 있던 원석이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끄럽다.”
하지만 이미 준원의 계획에 집중하고 있던 오봉준은 도리어 원석을 타박하고는, 준원의 말을 경청했다.
“그다음은?”
“그럼 위협을 느낀 전갈 쪽에서는 김홍진 씨를 따로 만나자고 하겠죠.”
준원이 원석의 말에는 관심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게 맞는 수순이겠지.”
“그럼 우린 김홍진 씨에게 적당한 대본을 주고 그대로 행동하라고 하면 됩니다. 전직 대 테러 요원처럼 굴어야 하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만약 말로 통하지 않는다면 후방 지원 사격을 해줄 겁니다. 주변에 용병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움직여 주는 거죠. 대한민국에 총기류가 불법이니, 이미 총기류를 들여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곳은 지방이고 더구나 외곽지역이라 경찰이 순찰도 거의 돌지 않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총소리를 듣고 나중에 출동한다 해도 탄피 흔적만 없다면 유야무야 묻힐 테고, 김홍진 씨를 위협하던 건달들은 전부 이 마을을 떠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나쁘지 않구나. 근데 설마 총도 가져온 게냐?”
“굳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 형님 참, 살 떨리게 키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