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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15화)
4장 건달과 의뢰인 (4)
오봉준은 준원을 보며 문득 그를 훈련시킨 이충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어느새 봉고차 트렁크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준비한 것까지 함께 터트리면 되겠다. 놈들 시체를 남겨 놨다가는 경찰 당국이 껴들어서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한 피를 준비해야겠구나.”
“피?”
반문하는 준원의 앞으로 붉은 액체가 담긴 껍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를 보면 원초적인 본능이 떠오르게 되지. 그건 어떤 놈이든 마찬가지일 게야.”
“그 원초적인 본능이란 게 뭡니까.”
“두려움이지. 넌 민간인이 총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으냐. 그것도 자기를 겨눠진 총이라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바로 그거다. 넌 총을 쏠 테지만 굳이 시체를 만들 필요도 없이, 나를 시체로 만들면 된다.”
이어진 오봉준의 말을 준원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눈살만 찌푸린 채 그가 하려는 일을 지켜볼 뿐이었다.
“자. 나와 봐라. 보여 줄 것이 있으니.”
잇따라 오봉준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준원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트렁크로 걸어간 준원은 오봉준이 안에 넣어 둔 장비들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오봉준이 입을 열었다.
“이 흰 봉지 안에 들어 있는 게 뭐 같으냐.”
오봉준이 소형 비닐 팩 안에 들어 있는 붉은색 액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피… 아닙니까?”
딱 봐도 끈적끈적해 보이고 붉은 것이 실제 피 같았다.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오해하지 마라. 헌혈이 될 피를 빼돌릴 만큼 철면피는 아니니까.”
“그럼 직접 만드셨단 말입니까?”
“오냐. 끈적끈적한 물감과 물엿 그리고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하면 진득진득한 피처럼 보이거든. 그럼 여기서 하나 물으마. 내가 이걸 왜 만들었을 것 같으냐.”
오봉준의 질문에 준원은 그가 지금껏 말했던 원초적 본능과 핏물을 연관시켜 고심했다. 딱히 연관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쯤 되면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심하던 준원이 말했다.
“이 가짜 피를 몸에 매달 생각이시군요.”
“맞다.”
“터트리는 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미리 준비해 뒀지. 이 비닐 팩 앞에 테이프와 함께 붙어 있는 작은 뚜껑 안에는 소량의 플라스틱 폭탄이 있거든. 아. 물론 아주 소량의 폭발을 위해 만든 것이라서 인체에는 무해하다. 그래도 살짝 따끔거리기는 할 테지. 그리고 여기 보이는 작은 리모컨은 이 안에 들어 있는 폭탄을 터트리는 데 사용되는 무선 격발 장치고. 이쯤 되면 감이 오질 않느냐?”
씩 웃는 오봉준의 미소에 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봉준의 말대로 피까지 흘리며 시체가 생긴다면, 물러나지 않고 배길 수는 없을 것이 확실했다.
다음 날.
“이봐! 전화를 했는데 왜 받지 않는 건가! 몇 번을 했는줄 아나!”
갑자기 다방을 찾아온 오봉준은 어리벙벙해하는 전갈을 보며 가져온 서류 다발을 그의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이게 꼴이 뭐요?”
“꼴? 시팔. 꼴같잖은 소리 하고 있네. 죽을 뻔했다고. 아나?”
입고 있던 양복이 다 찢어진 오봉준은 입술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그러자 당황한 건 전갈 쪽이었다.
상황 파악도 되지 않는 시점에서 소리만 질러대니, 어안이 벙벙해진 것이다.
“이거 봐. 똑똑히 보라고. 김홍진이라는 새끼에 대해서 말이야!”
“김홍진? 그 땅 주인 말이요?”
“거래를 한다는 놈이 그것도 안 알아본 건가! 앙? 이 새끼 완전 미친놈이였어. 전직 대 테러 진압 요원이었다는 것도 몰랐나? 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돌면서 용병 놈들이나 하는 별짓을 다 하고 다닌 놈이라고!”
그의 말에 전갈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오봉준이 가져온 서류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읽기 시작했다.
“서류는 얼마든지 위조해서 만들 수 있소. 더구나 우리가 알아본 결과 그 새끼는 평범하게 유학 갔다 온 것밖에 없던데?”
“대 테러 요원이 잘도 자기 과거를 떠들어댔겠구려!”
오봉준이 이죽거리며 대답하자 전갈은 급히 유영광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은 시각.
판 영업을 마친 유영광은 조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오래된 아반떼 앞으로 걸어갔다.
―온다.
근처 봉고차에서 카메라로 그의 동선을 확인하던 원석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알았다.
반대편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던 준원이 곧장 간밤에 차 기름 탱크와 연결해 놓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동시에 불이 붙은 도화선이 빠른 속도로 차를 향했다. 마침 아반떼 운전석 손잡이를 향해 손을 가져가던 유영광도 도화선을 보고는 급히 반대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 소리와 함께 아반떼가 허공에 한 번 붕 떴다 다시 떨어졌다.
쾅―! 쾅―!
아반떼가 흔적도 없이 불에 휩싸였다.
“시팔! 이게 무슨 일이야!”
어안이 벙벙해진 유영광은 너무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멀쩡하던 차가 폭발이라니?
“어떤 새끼야. 시팔! 나와! 안 나와?!”
주저앉은 유영광은 자리에서 발악하며 소릴 질러 댔다. 때마침 그의 양복 품속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예. 헉헉. 형님.”
―너 무슨 일 있냐?
“가만히 있던 차가 폭발했습니다 형님! 어떡합니까!”
―뭐? 알았어. 끊어 봐라.
탁―!
이윽고 전화가 끊기자 죽을 고비를 넘긴 유영광은 허탈한 표정으로 번져 가는 불길을 쳐다봤다.
“폭발했다지? 그래. 그 새끼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거야. 일이 틀어졌다고!”
오봉준이 더욱 열을 올리며 전갈을 닦달했다. 그러자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불안해하던 전갈은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표정으로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기다려. 이야기는 끝내야 되지 않겠나?”
오봉준이 급히 그를 가로막으며 말하자 전갈이 외쳤다.
“시팔! 그 망할 새끼를 내 손으로 잡아 죽여 버리겠어.”
걸어가던 전갈이 앞을 가로막은 오봉준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맘대로 해! 죽던 말든 난 더 이상 빠지겠다고!”
그렇게 사라지는 전갈을 향해 오봉준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 * *
지난밤 오봉준은 직접 김홍진과 만남을 가졌다.
의뢰인에게 대본을 비롯한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굳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오. 위험하니까. 이 일을 의뢰인께서 맡지 않으시겠다면, 우린 이 일을 전면 수정할 수도 있소.”
“아닙니다. 제 일이니 저도 도와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맞서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늘 유약한 제가 불안하시다고 하셨거든요. 형한테도 저도 이제 어른이라는 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근데 늘 궁금했었는데 그렇게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왜 굳이 농사일을 하는 거요?”
“농사일을 하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꿈을 꿉니다. 생전에 잘해 드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죄책감을 덜어 내는 거죠.”
“의뢰인은 역시 효자요.”
그렇게 오봉준과의 대화를 나눈 뒤, 김홍진은 계획대로 평소와 같이 농사일을 하며 전갈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지금쯤 대본을 계속 되뇌며 긴장하고 있을 테지만.
사선으로 세워 둔 봉고차와 봉고차 주변에 깔아 놓은 자연스러운 엄폐물 뒤로 숨어든 준원과 원석 그리고 유복은 전갈의 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준원이 가져온 총을 세팅했다. 이내 준원이 가져온 라이플이 모습을 드러내자 원석과 유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쉿. 옵니다.”
마침, 시골길을 통해 검은 차 세 대가 엄청난 속도로 김홍진의 밭 앞에 정차했다.
―의뢰인, 태연하게 행동하세요.
준원이 마이크를 통해 연결된 김홍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동시에 김홍진도 비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다.
“이 개새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 줄 알아?”
열 명가량의 조직원을 끌고 온 전갈이 김홍진의 턱을 손으로 옥죄며 발악을 했다.
“그래서?”
살 떨리는 협박에도 김홍진은 애써 떨리는 표정을 감추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땅 문서 넘기고 조용히 꺼져. 그렇지 않으면 너희 가족 전부 어떻게 될지 몰라.”
전갈이 입 주변에 기른 턱수염을 손으로 쓸어대며 협박했다. 그러자 애 타는 것은 준원 일행이었다. 가족을 빌미로 협박을 했을 때 태연히 넘겨야만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발.”
마이크로 상황을 듣고 있던 원석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때 아무 말도 못하던 김홍진이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용기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난… 과거에 너무 많이 피를 흘렸다. 이젠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를 이어받았어. 정말 피를 보고 싶지 않았거든. 설마 쓸모없는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미친 새끼. 넌 지금 이 상황 속에서 그따위 말이 잘도 나오나 보구나.”
싸늘한 전갈의 음성과 함께 김홍진을 둘러싼 조직원들이 사시미를 품속에서 꺼내 들었다.
“지금이다.”
어느새 엄폐물에 함께 자리한 오봉준이 준원의 등 뒤로 다가와 말했다.
“그러죠.”
조준경을 보고 있던 준원도 오봉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아쇠를 당겼다. 육중한 총성과 함께 조직원들이 디디고 있던 밭 주변에 총알이 박혀 들었다.
“초… 총이야! 총알이다!”
타타타타타당―!
총성은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친 자식. 대한민국에서 총을 쏴? 돌은 거냐!”
“날 돌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너희야. 그러니까 대답해. 여기를 당장 떠나던지, 아니면 총에 맞아 죽던지.”
“개소리 하지 마라.”
“내 친구들은 협박이란 걸 몰라. 그냥 부수지. 펑―!”
쾅―!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리 준원이 땅바닥에 설치해 놨던 크레모아를 작동시켰다. 마침 그들이 타고 온 차량을 크레모아 바로 위에 세워둔 탓에, 그 폭발력은 상당했다. 세 대의 차는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활활 불타올랐다.
쾅―! 쾅―! 쾅―!
이쯤 되면 지역 건달의 간 정도는, 오그라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오는 작자들 앞에서 마음껏 공사를 칠 간 큰 건달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봉준이 호들갑을 떨며 골목 귀퉁이에서 뛰어왔다.
“미친! 내가 여기 오지 말라고 했지 않나! 도망가든 뭘 하든 하라고! 미친!”
그의 외침에 오봉준의 말을 믿지 않던, 전갈은 고집을 서서히 꺾을 수밖에 없었다.
“피해! 미친!”
그 순간, 돌아서며 뛰려던 오봉준의 가슴팍에서 붉은 피가 솟아오르며 그가 지푸라기처럼 쓰러졌다.
“시발…….”
설마 전갈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갈 줄은 꿈에도 상상 못한 양, 멍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결국 총에 맞아 사람이 죽은 것이다.
“아직도 안 떠나?”
하지만 오봉준이 쓰러졌음에도 전갈은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며, 계속 김홍진을 노려봤다.
쉽게 포기하기에는 김홍진이 가진 땅이 너무 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총알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얻을 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전갈은 고개를 돌리고 반대편으로 조금씩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홍진도 도주하려는 그의 기색을 보며 기가 살았던지,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며 외쳤다.
“좋아! 이 마을을 떠나는 데 정확히 삼초 주겠다. 3. 2. 1!”
동시에 마지막 크레모아가 한 차례 더 터졌다.
콰콰콰쾅―!